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70)
070 겨울 사냥 축제
“라파 씨! 타티아나 씨!”
좁은 골목길을 가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 너머로 제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불사조 깃털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어제.
오늘은 여벌 옷과 약간의 생필품을 사러 가게가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왔다.
한데 오늘은 왜인지 사람이 평소보다 많다.
제니가 사람들을 헤치며 가까이 오는 걸 보며 타티아나가 작게 한숨 쉬었다.
“제니 씨를 보면요, 항상 기뻤거든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제니 씨를 보니까 힘이 빠지네요.”
그 모습이 너무 우울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타티아나가 살짝 내 팔을 때렸다.
“웃지 마세요. 적은 금액이라고 해도 돈이 쪼그라들었는데.”
불사조 깃털 가격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적었다.
원래 이번 의뢰가 살짝 비쌌던 거라 약간 낮은 가격이 정상이라고 한다.
개중 두 개는 상처가 약간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감안해 가격이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봐야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고 결국엔 큰돈이 들어온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어제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많이 실망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큰 차이도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충격받을 일이었을까.
제니를 보니 다시 그 생각이 난 모양이다.
어깨가 축 처졌다.
내가 웃음을 멈추지 못하자 타티아나가 다시 내 팔을 살짝 때렸다.
“정말… 웃지 마세요.”
“미안, 미안.”
“하아. 이건 라파 씨 돈이거든요.”
“아니, 우리는 파티니까 절반은 네 돈이지.”
“그건 아니죠. 불사조는 내 것이 아니잖아요.”
목소리를 잔뜩 줄여서 나에게만 들리도록 말한다.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죽였다.
“내 것도 아니지. 제멋대로 따라오는 거니까.”
“렐라 엄마잖아요.”
처음부터 우리가 버는 돈은 절반의 비율로 나눈다고 말했는데 타티아나는 욕심이 없는 것 같다.
나한테 하는 걸 보면 너무 착하다.
이래서야 이 세상을 잘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실력이 있는 것과 세상을 잘 헤쳐 나가는 건 다른 일이다.
잘못하면 나쁜 사람한테 속아 인생이 시궁창이 될 것 같아.
역시 그녀를 위해서도 내가 이 사랑을 획득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이제 슬슬 친해진 것 같기도 하고 돈도 생겼으니, 조금쯤 관계를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자.
더 두고 보다가는 다른 남자한테 빼앗길지 모른다.
인생은 투쟁의 연속, 사랑은 쟁탈이다.
힘내라, 나.
그렇게 혼자 결심하는 사이 제니가 사람들을 이리저리 헤치며 다가왔다.
가쁘게 숨 쉬면서 말한다.
“얼마 뒤에 축제가 있어요. 거기에 참가할 건지 확인을 받아야 해서. 사실은 어제 이야기 해야 했는데, 미안해요. 불사조 깃털이 들어오는 바람에 너무 흥분해서 잊어버렸지 뭐예요.”
제니가 웃는다.
“정말, 어제는 길드 전체가 광란의 도가니였죠. 불사조 깃털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왕도에 있는 본점에는 오늘 새벽같이 연락을 보냈다고 한다.
이쪽에 불사조 깃털이 있다고.
“지금까지는 수요가 있어도 구하기가 어려워서 거래가 뜸했거든요. 하지만 이제 조금쯤 구매가 활발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어제도 말했지만 조금 더 구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네요.”
제니의 눈동자가 기대로 반짝였다.
뭐, 당연히 다음에도 또 구할 수 있다.
불사조가 근처에 있으니까.
조금 전까지도 도시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여관 창문으로 들어와 렐라와 함께 잤다.
뻔뻔하게 내 침대 한쪽에서.
그 녀석, 점점 야생을 잃어가고 있어.
타티아나가 두 손을 맞잡고 기뻐하지 않았다면 내쫓았을 거다.
왠지 모르지만 타티아나는 불사조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딱히 그 녀석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욕심 때문도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왜인지 모르겠다.
제니는 자기가 왜 왔는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계속 불사조 깃털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은 물론 왕족에 이르기까지 불사조 깃털은 매우 인기가 있다며, 앞으로 이곳의 길드가 불사조 깃털 특매점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다.
내 얼굴을 보며 깃털, 깃털, 을 연호하고 있었다.
‘제니 씨한테는 꽤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깃털을 울부짖는 건 어떨까 싶다.
“그런데 축제는 뭡니까?”
내가 화제를 전환하자, 제니가 정신 차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죠. 축제 얘기를 하러 왔던 거죠.”
지나가는 사람 때문에 우리는 골목에서 약간 옆으로 비켜섰다.
오늘따라 사람이 너무 많아,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더욱 좁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는 사냥 축제가 있어요. 헬가가 활동할 때는 없던 건데, 그녀가 없어진 뒤에 마수가 늘어나면서 생겼죠.”
일당백, 아니 일당만 정도의 역할을 하던 헬가가 없어지면서 이 세계의 마수 사정은 매우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헬가가 처리하던 마수에 영주군이나 모험가들이 매달리면서, 큰 마수뿐 아니라 작은 마수의 숫자도 늘어나고, 덩달아 짐승의 수도 늘었다.
그 때문에 생긴 것이 겨울 사냥 축제다.
영주 일가와 모험가는 물론 농한기라 한가한 농민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얕은 숲에서 몰이사냥을 벌인다.
오늘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도 축제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기에 맞춰 몰려온 사람들이라고.
그러고 보니 여관에도 사람이 여러 명 묵고 있었다.
“위험은 거의 없기 때문에 진짜로 그냥 축제예요. 숲 근처에 큰 장도 서고 상인들도 오기 때문에 꽤 즐겁습니다. 두 분도 와서 즐기는 게 어떠세요?”
제니가 나와 타티아나를 번갈아 보았다.
“영주님도 그렇겠지만, 우리 길드 입장에서도 이번 겨울 축제는 높은 등급의 모험가가 있다는 걸 보일 좋은 기회거든요. 사냥에는 참가하지 않으셔도 되니, 그냥 이름만이라도 올려주면 정말 감사해요.”
타티아나는 참가하고 싶은 모양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축제라.
괜찮을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사이가 조금 더 친밀해질지도 모르고.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아도 된다면 참가하죠.”
내 말에 제니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 영주님이 개회 인사를 할 텐데, 그때만 그 자리에 계셔주면 됩니다.”
제니의 말을 듣고 아, 싶었다.
축제라고 하면 영주 일가도 함께 나올지 모른다.
그의 부인과 아들, 딸까지.
꽥꽥 오리처럼 소리치던 불마법사의 얼굴을 떠올리고, 아주 조금 걱정이 됐다.
또 그런 모습을 보면 이번에는 한 대 때릴지도 모른다.
문득 내 주먹을 내려보고, 그래도 그것은 참자고 생각했다.
내가 때리면 건장한 남자도 죽는다.
‘영주 딸을 때려죽이면, 그래, 그건 정말로 문제가 되겠지.’
제니는 기쁜 얼굴을 한 채 길드로 돌아갔다.
겨울 사냥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주변의 소음을 주워들으면, 조금 전까지 의미 없던 사람들의 말이 축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며칠 간의 축제 기간 동안, 숲은 개방되고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세금 없이 줍는 것이 허용되는 모양이다.
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는 듯해도 겨울에 소비할 장작을 무료로 얻는 건 큰 혜택인 것 같다.
거기에, 평소에는 금지된 작은 동물을 잡는 것도 허용된다.
평민이 잡을 수 있다고 하면 토끼나 꿩 같은 새 정도일까.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스며 있었다.
‘영주는 괜찮은 사람인가 보네.’
그 딸은 도저히 좋은 아가씨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설렌 목소리를 들으며 나와 타티아나는 목적으로 삼았던 가게에 도착했다.
중고옷을 파는 곳이다.
타티아나는 옷이 너무 없어서, 나는 속옷이 필요해서 왔는데, 이 세계의 옷가게는 남녀 구분 없이 한 가게에서 모두 취급하는 것 같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좁은 공간의 벽에 여자 속옷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이 세계의 속옷은 허리를 끈으로 묶는 형태다.
좀 야해.
보는 순간 속옷에 타티아나의 모습이 겹쳤다.
저거랑 똑같은 걸 그녀도 입고 있는 거야.
아니, 아니, 지워라.
나는 들어가자마자 우뚝 서서 그걸 바라보다 도망치는 것처럼 되돌아 나왔다.
나오면서 언뜻 보자, 타티아나도 굳은 듯이 그걸 보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간 건 나나 그녀나 똑같겠지.
안쪽에 있던 가게 주인이 쫓아 나오며 소리쳤다.
“손님! 뭘 찾으십니까?”
가게는 중년 부부가 하는 모양이다.
남자는 남편이, 여자는 부인이 응대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
가게 주인은 도망치는 남자에 익숙한지 재빨리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빙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손님. 가게에 들어가지 않아도 원하는 걸 말해주면 내가 가져와요. 남자분들은 의외로 수줍어하셔서. 혹시 바지가 필요하십니까? 마침 특대품이 얼마 전에 들어왔죠. 손님한테, 음, 조금 빠듯하기는 하지만 맞을 겁니다. 우리 가게 아니면 손님한테 맞는 바지는 찾기 어려워요. 우리 가게에서도 바로 열흘 전만 해도 맞는 바지를 드릴 수 없었을 겁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손님한테 맞는 바지를 사는 건 최소 3년은 어려울 겁니다. 지금이에요!”
“….”
확실히 내 몸에 맞는 바지를 쉽게 구하기는 어려울 거다.
원래 바지를 살 예정은 없었지만, 돈에도 여유가 있고 하나 정도는 사는 게 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바지가 세 개, 셔츠가 두 개, 속옷이 여섯 개 들려 있었다.
타티아나는 가게 안쪽에서 여주인과 상담한 뒤에 나왔는데, 원래 셔츠와 바지를 살 예정이었던 것이 왠지 모르지만 원피스도 추가로 세 개 들고 있었다.
가게를 뒤로하고 나란히 걸으면서 문득 타티아나가 중얼거렸다.
“나는요, 내 능력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조금 더 노력해야겠어요. 그 여주인, 능력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고.”
“….”
나도다.
나는 원래 이렇게 흘러가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전생의 경험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아무래도 지금 생의 단세포 라파와 섞이면서 뇌가 퇴화한 것 같다. 주로 어머니 쪽의 유전으로.
외모에서 성격은 그렇다 쳐도 뇌까지.
어디까지 강합니까, 내 어머니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하아.”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타티아나의 입에서도 작은 한숨이 흘렀다.
뺨이 조금 붉어서 그런가.
우울한 듯 한숨 쉬는 그녀가 오늘은 특히 더 예쁘다.
문득 그녀의 짐 속에 아까 그 속옷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 나는 얼른 머리를 흔들었다.
진정해라, 나.
한 번 의식하니 아무래도 신경이 그쪽으로만 향한다.
이제 더 이상 참는 건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좋아, 이번 축제에서 교제를 신청하자.
*
축제가 열리기 전 눈이 내렸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햇볕이 적은 땅에는 살짝 흰 눈이 붙고, 땅은 습기를 약간 머금어 딱딱해졌다.
말굽이나 사람 발자국, 바큇자국이 땅에 그대로 모습을 남긴 채 얼어붙어 울퉁불퉁한 지점이 곳곳에 있다.
축제는 도시 안이 아닌 성벽 밖에서 열렸다.
뾰족한 지붕을 가진 원형의 천막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큰 마차와 호위병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 도시나 근처 마을 사람만 참가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곳의 귀족까지 오는 모양이다.
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시장 비슷한 것이 열렸다.
농산물과 가축은 물론이고, 대나무 바구니나 나무를 깎아 만든 공예품을 파는 사람도 있다.
며칠 전에 봤던 옷가게 주인도 거적 위에 옷을 잔뜩 쌓은 채 지나가는 사람한테 말을 걸며 호객하고 있었다.
저쪽으로는 가지 말자고 생각하는데, 몇몇 사람이 불안한 듯 하늘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저거 뭐지?”
“엄청나게 큰데.”
“혹시 마수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아까부터 계속 날기만 하고.”
“괜찮을까?”
하늘을 보니 커다란 새가 빙빙 허공을 돌고 있었다.
미안해. 저거 나 따라다니는 새다.
렐라 어미였다.
렐라는 아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한테서 떨어졌다.
뭔가를 발견한 것 같다.
아마 들쥐 같은 거.
어미는 그걸 보고 있는 거겠지.
부디 누군가, 혹은 짐승이 렐라한테 덤비지 않기만을 바란다.
적어도 사람만큼은.
“괜찮을 거예요.”
걱정 말라는 듯 타티아나가 내 팔을 톡톡 쳐주며, 아래에서 살짝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방긋 웃는다.
좋아, 지금 교제 신청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소 화려한 마차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드디어 영주 일가가 도착한 모양이다.
마차가 지나갈 때 창문 너머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리라였던가.
영주의 딸과 시선이 엇갈리면서, 문득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