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75)
075 이제 나는 유부남이다
한 손은 라파에게 잡혀 있다.
타티아나는 멍한 상태로 그에게 이끌려 걸었다.
발이 땅을 딛지 않는 느낌이다.
둥실둥실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얼굴을 한 채 라파를 보고, 다시 그녀를 보았다.
평소라면 사람들의 시선과 표정에 신경 쓰고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얼굴이 단순한 그림처럼 눈을 스쳐 지나가 버렸다.
머리가 일하지 않는다.
눈에 비친 게 머릿속까지 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타티아나의 머릿속은 혼인해 남편과 아내가 되었다는 것과 아까 신전에서 보았던 광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혼했어… 마녀인데 내가….’
마녀는 결혼하지 않는다.
어쩌다 드물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비참하게 끝났다고 들었다.
헤어지거나, 남편 혹은 그의 가족 또는 불륜 상대가 죽거나, 어쨌든 누군가가 불행해져 결국 마녀라는 게 들통난다.
그래서 마녀는 어쩌다 사랑하더라도 결국엔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존재다.
스승님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몇 걸음 걷던 라파가 문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빙그레 웃는다.
‘무서운 얼굴.’
어쩌면 다른 때보다 훨씬 기쁜 걸까.
평소보다 웃을 때의 박력이 엄청나다.
라파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랑 결혼해서?’
그래서 기뻐?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솟아 시야가 흐려졌다.
저 미소는 거짓이 아니다.
결혼해 달라고 했던 말도, 저 얼굴의 미소도, 신전에서의 맹세도, 모두 저 사람이 진짜 원해서 나온 것이다.
‘매료 때문이 아니었어.’
그는 진심으로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 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생각한 건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그가 한 말은 모두 진짜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매료 때문에 쏟아지는 거짓이 아니었어.
‘저 사람의 말을 모두 믿어도 되는 거야.’
라파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 내려 혼인했다.
아마 라파는 마녀일 것이다.
깊은 숲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는지, 아니면 그가 울지 않아서 마녀라는 사실이 숨겨졌는지 알 수 없어도, 마녀가 아니라면 신전에서의 일을 설명할 수 없다.
스승님이 가르친 마녀의 축복보다 훨씬 강했지만 분명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라파는 마녀의 저주에 걸리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다치거나 죽거나 괴로운 일을 당하지 않은 채 수명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마녀와 마녀 사이에 저주는 성립하지 않으니까.
퐁 퐁 퐁 물방울 떨어지는 것처럼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나는 결혼했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자 더욱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래?”
라파가 몸을 구부려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미소를 머금어 무섭던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이 어린다.
“혹시 내가 무서워? 나랑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는 거야?”
곤란한 것처럼 말하고, 라파가 불쑥 그녀를 안아 올렸다.
“미안하지만 우린 이미 결혼했거든. 넌 내 거야.”
불쾌한 건지 라파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후후,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상해.
라파는 웃을 때보다 얼굴을 찌푸렸을 때가 덜 무섭다.
“….”
타티아나가 웃자, 라파도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가만히 서 있다 살그머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커다란 손이 어색하게 머리카락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 또 조심스럽게 닿으며 머리카락을 훑었다.
마치 닿으면 부서지는 모래 인형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말은 강하게 하는데 행동은 너무 부드러운 사람.
[넌 내 거야.]방금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타티아나는 라파의 얼굴을 보았다.
햇빛을 받아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빛난다.
이 사람의 키가 너무 커서 잘 몰랐지만, 정말 눈이 예쁘다.
앞으로는 이 무서운 얼굴도, 예쁜 눈동자도….
“내가 당신 거라면, 라파 씨도 앞으로는 내 거예요.”
울면서 그렇게 말하자, 라파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부끄러운 것 같다.
드래곤을 한 손으로 때려잡고,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남자가 말 한마디에 얼굴이 빨개지다니, 왠지 이상하다.
“하하하.”
감정이 들쭉날쭉 움직여 자기도 모르게 웃자, 라파가 고개를 약간 돌린 채 말했다.
“두고 봐, 지금은 그렇게 웃지만 밤이 되면 역전이니까.”
“어….”
타티아나의 얼굴도 빨갛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와 라파의 등에 대고 외쳤다.
“길거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이 도둑놈아!”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라파가 스킨헤드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타티아나는 그제야 자신들이 길 한복판에서 그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와아.”
너무 부끄럽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불만스러운 듯 라파가 말했다.
“우린 결혼했거든요.”
“알아! 안다구! 조금 전에 길드에서 제니 씨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으니까!”
이번에 소리친 건 다른 사람이다.
남자가 키 큰 라파의 옆에 얼굴을 쳐들며 울부짖자, 이번에는 다른 모험가가 원한 맺힌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하잖아요!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어차피 얼굴이 상관없으면 나도 괜찮지 않냐구!”
몇 명이 몰려와 아우성 치자, 라파가 히죽 웃었다.
“느려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먼저 침 묻혀 놨어야죠.”
라파 말에 남자들이 입 맞춘 것처럼 소리쳤다.
“네놈이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침을 묻혀!”
“당신 때문이잖아!”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요! 이 확신범아!”
너무 부끄럽다.
사람들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타티아나는 콩벌레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
제니가 길드에서 얼마나 떠들었는지는 몰라도,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모험가들이 나를 보고 분노의 외침을 울린다.
조금 친한 사람은 도둑놈이니 뭐니 하며 원망하고, 잘 알지 못하는 모험가는 멀리에서 나를 노려보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뭐, 마음은 알겠어.
원래라면 손이 닿지도 않을 미녀가 모처럼 바로 옆에서 걸어 다니고 있는데, 길드에서도 가장 못생긴 놈한테 빼앗겼으니 오죽 분할까.
저 야만인 놈이 결혼할 정도면 자기는 고백 한 마디에 애도 낳겠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뒤늦게 울부짖어봤자다.
인생은 선착순인 거야.
뭐든 먼저 침 바르고 잡는 게 장땡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하.하. 패배자들.
이글거리는 눈빛을 던지는 놈들을 향해 소리 없이 입만으로 웃어준 뒤 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조금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춘다.
구시렁구시렁 원한을 늘어놓으며 쫓아오는 스킨헤드와 몇 명을 돌아보았다.
나름대로 건장한 남자들이 깜짝 놀라 일시에 걸음을 멈췄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치와와처럼 캉캉 짖는다.
“워, 원망도 못 하나!”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히익!”
어이, 입이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말 한마디 정도가 아니었잖아.
오늘 결혼해서 기분이 한없이 좋고, 거기에 익숙한 얼굴들이라 그냥 넘어갔지 안 그랬으면 치고받는 난투극이 벌어졌을 거다.
마음속에 난무하는 말이야 많았지만 그런 걸로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한시가 급하다.
나는 이제 반지 사고 첫날밤 치르러 가야 하는 거야.
나는 여전히 뭔가 떠드는 남자들을 향해 물었다.
“혹시 반지 어디서 파는지 압니까? 너무 비쌀 필요는 없지만 싸구려는 곤란하고, 장식이 많이 붙어서 일할 때 벗어야 하는 것도 싫어요. 심플한 모양의, 제법 괜찮은 결혼반지 파는 곳이 알고 싶습니다.”
내 말에 남자들의 입이 약간 벌어졌다.
스킨헤드가 문득 중얼거린다.
“그걸 우리한테 묻나? 결혼은커녕 여자 냄새조차 맡아보지 못한 우리한테?”
“당신 정말 잔인하군.”
“….”
남자 세 명은 지금까지의 기세를 완전히 없애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흠, 이번 건 내가 잘못했다.
입장이 달랐다면 나는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거품 물고 날뛰면서 누구든 상관없이 때려눕혔을 거다.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자, 몸을 돌려 가려던 스킨헤드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길드 뒤쪽에 있는 골목으로 가면 돼. 첫 번째 말고 두 번째 가게가 괜찮다더군.”
그렇게 말한 뒤 구부정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는다.
“고마워요.”
등에 대고 말하자, 남자 세 명은 대꾸도 없이 길게 한숨 쉰 뒤 터벅터벅 걸었다.
몸을 동그랗게 줄여 나한테 붙어 있던 타티아나가 작게 속삭였다.
“반지는 없어도 돼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반지는 꼭 필요해, 타티아나. 우리를 모르는 사람도 결혼했다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증거를 원하는 거야. 네가 내 거… 그… 그리고 나도 네 거라는….”
그렇게 말하자 타티아나의 얼굴부터 귀는 물론이고 손가락까지 빨갛게 되었다.
귀엽다.
후후후후후후후후, 반지를 산 뒤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잡자. 첫날밤만큼은 괜찮은 데서 보내야지.
나도 모르게 쿡쿡 웃자, 타티아나가 손가락 사이로 내 얼굴을 살짝 훔쳐본 뒤 중얼거렸다.
“… 굉장히 무서운 얼굴….”
그리고 또 빨개진다.
굉장히 부끄러운 것 같은데, 내 얼굴이 무서운 거랑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스킨헤드가 말해준 가게는 금방 찾았다.
문 위쪽에 호롱불처럼 튀어나온 작은 나무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반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나란히 가게로 들어가자 호리호리한 남자가 안쪽에서 나왔다.
나를 보자 몸이 약간 움츠러들었지만 금세 미소를 짓는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찾으십니까?”
“결혼반지를 사려고 왔습니다.”
가게 주인이 눈을 등잔만 하게 뜬 채 나와 타티아나를 번갈아 보았다.
주인이 침 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으로 크게 울렸다.
“그… 죄송합니다. 제가 귀가 조금 나빠서…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결혼반지 사러 왔어요.”
“….”
가게 주인의 입이 헤 벌어진다.
“그… 라파 님과 타티아나 님… 이…에… 그러니까.”
가게 주인도 우리를 아는 모양이다.
하긴 우리 두 사람은 이 도시에서는 나름 유명인이지.
앞으로는 더 유명해질 거다.
미녀와 야수 커플로.
가게 주인은 약간 헤매는 것처럼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어느 분이 결혼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믿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다.
정말 알겠어.
반대 입장이었다면 나도 못 믿었을 거다.
분명 둘 중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데 파티원이니까 함께 왔을 거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겠지.
이 가게 주인처럼.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도 일단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어떻게든 조합해서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못 믿어 하는 가게 주인한테 두 번이나 우리 두 사람의 결혼반지라고 말한 뒤에야 겨우 구매 상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 결혼반지는 반드시 껴야 한다.
나보다는 타티아나가.
내가 원하는 건 일할 때도 항상 끼고 있을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보석 없는 단순한 링 모양의 반지로 이야기가 모였다.
“귀족이 아닌 경우에는 은반지로도 많이 하십니다만, 제가 권하는 건 역시 금으로 된 것입니다. 두 분처럼 고명한 모험가가 은반지라니, 물론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품격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가게 주인의 말이 아니어도 금반지로 할 생각이었다.
전생에서 조금 동경하고 있었던 거야.
아무 무늬 없는 금반지를 부부가 만들어 끼운 뒤, 세월이 많이 흘러 주름투성이가 되었을 때 반지 모양에 맞춰 손가락이 변형되어 있는 거.
어릴 때 외국 영화에서 보고, 계속 그런 결혼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영원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같은 면상으로도 그게 되는구나.
감개무량이다.
“보석은 아니라도 반지 자체에 무늬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가게에서는 그런 계통의 세공인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새기는 무늬는 거의 예술품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지요. 여자분들이 좋아하십니다.”
가게 주인이 은근슬쩍 타티아나를 보았지만, 그녀는 아까부터 조용하다.
“장식 무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서로의 이름을 반지 안쪽에 새기는 건 어떻습니까? 공임은 조금 들어가지만 막 결혼하는 부부에게 인기가 많아요.”
예전에는 시나 맹세의 말 같은 걸 반지 바깥쪽에 새겼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반지 안쪽에 간단한 문구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나와 타티아나 이름이 상대방 반지 안쪽 손가락 피부에… 좋다! 너무 좋다!
“그걸로 합시다.”
내 말에 가게 주인이 빙그레 웃었다.
“손님, 여기에… 이건 어떻습니까. 반지 하나만으로는 부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만.”
조금 전까지 타티아나에게 판매의 초점을 맞추고 있던 가게 주인은 나를 노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를 향해 길쭉한 상자를 열어 보였다.
거기에는 보석이 몇 개 섞인 금목걸이와 머리 장식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부인의 머리색과 잘 맞을 거예요. 아주 고가의 보석이 아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게 주인이 머리 장식을 꺼내 타티아나 머리 근처로 내민다.
허공을 사이에 두고 보석이 반짝 빛났다.
“게다가 이 보석은 손님의 눈동자 색과 비슷하죠. 자신의 색을 사랑하는 부인에게 붙이는 거, 어떻습니까. 제가 남자라서 아는 겁니다만, 남자의 은밀한 로망 아닙니까.”
“좋군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조용히 앉아있던 타티아나가 살짝 내 옷을 잡아당겼다.
“라파 씨, 우리가 사러 온 건 반지예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내 색을 두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싶다.
그러면 그녀가 내 것이라는 실감이 날 것 같아.
게다가 항상 같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주로 내가 그녀와.
그렇게 소곤거리자, 타티아나가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언제까지나 여관에 머물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 정착할 곳도 찾아야 하고 집도 사야 하고, 게다가 아, 아기도….”
“….”
내가 생각한 미래는 기껏해야 오늘 밤인데, 그녀는 벌써 먼 훗날까지 고려하고 있다.
아까까지 조용히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먼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결혼으로 들뜬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녀도 만만치 않게 들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반지만 맞추기로 했다.
가격은 반지 하나에 190리라.
금화가 120리라인데 금반지가 190리라라니, 비싼 건지 싼 건지 잘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손님. 3일 뒤에 오시면 됩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가게 주인의 말을 등 뒤로 들으며 가게를 나선다.
후후후후후후.
다음 순서는 첫날밤이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찾아 틀어박히자.
‘적어도 이박 삼일은 방 안에서 지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싱글벙글하고 있는데, 중앙광장에서 이 골목 안으로 스킨헤드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향해 곧바로 달려온다.
“….”
안 돼.
좋지 않다.
이건 좋지 않아.
모른 체하자.
나는 타티아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스킨헤드의 굵은 목소리가 골목 안으로 울려 퍼졌다.
“이봐, 라파! 자네 새가 지금 먹히고 있어.”
“어, 렐라가요?”
안 돼.
타티아나가 깜짝 놀라 몸을 돌린다.
스킨헤드가 기쁜 듯한 얼굴로 달려와 말했다.
“그래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렐라가 사냥터에서 다른 짐승한테 먹혔다고 하더군요. 나도 다른 사람한테 들어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몇 번이나 먹혔다고 합니다.”
그냥 놔둬도 렐라는 죽지 않는다.
먹히더라도 불을 내서 뛰쳐나오니 그 녀석 혼자라도 절대 죽을 일이 없는데, 심지어 어미가 계속 보고 있을 테니 만에 하나도 죽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냥 놔두면 분명히 큰일 나겠지.’
어미가 렐라를 구한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시다 불사조라는 게 들통날 수도 있고, 잘못해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면 정말 난리 날 거다.
“하아.”
나는 크게 한숨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타티아나를 덥석 안고 사냥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서둘러, 서둘러, 서둘러라.
내 평생 이렇게 빨리 달린 건 아마 처음일 거다.
눈깜짝할 새에 성벽을 지나 사냥터에 도착했다.
좋아, 재빨리, 10분, 아니 5분 내로 해결하고 여관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