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81)
081 헬가가 나타났어요!
‘아….’
아담은 속으로 한탄했다.
친구가 아버지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말했던 진짜 이유를 알 것 같다.
단순한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아버지 닮은 곳은 하나도 없는데, 저 남자는 왠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게 어느 부분인지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눈매가 아주 조금 닮았을 수도 있고, 얼굴 윤곽의 어느 부분이, 혹은 입매, 동작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아담과 친구는 거의 초상화만의 아버지를 알 뿐이지만, 그래도 아주 어릴 때 만난 적은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어도 당시의 느낌은 남아 있다.
모습을 떠올릴 만큼의 조각은 없어도 희미하게 머리가 기억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그 기억 속의 어딘가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만났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신이 생겼다.
역시 저 남자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
아버지가 숲으로 들어간 지 이십오 년째였던가.
저 남자는 아마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그 곁에서 지냈을 것이다.
사랑받았는지, 납치된 원한으로 미움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 곁에서 정당한 자식으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적어도 무관심은 아니었겠지.
“….”
질투가 심장을 친다.
저 남자가, 아버지의 아들로 커온 저 남자가 밉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걸,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걸, 저 남자는 아무 노력 없이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타는 것처럼 미워졌다.
죽여.
죽을 자리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저 남자를 죽이자.
전력으로 죽여, 자신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는 저 남자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려라.
그런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거기에 맞춰 발 주변의 흙이 웅성웅성한다.
주문도 외우지 않았는데 흙이 그의 마음에 호응하고 있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하필이면 지금.’
적어도 어릴 때 혹은 십 대 무렵에 이런 힘이 나타났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출생과 상관없이 조금 더 자신이 유용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그의 삶은 조금 더 괜찮고 부드러운 방향으로 움직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늦었어.’
이미 늦었다.
절망은 그의 코앞에 닥쳐와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다.
스스로 만든 높은 절벽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한다.
아담은 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강한 바람을 사용하는 남자라고 들었다.
아버지는 그를 자랑스러워하셨을까.
아버지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니고 태어나 바람 마법을 사용하는 저 남자가 정말 정말 밉다.
‘나는 보잘것없는 흙마법사일 뿐인데.’
흙마법사는 수수하다.
순식간에 바람이나 불을 만들어내는 마법과 달리, 흙은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흙을 돋아 사람 발을 잡을 수는 있어도 느리다.
흙마법사가 지면에서 흙을 올려 뭔가를 움켜쥐려고 하면 목표는 이미 한 발자국 혹은 서너 걸음 앞서가고 있다.
순식간에 흙을 쌓아 올려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흙마법사는 적어도 그의 기억 안에 없었다.
다른 마법사와 달리 전투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쓸모없다.
그 때문에 흙마법사는 대부분 대규모 공사에 동원되었다.
성을 쌓거나 강둑을 정비하는 일.
정말 수수하다.
전쟁이나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마법사와 달리 흙마법사는 성 공격이나 진지 구축에 사용되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적게는 수십 많으면 수백 혹은 수천 명이 힘을 합해야 겨우 한몫을 담당해낸다.
아담도 보통으로 흙마법사 가문에 태어나 자랐다면 그런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가문은 불 마법 계통이었고 태생의 불운함이 있었다.
그래서 아담은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하고자 필사적이었다.
개인 전투에 적합하도록 그만의 방법을 개발해냈다.
그 덕에 어머니의 가문에서 밀려나지 않고 그 혈육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불마법 가문에 흙의 재능을 섞을 묘목으로 사용된다.
보통의 흙마법은 흙을 쌓거나 옆으로 이동시켜 공간을 비우지만, 아담은 지극히 적은 면적의 땅에서 흙의 밀도를 조종했다.
흙을 여기에서 저기, 위 혹은 옆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그쪽이 힘의 소모가 적고 빠르다.
아담의 흙마법은 보통보다 몇십 배 빨리 구현되었다.
불이나 물, 바람보다는 수수하고 볼품없어도 정확하게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지금처럼.
주문을 외우며, 아담은 미운 남자를 향해 걸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흙이 부슬거리며 밀도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상대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아담이 공격하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느긋하다.
아담이 흙마법사라는 걸 알고 우습게 여기는 걸 거다.
고작 흙마법사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 자신이 무덤 위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이전의 어떤 때보다 힘이 넘친다.
지금이라면 저 남자를 죽일 수 있다.
그렇게 믿어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한 마디, 단 한 마디, 그를 향해 증오를 뱉을 여유가 생겼다.
아담은 남자를 노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
어머니의 법칙은 옳다고 생각한다.
무법자가 되지 않으려면 나름의 규칙은 있어야겠지.
하지만 가끔 어머니의 법칙이 너무 엄격하다는 생각도 든다.
회색일 때 죽이면 좋잖아.
그러면 이렇게 지루할 일도 없고 시간을 끌 필요도 없는데.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종종 생각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굳이 싸우기 전에, 혹은 죽이기 직전에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
상대가 죽이려고 할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에 나는 상대가 쓸데없는 말을 외칠 때까지 기다리고, 결국 별것도 아닌 말을 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어느 정도 걸어온 흙마법사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노려본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조금 전까지는 주문을 외웠지만 지금은 그냥 나한테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나서 말이 안 나오는 느낌이다.
입술이 푸르르 푸르르 말 주둥이처럼 움직이는 걸 보면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다.
나이는 나랑 비슷할 것 같으니 부모와 관련된 원한일까.
흙마법사가 뭔가 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살기가 부족하다.
저 남자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어쨌든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이제나저제나 하며 증거를 기다리는데 남자가 드디어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 너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
뭐라는 거야, 이 새X는.
죽이겠다든가 없애버릴 거야, 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기대가 배반당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화가 났다.
그 순간이었다.
발밑이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땅이 꺼지기 직전을 느꼈다고 할까.
나는 야만인의 혈통이라 그런지 직감이 좋다.
어쩌면 단순히 어머니한테 여러 번 죽을뻔해서 생긴 제6의 감각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위험이 닥치면 순간적으로 안다.
나는 재빨리 타티아나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다른 손에 바람을 둘러 밑으로 내리친다.
그 바람의 흐름을 이용해 나는 몸을 위로 솟구쳤다.
다른 때는 바닥도 발로 차 추진력을 얻지만 이번엔 그게 안 좋다고 직감했다.
“꺄아아아아아!”
갑자기 로켓처럼 허공으로 치솟은 타티아나가 비명을 지른다.
이상하네.
적당한 속도라 아프거나 하지는 않을 텐데 비명소리가 엄청나다.
문득 고개를 내린 타티아나가 몸을 움찔했다.
내가 몸을 위로 올린 직후 땅이 움푹 꺼졌다.
발을 디디고 있던 지점이 맨홀처럼 깊이 파여 있었다.
그 구멍의 벽에는 길쭉한 흙가시 같은 것이 중심을 향해 몇 개 뻗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꼼짝없이 좁은 구멍에 빠져 흙가시에 찔려 죽었을 거다.
좋아.
“검정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좋았어, 이제 약초 캐러 갈 수 있겠다.
나는 싱긋 웃으며 옆구리에 낀 타티아나의 얼굴을 내려보았다.
그녀는 조금 무서운 것 같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아, 당연한가.
지금 우리는 밑으로 떨어지고 있으니까.
이 세상 모든 건 허공에 뜨면 언젠가는 땅으로 내려가야 한다.
나는 새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머리 한 가닥, 피부의 솜털 하나 다치지 않을 만큼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전에 한마디 경고는 해줘야 한다.
이번엔 그냥 내려서는 게 아니라 저 흙마법사도 처리해야 하니까.
“꽉 잡아, 타티아나.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하고.”
“읍!”
우리 부인은 귀엽고 예쁘기도 하지.
내 말을 금세 알아들은 모양이다.
대답 대신 입을 꽉 다물고 눈을 크게 뜨는 걸 보면 확실하게 알아들은 것 같아.
나는 바람을 다리에 휘감아 착지 지점을 조정하면서 등 뒤로 손을 뻗었다.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잡아 빼는 순간 흙마법사 근처로 나는 이미 낙하하고 있었다.
가볍게 도끼를 휘두른다.
흙마법사는 흙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칼이나 암기 같은 게 튀어나오지 않을까 경계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싹둑.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뭔가 주장하려던 흙마법사의 머리가 잘렸다.
마법사의 몸은 그대로 잠시 서 있다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 땅에 쓰러졌다.
‘응, 좋은데.’
나는 바닥에 내려서면서 도끼를 살짝 흔들어 피를 떨궜다.
손잡이까지 쇠로 만든 이후 도끼는 나한테 딱 맞는다.
손이 길어진 것 같아.
살짝만 흔들어도 뭐든지 정확하고 쉽게 떨군다.
어머니가 준 도끼도 괜찮았지만 그건 나한테 너무 가벼웠던 모양이다.
어른이 아이 장난감 들고뛰었던 느낌이랄까.
역시 지금 정도의 무게가 딱 좋다.
‘돈은 좀 들었지만 정말 잘했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타티아나가 웩웩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어, 미안. 타티아나. 너무 흔들렸어?”
내가 등을 살짝 두드리자, 타티아나는 새파란 얼굴로 더 토하기 시작했다.
토할 때는 두드리면 안 되는 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대는데, 성문에 있던 문지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손에는 수통이 들려있다.
아, 그렇지 물.
나는 얼른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 수통을 열어 타티아나에게 내밀었다.
“여기 물 있어.”
“으….”
타티아나는 잠시 몸을 구부리고 구역질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물로 입을 헹궜다.
문지기가 가까이 다가와 헤헤 웃는다.
“라파 씨, 시체는 제가 처리해 드릴까요?”
“아, 그렇게 하죠. 잠깐만요.”
타티아나가 조금 진정된 걸 확인한 뒤 나는 시체가 된 흙마법사한테 다가갔다.
이 세계의 법이라는 건 조금 묘해서 남을 습격하고 강탈하는 건 죄가 되지만, 싸우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승자가 갖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죽은 사람한테 동행이 있으면 그건 곤란하다.
이 세계에도 법은 있고, 법으로 따지면 죽은 사람의 물건이 자동으로 산 사람의 것이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처럼, 관습적으로 죽은 이의 물건을 산 사람이 갖는 건 허용되는 모양이다.
나도 이 도시에 와서 알았다.
아마 시체의 물건을 그대로 놔둬봤자 어차피 나중에 지나가는 사람의 소유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개인의 신분을 특정지을 수 있는 물건은 승자라고 해도 가질 수 없다.
가문의 문장이 있는 물건이나 길드의 예금 증서 같은 건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한다.
강탈의 증거가 되기 때문인 것 같아.
걸렸을 때 발뺌하기 위한 구멍이라고 해야 하나.
흙마법사의 몸을 뒤적이자 금화가 든 주머니가 나왔다.
그 외에는 보석이 박힌 작은 브로치가 하나 있다.
그리고 레이스가 달린 손수건이 한 장.
배낭에는 옷과 음식이 있었다.
이건 괜찮네.
나는 그것들을 챙긴 뒤 물러났다.
“이렇게 많이 남겨도 괜찮아요?”
문지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망토나 고급 셔츠, 바지와 신발 같은 걸 보고 침을 삼킨다.
목에 두른 남성용의 스카프만 해도 피를 빼면 가격이 꽤 나갈 거다.
“괜찮아요. 어차피 나나 타티아나한테는 맞지 않는 거고, 일일이 파는 것도 귀찮은 일이니까.”
게다가 옷에는 피도 묻었다.
왠지 저주받을 것 같고 불길해서 싫어.
챙길 게 없으면 원래 시체 처리 비용으로 1리라 정도 돈을 줘야 하니까 그거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1리라보다는 훨씬 금액이 높지만.
“감사합니다, 라파 씨!”
문지기가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
타티아나는 괜찮아진 모양이다.
얼굴색은 여전히 파랗지만 더 이상 토하지 않았다.
“타티아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들여다보자, 그녀가 가만히 나를 보더니 작게 숨 쉬었다.
“왜?”
“아니, 그냥요. 라파 씨가 굉장히 강한 걸 새삼 알았다고 할까,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할까, 마음이 조금 복잡하네요.”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타티아나는 살짝 목이 없어진 흙마법사를 본 뒤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다시 구역질이 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들었다.
어쩌면 시체 때문에 충격받은 걸까.
잠시 쉰 뒤에 우리는 원래 목적지였던 약초지로 향했다.
시체에서 완전히 멀어지자 기분이 조금 나아진 모양이다.
타티아나의 안색이 훨씬 괜찮아졌다.
타티아나는 가도에서 약간 벗어난 길로 빠져 딱딱하게 굳은 땅과 초라해진 나무 사이를 돌아다녔다.
빠각 빠드득 신발이 바닥을 밟으며 소리가 난다.
렐라는 우리가 성을 나올 때부터 없다.
요즘에는 뭘 하는 건지 어미와 함께 곧잘 어디론가 가서 몇 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돌아온다.
어쩌면 나는 연습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타티아나는 흥분하고 있지만, 글쎄, 내 생각에는 그냥 노는 게 아닐까 싶어.
사냥이나 싸움이면 모를까, 약초 캐는 데에는 안목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 나는 멍하니 타티아나의 모습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거예요.”
한동안 약초 캔다고 돌아다니던 타티아나가 자랑스럽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보여준 건 도라지처럼 가느다란 뿌리 몇 가닥이었다.
약초지라고 해서 한가득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적다.
게다가 약초라고 하면 풀 아닌가.
왜 나무뿌리야?
내 반응이 별로라 실망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타티아나가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이게 별거 없는 것처럼 보여도 굉장히 귀한 거거든요. 여기저기 많이 들어가요. 단독으로 많이 사용하면 맹독도 되고, 구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마녀끼리도 잘 빌려주지 않는 거라구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말한다.
이건 굉장히 귀한 거라고.
귀여워.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자 타티아나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라파 씨,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요. 나는 아이가 아니에요. 내 나이는 벌써….”
알아, 전에 들었으니까.
아이라고 생각했으면 부부가 되지도 않았다.
밤에 그런 걸 하지도 않았을 테고.
아… 이런.
부인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쓰다듬으니 화났다.
돌아가는 길도 귀여웠다.
아니, 길이 아니라 타티아나가 귀여웠다고.
약간 화가 나서 나보다 먼저 걷는데, 꺼떡꺼떡 머리가 움직이는 게 정말 귀여운 거야.
이게 바로 부부 싸움이라는 건가.
토라진 채 가끔 뒤를 살피는 타티아나를 따라가는 게 너무 기쁘다.
그렇게 싱글거리며 걷다, 이제 조금 있으면 성벽이 보일 정도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색이 된 병사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성문 지키는 병사와 문지기가 굉장히 바쁜 것 같네.
나를 발견한 병사가 더욱 빠르게 달리며 외쳤다.
“라파 씨! 큰일 났어요! 헤, 헬가가 나타났습니다!”
응?
타티아나가 우뚝 멈춘다.
나도 덩달아 멈춰 섰다.
병사가 다시 외쳤다.
“헬가가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아주 잠깐 정말로 어머니가 나왔을까 생각했지만, 아니, 이건 좀 이상하지.
만일 어머니가 나타났으면 나한테 달려와 도와달라고는 하지 않을 거다.
나랑 어머니는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겼으니까.
타티아나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중얼거렸다.
“대체 누구일까요?”
그러게.
누가 나타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