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84)
084 사라문즈 공국의 공주
’26년.’
어느새 또 새해다.
클라우스가 숲으로 끌려간 지 오늘로써 26년째가 되었다.
‘길구나.’
발테르 공작은 술을 한 모금 넘긴 뒤 눈을 감았다.
그가 있는 곳은 개인의 휴식을 위해 연회장 곳곳에 만들어진 작은 공간이다.
의자가 두 개와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을 뿐인 휴게실은 두꺼운 커튼 하나로 넓은 연회장과 나누어져 있었다.
새해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이 커튼 너머에서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다.
눈을 뜨자 문득 옆의 빈 의자에 시선이 갔다.
클라우스가 새침한 얼굴로 앉아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올해는… 혹은 내년에는 클라우스를 만날 수 있을까.’
클라우스가 있을 때는 왕도와 영지에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머물렀다.
그래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새해 연회에 참석하는 건 항상 둘이 함께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작 혼자.
자식은 많지만 클라우스의 빈자리를 메울 사람은 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그걸 생각하면 외로워지곤 했다.
지금도 외롭다.
‘하지만 이제는….’
손자가 있다.
아들은 언제 만날지 아직 기약 없지만, 그래도 손자가 이 땅에 있어 언제든지 바라면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클라우스가 마의숲으로 들어가기 전이었다면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을 것이다.
지금은 안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것, 그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더 욕심 낸다면 라파와 클라우스를 모두 데리고 새해 연회에 참석하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다.
잠시 술을 삼키고 있는데 커튼이 흔들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공작 전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는 왕의 측근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정중하게 절하는 그를 불러 의자에 앉게 한다.
작은 테이블에는 이미 술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미리 약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공작이 권하는 대로 술을 몇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왕세자 전하에게 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의사가 계속 드나들고 있어요. 사람이 없는 시간을 택해 은밀하게 다니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비밀로 하는 건 어렵죠.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화장으로 속이고 있지만 조만간 누구의 눈에도 아픈 게 드러날 것 같습니다.”
“그 외 다른 일은?”
“폐하가 또 왕비의 시녀에게 손을 댔다고 합니다. 왕비께서 크게 화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임신했나?”
“네. 그래서 드러난 거죠. 그 외에는….”
남자는 몇 가지 일을 더 말한 뒤 생각난 듯 공작을 보았다.
“폐하께서 며칠 전 휴부라 백작과 만난 직후 굉장히 분노했다고 합니다. 백작과 만날 당시에는 괜찮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가 떠난 뒤 혼자 방에 남았어요. 그때 물건이 몇 개나 깨져 시종들이 부산히 움직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아나?”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별 건 아니었을 겁니다. 비밀 알현도 아니었고 근처에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그래.”
남자는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공작에게는 짐작 가는 일이 있었다.
휴부라 백작은 죽은 클라우스 애인의 부친이다.
그의 아들 한 명이 남작가의 사위로 들어갔는데, 엔데스에서 라파와 말썽이 있었다고 한다.
엔데스의 사무관이 그 당시의 일을 자세히 적어 보냈다.
그 보고서를 떠올리고, 공작은 문득 웃었다.
라파는 외모와 달리 클라우스를 많이 닮은 것 같다.
클라우스도 종종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넣곤 했다.
아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방법이 교묘해서 누구도 그게 클라우스가 꾸민 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본질은 라파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창피당한 게 많이 억울했겠지’
휴부라 백작의 아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장 아버지를 찾아갔을 것이다.
휴부라 백작은 평범하다.
욕심은 많지만 어리석다고 할 정도의 우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작가 사위로 들어간 그 아들은 단편적이고 얕은 사고를 가졌다.
죽은 누나처럼.
비슷해서였는지 사이도 매우 가까웠다고 들었다.
클라우스와 인연을 맺은 뒤에도 남매는 자주 연락하고 만났다.
헬가 때문에 누나가 죽은 뒤에는 자신이 추적대에 참가할 용기도 없었으면서 계속 분노에 미쳐 돌아다녔다.
공작에게까지 닥쳐오지는 못했지만 주변의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휴부라 백작은 왕에게 그 이야기를 했던 거겠지.’
왕은 그제야 라파의 존재를 알게 된 걸 거다.
왕가에서도 처음에는 마의숲 근처 도시에 정보원을 두고, 적어도 십 년 정도까지는 계속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클라우스의 모습을 계속 잡지 못하면서 왕가에서는 차차 정보원을 마의숲 주변의 도시에 집중시키는 데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수가 한정된 정보원을 언제 나타날지 모를 클라우스만을 위해 한곳에 묶어 둘 수는 없다.
결국 클라우스가 마의숲에 들어간 지 25년, 아니 26년째 되는 지금 왕가에서는 그 주변의 정보를 거의 모으지 않는다.
‘그래서 전혀 몰랐겠지.’
왕도나 하다못해 이 근처의 도시에라도 라파의 소문이 퍼졌다면 조금 달랐겠지만.
남자가 말해주는 궁정 이야기를 들으며 공작은 히죽 웃었다.
라파의 소문이 아예 이쪽에 도착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드래곤을 한 손에 때려잡은 라파의 이야기는 길드 모험가들에게서 조금 유명해져 있었다.
다만 다른 이야기에 묻혀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정보상이 일을 잘 해줬어.’
라파의 소식을 처음 가져온 정보상 맥스는 왕도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도에서 먼 지역의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모아 퍼뜨렸다.
왕도에 퍼지는 타지 정보의 상당수는 그가 판매한 것이다.
어느 정도 정보를 가공해 포장하기는 해도 없는 일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그 남자의 정보는 왕도에서 상당한 가치를 가졌다.
공작은 그에게 지시해, 라파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기 전에 다른 흥밋거리를 만들어냈다.
거짓을 퍼뜨린 건 아니다.
만일 공작이 그렇게 지시했어도 맥스가 순순히 따랐을지 의심스럽다.
맥스는 돈 좋아하고 약삭빠른 사람이지만 한 번 신용을 잃으면 정보상으로 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공작이 요구한 건 사람들의 흥미를 끌 정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보상 맥스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잘 알아서, 누가 누구를 죽였다거나 바람피운 사소한 이야기를 끌어모아 화젯거리가 되도록 가공했다.
사람의 본성이란 음험한 것이다.
남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이야기, 더러운 뒷면에 관심이 끌린다.
맥스는 그걸 잘 이용했다.
거짓이 섞여도 거기에 진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왕도에 떠들썩한 정보가 흐르면 귀족도 관심을 갖는다.
다른 지역의 에노르토스 모험가 이야기를 퍼뜨린 것도 주효했을 것이다.
라파의 정보는 그 가운데에 교묘하게 숨겨졌다.
공작이 귀 기울이는 가운데, 남자는 몇 가지 일을 더 이야기한 뒤 들어올 때처럼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남자가 사람들 틈에 묻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공작은 남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없어진 뒤 그 공간에서 나왔다.
몇몇 사람이 인사하는 걸 받아주면서 공작은 연회장 가장자리로 향했다.
왕에게의 새해 인사는 이미 끝났다.
귀족 간의 교류로 얻어지는 정보도 모을 만큼은 모았으니 술 냄새 진동하는 이곳에 더 있을 필요는 없다.
그가 연회장에서 나오자 왕궁의 시종이 코트를 가져와 어깨에 걸쳐 주었다.
다른 시종이 들고 있던 모자를 씌우는 동안 마차가 입구에 도착한 것 같다.
안내를 맡은 시종이 조용히 그의 앞에 섰다.
그를 따라 나가자 공작가 마차와 집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시중은 다른 집사였을 것이다.
어째서 집사장이 이 자리에 와 있는 건가.
의아함을 감추고 마차에 오르자, 집사장이 고개를 조금 낮췄다.
나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표정이 밝다.
“사라문즈 공국의 조사가 끝났습니다.”
과연 그래서였나.
자기도 모르게 몸을 내밀자 집사장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전에 공작님께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타티아나 님은 아무래도 도련님 곁에서 맴돌던 무희와 동일인으로 판단됩니다.”
“흠, 무희가 이상하다고 자네가 말한 적이 있었지. 더 조사한다더니 그렇게 연결되었나.”
“예. 제가 의아하게 여긴 건 그 무희의 주변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데,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본 결과 아무래도 마녀 도로테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현혹의 도로테 말인가.”
“예.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도르테의 능력으로 생각을 구부린 것처럼 보여서….”
현혹의 마녀 도로테는 오래전에 활동하던 마녀다.
아직도 살아있다면 보통 인간의 한계수명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도로테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티아나는 물마법을 사용해.”
“거기에서 사라문즈 공국과 연결됩니다. 사라문즈에 타티아나 님과 나이가 같은 공주가 있는데,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사람들 앞에 나온 적이 없다더군요. 몸이 약해 별궁에서만 지낸다고 합니다.”
“그게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그 공주의 주변에 이상한 소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어릴 때 납치될 뻔한 적이 있다더군요.”
“….”
드물기는 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집사장이 히죽 웃었다.
“첫 번째는 공주를 지키는 호위 기사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시종이었어요. 세 번째는 정원사가. 물론 정원사의 경우에는 공주 근처에 가기도 전에 잡혔습니다만.”
“연달아 세 명이나? 더구나 기사와 시종이라니, 그건 이상하군.”
“그렇죠. 시간이 없어서 한정된 범위까지밖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그 일이 있기 전까지 호위 기사와 시종은 매우 충성심 깊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주 근처에서 유모나 시녀가 다치는 일이 몇 번 일어났다.
상처 자체는 사소했다고 한다.
넘어지거나 뭔가에 부딪힌 정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괴이한 납치와 연결해 공주가 마녀인 것은 아닌가 하는 소문이 생겼다.
공주가 별궁에 갇히듯이 지내며 나오지 않게 된 건 그때부터다.
“그 별궁에 누가 있기는 한가?”
“예, 확실히 공주라는 존재가 있기는 합니다. 시녀 한두 명 외에는 별궁에 있는 호위한테조차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곳에서 공주처럼 입고 먹고 자고 있어요.”
“그게 진짜 공주일 가능성은?”
“조사원 말로는 없다고 합니다. 공주가 별궁에 감금되다시피 한 시기에 공왕비의 사촌이 같은 나이의 딸을 잃었습니다. 공주와 많이 닮아 쌍둥이 같았답니다. 조사원은 그 딸이 공주 시늉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왜 그런 이상한 일을 하면서까지 공주의 자리를 만들어두는가.
차라리 공주가 죽은 거로 위장하는 편이 낫다.
만일 공주가 마녀라 축출한 거라면 다시 왕궁으로 불러올 일은 없을 테니까.
마녀가 자기 혈통에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왕가는 없다.
마녀는 필요하지만 불길하고 두려운 존재다.
신성한 왕가에 그런 마녀가 태어난다면, 국민은 더 이상 왕족이 신성하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조사원은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고려한 결과 타티아나 님이 사라문즈 공국의 공주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마녀가 마녀로 태어난 아이를 인수하는 일은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아마 어떤 계기로 공주와 도로테가 연결되었을 겁니다.”
다소 의문은 있지만 공작가의 조사원은 우수하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럴 것이다.
“좋아, 그러면 서둘러야겠군. 왕가에서 라파에 대해 알게 됐어. 잘못하면 혼인을 밀어붙일 수도 있네. 그전에 라파와 타티아나의 혼인을 완벽하게 정리해야겠어.”
집사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왕가라 해도 공작가에 뭔가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평상시라면 그 말이 맞는다.
하지만 지금은 왕세자가 중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왕세자가 죽으면 남은 정령인은 국왕과 공주 한 명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 공주가 보라색 눈동자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주를 실제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공주는 한 번도 사람 앞에 나온 적이 없었다.
초상화만 몇 장 나돌고, 그림을 그린 화가는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공주에 대한 건 거짓일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왕가에 남은 보라색 눈동자는 국왕 한 명뿐이다.
국왕이 호색한이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수많은 애첩을 갖고 시녀들에게 손대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어쨌든 정령인을 낳을 것 같은 여자만 보이면 무조건 손대는 거겠지.
이미 왕세자를 낳은 바 있는 왕비와 비슷하다면 누구든 상관없이.
왕은 다급하다.
클라우스가 숨어버린 지금 라파의 존재를 안다면 반드시 욕심낸다.
공작의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것처럼 집사장이 말을 꺼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까요?”
무슨 말인지는 금세 알았다.
라파에게 보낸 로브를 말하는 거겠지.
공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럴 걸세. 새해 첫날 도착하도록 말해두었으니.”
라파와 타티아나를 위해 새해 선물을 준비했다.
보통 때는 집사장이나 다른 사무관이 선택한 걸 공작이 확인할 뿐이지만, 이번 물건은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선택했다.
실제로 디자이너를 불러 원단과 스타일을 정한 것도 공작 자신이었다.
부부가 모두 마법사이니 로브를 받으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로브는 조금 이상했을지도 모르겠군. 모험가한테는 거추장스럽지 않을까 싶네.”
공작의 말에 집사장이 부드러운 얼굴로 웃었다.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공작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내린다.
라파의 로브를 만들 때 클라우스와 헬가의 외투도 함께 주문했다.
전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손자 부부 것만 만드는 건 마음이 아파 할 수 없었다.
‘숲은 추울 테니까.’
심장 속으로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렐라가 불쑥 돌아왔다.
녀석은 나와 타티아나를 발견하자 삐삐 소리 내며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별안간 날갯짓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다 보는 대로에서.
그럴 리 없는데 용쓰는 렐라의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말 그렇지는 않겠지.
렐라는 새고, 새는 얼굴이 깃털 같은 걸로 뒤덮여 있다.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다.
더구나 렐라는 재를 뒤집어쓴 것 같은 잿빛이고.
하지만 얼굴이 빨개졌다고 눈이 착각할 정도로 미친 듯이 날갯짓했다.
“뭐 하는 걸까요?”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도 궁금하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너무 열심이네.”
“그러다 날개 빠지겠다.”
“내가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오리도 ㅈㄹ하면 날 수 있다더군. 그거 아닐까?”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지구에도 오리ㅈㄹ 얘기가 있는데.
어쨌든 너무 열심이다.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잠시 지켜보는데, 갑자기 타티아나가 앗 하고 소리쳤다.
내 눈도 조금 커졌다.
렐라가 아주 조금, 1센티 정도 위로 뜬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단순히 발을 조금 굴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위로 뜬 것처럼 보인 순간 렐라가 기력을 다하고 학학 숨을 쉬며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내민다.
“이거, 날았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 것 같은데.”
타티아나가 키득 웃는다.
그리고 렐라를 번쩍 안아 높이 올렸다.
“렐라! 잘했어! 너 엄청나구나. 이거 연습하느라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삐비비비비! 삐삐비!”
둘이 뭔가 대화하는 것처럼 번갈아 소리 낸다.
“….”
하지만 조금 이상하지?
내가 어딘가에서 본 거와 다르다.
아기새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듯이 첫 번째 비행을 하는 거라고 하던데.
‘가만히 서서 날개 퍼덕이는 걸로 떠오른다고? 그렇게 해서 새가 나는 걸 배우는 거야?’
아니, 솔직 냉정하게 말하면 심지어 떠오르지도 못했다.
역시 조금 전의 그건 날았다고 하기에는 양심이 좀 쑤시지.
하지만 뻐기며 자랑하는 렐라와 첫 비행이라며 기뻐하는 타티아나를 보고 그런 말을 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흠, 그냥 이게 첫 비행인 걸로….’
어쨌든 첫 비행이든 아니든 큰 상관은 없는 거니까.
‘하지만 이 녀석의 어미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렐라의 행동이 부끄러운 거라고는 알고 있는지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