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85)
085 결혼 무효?
잠시 렐라와 대화하듯 떠들던 타티아나가 갑자기 렐라를 옷으로 감싸 안았다.
“왜 그래?”
내가 묻자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다.
“렐라 깃털 색이 보여요.”
아, 가루가 벗겨졌구나.
또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갔던 모양이다.
더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렐라가 날개를 퍼덕이며 나오려고 한다.
“삐빗! 삐빗!”
버둥거리는 렐라를 꼭 안고 타티아나가 허둥지둥 걷기 시작했다.
쭉쭉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나는 뒤따라가며 작게 웃었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렐라의 오렌지 깃털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
얼핏 본 것만으로 알아차릴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녀의 급한 마음을 말해주는 것처럼 걸을 때마다 예쁜 머리카락이 출렁출렁 물결처럼 흔들린다.
‘예쁘구나.’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머리카락 솜털 하나하나까지 예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인을 얻다니 나는 전생에 나라를 열두 개쯤 구했던 것 같다.
아니, 내 얼굴을 생각하면 열한 개 반 정도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한 번도 말하거나 인사한 적은 없지만 얼굴만은 낯익다.
이전의 숙소에 살 때부터 맞은편 건물에 머물던 사람이었다.
“….”
처음에는 어머니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거나.
왜냐하면, 내가 여관의 뒤쪽에서 몸을 씻거나 체조할 때마다 계속 지켜보는 거야.
심지어 내가 길드를 오갈 때도 종종 따라왔다.
혹시 암살자 같은 건가 생각한 적도 있지만 금세 그 가능성은 지웠다.
싸움이나 살인에 익숙한 유형의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그런 직업에 종사한다면 아마 예전에 망했을 거다.
시간을 두고 가만히 지켜보면, 저 남자 외에도 이 도시에는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알았다.
서로 눈짓하거나 미행할 때 분담하는 것처럼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 작업이 인계되었다.
하지만 나한테 증오를 가진 것 같지도 않고 나와 싸우려는 것도 아니다.
뭔가가 눈에 보이는데 그게 실체를 갖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라 정말 꺼림칙했다.
어머니의 색깔론이 아니었으면 죽였을 거다.
스토커는 나빠요.
기분도 나쁘고.
그런 사람한테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숙소로 가지 않고 서 있자 타티아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숙소 앞에 서 있는 스토커 남자를 보면서 나한테 묻는다.
“저 남자는 뭐 하는 걸까요?”
“….”
나도 궁금해.
지금까지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우리 숙소 앞에 서 있는 거지?
게다가 남자는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남자 옆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는데, 왠지 그게 딱 시체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인 것 같아서 그것도 조금 섬뜩했다.
‘하아.’
나는 이 세상 대부분을 이길 수 있는 무력을 가졌지만 공포 쪽은 조금 서투르다.
그냥 시체를 보는 건 괜찮아도 그 시체가 깜짝 상자에서 튀어나오며 “놀랐지!” 하는 건 싫은 거야.
무섭다기보다는 놀라서 심장이 덜컥하는 그 느낌이 낯설고 싫다.
그런데 왜 하필 저 스토커 남자는 시체 상자 같은 걸 들고 우리 숙소 앞에 서 있는 것인가.
왠지 귀찮은 냄새가 풍겼다.
한숨이 절로 난다.
열 번 정도 나왔다.
그때 남자가 우리를 깨달았다.
몸을 홱 돌리더니 나를 보았다.
눈물이 한꺼번에 쭉 떨어졌다.
“도련님! 드디어 부를 수 있습니다, 도련님.”
“….”
뭐야, 이 대사.
한순간 유랑극단의 연기자인가 생각했네.
하지만 이제 알았다.
이 남자 공작가 사람이었구나.
왠지 날 쳐다보는 남자의 모습이 할아버지의 얼굴과 조금 겹쳤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러면 이 도시에서 나를 쫓아다니던 그 묘한 남자들도 공작가 사람들이었을까.
정말 뭐야, 다.
진즉 알았으면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손해 본 느낌이다.
다행히 골목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다.
숙소 주인도 매입 때문에 나갔는지 사방이 조용했다.
멀찍이 남자 몇 명이 서 있었지만 그건 나를 쫓아다니던 사람들이었다.
추정 공작가 사람들.
나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남자한테 다가갔다.
타티아나는 내 옆을 따라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도련님이라는 말에서 뭔가 알아차리긴 했는데 그게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나도 그 느낌 안다.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납치됐는데 왜 공작가에서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반가워하는가 싶겠지.
어쨌든 이런 골목에서 뭔가 말할 수는 없다.
남이 들어서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지.
할아버지도 만난 건 비밀로 하라고 하셨고.
그런데 왜 갑자기 접촉해온 건지, 원. 귀찮은 일이라는 예감밖에 없네.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 그렇죠. 이 늙은이가 너무 기쁜 마음에… 실례했습니다.”
남자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정중하고 어딘지 모르게 절도 있었다.
“그 상자는 내가 들죠.”
내가 손을 뻗자, 남자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제가 있으면서 도련님 손에 물건을 들게 하다니 당치 않습니다.”
남자가 시선을 주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젊은 남자 둘이 서둘러 달려왔다.
상자는 제법 무거웠던 것 같다.
남자 두 명이 달라붙어 들었지만 숙소 계단을 올라가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몇 번이나 놓칠 뻔했다.
“공작님이 도련님께 보내는 선물이다. 떨어뜨려서는 안 돼.”
시체 상자가 아니라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당황한 중년 남자가 다그쳤지만, 원래 몸으로 힘쓰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사람과 상자가 함께 계단을 굴러내려갈 것 같아서 왠지 내가 조마조마했다.
‘역시 내가 드는 게 나을 뻔했어.’
그러면 이 사람들이 상자를 방으로 옮길 동안 백 번은 왕복했을 거다.
도련님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신분으로 자라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 봤자 곤란하기만 하다.
타티아나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쳐다보다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더 빠르겠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웃자 타티아나도 거기에 끌린 것처럼 웃는다.
중년 남자가 상자 너머로 우리 모습을 보며 다시 눈물짓고 있었다.
‘정말 잘 우는 사람이네.’
상자를 방에 옮기자 젊은 남자들은 나한테 절을 한 뒤 물러가고, 중년 남자만 남았다.
중년 남자는 방 중앙에 서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도련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발테르 공작가의 사무관 라르스입니다. 공작님의 명을 받아 도련님이 이 도시에서 타가의 위해를 받거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보좌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도련님께서는 모르셨겠지만 저는… 저는… 계속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도련님 앞에 나타나 한 말씀 올리기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설마 이 사람은 내가 자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믿는 건가.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라르스가 나와 타티아나를 보고 다시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두 분의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공작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셔서 혼인과 새해 축하를 겸해 두 분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라르스가 상자를 열자, 고급스러운 천에 감싸인 물건이 나왔다.
라르스가 공손히 허리를 접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천을 펼치자 검은색 로브가 두 개 들어있었다.
로브 안쪽에는 은빛 털이 덧대어져 있다.
잘은 모르지만 보통 짐승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은여우, 어쩌면 마수의 털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나게 비쌀 것 같아.
게다가 로브 안쪽에는 문장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 공작가 문장일 거다.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옷은 공작가 혈통이라 해도 함부로 입지 못할 텐데.’
아버지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건 직계 혈통 중에서도 당주 부부나 후계자 계통만 입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당주가 허락하는 일부 인물 정도.
‘무거워.’
이건 무겁다.
물건에 담긴 생각이 너무 무겁다.
함께 로브를 본 타티아나가 당황한 것처럼 머리를 홰홰 저었다.
“우와, 이건 엄청나게 비쌀 것 같은데요. 보통 사람이 입을 건 아니네요.”
나와는 다른 의미에서 이 물건이 무겁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무관 라르스가 가슴에 한 손을 대고 말했다.
“두 분을 보통 사람이라고 말할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도련님은 공작가의 차세대 후계자요, 부인께서는 공주시니까요.”
라르스의 말이 끝나자, 잠시의 사이를 두고 나와 타티아나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한테 당했나요!”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다.
내가 타티아나를 보자, 그녀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이상한 말을 하니까요. 혹시 그, 그거에 당한 걸까 하고.”
세뇌 능력에 당한 게 아닌가 생각한 모양이다.
라르스는 조금 당황한 것처럼 우리를 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 설명도 드리지 않고 섣부른 말씀을 올렸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두 분 앞에 나온 건 단순히 선물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 상황에 관한 설명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
타티아나 품에서 벗어난 렐라가 상자로 올라가 거기에서 다시 풀쩍 뛰었다.
어느새 라르스 옷에 달라붙어 있다.
나나 타티아나는 렐라가 원하면 올려주기 때문에 새가 기어 올라가는 거는 지금 처음 봤다.
발톱으로 꽉 잡고 꽁지로 균형을 유지해 올라가는데, 가끔 부리로 쪼기도 한다.
굉장히 아플 것 같아.
하지만 라르스는 땀을 흘리면서도 억지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차마 보지 못하고 타티아나가 가까이 가 손을 내밀자 렐라가 폴짝 그 위로 뛰었다.
“삐빗! 삐비빗!”
아무래도 라르스 위에 올려달라는 듯하다.
새로 나타난 인물에 흥미진진한 것 같아.
타티아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그냥 두면 계속 기어 올라갈 것 같았는지 어깨 쪽으로 손을 뻗었다.
렐라는 퍼덕퍼덕 요란하게 날갯짓해 라르스에게 달라붙었다.
어깨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옷에 붙는다.
언뜻 렐라의 오렌지색 깃털이 보였다.
‘하아….’
타티아나가 공주라는 건 금시초문이지만, 사무관의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다.
아마 공작가에 나를 받아들이고 싶은 거겠지.
좋게 말하면 혈연을 찾아 보듬자는 말일 테고, 나쁘게 말하면 정령인 낳는 젖소를 공작가 우리 안으로 가두는 것이다.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도록.
물론 단순히 그런 이해타산만이 아닌 걸 안다.
나와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혈육의 정 같은 것이 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이 사무관은 혈연이 아니지만 나를 굉장히 그리워하는 것 같고, 할아버지도 순수한 마음이 상당 부분 있다.
알아.
‘그래도 앞뒤 옆을 잘 재봐야 하는 거지.’
타티아나가 공주라는 얘기도.
아버지가 나한테 엄격히 가르친 건 이런 날을 위해서였을 거다.
정이나 상황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뭐, 렐라라든가 원수를 생각해도 어쨌든 안정된 장소가 필요하니까.’
라르스는 렐라에 시선을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공작께서는 서서히 일을 진행하실 생각이셨습니다. 도련님의 생활을 억지로 비틀고 싶어 하지 않으셨죠.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잘못하면 두 분의 혼인이 무효가 될 수도 있어요. 신원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면 그 결혼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왕족이 개입하면 충분히 그렇게 비틀 수 있습니다.”
옆에서 엣, 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티아나가 굉장히 놀란 모양이다.
나도 놀랐다.
심장이 벌렁벌렁해.
“자세히 들어봅시다.”
라르스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는지 한 호흡 두고 입을 열었다.
“저희 공작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인께서는 사라문즈 공국의 공주님이십니다. 그… 마녀라는 의혹으로 어리셨을 때 마녀 도로테가 인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타티아나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타티아나!”
내가 그녀를 안았지만 정신이 여기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커다랗게 눈을 뜨고 나를 보는데 시선이 내 얼굴을 잡지 않는다.
아주 먼 곳을 보는 것 같다.
“… 내 딸… 너를 … 놓지 않는다… 절대로… 절대로….”
타티아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정신을 잃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타티아나를 안은 채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