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89)
089 어머니, 너무해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외삼촌의 부족은 다른 곳보다 난폭하다고 할까, 온화한 편은 아니죠?”
“….”
“실례일까 싶기는 한데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촌의 부족은 강하지만 다른 부족과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외삼촌이 손가락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건 당연한 추론이지 않을까.
다른 부족으로 도망친 사람을 갓난애까지 쫓아가 죽였다고 스스로 말한 거야.
만일 그게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거라면 도망자는 다른 부족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른 부족으로 도망쳤겠지.
하나하나 밟아 생각해가면 도망자를 받아준 부족 사람들과도 다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상대 부족에서, 여기 있습니다, 하고 도망자를 내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럴 작정이었다면 미리 내쫓았을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외삼촌이 히죽 웃었다.
“뭐, 그렇기는 하다만.”
술을 벌컥 한 잔 마신 뒤 외삼촌이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오래 돌아오지 못한 것도 그래서지. 원수를 죽이는 과정에서 또 다른 적이 생기는 거야. 후환을 놔두고 올 수는 없으니, 그걸 모두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이십 년 넘게 시간이 흘러 버렸다.”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20년이라니, 대체 얼마나 죽인 거야.
그렇게 많은 원한을 쌓고도 아직 부족이 남아있는 게 용하다.
그만큼 강한 사람만 모여 있는 건가.
“진짜 걱정이었지. 남편이 갑자기 이십 년 넘게 안 돌아오면 생활을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외삼촌이 큰 소리로 웃는다.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뭐, 만에 하나 다른 남자랑 살림을 차렸어도 강제로 나한테 되돌렸겠지만.”
아니, 그래서는 안 되죠.
나도 모르게 소리 내려다 말을 삼켰다.
오랜만에 나타나 뻔뻔하게 돌아왔다고 말한 건 그래서였던 모양이다.
어떤 상황이어도 자기 아내를 되찾을 생각이어서.
제니 씨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 다행이다.
스킨헤드가 그녀한테 반해 있는 것 같았는데 혹시라도 청혼해서 성공했으면 죽었을 거다.
스킨헤드, 진짜 구사일생이었구나.
한 발만 잘못 내디뎠으면 그야말로 지옥행이었다.
외삼촌은 웃음을 띤 채 나를 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이 맹수다.
무서워.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무섭게 보인 적이 없었다.
분명 더 강한 건 어머니일 텐데 외삼촌이 훨씬 무섭다.
기합이 다른 것 같아.
싸우면 내가 이길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무서워졌다.
“사라문즈 공국은 숲과 황무지가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숲 자체는 매우 풍요롭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걸 그 나라 국민은 활용할 수 없습니다. 숲에는 마수와 짐승이 살고 있으니까요. 보물을 썩히는 중이죠.”
“….”
외삼촌이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그 나라는 가난하고 무력이 형편없어요. 정규군이야 있겠지만 에노르토스 전사한테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노르토스 쪽의 산맥이 거기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를 통할 필요도 없죠.”
“그 나라를 먹으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는 수렵 민족이야. 나라 운영은 못 해.”
“괜찮아요. 그냥 원하는 대로 하세요. 풍족한 숲을 차지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고 아니면 약탈만 하고 돌아와도 상관없습니다.”
외삼촌의 어깨가 밑으로 푹 처졌다.
“하아아… 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나오나 했는데. 재미없어.”
설마, 나를 잡아먹을 듯 험하던 눈빛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흥분한 거였나.
어쨌든 외삼촌의 맹수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을 만큼 완벽하게 없어져 있었다.
“라파야.”
“네.”
“솔직하게 말해 봐라. 우리 부족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색깔론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전사와 부족의 법칙은 다를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행동이 같을 수는 없다.
이들이 약탈하거나 원수를 갚는 등의 일은 부족 차원의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은 개인적인 원한이었다.
그리고 아직 검정도 회색도 아닌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
나는 부족 사람들이 사라문즈 왕국으로 들어가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외삼촌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말해 봐라. 갑자기 그 나라는 왜? 뭐가 목적이냐? 남자 녀석이 왜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거야.”
말하면서 외삼촌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설마 헬가 때문에 뼈가 녹아버린 건 아니지? 헬가 녀석, 남자애를 자기처럼 물렁하게 기른 건, 아니, 그 녀석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외삼촌이 내 목에 걸린 곰 이빨 목걸이를 보았다.
“저 목걸이를 걸어줄 정도면 제대로 가르친 게 맞을 텐데.”
헬가라서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라고 중얼거린다.
어째서 어머니가 비난받고 있는가.
내가 물렁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어도 어쨌든 이대로 두면 어머니 잘못이 될 것 같다.
그건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건 내 잘못이지 어머니 때문이 아니니까.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를 제대로 길렀다.
아니, 그런데 내가 잘못한 게 있기는 한가.
단지 속마음을 다 말하지 않은 것뿐인데.
“….”
어쨌든 어머니 변명부터 하자.
외삼촌이 왠지 모르지만 분개하기 시작했다.
부족의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침튀기며 말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점은 다소 있지만, 나는 일단 입을 열었다.
“어머니한테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전사의 법칙도 지금까지는 제대로 지켰어요. 한 번도 어긴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외삼촌이 벙찐 표정을 하고 나를 보았다.
뭔가 이상하네.
“그… 전사의 법칙은 뭐냐?”
“….”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내 표정을 보고 외삼촌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왠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는 것 같다.
잠시 그러고 있던 외삼촌이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검정 흰색 그거 말하는 거냐?”
“… 네.”
“크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외삼촌의 웃음보가 터졌다.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흘린다.
아니,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어머니의 색깔론이 가짜라든가 그런 건 아닐 거다.
내가 불안한 얼굴로 쳐다보자 외삼촌이 숨을 제대로 못 쉬고 꺽꺾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 아주 오래전에는 실제로 지켰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오래전 얘기다. 에노르토스에 처음 부족이 서기 시작할 무렵의 규칙이야. 그걸… 헬가가… 쿠쿠쿡… 아, 미치겠네. 그걸 제 아들한테 가르쳤을 줄이야.”
“….”
한참을 웃던 외삼촌이 목이 말랐는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헬가가 어릴 때 아버지가 얘기해 준 적이 었었는데 그게 멋있었던 모양이다. 부족 아이들한테 강제로 검댕이나 진흙을 묻혀서 때려눕히곤 했지. 커서도 내내 그걸 동경하는 건 알았지만, 설마 그걸 실제로 누군가한테 가르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어머니.
내가 어깨를 뚝 떨어뜨리자 외삼촌이 쿡쿡 웃었다.
“남자한테 반했다고 여자고 호위고 모조리 죽이고 업어오는 녀석이 무슨 검정 흰색이야.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다.
나는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그래도 역시 색깔론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지.
‘하아, 엄마.’
전사는 그런 거라고 그렇게 멋지게 설명해 놓고 뭡니까.
내 속에 있는 어린 라파가 실망해서 울고 있는 것 같다.
외삼촌이 축 처진 내 어깨를 치며 술을 권했다.
“이럴 때는 술이지. 마셔라. 토할 때까지 마시면 속도 후련해진다.”
아니, 토하면 더러운 게 나올 뿐이다. 속도 버리고.
어쨌든 우울하다.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마음이 맑아지지 않을 것 같아.
한 모금 목구멍으로 흘려 넣자 외삼촌이 위로하듯 말했다.
“네가 에노르토스에 살았다면 그 검정 얘기가 쓸모없는 건 금방 알았을 테지만…. 거기에선 그렇게 물렁한 생각으로 살면 금방 죽어.”
“….”
“뭐, 괜찮다. 이 나라에선 그 정도가 딱 좋아. 어쩌면 네 엄마도 그래서 일부러 가르친 거겠지.”
외삼촌이 다시 웃는다.
속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다 보여요, 외삼촌.
어머니도 그런 생각이 있어 색깔론을 가르친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자기 이상을 아들한테 구현해 놓은 거겠지.
‘하아, 어머니.’
내가 집을 나올 때 어머니가 걱정한 것처럼 보인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약탈혼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신 거짓말이 들통날지 모른다고 불안했던 게 아닐까.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 봐라. 그 사라문즈라는 나라는 뭐야?”
“아무래도 그 나라 왕이 위협이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미리 방법을 마련해 놓으려는 것뿐입니다.”
나는 타티아나가 마녀라는 걸 숨기면서 대강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공왕이 언젠가 타티아나한테 위협이 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내게서 아내를 빼앗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걸 중점으로.
“그런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쪽에서 그렇게 나오더라도 충분히 막을 자신도 있구요. 하지만 그런 위험을 방치하고 싶지 않아요. 막상 그때가 되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놓고 싶습니다.”
타티아나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그리워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미움받을 일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타티아나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
무관심이었다.
내가 그들을 죽여도 아무 문제 없다.
외삼촌이 안심한 표정으로 내 등을 탕탕 두드렸다.
아픕니다, 외삼촌.
“좋았어, 다행이다. 헬가가 꿈꾸는 경향이 있는 애라 너도 그런가 싶었는데 다행히 제대로구나.”
“….”
그런 말을 들어도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외삼촌은 제대로라고 하지만 그건 절대로 일반적인 제대로가 아닌데.
외삼촌과 함께 살아갈 제니 씨와 사촌이 걱정이다.
앞으로 그들의 삶은 가시밭길이 아닐까.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가만 보고 있으면 공작가에서 사무관도 오고, 혼인 얘기도 진행되고 있으니, 너는 그 공작가에 받아들여진 걸 거다. 그러면 그쪽에 얘기하는 게 더 빠르지 않아? 내가 듣기로는 그 공작인지 뭔지가 엄청 강하고 밑에 마법사도 많다던데. 왜 굳이 우리한테 이야기를 가져온 거냐?”
외삼촌이 가만히 나를 보았다.
“간단합니다. 공작가는 강하다 해도 이 왕국에 속해 있는 가문이에요.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거나 왕을 죽일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공국을 둘러싼 다른 나라 문제도 있으니까요.”
만에 하나 공작가가 공국에 쳐들어가면 다른 세 왕국과도 문제가 생긴다.
이쪽에서 준비해 가는 동안 공왕이 다른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면 왕국 간의 전쟁이 되는 거야.
그런 여러 사정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내가 공왕을 죽이고 싶다는 이유로 공작가가 움직일 리도,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에노르토스는 다르다.
그들은 아무 곳에도 묶이지 않고, 원래 약탈에 익숙하다.
그들이 사라문즈 공국을 침략한다고 해서 다른 왕국이 간섭할 여지도 없었다.
결국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은 혼자 가거나 외삼촌을 부추기는 것뿐이다.
“흠.”
외삼촌이 턱수염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게다가 부족이 그쪽으로 이동한 뒤에 잘하면 사라문즈 공국과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또 어떻게?”
“사라문즈는 무력이 형편없는 나라죠. 그래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데 그게 다시 약해지는 이유가 됩니다.”
나쁜 순환이 계속되는데 그걸 멈출 방법이 없다.
주변의 세 왕국은 사라문즈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걸 바라기 때문에 무력을 강화하거나 부유해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괜찮을 조짐이 보이면 침략당한다.
“하지만 에노르토스 부족이 그쪽에 자리 잡고 공국과 유대를 갖게 되면 달라져요. 사라문즈에 무력이 생기죠.”
부족에서는 마수나 짐승을, 사라문즈 측은 다양한 물건과 혼인의 편리를 봐주면 서로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숲을 뚝 잘라 영지를 내줘 그 나라의 귀족이 되는 수도 있다.
“왕을 죽이는데 그게 가능한가?”
외삼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공작가가 사이에 들어가서 중재해도 되고, 왕을 죽인 뒤에 강제로 조약을 하나 맺으면 됩니다. 아, 그리고 왕은 내가 죽입니다.”
에노르토스 부족이 공국으로 쳐들어가면 나도 함께 갈 생각이다.
내 일을 남에게 완전히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부족에 섞여서 가면 내가 공작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챌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작가에 압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잠시 동안만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으면, 그다음은 일이 마무리된 후, 뒤늦게 누군가가 공작가의 라파가 끼어 있었다고 짖어대도 이미 공국의 왕은 죽고 성은 떨어졌는데 어쩔 거야.
공국의 아무 핏줄이나 하나 붙잡아 공왕으로 세워두고 조약 하나 맺으면 더 이상 불평할 사람도 없다.
아레논 왕국에서 공작가에 뭐라 말할지는 모르지만 그건 미리 알려 놓으면 알아서 하겠지.
시끄러운 일을 피해 한동안 에노르토스 부족과 함께 행동해도 된다.
‘아니, 그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통나무를 쪼개고, 타티아나는 그 옆에서 염소젖을 짜는 거다.
사냥은 둘이 함께 가도 좋겠지.
사냥해온 마수나 짐승은 어머니가 한 것처럼 고기를 말려 보관하고, 털은 처리해 길드에 가져가 팔면 된다.
다른 사람의 짐승 털도 모아 함께 가져가자.
그 사이 아이도 퐁퐁 낳아….
‘좋네.’
굉장히 좋다.
머릿속이 먼 미래로 훌훌 날아가 있는데 외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마침 아버지가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시던데 한번 말해보지.”
“감사합니다.”
외삼촌이 히죽 웃으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문득 통속을 보자 어느새 반이나 비었다.
대체 이걸 언제 마신 거지?
그래도 취한 기색이 없다.
아무래도 밤새도록 마실 생각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 신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