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93)
093 무례한 시녀들
리아나 공주는 베일 너머로 내 미소를 보자 까무러치듯 몸을 허물어뜨렸다.
정신을 잃은 건 아니지만 다리 힘이 빠진 것 같다.
엎어진 종처럼 부푼 드레스 중심으로 리아나 공주의 몸이 쑥 들어갔다.
반쯤은 혼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하아. 이 정도로 크게 놀라면 나도 조금 우울해진다.
‘그렇게 무서운가.’
다시 한번 타티아나가 특별, 아니 솔직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최면술을 눈치채고 목을 부러뜨리기 직전에도 그녀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다다다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건 특별한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내 모습을 무서워했을지 모르지만 그걸 숨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보통은 남자조차 얼굴에 두려움이 나와버리니까.
‘천생연분이라는 건 이런 인연을 말하는 거겠지.’
이 얼굴을 여자가 좋아해 줄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타티아나를 생각하니 얼굴이 느슨해졌다.
입가가 살짝 풀려 어쩌면 조금 웃는 표정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던 공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아, 잡아먹지 않는데.’
나는 그녀가 마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 강하지 않게 조심하며 일어서도록 유도한다.
여자들의 옷은 의외로 무게가 엄청나서 내 힘으로만 잡아 일으키면 드레스 무게 때문에 팔이 빠질지도 모른다.
나도 잘 몰랐는데 이번에 타티아나가 옷 입는 걸 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그런 걸 입고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정말 대단한 거지.
타티아나는 드레스에 익숙하지 않아서 방향을 틀 때마다 곤란해하고 있었다.
옷이 몸에 잘 따라오지 않는 것 같다.
안 돼, 다시 입가가 느슨해진다.
공주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는데 웃으면 진짜 기절할 거야.
어쨌든 지금은 공주다.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조금 기다리자, 리아나 공주는 내 손에 의지해 마차에서 내렸다.
내 앞에 서자마자 급히 몸을 낮춘다.
“사라문즈의 리아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파 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굉장히 긴장한 모양이다.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에 나온 아이가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발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단순히 내 얼굴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짜라는 점에 압박받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공주 너머로 사라문즈 시녀들이 허둥지둥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고 겁은 조금 먹은 듯하지만 두 사람은 곧바로 공주에게 다가왔다.
시녀들이 뒤쪽에 와 서자 리아나 공주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리아나 공주의 몸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내가 바로 앞에 있는 데도 공주를 향한 시녀들의 눈초리는 사양이 없다.
그 시선에 스민 건 아마 모멸일 것이다.
공주와 오래 함께 한 사이일 텐데도 좋은 관계가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감시자에 가까운 것 같다.
힘의 역학관계가 한눈에 보였다.
‘이런 여성이라면 나쁜 결론은 내리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사라문즈 시녀들을 힐끔 보았다.
시녀들이 무릎을 살짝 꺾어 절한다.
그동안 공주를 무시해왔기 때문일 거다.
그 남편인 나한테도 겉으로는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듯하지만 은근한 멸시가 보였다.
허리의 각도라든가, 몸을 낮춘 정도가 그래.
내가 아버지에게 배운 것보다, 그리고 이 공작가에 왔을 때 사람들이 내게 한 행동보다 미묘하게 뻣뻣하고 높다.
곁에서 보면 몰라도 당하는 사람은 은근히 알 정도로.
내가 야만인이라 모른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공국의 공주라는 위치가 공작가의 도련님보다는 높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어느 쪽이든 이제 끝이다.
“그대들은 오랫동안 공주의 시중을 들어온 자들이라고 들었다. 공주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내게 온 것도 두 사람의 공이겠지. 지금까지 수고했다.”
내 말에 시녀들이 공손히 답한다.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몸을 바로 하는 시녀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앞으로 공주의 주변은 우리 공작가 시녀가 돌볼 테니, 두 사람은 이제 고된 임무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구가하면 좋다.”
“네?”
“무, 무슨?”
시녀들이 파뜩 고개를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흠, 그러면 안 되겠지.
이런 식으로 주인의 눈을 똑바로 보는 건 매너 위반이다.
경악한 얼굴로 시녀들이 입을 열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리아나 공주님을 위해 공왕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무례를 공국이 허락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두 사람의 말에 주변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호위들과 공작가 고용인 얼굴에 고드름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시녀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그만큼 필사적인 거겠지.’
여기에서 공주의 곁을 물러나면 두 사람의 미래도 암울해질 것이다.
공주 옆에서 잘 지키고 있으라 명령받았을 테니.
안 봐도 알겠어.
시녀 한 명이 리아나 공주를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공주님!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나는 비어있는 손을 올려 딱, 손가락을 튕겼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공기가 폭발하듯 터진다.
강한 바람이 일어나 시녀들의 몸이 훌렁 뒤로 넘어갔다.
“꺄아!”
“커헉!”
비명이 오리 울음소리처럼 요란하다.
“사라문즈 공국은 왕가의 시녀도 올바른 예절이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시녀를 공작가로 보내다니 이쪽이야말로 허락할 수 없네. 이건 공식적인 경로로 항의해야겠어.”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모양이다.
시녀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리아나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공주는 새파랗다 못해 거의 죽은 사람 같다.
“그, 그런.”
“용서를… 부디 용서….”
시녀들이 뒤늦게 용서를 청했지만, 미안해, 이 일은 너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정해진 것이다.
너희가 무례하든 정중하든 솔직히 상관없었다.
“공국의 호위들이 타는 배는 며칠 뒤 출항이다.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다.”
내 말에 호위들이 움직였다.
반강제로 시녀들을 일으켜 데려간다.
시녀들은 울음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그 모습을 쳐다보다, 공주가 뒤늦게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죄, 죄, 죄송합니다. 부디 요, 용서를… 시녀들은… 그… 그….”
“괜찮아요.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나는 사시나무처럼 떠는 공주를 인도해 걷기 시작했다.
사형대를 향해 가는 죄수처럼 공주가 내 곁을 걷는다.
그렇게 고압적인 시녀라도 그녀에게는 나나 공작가 사람보다는 아군이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공주가 조금 불쌍해졌다.
‘하지만… 정말 많이 닮았구나.’
옆에 나란히 서니 그녀는 타티아나와 정말 많이 흡사했다.
머리카락 색은 물론이요 키와 체형까지 비슷하다.
베일 너머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도 닮은 것 같다.
최대한 공왕비와 닮은 여성을 선택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비슷하다니, 솔직히 놀랐다.
거의 자매 같은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베일 아래 얼굴이 바뀐다 해도 알아차릴 사람이 없겠어.’
공작가 신부는 베일을 쓴다는 말을 날조해 얼굴은 가렸지만 그래도 다른 부분은 감출 수 없다.
그 때문에 공주를 마중한 사람은 나와 집사장, 공작부인의 시녀라는 매디즈 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닮았다면 다른 사람이 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좋았어.
혼례식에는 공국의 외교관이 참석한다.
사라문즈 측의 혼인계약서는 그가 공국으로 가져간다.
그 외교관은 공주가 가짜라는 사실을 모를 확률이 크지만, 어쨌든 공왕에게 혼례 모습을 보고할 것이다.
그때 차이가 나면 어쩌나 싶어 타티아나의 혼례복에는 몸을 상당 부분 덮는 베일도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닮았다면 그건 필요 없을 것이다.
단순히 얼굴을 덮는 것만으로 괜찮다.
진짜 좋았다.
모처럼 예쁘게 차려입었는데 그걸 모두 가린다면 불행한 일이겠지.
나도 타티아나의 예쁜 모습은 가리지 않은 채로 보고 싶다.
‘그날이 기다려지네.’
나도 모르게 미소 짓자, 옆에서 나를 훔쳐보던 공주가 휘청했다.
내 얼굴에 놀라 발이 꼬인 모양이다.
하아, 그렇게 무서운가.
며칠 동안 나는 낮에 공주와 만나 차를 마시거나 정원을 산책하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본 공주는 그저 누군가의 강요로 인생이 망가진 불쌍한 여성이었다.
*
반짝거리는 샹들리에, 낮에도 화려하게 켜져 있는 촛불, 어딜 봐도 번쩍거리는 실내에,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시야에 들어오는 값비싼 물건들.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타티아나는 늑대 무리 속에 들어간 토끼 심정이 되어 작게 한숨 쉬었다.
공작가에 도착한 날, 마차는 아무도 모르게 별택으로 향했다.
우리를 안내한 집사장의 말로는 공작가 부지 안에는 이런 별택이 또 다른 곳에도 있는 모양이다.
타티아나의 눈에는 이 별택도 엄청나게 큰데, 본가는 몇 배나 더 웅장하단다.
집사장의 말은 겸손했지만 공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보였다.
이런 대단한 가문에 속하게 되는 거다.
위가 아팠다.
그날 오후 라파는 본가로 향하고, 타티아나는 이곳에 남았다.
공주와 바꾸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숨은 듯이 지내야 한다.
‘라파 씨는 지금쯤 공주를 만나고 있을까.’
알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라파가 공주를 좋아해서 만나는 게 아니다.
단지 그녀의 인품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주와 친밀하단 인식을 심어주려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싫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와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이렇게 싫을 줄이야.
‘이게 질투라는 건가.’
마음이 미친다.
‘하아.’
마녀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 혹여 누군가를 만나 사랑해 함께 해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런 마음, 시간이 지나도 계속된다면 분명히 원망하게 되겠지.’
자기도 모르게 바랄 것이다.
부디 상대 여자를 불행하게, 부디 내 남자가 행복하지 않게.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마음만으로 끝나지만 마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저주 덩어리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
참고 참고 끝까지 참다 결국엔 저주를 부르게 될 거다.
물론 라파 씨는 바람피우는 게 아니지만.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매일 저녁마다 기쁜 얼굴로 돌아와 주지 않았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리아나 공주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거나 유혹된 기미가 보였다면, 타티아나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웠다.
추측이 아니라 확실히 괴롭다.
타티아나는 작게 한숨 쉰 뒤 걷기 시작했다.
딱딱한 코르셋으로 조여진 가슴은 숨쉬기도 어렵고, 다리는 하체를 부풀린 거대한 구조물 아래에서 어색하게 움직인다.
고래뼈로 만들었다고 했나.
둥근 원형의 구조물은 치마와 부딪쳐 무겁게 몸을 당긴다.
힘들어.
이런 옷을 입고 귀족 여자들은 어떻게 생활하는 거지.
‘걸으면서 숨 쉬는 동작조차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심지어 혼인 서약 때 입는 드레스는 이것보다 훨씬 크게 부풀려져 있다.
지금 입고 있는 건 그 혼례 드레스를 입기 위한 연습용이다.
타티아나를 가르치는 부인의 말에 의하면 드레스 중에서도 가장 얌전한 타입이라고 한다.
혼례용 드레스는 정말 예쁘고,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저절로 나왔지만, 그걸 입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진짜 한심스러워졌다.
반면에 라파는 귀족 옷을 입어도 위화감이 없었다.
얼굴과는 분명히 어울리지 않을 텐데 공작가의 디자이너나 재단사가 훌륭한 건지 의외로 의복이 잘 어울렸다.
동작도 귀족답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타티아나와 똑같은 평민처럼 보이던 사람이 공작가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자 동전을 뒤집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귀족이 되었다.
‘… 노력해야지.’
타티아나는 라파와 달리 귀족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그와 함께 있으려면 배워야 한다.
‘노력해야 해.’
타티아나는 작게 한숨 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한참 걷다 벽이 가까워지자 몸을 옆으로 돌린다.
부푼 치마 속에서 다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렇게 방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면서 옷에 몸을 맞추는 게 첫 번째 단계다.
이게 안 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다.
당장 혼례용 드레스를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귀족다운 동작이나 우아함 따위는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나, 혼례까지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라파의 들뜬 표정을 떠올리고, 타티아나는 길게 한숨 쉬었다.
그 드레스를 입지 못하게 되면 라파가 엄청나게 실망하게 될 거다.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