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26
음악천재 재벌3세 126화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적막이 감도는 연습실에서 임우택과 설아연이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아무도 안 왔네요.”
“그러게요.”
그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다시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5분여의 시간이 흘렀을 때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임우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 노래는 잘 들었습니다. 정말 잘하시던데요.”
“아, 고마워요. 저도 우택 씨 노래 잘 들었어요.”
설아연이 노래를 잘 들었다고 하자 임우택은 가슴이 살짝 떨렸다.
‘흠흠.’
속으로 내심 헛기침을 하고 있던 중, 연습실의 문이 열리며 김서준이 들어왔다. 김서준의 옆에는 묶은 머리를 찰랑이고 있는 이은지와 상기된 얼굴의 유철환이 함께였다.
유철환은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가 여기에 왜 있지?’
기대하지도, 아니 꿈에 그리지도 않았다.
이번 슈퍼보이스 코리아 시즌 2는 심사위원이 두 명의 보조 심사위원을 거느릴 수 있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각자 친분이 있는 작곡, 작사가들을 보조 심사위원으로 고용한 상태.
사실 그것이 우승에 가장 유리한 방향이었다.
하지만 김서준은 신인들을 옆에 두었다. 옆에 있는 이은지야 원래 김서준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콘서트나 앨범 등에서 이은지를 챙겨 주는 모습을 보여 왔으니까.
그런데 유철환은 김서준이 왜 자신을 챙겨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유철환이야 김서준을 몇 번 먼 거리에서 보기는 했으나 김서준이 유철환을 본 것은 스튜디오에서의 짧은 순간뿐이었다.
“빨리 오셨네요.”
“아, 네. 좀 일찍 나왔습니다.”
임우택과 설아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김서준이 말한 시간보다 근 30분은 먼저 나와 있었다.
긴장이 되서 도저히 그 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여기는 이번에 제 보조를 해 줄 이은지와 유철환 선배님이십니다.”
김서준의 입에서 유철환의 이름이 나오자 유철환이 순간 깜짝 놀랐다.
아직도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은 것이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김서준의 소개에 임우택과 설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가워요. 잘해 봐요.”
이은지가 자연스럽게 인사하자 유철환도 그 뒤를 따라서 인사했다.
“반가워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에 어색함은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이 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네요.”
김서준이 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아직 30분은 남은 상태.
이대로 멍 때리며 있거나 잡담을 나누기에는 아직 서로 친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가?
모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굳이 입으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면 되는 법.
“은지야, 이번에 준비하는 곡 한번 들려줄래?”
“그럴까?”
마침 이은지도 어색했던 참이라 군말 없이 기타 쪽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임우택과 설아연, 그중에서도 설아연의 눈이 빛났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이은지가 어린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어려 보였다.
이은지의 1집은 작년에 꽤 큰 이슈를 남기며 차트 최상위권을 랭크했기에 그녀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재능이 있기 때문에 김서준이 이렇게 싸고도는 걸까?
그리고 과연 김서준을 도와서 크루원들을 가르칠 실력이 되는가?
이건 직접 눈으로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의자에 반쯤 걸터앉은 이은지가 기타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디링-.
디링-.
기타라는 것이 한번 조율을 해 놓더라도 연주 도중은 물론이고 하루만 지나도 조금씩 조율이 틀어지고는 했기에 연주 전에 이렇게 계속 조율을 해 줘야 했다.
일부러 조율을 하지 않거나 오조율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은지은 정확한 조율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이은지의 손가락이 현을 튕겼다.
기타에서 이보다 맑은 소리가 날 수 있을지 궁금해질 정도의 소리.
천천히 기타의 현을 뜯던 손가락이 전주가 끝나자 좀 더 힘입게 현을 누비기 시작했다.
‘쩐다.’
임우택과 설아연도 놀란 표정이었지만, 유철환은 놀란 표정을 아예 숨기지 못했다.
그는 이은지의 노래를 처음 들어 봤다. 애초에 신인 가수의 노래를 그다지 즐겨 듣지도 않거니와 특히 여자 가수의 노래를 더더욱 듣지 않았다.
‘내가 들어서 뭐 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음악만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언제 여자 가수의 노래를 그것도 신인 이은지의 노래를 들어봤을까.
그런 유철환의 생각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왜 진즉 들어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은지의 연주와 노래는 훌륭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이곳이 연습실이 아니라 해가 지는 가을 LA 한복판의 쓸쓸한 벤치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도 돌리지 않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숨을 쉬지 못해 가슴이 답답해졌을 때.
이은지의 연주가 끝났다.
“후우, 후우.”
“하아.”
비단 유철환만 숨을 쉬지 못한 것이 아니었는지 노래가 끝나자 임우택과 설아연 역시 숨을 몰아쉬었다.
“어때요?”
김서준이 작게 웃으며 설아연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설아연은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대단해요.
대단한데요?
훌륭합니다.
이런 뻔한 소리를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또 그런 뻔한 소리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어······.”
그래도 무슨 말은 해야 했기에 입을 열었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연 씨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이겁니다. 이번 슈퍼보이스 코리아 시즌 2에서 설아연 씨는 은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목표로 할 겁니다.”
“제, 제가요?”
설아연의 가슴에서 자신감은 모두 사라진 뒤였다.
음악 그리고 노래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 이은지의 노래를 듣고 자부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클래스가 다르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 같았다.
“네. 오늘부터 설아연 씨는 은지에게 배울 겁니다. 물론 저도 도움을 드리겠지만요.”
설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지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면, 절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는 김서준 씨에게 배우기 위해 온 것이지 이은지 씨에게 배우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 꼭 배우고 싶어요.”
설아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이은지는 김서준과 적어도 1년, 길게는 수년간 음악을 같이해 왔다.
김서준의 노래를 보았을 때 이은지 역시 대단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은지도 여자이고 설아연도 여자.
트레이닝을 받는 데 남녀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라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한 면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알기 마련이다.
설아연의 눈이 흥분으로 떨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은지와 어울려서 노래를 하고 싶었다.
이은지의 노래가 끝나고 나자 임우택이 빛나는 눈으로 유철환을 바라봤다.
유철환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김서준이 데려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선을 받은 유철환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날 왜 봐? 난 아닌데?’
유철환이 듣기에도 이은지의 노래는 클래스가 다른 영역.
아무리 자뻑을 하더라도 그를 이은지에게 비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 날 뽑은 거야?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유철환이 김서준을 바라봤다.
“선배님.”
“어? 어.”
김서준의 부름에 유철환이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음악에는 바리에이션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면 발전이 요원하지요. 그래서 선배님에게 도움을 부탁드린 겁니다. 두 분에게 음악을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그래.”
유철환이 고개를 끄덕인 채 주변의 장비를 둘러봤다.
다행히 없는 게 없는 스튜디오였기 때문에 엠프 선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아.”
엠프에 기타를 연결한 채 유철환이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잘하는 음악을 보여 주면 되는 거지.’
김서준, 이은지가 잘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
유철환 그의 음악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은지의 무대와는 다르게 강렬한 기타의 비트와 리드미컬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유철환이 평생 해 온 음악은 락이었다.
하드코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잔잔함과는 거리가 먼 음악.
유철환의 강렬한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순식간에 차올랐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끝나고 나서 유철환은 멋쩍은 표정으로 기타를 내려놓았다.
***
“이 정도로는 김서준을 이길 수 없어.”
김서준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크루원들과 함께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때.
이성환도 그의 크루원들을 SC엔터의 연습실로 모두 불러 모았다.
김서준과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N-NET의 제작진도 같이 있다는 것.
카메라를 의식한 탓인지 이성환의 목소리는 꽤 격양된 상황이었다.
“태룡이는 힘을 빼란 말이야. 무대에서 한두 곡 부르고 말 거야?”
“아닙니다.”
“그러면 힘을 빼. 가수들이 콘서트에서 몇 곡 부를 거 같아? 어?”
“알겠습니다.”
분위기는 약간 군대 같기도 했다. 이성환이 앞에서 하나하나 피드백을 해 주면 크루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태룡이뿐만이 아니야. 모두 가수 일이 년 하고 말거야? 파워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야. 힘주는 것과 파워풀한 것은 완전히 달라. 이해해?”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해한다는 말에 이성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해한다는 놈이 그게 뭐야? 어? 이해하는 거 맞아?”
이성환의 고함에 사람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박이라도 해 보겠지만 상대는 가요계의 대선배이자 이미 실력을 수도 없이 증명해 낸 대가수 이성환.
게다가 지금 적어도 다섯 대의 카메라가 붉은빛을 점멸하며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개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시청자들에게 찍혀도 단단히 찍힐 것이다.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한다.”
“네! 선배님.”
쉬라는 말에 크루원들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몸으로 하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들의 이마와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그림 좋습니다. 역시 대단하세요.”
유훈 감독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시즌 1에서도 그러했지만, 시즌 2에서도 이성환은 그의 카리스마를 보여 주며 크루원들을 휘어잡았다.
편집 없이 방송으로 나가도 아주 인기가 좋을 만했다.
“후. 카메라를 의식하기는 했는데 진짜 답답해서 그랬어요. 아. 이거 카메라에 안 들어가는 거 맞죠?”
“네. 카메라는 껐습니다.”
혹시 뒷말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이성환이 카메라를 슬쩍 바라봤다.
다행히도 붉은 등은 꺼져 있었다.
“서준이는 어때요? 잘하고 있대요?”
“김서준 씨요?”
“네.”
유훈 감독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있는데 왜 김서준 씨를 콕 찍어서 물어보시는지?”
감독의 질문에 이성환이 뭐 그런 것을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박지연 씨나 이효린 씨 모두 나와는 상관없잖아요? 본선에 올라가면 어차피 청자들이 선택해 줄 문제고. 하지만 서준이는 다르죠. 저랑 너무 많이 겹쳐요.”
“겹친다는 것은 음악이 겹친다는 건가요?”
이성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디테일하게 보면 차이가 있었지만, 청자들이 듣기에는 김서준 크루와 이성환 크루를 비슷하게 볼 것이었다.
그러니 이겨야 했다.
그리고 이기는 것은 이성환의 자존심이었다.
“아! 다음 촬영에 대해 미리 말씀드려야겠네요. 다음 촬영은 경연 순서를 두고 심사위원분들이 대결을 해야 합니다. 거기서 기선을 제압하시면 되겠네요.”
심사위원 대결이라는 말에 이성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끝
ⓒ 성불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