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무대가 끝나고 김서준과 임우택이 무대 뒤로 걸어 나왔다.
그들이 걷는 뒤편으로도 박수는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잘했어요.”
“아…….”
임우택은 무대를 내려오고 나서도 현실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서준의 칭찬도 지금 임우택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이게 내 노래라고?’
듀엣 무대였기에 김서준의 파트도 컸지만 과반이 임우택의 파트였다.
게다가 편곡 역시 참여한 상황.
그랬기에 임우택의 노래라 봐도 상관없는 상황이다.
믿기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1등이 되고나서 해도 늦지 않을 거 같은데요?”
“1등…….”
에서 1등이 되는 상상.
막연하게 상상은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왠지 손에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 방심하지는 마요. 아연 씨와 소예 씨는 물론이고 성환 선배의 크루도 실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아! 물론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우택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월간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달도 고생하셨습니다. 생각보다 진척이 빠른 걸 보니 소 실장님이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김서준의 말에 소영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앞으로도 고생해 주세요. 내년까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입니다.”
작게 고개를 숙인 소영신이 서류를 다시 갈무리했다.
“아!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SJ에 들어온 정보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보통 SJ에 들어오는 정보는 급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정기 보고 때 올라온다.
소영신이 이렇게 말하는 정보는 보고에 올라올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거나 정보라고 보기에 힘든 내용이다.
“이제 곧 대선이라 각 정당에서 경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시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요즘 거리는 대선 열풍이었다. 사람들이 좀 모인다는 곳에는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유세가 가득했다.
김서준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것까지 보지 못할 리는 없었다.
“근데 오늘 임우택 씨와 설아연 씨가 박 의원 사무실의 비서관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김서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둘이요? 박 의원 비서관들과?”
“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늦었나?”
임우택이 오늘 늦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개인 사정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임우택의 성격에 허튼 일로 지각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인지도 있는 가수가 행사를 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하긴 했지만 방송을 탄 탓에 인기는 있을 때입니다.”
소영신의 말은 일견 합당했다. 지금까지 임우택은 전파를 타며 꽤 인지도를 쌓은 상태다.
지금 행사를 뛰면 어지간한 가수들보다 효과가 좋을 것이다.
‘이상한데?’
언뜻 생각해 보면 합리적인 말이었지만 김서준의 감각은 계속 아니라고 말했다.
왠지 임우택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한번 조사해 주세요. 최대한 빠르게요.”
“알겠습니다.”
소영신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왜 연락이 없지?”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오늘 녹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핸드폰을 가운데 둔 채 박용두 의원실 비서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흠, 감히 박 의원님을 기다리게 하다니.”
“생각할 시간이 그래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봐야 딴따라 아닙니까.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부르면 재깍재깍 튀어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비서관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후에도 박용두 의원에게 대차게 까인 그들이었다.
딴따라라고 무시하는 가수, 아니 가수 지망생이 그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크흠.”
“제가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아주 거부하지 못하게 단단히 못을 박겠습니다. 어디 딴따라가 감히.”
회의가 끝나고 이를 박박 간 비서관이 임우택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얼마간의 신호음이 지나고 핸드폰에서 임우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우택 씨? 저 박용두 의원님 비서관입니다.”
-아, 네.
전화기 너머로 긴장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연락 주지 않으신 겁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는 흔하지 않습니다. 혹시 돈이 문제입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닙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요? 뭐가 문제입니까? 혹시 다른 후보 측에서도 접촉했습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리 만무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그냥 하기 싫어서 그럽니다.
“뭐요?”
임우택이 하기 싫다는 말을 하자 비서관의 미간이 크게 좁아졌다.
“하. 임우택 씨, 지금 잘 생각하고 말하는 거 맞아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제안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비서관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제안이 거절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것도 그냥 싫다는 이유로.
“임우택 씨. 잘 들어요. 우리 박 의원님이 국회에서 어느 상임위에 있는지 알아요?”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에 비서관이 으르렁거리듯 대답했다.
“방송 통신 분야 상임위원이십니다. 그 말이 뭔지 모를 테니 내가 설명해 줄게요. 잘 들어요.”
비서관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 의원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그 어떤 방송국에서도 임우택 씨를 써 주지 않을 겁니다. 행사는 물론이고요. 혹시 압니까? 이번에 박 의원님이 대통령에 당선이라도 된다면, 아니 대통령이 되지 않으시더라도 임우택 씨 정도는 대한민국에서 묻어 버릴 수 있어요. 아시겠습니까?”
놀리듯 이어지는 말에 수화기 너머 임우택은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임우택 씨, 알아듣겠어요? 박 의원님이 전화 한 통만 하면 임우택 씨가 슈퍼보이스 코리아에서 우승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어지는 침묵.
임우택의 반응이 시원찮자 비서관이 마지막으로 으르렁거리듯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임우택 씨만 잘못되는 줄 알면 착각입니다. 임우택 씨와 관련 있는 사람, 예를 들면 아까 같이 있으셨던 그 여성분도 가수 생활 조지는 거예요. 뭐 임우택 씨는 똑똑하신 분이니까 현명하게 판단하시리라 기대하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비서관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서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일 안 오면 후회하게 해 주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를 바라본 비서관이 다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은 박용두 의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하아.”
전화를 끊은 임우택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비서관의 말이 단순히 공갈이 아니라는 것은 임우택도 잘 알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눈 밖에 나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굳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잘은 모르지만 방송 쪽 상임위원이라는 것을 들으니 슈퍼보이스 코리아에도 직접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 망했네.”
망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냥 눈 딱 감고 유세를 도와주는 것은 어떠냐고 말할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국회의원과 친해진다면 임우택에게 나쁠 일은 없을 것이니까.
돈도 꽤 준다고 했다.
그래도 임우택은 싫었다.
일단 선거 유세를 따라다니게 되면 자연스레 슈퍼보이스 코리아 무대 연습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지난번이었으면 아마 비서관의 제안을 덥썩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무대에서 느낀 그 감정.
그 느낌은 임우택으로 하여금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해 줬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미친 듯 연습하여 관중들 앞에서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오늘의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아직도 손에 가득 남아 있는 그 느낌.
아직도 목청에 남아 있는 듯한 그 느낌.
아직도 전신에 남아 있는 듯한 관중들의 그 시선.
그 모든 것들이 임우택으로 하여금 비서관의 제안을 거절하게 했다.
“그래도 아연 씨가 피해 입는 것은 안 되는데.”
자신 때문에 설아연이 피해를 입는 것은 싫었다.
“내일 담판을 지어야겠다.”
결국 남은 것은 임우택이 직접 가서 담판을 짓는 것뿐이었다.
* * *
다음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임우택은 집을 나섰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고 찾아간 곳은 박용두 의원 선거 사무실.
사무실 앞에 선 임우택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무실은 붐볐다.
내부 경선 유세 중이라는 것이 실감이라도 나듯 춤을 추는 아르바이트부터 각종 화환과 플래카드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어, 임우택 씨.”
잠시 앞에 서 있자 비서관 하나가 임우택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임우택이 꾸벅 인사를 하자 비서관이 임우택의 팔을 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잘 생각했어요. 어차피 이럴게 될 거 왜 튕기고 그랬어요. 오늘 부터 바로 뛸 거니까 준비하세요.”
비서관은 임우택의 선택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세상이라는 것이 그랬으니까.
“저, 그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뭐요?”
오늘도 하기 싫다는 말을 듣자 비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임우택을 바라봤다.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불이익을 주시려면 주십시오. 다만 저에게만 불이익을 주십시오.”
“하아, 정말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비서관은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감히 딴따라가, 아니 딴따라가 되지도 못한 딴따라 지망생이. 국회의원실의 부탁을 거절한 대가를 말이다.
* * *
사무실을 나온 소영신은 바쁘게 움직였다.
대선을 준비하는 경선은 기업인들에게도 중요한 이벤트였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은 각자 미는 후보들에게 후원을 하며 기회를 노렸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정치인들의 무게를 재며 후원을 하곤 했다.
SJ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정치권의 도움이 없더라도 잘 헤쳐 나갈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정치권의 비호가 있어야 사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소영신도 각 후보들에게 정치 후원금을 넣었다.
“SJ에서 우리 후보님을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안 됩니까? 우리 후보님이…….”
“원하는 편의를 모두 봐주겠소. 우리 후보님을 지지하시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모두 소영신에게 지지를 바랐다.
하지만 소영신은 그 모든 요청을 거절했다.
그것이 SJ의 방침이기도 했고 소영신 역시 정치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각 사무실을 돌고 있을 때.
소영신의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임우택이었다.
잔뜩 풀이 죽은 채 임우택이 나온 곳은 소영신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박용두 의원 사무실? 그렇다면 임우택이 일하려는 곳이 저 곳인가? 그런데 왜 표정이 저래?”
지금 임우택의 표정은 일을 하려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여자 친구에게 실연을 당한 사람의 표정 혹은 세상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이야기가 잘 안 풀렸나.”
그렇지 않아도 김서준이 임우택에 관련된 것을 알아보라고 한 상황.
“뭐, 가 보면 알겠지.”
소영신이 박용두 의원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SJ의 소 실장님 아닙니까?”
박용두 의원 사무실에 도착하자 비서관들이 후다닥 뛰어 나왔다.
만약 버선을 신는 시대였다면 이들은 버선발로 뛰어 나왔을 것이 분명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