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영민당 중앙당 당사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당의 중진들과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는 무거운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너무 불리한 싸움입니다.”
“그래도 소속 의원을 쉽게 포기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아요.”
의견은 갈렸다.
당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원로 의원들은 박용두 의원에 대한 제명 카드를 써야 한다고 말했고 중진 의원들의 경우에는 박용두 의원을 안고 가야 한다고 했다.
언성이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의견 대립은 첨예했다.
“어쩔 수 없이 당의 이득을 위해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대표 박민수 의원이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의 이득이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중진 의원들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당이 무엇을 먹고 삽니까?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지지와 관심에서 당을 운영할 돈이 나오는 겁니다.”
“크흠. 정치에 돈을 타협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몇몇 중진 의원들의 말에 박민수 의원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원로 축에는 끼지 못하는 중진 의원이었기에 다른 중진들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박용두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으나 당내 중진 의원 중 하나다. 박용두 의원이 제명이 된다면 당내에서 그들의 파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천을 비롯해서 다양한 당내 의사결정 단계에서 각 계파 간 힘 싸움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치에 돈을 타협하면 안 되는 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소모성 논쟁을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급박합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박민수 의원의 말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당내 파워 게임도 좋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빼앗긴 정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이번에도 정권을 되찾지 못하면 영민당은 큰 시련에 빠질 것이다.
내부에서는 서로 총질을 할 것이고 지지층들에게는 실망과 불신을 심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당이 분열되고 결국 새롭게 헤쳐모여야 한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딴 파워 게임에 연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당연히 제명을 해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다툼이 아닙니다. 박용두 의원의 개인 비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SJ를 상대로 한 범법 행위들은 너무 치명적입니다.”
박민수 의원의 단호한 음성에 원로를 비롯한 중진 의원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지. 당이 우선이야.”
원로 의원들의 말에 중진 의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다른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대선.
대선 앞에서 영민당이 이런 추문에 휩싸이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어떻게든 최대한 이 이슈를 덮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이슈를 덮기 위해서는 박용두 의원을 어쩔 수 없이 탈당 처리해야 한다.
“SJ에게 연락 넣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단순히 탈당처리를 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번 일을 조용히.
그리고 완벽히.
덮기 위해서는 SJ와 대화가 필수적이었다.
* * *
“두 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기자회견이 끝나고 SJ 본사 사무실에서 김 기자와 양지수 그리고 김서준이 마주 보고 앉았다.
둘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양지수는 솔직히 마음이 시원했다.
침대에 누워서 계속 핸드폰을 볼 때마다 그녀를 괴롭혔던 감정들이 드디어 해소되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출근하면 어떻게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네?”
김 기자가 두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떻게든 동양일보로 돌아가서 수정 기사를 내겠다는 의지.
하지만 김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안전이라는 말에 김 기자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김서준의 말이 맞았다. 아직 그는 안전하지 않다.
SJ의 보호가 없으면 당장 어떻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 지금 쯤이면 윤 비서관이 사람을 풀어서 날 죽이려고 하겠지.’
김 기자가 아는 윤 비서관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럴까요?”
양지수가 김서준에게 물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였다.
물론 강력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고에 따르면 지금 윤 비서관의 행적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행적을 찾을 때까지는 조심해야합니다.”
김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동양일보로 돌아가 정정 기사는 물론이고 편집장은 물론 다른 기자들에게도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지이이잉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김서준의 전화가 요란한 진동과 함께 울렸다.
* * *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는군.”
성북동 자택 마당에서 잔가지를 치고 있던 김건환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회장님, 저 박민수 의원입니다.”
별로 얽히기 싫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또 찾아온 당 대표를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기에 김건환 회장이 전지가위를 내려놓고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 땀이 나곤 했다.
“무슨 일이오? 때가 때인데 영민당의 당수가 나를 찾아오는 모양새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은데.”
선거철이다.
선거철에 영민당의 당수가 삼신의 회장을 찾아오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해변의 아이스크림가게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정당을 아이스크림 포장마차라고 생각해 보자.
선거가 많이 남았을 때. 정당들은 각자 해변의 좌측과 우측 끝에서 지지자들을 모은다.
하지만 선거가 가까워질 수록 그들은 해변의 중앙으로 모여든다.
더 많은 유권자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영민당은 물론이고 각 정당들이 해변의 중앙으로 모이고 있는 시점이다.
이때 영민당의 당수가 김건환 회장을 만난다면 기껏 결집하고 있던 지지자들에게서 잡음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당을 책임진 당수로서 이런 일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지지자들이 알아도 어쩔 수 없다.
“앉으시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건환 회장과 마주 앉은 박민수 의원이 차분한 눈으로 김건환 회장의 모습을 살폈다.
땀을 흘리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속지 않았다.
김건환 회장은 무서운 사람이다.
촌부와 같은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선거가 임박했는데 당 대표가 이 늙은이는 왜 찾아왔을꼬?”
“찾아뵐 때가 되었지 않았겠습니까?”
“허허, 때는 무슨. 허튼 소리는 치워 두고 용건이나 말해 봄세.”
김건환 회장이 둘러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첫 말은 인사치례에 불과했다.
“이번에 박용두 의원과 서준 씨의 트러블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모를 리 없다.
김건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이미 자세한 내막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박민수 의원은 거짓말을 하거나 변명을 할 생각은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정원보다 정보에 밝다는 평이 있는 삼신이다.
그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신종 자살법이었다.
“저희 당에서도 그 사실을 파악하고 박용두 의원을 제명하기로 의결하였습니다. 이건 당에서 진행된 일이 아니라 박용두 의원의 개인적 일탈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왔습니다.”
“흐음.”
김건환 회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영민당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당적인 차원에서 삼신과 SJ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명이라. 힘든 결정을 하셨군.”
박민수 의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게 맞는 거지 않습니까?”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니 만족하라는 뜻.
하지만 김건환 회장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왜 나에게 와서 말하시는가? 헛걸음을 했네.”
박민수 의원은 김건환 회장의 본의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진심인가?’
김건환 회장이 이런 것으로 영민당 당수인 그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 봤을 때 김건환 회장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번 일에 김건환 회장은 개입하지 않았다.
김건환 회장 같은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그래도 회장님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예의이니 이 자리에 온 것이 헛걸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잠시 더 담소를 나눈 뒤.
박민수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이 늙은이의 시간이 뭐 그렇게 가치가 있다고.”
깊게 허리를 숙인 박민수 의원이 성북동 자택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간 뒷모습을 보며 김건환 회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놈아. 강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릇 기업인은 자중할 줄 알아야 한다.’
김서준이 이긴 것이다.
영민당의 중진이자 3선 의원인 박용두를 이긴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지 않았다.
삼신에서 도왔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번에는 삼신에서 일절 돕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김서준의 역량으로 오롯한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것.
솔직히 놀랄 만했다.
사업은 어려도 성공할 수 있다.
물론 힘들기는 하지만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이건 단순히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센스가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경험과 철두철미함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거 내가 서준이를 너무 과소평가했나 보군.”
삼신의 전략기획실에서 온 정보.
그 정보에 따르면 김서준은 완벽하게.
그것도 금력을 동원하지 않고.
박용두 의원을 침몰시켰다.
“허어.”
김건환 회장의 뜻 모를 한숨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 * *
“이것 참…….”
성북동 자택을 떠나는 차 안에서 박민수 의원이 넥타이를 풀었다.
“사실일까요?”
박민수 의원의 한숨에 수행원이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김서준이 능력이 좋다 한들 김건환 회장의 도움 없이 지금과 같은 일을 해냈다고는 말이다.
“김건환 회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숨기기는 해도 나를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야.”
“아…… 네.”
수행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박민수 의원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김서준에게 연락 넣어. 내가 한번 보자고 말이야. 박용두 그놈은 이 사실을 몰라야 해. 괜히 지랄할라.”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와아아아앙.
그들이 탄 차가 국도를 빠르게 내달렸다.
* * *
여론은 최악이었다.
물론 김서준에게 최악이 아니라 박용두 의원에게 최악이었다.
훌륭하게 소화해 낸 토론회가 무색하게 박용두 의원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다.
특히 사람을 시켜 김서준의 핸드폰을 절도하고 기자를 협박해서 기사를 내게 한 부분은 그의 윤리적인 부분에게 큰 스크래치를 냈다.
게다가 그와 동시에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는 자료가 언론사를 통해 대중에게 뿌려졌다.
박용두 의원이 지금까지 저지른 비리들.
박용두 자신이 수집하더라도 이것보다 잘 수집할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저지른 비리들이 적힌 정보는 하루 종일 뉴스에서 내려가지를 않았다.
[영민당의 긴급 총회에서 박용두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처리되었습니다.] [국회는 성명을 내고 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검찰에서 요청이 오면 박용두 의원에 대한 체포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김서준 이 개새끼! 나머지 새끼들은 다 어디 갔어?”
이제는 북적이지 않고 조용한 선거 사무실에서.
박용두 의원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의원님.”
박용두 의원이 고함을 지르고 있을 때.
직원 중 하나가 난감한 얼굴로 박용두 의원을 불렀다.
“왜?”
“김서준 씨가 찾아왔습니다.”
쿵!
김서준이라는 말에 박용두 의원이 벌떡 일어섰고 그 탓에 그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