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에단은 운명을 믿지 않았다.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가 개척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필연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결국 우연의 일치라고만 믿었다.
하지만 카페 건너편 길에서 에단 그를 보며 걸어오는 김서준을 보는 순간 에단은 운명론자가 되었다.
‘너와 나는 만날 운명이었구나. 겨울 햇살 사이를 걸어 바람으로 나타나는구나.’
에단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김서준의 모습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에단이 그대로 굳어 있을 때.
김서준이 카페에 도착했다.
“에단 셰틀러.”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단 셰틀러입니다.”
김서준이 부르자 에단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밀었고 김서준이 그 손을 맞잡았다.
“우와, 진짜였네. 이런 우연이 다 있네.”
그 모습을 본 제인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랐다.
공항에서 우연히 부딪친 사람이 에단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김서준이라니.
“저는 제인이에요.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그리고 어제 알아보지 못해 준 것도 고맙구요.”
“김서준입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김서준이 의자에 앉았다.
“에단이 왔다는 것은 루빈이나 드레이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절 만나러 온 것이겠군요.”
에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서준을 보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어찌나 한국에 가자고 조르던지 정말…….”
제인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기에 묻는 겁니다. 에단이 저를 보고 싶어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제 얼굴을 보고 싶어 한 것은 아닐 텐데.”
에단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게 차갑게 말할 것까지 있나?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찾아온 겁니다.”
에단의 눈에는 순수한 열망이 가득했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지 않는다.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전생에도 에단 셰틀러는 미디어든 사생활에서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이렇게 마주하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안드로이드사의 대표 두 분과 서준까지 볼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운명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에단은 입이 간질거렸다.
“서준, 혹시 제가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에단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김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지금은 전기차 회사를 운영하지 않으십니까?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직 매출도 나지 않고 상용제품 하나 나오지 않은 회사를 알아주시니 영광이네요.”
김서준이 알아주자 에단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래도 귀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전기차는 기존의 전기차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완충 시 400km이상 갈 수 있게 주행거리를 늘리고 자율 운행과 같은 기술들을…….”
“잠깐 서준!”
“네?”
에단이 눈을 좁히며 물었다.
“400km 이상을 주행해야 한다는 것은 지난번 투자설명회 때 말한 내용이라 그렇다 쳐도 자율 주행 이야기는 어디서도 한 적이 없는데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차.’
김서준이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일렉트로닉X가 자율 주행 기술을 발표하고 회자 주요 정책으로 밀기 시작한 것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2014년 이후의 일이었다.
지금은 아마 에단의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일 것이었다.
“자동차의 발전 방향을 생각해 봤을 때 귀사에서도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을까하여 넘겨짚었습니다.”
그 말에 에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말을 잊었다.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야.’
이 사람은 미디어에서만 번지르르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진짜다.
자율 주행 기술이라는 것은 SF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다.
하지만 전기차와 자율 주행을 연관시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전기차 그리고 자율 주행. 이 둘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와 자율 주행이 연관되는 이유는 명확했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이미 공간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새로운 장비가 들어가기에는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전기 자동차는 내연기관차의 40-50% 부품수와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자율 주행 기술의 핵심인 센서를 지탱하는 전기 에너지가 풍부하며 에너지 변화에 따른 손실이 내연기관에 비해 적다.
이미 공학적인 측면에서 포화되어 있고 에너지 손실이 큰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전기 자동차에 자율 주행 기술을 접목 시키는 것이 옳았다.
들으면 당연한 일 같지만 전기차와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생각이기도 했다.
일반인은 내연기관과 자율 주행을 연결시키지, 자율 주행을 위해 전기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정답이다.’
에단의 가슴이 떨려 왔다.
드디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았다.
게다가 아직 김서준은 젊었다. 젊다고 더 창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상대적으로 더 창의적일 확률은 높았다.
지금보다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단 이야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서준 씨, 저와 함께 사업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둘러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에단이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말에 놀란 것은 제인과 루빈 그리고 드레이크였다.
‘에단이?’
에단은 지금까지 누구에게 사업을 같이하자고 말한 역사가 없었다.
모두 자신보다 밑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이 세상을 혁신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던 에단이었다.
그런 성격이었기에 투자자들과도 종종 마찰을 빚는 것이 에단이었다.
그런 에단이 김서준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먼저 제안하다니.
제인은 믿을 수 없었다.
루빈과 드레이크 역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에단과 김서준을 번갈아 봤다.
그들 역시 에단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사업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김서준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만약 이번 일이 성사되면 정말 세상이 놀랄 것이다.
당연히 에단의 일렉트로닉X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을 테고 SJ 또한 반사이익을 볼 것이 분명했다.
에단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김서준을 바라봤다.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김서준을 알아봤으니 김서준 또한 자신을 알아봐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천재는 고독한 법이다. 그대도 고독하지 않은가?’
에단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서준은 그런 에단의 눈을 바라봤다. 김서준의 눈동자에는 고민이 없었다.
그랬기에 에단은 김서준이 그의 제안을 수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사업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헉.”
김서준의 거절에 제인이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에단의 제안을 거절해?’
지금까지 이런 역사가 없었다. 에단은 거절하는 쪽이었지 거절당하는 쪽이었던 적은 없었다.
놀라 있는 제인에 비해 에단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에단의 눈은 이글거렸다.
‘선전포고구나.’
일종의 선전포고다.
앞으로 이 사업은 승자 독식의 사업이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서준과 에단은 동업자가 아닌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누가 더 훌륭한 전기차를 만드는가.
누가 더 훌륭한 자율 주행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김서준과 에단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 들어갔다.
잠시간의 시선 교환이 있은 뒤.
에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오늘 만나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활활 타오르네요. 이런 열정은 대학 시절 이후 처음입니다.”
에단이 김서준에게 손을 내밀었고 김서준이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에단과 김서준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미래를 엿볼 수도 있었다.
이제부터 전쟁이었다.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에단과 김서준이 서로를 앞지르기 위한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 * *
“서준. 에단의 제안을 왜 거절했어요? 일렉트로닉X와 협업을 한다면 시간을 확실히 절약할 수도 있고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텐데요.”
루빈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김서준에게 물었다.
루빈은 김서준과 에단이 협업한다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 됩니다. 에단은 불꽃과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타협이라는 말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그와 함께라면 제 뜻을 펼칠 수 없습니다.”
전생에서의 에단이 그랬다.
에단은 여러 사람과 마찰을 빚었다. 자신을 믿고 투자해 준 투자자들과도 마찰을 빚었고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은 대부분 묵살했다.
물론 그랬기에 단기간에 회사를 크게 키워 낼 수 있었고 혁신에 성공했으나 그에 따른 문제점도 많았다.
김서준은 에단의 들러리가 될 생각이 없었다.
루빈의 말처럼 에단과 함께라면 단기간에 세계 최고의 전기차, 자율 주행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 것이다.
세상은 김서준보다 에단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김서준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루빈,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는 루빈과 드레이크가 있지 않습니까.”
장난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루빈과 드레이크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무조건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루빈과 드레이크는 김서준의 말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서준을 택하기를 잘했어.’
루빈과 드레이크의 마음이 편해졌다.
* * *
2007년 12월.
대한민국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뜨거운 열기가 감돌았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대선.
대한민국에서 대선은 큰 의미를 가진다.
군부독재를 거친 이후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찾아왔으나 아직 이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
그랬기에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는 말이 옳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랬기에 각 정당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대통령만 당선된다면 대한민국에 400개가 넘는 공공 기관과 공단 등 다양한 곳에 자신의 사람을 박아 넣을 수 있었고 이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손으로 주무를 수 있었기에.
[오늘부로 선거운동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 이후에 선거운동을 하면 선거법 위반으로…….]미디어의 관심도 모두 선거로 쏠렸다.
미국 땅에서 슬슬 심상치 않은 경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으나, 대선의 열풍에 빠진 대한민국은 그것을 인지하고 이겨 낼 여력이 없었다.
“소 실장님, 어떻습니까?”
“대표님 말씀대로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점점 징후가 보이고 있습니다. 몇 투자은행에서도 이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모기지 판매를 중단한 곳도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몇몇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채무인이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작은 투자은행들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아직은 작은 구멍이었다.
하지만 이 구멍이 점점 커지면.
단숨에 모든 둑이 허물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거대 투자사 리먼브라더스가 있었다.
“이제 태풍이 옵니다.”
“네. 준비 철저하게 하겠습니다.”
김서준과 소영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지금까지의 순간을.
지금부터를 위해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