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대표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네, 말하세요.”
석양이 내리쬐는 할리우드 거리의 카페에서 김서준과 소영신이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둔 채 앉아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노을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소영신이 목소리를 낮춘 채 김서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곧 경제 위기가 시작될 텐데, 그러면 엔디비아의 지분을 더 싸게 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영신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왜 지금 거래하신 겁니까?”
“어차피 경제 위기가 오면 안드로이드사 지분의 가격도 떨어집니다.”
“그래도 안드로이드는 이미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만큼 그 충격이 적지 않겠습니까?”
소영신의 말은 타당했다. 엔디비아에 비해 안드로이드는 경제 위기가 오더라도 그 피해가 적을 것은 분명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질문이 많아지셨네요.”
소영신이 빙긋 웃었다.
“저도 이제 좀 더 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타당하네요.”
이제 소영신은 SJ에서 미국을 담당하는 지사장이 될 것이었다.
김서준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소영신에게도 그 이유를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맞습니다. 경제 위기가 오면 엔디비아든 어디든 다 가치가 하락할 겁니다.”
“제 말이 맞네요.”
소영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엔디비아가 숙원 사업으로 생각하던 것을 우리가 이루어 줄 수 있다면?”
“네?”
소영신이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엔디비아는 모바일 프로세서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드로이드사에서는 엔디비아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지요.”
“아!”
소영신이 그제야 무릎을 탁 하고 내려쳤다.
소영신이 무릎을 치자 탁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커피 향이 주변으로 흩날렸다.
“타격이 오더라도 투자자들은 늘 움직입니다. 만약 엔디비아사와 안드로이드사가 합작을 한다고 하고 안드로이드사의 기업공개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소영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누가 들어도 대박이다.
기업간의 협업이 발표되고 그 두 개의 시너지가 기대되면 기업 가치는 껑충 뛰곤 한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비밀이 감추어져 있던 안드로이드사가 기업공개를 하다면?
물론 까 봐야 알겠지만, 역대 청약 증거금을 모두 갱신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문의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SJ는 언제 공개를 하느냐 안드로이드는 언제 공개를 하느냐.
이 소식이 흘러나가기만 하더라도 지금 지분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라면 경제 위기도 뚫고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럼 그것 또한 진행을 해야겠네요.”
소영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답을 준 게 아니라 일거리를 준 거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네요.”
“거짓말이신 거 다 압니다.”
“너무 티가 났나요?”
“네.”
소영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서준이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런 김서준의 모습을 보던 소영신이 툭하고 말을 던졌다
“옛날 기억이 나네요.”
“옛날요?”
“네. 대표님이 이은지 양과 함께 저 벤치에서 노래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요.”
기억이 났다.
사실 그렇게 먼 과거의 일도 아니지만,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에 아득히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미국에 왔을 때.
김서준과 이은지는 이곳에서 버스킹을 했었다.
“참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사실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요.”
“그때는 소 실장님이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참 힘들었지요.”
“제…… 제가 언제 영어를 못했습니까? 저 이래봬도 수능은 물론이고 토익도 잘합니다.”
“제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도 소영신은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이미 김서준의 수능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 알고 있었고 김서준의 영어 능력이야 원어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김서준의 말에 소영신이 커피 잔을 내려 놓으며 되물었다.
“뭘요? 뭘 기다려요?”
“이제 밑그림은 끝났습니다. 이제 시대가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그 말에 소영신이 울상을 지었다.
“대표님 일은 끝났을지 모르는데 제 일은 이제 시작인 것 같아서요.”
“큼.”
김서준이 짐짓 못 들은 척을 했다.
김서준 역시 바쁘게 살고 있었지만, 사실 실무자들보다 바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실무자들을 이끌고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소영신이었다.
이번 엔디비아사와의 지분 스왑과 판매에 관한 실무도 아직 잔뜩 남은 상태.
그것만 생각하면 골이 아픈 소영신이 김서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게 미안하신 눈빛입니다.”
“아닙니다.”
“그럼 안 미안하십니까? 미리 좀 알려 주셨다면 제가 실무진을 좀 더 데리고 왔을…….”
“어?”
소영신의 불평이 시작되려고 할 때.
김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 속습니다.”
“진짭니다.”
테라스를 훌쩍 뛰어넘은 김서준이 길 건너편 벤치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
그제야 소영신도 고개를 돌려 김서준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김서준이 향한 곳에는 크리스가 등에 기타를 멘 채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김서준이 크리스의 옆에 서자 크리스가 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준, 여긴 어쩐 일입니까?”
“업무차 들렀습니다. 오랜만이에요. 크리스.”
김서준이 크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서준의 손을 본 크리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 보면 서준은 영락없이 사업가네요. 손부터 내미니까요.”
김서준이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거두었다.
“네. 그렇죠. 마치 저기 있는 소 실장님 같이요.”
크리스가 카페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김서준의 고개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소영신이 크리스를 향해 양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 뮤지션의 모습을 보여 드리지요.”
김서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그 말에 크리스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서요?”
고개를 끄덕이는 김서준.
“네. 뭐 안 될 거 있나요? 뮤지션이 무대 위에서 스튜디오 안에서만 뮤지션인가요? 기타 좀 빌릴게요.”
크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기타를 내밀었다.
크리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크리스가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기타를 빌려주는 일은 지금껏 없었다.
아니, 빌려주기는커녕 누가 만지기라도 하면 기함을 하는 것이 크리스였다.
그랬기에 혹자는 크리스가 기타와 사귀는 것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 크리스가 기타를 김서준에게 쉽게 내준 것이다.
디링-.
기타를 받아 든 김서준이 가볍게 현을 튕겼다.
소리는 맑고 깨끗했고 따로 조율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음이 정확했다.
평소에 크리스가 얼마나 열심히 관리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더 조율할 것이 없었기에 김서준이 깊게 숨을 내쉰 뒤 스트링을 천천히 뜯었다.
황금빛 석양이 내리쬐는 할리우드 거리에서.
다리를 꼰 동양인이 기타를 치는 모습.
할리우드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으나, 황금빛 석양과 김서준의 수려한 외모.
그리고 귀를 사로잡는 음악의 조합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저기 크리스 아니야?”
“그러네. 크리스네.”
“근데 크리스가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공연은 뭐지?”
크리스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김서준의 실력도 놀라웠지만, 크리스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누군가의 공연을 보는 것은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원래 크리스는 자신의 공연이 아니면 신경도 안 쓰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미간을 좁히고 있는 것은 그것대로 구경거리였다.
천천히 현을 뜯던 김서준의 손이 점점 빨라지며 종래에는 리드미컬하게 현을 뜯고 튕겨 냈다.
그리고 리듬에 맞춰 바디까지 능숙하게 두드리는 모습에서 크리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기교가 좋기 때문이 아니다.
‘사업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사업이 바쁘다고 들었다. 그리고 바쁠 것이다.
미국에서 김서준은 몰라도 안드로이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 안드로이드의 최대 주주가 김서준의 SJ임을 잘 알고 있는 크리스다.
그랬기에 연습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김서준의 실력은 어떠한가.
과연 연습을 쉬었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주다.
노래 없이 반주만 하는 공연이었으나 굳이 여기서 노래는 필요 없었다.
연주만으로도 사람을 휘어잡는 공연.
크리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가락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디링-!
김서준의 연주가 끝나자 크리스가 김서준에게 다가갔다.
“내 기타.”
“여기 있어요.”
김서준이 씩 웃으면서 기타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연주를 한 터라 아직도 심장이 힘차게 요동쳤다.
스튜디오 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그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눈빛과 환호가 전해지는 무대다.
김서준의 이마에서 땀이 식어 갈 때.
크리스가 벤치에 앉아 김서준을 바라봤다.
“노래 부탁해요.”
탁 탁 탁 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크리스의 손이 기타의 바디를 두들겼다.
김서준에게 밀리지 않겠다.
뮤지션의 자존심을 보여 주겠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도입부.
연주는 김서준도 익히 아는 노래였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김서준이 처음으로 찍은 영화 의 메인 수록곡이었으니까.
오오오!
버스킹을 보고 있던 관객들이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미국에서도 꽤 흥행했던 터라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 음악을 아직도 즐겨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사람들은 점점 모여 들어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하며 발걸음을 멈출 정도였다.
“우리는 어둠을 밝히려는 작은 별들인가요.”
연주에 맞춰 김서준이 노래를 불렀다.
크리스의 연주에 김서준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순식간에 주변을 휘어잡았다.
“Who r we? Just speck of dust within the galaxy.”
그리고 이어지는 클라이막스.
마치 수십 수백 일을 같이 연습한 사람처럼.
김서준과 크리스는 완벽한 듀오였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둘을 향했고 카메라의 붉은 빛은 점멸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냈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김서준과 크리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었고 다른 말도 없었고 사전에 교감도 없었지만.
그 짧은 시선 교환에서 둘은 분명 서로가 웃음 짓고 있다고 느꼈다.
* * *
“서준, 이렇게 보니 반갑군.”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일이 바빠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뭐. 서준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서준을 본 적이 있어서.”
얀센의 말에 김서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얀센,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쓰러져 있을 때 찾아오셨다고요.”
얀센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준이 쓰러졌다는데 내가 당연히 가 봐야지. 크음, 서준. 서준은 과로로 쓰러지는 것이 어울리지 총상으로 쓰러지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얀센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김서준이 이렇게 털고 일어났기에 할 수 있는 농이었다.
“네. 다음부터는 과로로 쓰러지겠습니다.”
“하하하.”
김서준의 말에 얀센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 만나도 유쾌한 김서준이었다.
“아! 서준 그렇지 않아도 서준에게 연락을 해 보려고 했네. 제안할 게 있어서 말이야.”
“네? 저에게요?”
얀센의 말에 김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