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말씀해 보세요.”
순수하게 궁금했다.
얀센이 그에게 무엇을 제안할 지 궁금했다.
“아나 모르겠지만, 아니 알겠지만 지난번 서준이 참여한 영화가 미국을 포함해서 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꽤 히트를 했지.”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도 한참을 더 벌었다고 이인영이 귀에 딱지가 내려앉게 떠들었던 터라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김서준의 계좌에도 돈이 꽤 꽂혔다고 알고 있지만, 그 정도 돈은 김서준이 신경쓸 만한 액수의 돈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서준을 소개시켜 달라는 연락이 끊임없이 들어오지. 그런데 서준이 바쁜 것을 잘 아니 그들의 요청을 전할 수야 있나.”
얀센이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은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열망과 같은 미묘한 감정이 숨어있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내가 서준과 작업을 제대로 해 보지도 못했는데 딴 놈에게 먼저 기회를 주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제게 기회를 맡겨 두신 것 같이 말하십니다.”
“맡겨 두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안해 볼 정도는 되지.”
얀센의 말에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얀센에게 도움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이미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은지를 가르친 것도 얀센이었고 이인영과 데미얼을 도와 영화 촬영을 진행한 것도 얀센이었다.
얀센이 원한 것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얀센에게 받은 것이 많았으니 갚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아.’
그리고 김서준의 큰 그림에서 이번 얀센의 제안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지.’
영화와 같은 미디어는 이미지 메이킹에 아주 훌륭했다.
악역을 맡은 몇몇 배우들은 평생 그 이미지에 잡혀서 제대로 된 배우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좋은 이미지를 미디어에서 구축할 수 있다면 김서준의 큰 그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스케줄이 좀 빡빡하기는 했으나 이제 곧 닥쳐올 태풍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하는 것이 맞았다.
“하겠습니다.”
“어? 내 제안도 듣지 않고 하겠다는 것인가?”
김서준의 말에 오히려 얀센이 당황했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는데 김서준이 대뜸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감독님이 하자고 하면 당연히 해야지요.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김서준의 말에 얀센이 피식 웃었다.
이래서 김서준이 좋았다.
처음에는 그저 재능이 하늘을 찌르는 극동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김서준은 보면 볼수록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얀센이 기획하는 게 무엇인지요.”
얀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주도권을 빼앗긴 느낌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영화를 좀 해 볼까 하는데 말이야.”
얀센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함께 자신감이 가득했다.
“와, 감독님이 영화를 하신다니. 사람들이 다 놀라겠네요.”
“과찬이지.”
과찬이라고 말하는 말과 달리 얀센의 표정은 달랐다.
이미 미국에서 얀센은 톱 감독의 위치에 있었다.
그가 손을 대는 음향은 늘 유명 시상식에서 상을 받거나 노미네이트되었기에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들은 어떻게든 얀센에게 음악을 받으려고 안달이었다.
그것뿐 아니었다.
음악감독 외에도 감독적 능력도 뛰어난 얀센이었기에 꽤 많은 흥행작을 보유하고 있었다.
돈이 급한 얀센이 아니었기에 기계처럼 영화를 찍어 내지는 않았다.
그저 준비가 되고 흥미가 동하면 그때야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과거부터 즐기는 자를 이기기 힘들다고 하였다.
얀센은 그야말로 프로페셔널한 정신으로 이쪽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데미얼의 영화를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
얀센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난다거나 질투하는 그런 표정은 아니다.
다만 데미얼처럼 자신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투자나 시나리오 이런 것은 다 나왔나요?”
얀센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 이미 내가 영화를 만들겠다고 운을 띄우자마자 사방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몰려들었지.”
얀센이라면 그럴 수 있다.
만들기만 하면 아카데미 단골손님인 얀센인데 누가 투자를 하기 싫어할까?
“게다가 이제 서준의 참여가 확정된다는 소리가 나가면 아마 그 금액은 더더욱 커질 거야.”
일단 돈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돈을 투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면 그 한사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겠지만, 지금처럼 너도나도 투자를 하려고 하는 상황이면 투자자의 입김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애초에 돈 때문에 서준을 부른 것이 아니니 그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
“얀센인데요, 뭘. 제게 투자해 달라고 해도 했을 겁니다. 이만큼 남는 투자도 어디 있다고.”
“푸하하하.”
얀센이 폭소를 터뜨렸다.
김서준이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군.”
얀센이 김서준의 두 눈을 바라봤다.
* * *
얀센과의 해후를 풀고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숙소로 돌아오자 소영신이 뚱한 표정으로 김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많이 늦으셨습니다.”
“아! 오랜만에 얀센을 만나서요. 크리스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얀센을 만나 좀 길어졌습니다. 그나저나 먼저 주무시지 왜 깨어 있으십니까?”
“대표님이 안 오셨는데 어떻게 잡니까? 캐니언 박은 내일 넘어오기로 해서 대표님이 안전한지 안 한지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이럴 때는 제가 대표님을 지켜야 한단 말입니다.”
소영신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소영신과 함께 스튜디오로 가도 되었겠지만, 괜히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소영신이 피곤할까 봐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배려가 소영신에게는 걱정이 되었다.
“걱정해 줘서 고맙습니다.”
“크흠, 제가 당연히 해야 할 걱정인데요 뭐.”
김서준이 쉽게 인정하자 소영신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나누셨습니까? 대표님도 그렇고 얀센 감독님도 그렇고 이야기를 길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 영화나 한 편 할까 합니다.”
“영화요?”
소영신이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네. 영화요. 얀센 감독님이 제작하는 영화.”
“투자를 하신다고요? 그러면 또 관련 실무자를 불러야겠네요.”
소영신이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 이곳은 밤이지만 한국은 낮이니 연락을 하려면 지금 해야 했다.
“아! 투자가 아닙니다.”
“네? 투자가 아니라구요?”
“네, 아닙니다.”
번호를 터치하던 소영신이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러면요?”
“제가 주연급 조연으로 나옵니다.”
“네?”
소영신이 두 눈을 껌뻑였다.
주연이면 주연이지 주연급 조연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원래 얀센 감독님은 저를 주연으로 쓰려고 하셨습니다.”
소영신이 두 눈을 좁혔다.
“정말이십니까? 아직 연기에서 증명된 바 없는 대표님을 주연으로 쓰려고 하셨다고요?”
김서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제가 뭐 언제 연기를 해 봤어야죠.”
“흐음, 그래도 주연급 조연이라는 것도 좀 걱정되네요. 뭐 그래도 대표님께서 표정은 잘 숨기시니 연기도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장르는 뭐라고 합니까? 얀센 감독님이시라면 당연히 음악은 들어갈 것이고.”
김서준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음악 로맨스라고 하네요.”
로맨스라는 말에 소영신의 미간에 깊은 고랑이 생겨났다.
“로맨스? 대표님이 로맨스요? 우와…….”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이 로맨스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로맨스를 연기합니까?”
소영신이 눈을 좁히며 말했다.
“저도 로맨스를 한 적 있습니다.”
“대표님이요? 누구요? 으으음? 누구지? 총알인가? 허벅지를 관통한 불릿? 뜨거운 사랑이긴 했겠네요.”
김서준이 이를 꾹 깨물었다.
김서준도 사랑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그런 정략결혼을 위한 사전 단계였지만.
‘아니네.’
사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했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다시 살면서 얼굴 한 번, 생각 한 번 떠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랑은 분명 아니다.
“지금이라도 사랑 한 번 하고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지금요?”
소영신의 장난스러운 말에 김서준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이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을 연기합니까?”
그럴듯했다.
“아…… 그럴듯하네요. 그러면 소 실장님은 사랑을 해 보셨습니까?”
“네?”
김서준의 되물음에 소영신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또 대학 시절에는 그쪽으로 이름을 좀 날렸습니다.”
“오! 정말요?”
“네. 그럼요. 한국대학교에서 소영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김서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소 실장님이십니다.”
김서준이 놀란 표정을 짓자 소영신이 약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흠흠,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면 제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소 실장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네요.”
“제가 얼마든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소영신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물론 그 전에 이소연 실장님에게 확인 전화를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 아! 물론 소 실장님을 못 믿는 게 아닙니다. 그냥 소 실장님과 이 실장님이 학교 선후배이기도 하고 삼신 전략기획실에서도 선후배니 그냥 확인 전화를 한 통 하려는 겁니다.”
“아. 아니. 그게…….”
소영신이 말꼬리를 흐렸다.
“왜요, 하지 말까요?”
소영신의 얼굴에 갈등이 어렸다. 여기서 허풍선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소연에게 확인을 받게 할 것인가?
김서준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다.
“합니다? 합니다?”
소영신의 얼굴에 갈등이 어렸다.
여기서 접으면 김서준을 두고두고 놀려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면 이소연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다.
“하십쇼!”
마침내 결심을 내린 소영신이 눈을 딱 감고 소리쳤다.
“어? 진짜 합니다?”
이소연의 번호를 누른 김서준이 통화 버튼을 클릭했다.
뚜르르르르.
로밍 통화음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소연이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무슨 일이신지요?
“이소연 실장님.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제게요? 보통 그런 건 소 실장님이 알아서 하지 않으신가요?
“아, 소 실장님에게는 들을 수 없는 대답이라서요.”
-네. 말씀하세요, 대표님.
김서준이 소영신을 바라봤다. 소영신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된 눈빛으로 김서준의 전화기를 바라봤다.
“혹시 소 실장님이 학창 시절에 한국대학교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그런 사람이었나요?”
그 말에 소영신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물은 엎질러졌다.
-소 실장님요?
“네. 소 실장님이 그랬다고 하셔서요.”
-네. 유명하긴 했죠.
“네? 유명했어요?”
예상과 다른 대답에 김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소 실장님이 도서관에만 가면 후배들이 커피나 음료라도 주고 싶어서 아주 줄을 섰죠? 그걸 자랑해요? 우와, 대단하네. 해외 가서 그런 자랑도 하고 말이에요. 누구는 한 달째 집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대표님도? 아니, 좀 바꿔 주세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좀 물어봐야겠어요.
“아…… 아닙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소연의 감정이 격해지자 김서준이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하하…… 들으셨습니까?”
소영신의 표정은 복합적이었다.
김서준에게 증명하였다는 기쁨 반.
그리고 이소연에게 탈탈 털릴 걱정 반.
그래도 일단은 좋았다.
김서준의 당황 어린 표정을 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