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영화를 찍고 있다라…….”
사무실에 출근한 에단의 심기는 그다지 편치 않았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이 쓰였다.
김서준이 미국으로 건너온다고 했을 때. 에단은 드디어 김서준과의 전면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것을 기대했다.
그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과의 전면전이라니.
그랬기에 에단은 잔뜩 힘을 주고 투자금을 끌어모아 새로운 연구소를 출범시킬 요량이었다.
실제로 투자자들도 투자 의향을 보이고 있었고.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온 김서준은 며칠 보이지 않더니 이제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단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자신은 김서준을 상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는데 김서준은 영화나 찍고 있다.
에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럴 수 없는 것이다.
“아니면. 그대가 말한 꿈이라는 것. 미래라는 것은 입 발린 소리라는 것인가? 말하기 좋아하는 몽상가의 그저 그런 달콤한 말이었던 것인가?”
에단의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음에도 에단은 김서준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몽상가는.
결코 해낼 수 없는 무엇인가를 김서준은 해내고 있었다.
오히려 김서준 앞에서는 그가 몽상가에 가까워 보였다.
그 역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김서준이 이룬 것에 비하면 아주 작아 보였다.
“알 수 없어.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에단이 손톱을 깨물었다. 긴장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
“에단!”
어느새 손톱을 피가 날 정도로 물어뜯고 있을 때.
제인이 들어와 에단의 손을 붙잡았다.
“에단, 갑자기 왜 그래?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어.”
“왜? 왜 초조한데? 김서준 그 사람 때문이야?”
에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초조함을 준 상대가 없었다.
“이건 전쟁이야. 전쟁에서 상대편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면 질 수밖에 없어.”
“에단…….”
제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그가 인정한 상대가 생기면 이런 편집증과도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것이 에단이었다.
요 몇 년간 괜찮다 싶었는데 김서준이 미국으로 오고 나서는 쭉 이런 상태였다.
“알 수 없어.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는지 알 수 없다고.”
에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러기까지는 싫었는데.”
“에단?”
에단이 외투를 집은 뒤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제인이 에단의 팔을 붙잡았다.
“에단! 어디 가?”
“직접 눈으로 봐야겠어. 진짜 영화를 찍고 있는지 아니면 내게 거짓 정보를 보내고 있는지 말이야.”
“정말 그럴 거야?”
“어.”
제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단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럼 같이 가자.”
제인은 에단을 혼자 보낼 수 없었다. 에단이 혼자 김서준을 찾아갔다가는 무슨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자.”
“그래.”
에단과 제인이 사무실을 나섰다.
* * *
“준비해 주세요. 촬영 10분 전!”
늘 촬영진으로 붐비는 할리우드 촬영장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 붐비고 있었다.
투자받은 금액이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기에 얀센은 이때다 싶어 필요한 인력을 모조리 불렀다.
돈을 갈아 넣는다고 더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나았다.
“서준! 준비해.”
“네, 감독님.”
얀센은 공정했다.
김서준이 특별한 사람이기는 했으나 촬영에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주연들 씬을 모두 찍은 다음 조연의 씬이 촬영됐다.
김서준이 누구인지 아는 몇몇 스태프들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얀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서준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특별 대우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자신은 신인 배우였다.
김서준이 카메라 앞에 섰다. 수많은 시선이 김서준에게 향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섰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서준. 대사 잘 외웠지?”
“물론입니다, 감독님.”
“서준이라고 해도 잘 못하면 얄짤 없어.”
“물론입니다.”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얀센이 턱짓을 하자 슬레이트를 들고 있는 스태프가 앞으로 나왔다.
“카페 앞에서 안드류가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씬입니다. 씬번호 x12.”
탁!
슬레이트를 침과 동시에 스태프가 빠르게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 대의 카메라와 수많은 시선이 김서준의 전신에 박혀 들어왔다.
슬레이트 소리를 듣고 나자 긴장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직 이 자리에는 김서준이 아닌 안드류만 있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하던 그런 이미지였다.
김서준의 마음속에서 그가 작곡한 노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노래에 맞춰서 김서준이 천천히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오늘 나는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꿀꺽.
김서준의 연기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누가 이것을 첫 연기라고 생각할 것인가?
마치 노래 속의 주인공처럼, 김서준의 대사는 모두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벤치에 앉아 있던 김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영화에서 안드류가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씬이었다.
“헤어지기로 마음먹은 나는 카페 거리를 걷습니다.”
일반적으로 뮤지컬 영화는 촬영 이후 녹음을 해서 더빙으로 붙여 넣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환경이 좋지 않은 촬영장에서 동시녹음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김서준은 동시녹음을 선택했다.
그것이 더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그것이 더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김서준의 생각은 적중했다. 자그마한 마이크를 착용한 채 카페 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하는 김서준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실제로 이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얀센마저 마른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장악력.
가수에게는 무대 장악력이라는 것이 있었고 배우에게는 촬영장을 장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김서준은 이 촬영장을 무대로 만들고 있었다.
“대단해…….”
스태프들의 입은 아예 떡 벌어져 있었다.
김서준이 유명한 가수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가수의 재능과 배우의 재능은 다르다.
그런데 지금 김서준의 모습은 능숙한 배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게다가 단순히 연기뿐 아니라 노래를 하면서 하는 연기까지도 대단했다.
“정말 처음 맞아요?”
스태프들은 마이크에 잡소리가 들어갈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몰라, 나도.”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김서준을 따라 카메라 워킹을 하던 카메라감독도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고, 동시녹음을 총괄하는 음향감독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무대보다 더 나았다.
음향 자체는 무대가 더 깔끔할지 몰라도 지금 김서준의 노래와 현장 분위기가 주는 시너지는 무대를 아득히 뛰어넘고도 남을 정도였다.
“컷!”
그리고 김서준이 카페거리를 모두 지났을 때.
얀센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신인 배우가 단 한 번 만에 꽤 긴 뮤지컬 씬을 통과한 것이다.
그것도 허들이 높기로 유명한 얀센 감독에게서 말이다.
주연들도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는 걸로 유명한 얀센의 허들이었다.
“서준. 사업하지 말고 배우 해 볼 생각 있나?”
“네? 갑자기요?”
얀센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촬영에 이렇게 하는 배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내가 볼 때 서준은 배우로도 대성할 수 있는 사람이야.”
“과찬이십니다.”
김서준이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과찬이 아니야. 진짜 잘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준다면 고맙겠군.”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얀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좀 걱정하긴 했다.
김서준을 꽤 비중 있는 조연으로 두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배우를 교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업이나 노래와는 달리 연기는 색다른 재능을 요했다.
아무리 김서준이라고 하더라도 연기를 잘하지 못하면 과감하게 배우를 교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여 준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원래 전문적인 배우라도 되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물론 짧은 씬이었고 꽤 오래 준비했던 연기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다음 씬은 밤에나 있으니까. 서준은 어디 가서 좀 쉬게.”
“네, 알겠습니다.”
김서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래도 조연보다는 주연들의 스케줄을 우선하여 씬 촬영을 구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김서준이 강하게 주장한다면 주연들보다 먼저 씬을 몰아 촬영할 수 있겠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촬영장에는 촬영장의 법도가 있다.
지금 조연을 맞고 있지만 김서준은 아무래도 이쪽 업계의 사람이 아니다.
괜히 그들의 삶을 침범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지.’
게다가 이번 영화 촬영은 김서준이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조만간 시작될 대공황에서 SJ가 브랜드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이 정도 수고스러움은 당연히 견딜 수 있었다.
촬영장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 자리를 잡은 김서준이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촬영이 있는 날이기에 소영신도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 이렇게 있으니까 좋네.”
폭풍전야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지금과 같은 여유는 없을 것이다.
“서준.”
김서준이 잔에 담겨 있는 커피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김서준의 귀에 들려왔다.
“에단?”
에단이 분노에 찬 얼굴로 김서준의 앞에 서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김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에단을 바라봤다.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에단이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가 아는 에단은 영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화난 얼굴로 김서준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은 김서준 그에게 용무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에단은 당장이라도 김서준의 멱살을 잡을 듯 얼굴을 붉혔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이렇게 찾아왔으면 용건을 똑바로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용건을 똑바로 말하라고?”
“에단! 진정해!”
에단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이 굴자 제인이 에단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게 무엇이지? 나는 너와의 대결을 상상하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고작 한다는 것이 영화를 찍는 것인가? 너에게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승부욕.’
김서준은 에단이 보이는 분노가 승부욕에서 기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에단 셰틀러.
혁신에 미친 사업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이룰 때까지 포기를 하지 않는 불굴의 사업가.
그런 사업가가 김서준에게 열등감과 함께 승부욕을 느낀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김서준의 행동이 그를 자극했다.
에단은 자신이 그런 것처럼 김서준이 자신을 라이벌로 여기고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웃기는군요.”
“뭐? 웃겨?”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자 에단이 김서준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내가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내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여기는 건가요? 웃기는군요. 에단.”
빠드득.
김서준의 말이 끝나자 에단의 입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서둘러 달아나야 할 겁니다, 에단. 내가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 이 시간이 에단 그대가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김서준이 에단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허공에서 김서준과 에단의 눈빛이 얽혀 들어갔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법. 지금처럼 남의 행동에 일희일비하면 에단 그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김서준이 에단을 뒤에 둔 채 카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