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저분은…….”
니콜의 눈이 좁아졌다. 니콜도 익히 봐 온 사람이었다.
비록 김서준의 파트가 니콜과 겹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촬영장에서 몇 번 보기는 했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네요. 김서준입니다.”
“아, 네. 니콜입니다.”
김서준이 내민 손을 니콜이 잡았다.
니콜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왜 얀센이 자신에게 김서준을 소개시켜 준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의문이 들 만하지. 니콜, 지금 자네가 막히는 부분이 무엇인가?”
“아…… 음악과 현재 상황이 몰입이 되지 않아서 입니다…….”
얀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은 지금 그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 니콜 그대가 연주하는 노래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감독님이 만드신 거 아닙니까?”
얀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내가 디렉팅한 것도 있지만, 이번 영화에 사용된 많은 음악이 서준의 손에서 탄생했다네. 지금 자네가 부르고 있던 노래 역시 서준이 만든 것이고.”
“아아…….”
니콜이 놀란 표정으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얀센이 새로운 사람을 조연으로 쓴다기에 그저 그런 낙하산인 줄 알았다.
-얀센 감독님도 어쩔 수 없는 게 있겠지.
아무리 올곧은 감독이라도 영화에 낙하산 하나 없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투자를 받아야 나오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에, 투자사의 의견을 모두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했던 동양인 배우가 사실은 이 음악들은 만들었다니.
솔직히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노래가 엉망이었나?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놀라는 중이었다.
“제가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니콜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서준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간 동양인들과 일을 하며 배운 동양식 인사였다.
그 인사에 김서준 역시 고개를 숙였다.
“서준, 자네가 볼 때 지금 니콜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니콜 역시 눈을 빛내며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이 보통 낙하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성이 있었다.
“먼저 지금 상황은 잘 이해하고 있으십니다. 대본을 수없이 읽으신 모양입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니콜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씬을 위해서 대본을 수십, 수백 번을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그 안의 감정을 잡아낼 수 없었고, 그렇기에 더욱 읽고 또 읽었다.
“감정은 잘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럼 문제가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느낌이 아닌데…….”
니콜의 미간이 좁아졌다. 김서준이 맞다고 하니까 더욱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문제는 연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연주에 있습니다.”
“네? 연주요?”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니콜의 기타를 잡았다. 느낌이 살지 않는 이유는 니콜의 연주에 있었다.
OST는 음반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같은 음악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연주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니콜은 OST 악보 그대로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 음악과 연기에서 괴리가 오는 것이다.
“이건 니콜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네요.”
“아…… 그런가요?”
니콜의 얼굴에는 반신반의의 표정이 떠올랐다. 미세한 음악적 차이로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말을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타 없이 연기하실 수 있지요?”
“네, 물론입니다.”
니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기타가 없으면 연기가 더 쉽다. 그렇지 않아도 연주를 하느라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그럼 연주는 제가 할 테니, 니콜은 연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촬영 없이 가 보도록 하지. 일단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니까.”
얀센도 동의를 했고, 엑스트라들이 다시금 콘서트장 분위기를 내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탁, 탁, 탁, 탁.
김서준이 손가락으로 바디를 두들겨 박자를 맞춘 뒤 천천히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수없이 많이 연습을 했던 곡이라 굳이 악보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 씬의 분위기, 배역의 심정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변주를 할 예정이라 악보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김서준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던 니콜은 순간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 느낌이다.’
그래, 이 느낌이었다.
음악이 이래야 했다.
지금까지 그가 연주하던 음악과 미세하게 달랐지만, 그 미세함이 지금의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음악이 뒷받침되자 연기가 날개를 달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얀센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짚어 내지 못한 것을 김서준이 단박에 짚어 낸 것이고, 그 포인트가 맞아떨어졌다.
폭풍과도 같은 한 씬이 지나갔다.
연기를 마친 니콜이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
마침내 열린 니콜의 입에서는 약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겁니다.”
정신을 차린 니콜이 김서준과 얀센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았다.
조금 전 김서준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했을 때, 니콜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작중 주인공이 된 기분을 받았다.
물론 지금까지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동양에는 물아일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물아일체를 느낀 것 같았다.
“어떤가, 니콜?”
“솔직히 놀랍습니다. 감독님.”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지 니콜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럼 잠시 쉬도록 하지. 그 쉬는 동안 니콜 자네는 서준에게 연주를 배워 보도록 해.”
“물론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니콜이 공손한 말투로 김서준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물론입니다. 도울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스태프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김서준은 니콜과 무대에서 기타를 잡고 마주 보고 앉았다.
“악보는 따로 없습니까? 제가 아직 음악에 좀 약해서…….”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방금 전 연주는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한 연주입니다.”
니콜은 다시 한번 느꼈다.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지…….”
이건 보통 배우가 아니다.
배우들 중 뮤지션 출신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김서준처럼 즉흥적으로 음악을 고칠 정도의 실력자는 없었다.
“아. 사업가입니다.”
“사…… 사업가요?”
김서준이 머쓱하게 웃었다.
“본업이 사업가이긴 하지만 지금은 배우고, 또 언제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한 가지 직업만 가지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 그렇지요.”
니콜이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도 꽤 하는 거 같던데 가수이기도 하고 사업가이기도 한다고?’
평소 사업계에 관심이 없던 니콜이었다. 만약 니콜이 김서준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았다면 지금처럼 덤덤한 표정은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얀센은 니콜에게 사실을 말해 주고 놀란 모습을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괜히 연기에 방해가 될까 싶어 꾹 참았다.
“먼저 연주를 해 보세요.”
“네.”
니콜이 기타를 잡고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니콜의 연주 실력은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가수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으나 가수가 아님을 고려한다면 그다지 부족한 실력은 아니었다.
영화적 편집만 잘 들어간다면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은 니콜이 가수라고 생각할 정도다.
“멈출게요.”
한참 연주를 하던 니콜은 김서준이 손을 들자 연주를 멈추었다.
“여기에서부터 바뀔 겁니다. 이렇게 바뀌지 않는 것이 더 탄탄할지는 몰라도 지금 주인공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코드를 이렇게…….”
해당 파트를 김서준이 코드를 바꿔 연주를 하자 니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서준의 손놀림에는 부족했으나 천천히 따라 할 수는 있었다.
“훌륭해요.”
곧잘 배우는 니콜을 보며 김서준은 니콜의 연습량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부터는…….”
김서준이 니콜의 자세를 잡아 주며 원 포인트 레슨을 시작했다.
워낙 몰입한 탓에 주변에 스태프들이 모여드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와, 진짜 전문가 같다.”
“조연에게 배우는 주연은 또 새롭네요.”
언뜻 들으면 자존심이 상하는 말일 수도 있었으나 스태프들은 조롱의 말이 아니라 정말 놀람의 말을 뱉은 것이었다.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주연과 조연은 물론이고 스태프, 감독이 모두 하나로 뭉쳐야 한다.
지금 눈앞의 저 모습이야말로 영화 제작의 이상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 * *
“애신 씨!”
“대표님!”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김서준이 이애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애신이 꽤 꾸민 차림새로 김서준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꽤 꾸미고 오셨네요?”
“네?”
김서준의 말에 이애신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농담이에요. 평소에도 잘 꾸미고 다니셨잖아요.”
이애신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빨리 들어가지요. 시간이 별로 없네요.”
“네, 그래요.”
김서준과 이애신이 향한 곳은 LA에서 가장 큰 멀티플랙스 공간이었다. 들어가자 수많은 배너와 함께 ‘너와 함께라면 좋겠어.’라는 문구가 눈에 보였다.
“저 영화 시사회에 오는 것은 처음이에요.”
“저도 시사회는 처음이네요. 그것도 제가 출연한 영화는 더 처음이고요.”
일전에 영화 데미얼에도 출연했었지만, 그것은 대역으로 출연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일정이 바빠 시사회도 가지 못했으니 이번에 처음이 맞았다.
“서준, 어서 오세요!”
김서준과 이애신이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스태프들이 김서준을 알아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스태프들이 김서준을 알아보자 저 멀리에서 니콜이 김서준을 향해 후다닥 달려왔다.
“서준, 오셨습니까?”
“아! 니콜, 오랜만이에요.”
니콜의 얼굴에는 반가운 감정이 가득했다. 자신에게 지도를 한 뒤 김서준은 사업 일정 때문에 할리우드를 떠났었다.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는데 먼저 떠나셔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김서준과 니콜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이애신은 옆에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라고 있었다.
‘니콜이잖아?’
평소 영화를 즐겨 보던 이애신은 니콜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유명 배우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니콜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정도.
게다가 지금도 미남이지만 젊었을 적 니콜은 많은 여자들의 여심을 흔든 미남 배우였다.
“그런데 이 숙녀분은 누구신지?”
니콜의 시선이 이애신에게 닿았다.
니콜의 시선이 닿자 부끄러워진 이애신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
그게 아니면…….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김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니콜의 눈에는 어때 보여요?”
김서준의 질문에 니콜이 턱에 손을 올리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서준의 연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내 감을 잡았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특히 그 지하철 씬은 서준이 솔로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감정 연기예요. 그래서 저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니콜이 이애신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분은 서준의 여자 친구군요. 맞지요? 맞다고 해 주세요. 이번에도 틀리면 저는 정말…….”
여자 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이애신이 화들짝 놀랐다.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홍시처럼 물들었고, 손과 발은 다른 사람이 보기 무서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렸다.
긴장이 된 것이다.
“흐음! 니콜, 80점 드리겠습니다.”
“으응? 80점요? 그런 애매한 점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자 친구면 여자 친구지 80점은…….”
니콜이 뒤에서 뭐라뭐라 했지만 김서준은 이애신의 손을 잡고 시사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갈게요! 니콜은 인사 좀 더하셔야죠?”
손을 흔드는 김서준을 보며 니콜이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