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하하,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네. 사탕이라도 좀 주려고 했더니.”
가끔 주머니에 사탕이나 초콜릿을 채워 다니기는 했다.
일을 하다 보면 당이 떨어질 때가 있었고 그때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으면 머리가 돌아가곤 했으니까.
그런데 일을 하겠다고 외투를 벗어 두고 왔던 탓에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괜찮아요. 단 거 먹으면 이만 썩는걸요.”
그냥 단순한 거절 멘트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김서준은 쓴웃음이 지어졌다.
어린아이가 말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말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김서준이 머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지독히도 못사는 동네다.
가스와 전기가 냉난방의 주가 된 지금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동네.
심심찮게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으로 호송되는 동네.
이런 동네를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한다.
SJ 재단에 시간이 더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나 다른 것을 만든다고 해서 이 동네가 사라질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SJ가 돈을 쏟아부으면 이런 마을 하나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물고기만 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잠시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이런 마을들이 생겨날 뿐이다.
“어? 기타네?”
주변을 살피고 있던 김서준의 눈에 담벼락 의자옆에 기대져 있는 기타가 들어왔다.
“이거 누구 거야?”
“옆집 형 거요.”
김현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평소 김현에게 무서운 형임이 틀림 없었다.
“내가 만져 봐도 될까?”
“그래도 될걸요? 학교 갔거든요. 고등학생은 방학에도 학교를 가나 봐요.”
김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한번 볼까?”
김서준이 기타를 잡았다.
밖에 보관한 터라 기타의 스트링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볍게 스트링을 튕겨 보니 조율이 되지 않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아마 이 기타의 주인이라는 옆집 형은 기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기타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밖에 보관하지도 않을 것이고 늘 조율을 하며 연주를 했을 것이니까.
기타를 잡은 김서준이 동네 계단에 걸터앉았다.
김현은 눈을 빛내며 김서준이 무엇을 하나 의뭉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현아. 좋아하는 노래 있어? 좋아하는 가수나.”
“음…….”
김현이 잠시 머리를 골똘히 굴렸다.
하지만 이내 김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없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는 알아요. 그 뭐냐 티비에서 나왔던 프로그램인데……. 그 노래 누가누가 더 잘하나 대결하는 프로그램요.”
김서준이 신나서 되물었다.
“혹시 슈퍼보이스 코리아?”
“그건가? 아마 그걸 거예요. 거기에서 1등 하신 아저씨 노래를 엄마가 좋아해요.”
김서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김현이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김현은 그 1등한 사람이 그였음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또 그 사람 노래를 잘 알아.”
“그래요?”
“잘 들어 봐.”
김서준이 가볍게 현을 튕기며 조율해나갔다.
기타를 조율하는 모습이 신기한지 김현의 눈은 김서준의 손가락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흠흠.”
조율이 끝나자 김서준이 가볍게 목을 풀었다.
날씨가 추웠고 노동까지 했던 탓에 목이 바짝 말라 왔다.
마른 침으로 목을 적신 김서준이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마이크도 없고 방향 시설도 없는 동네였지만 김서준의 목소리가 기타의 선율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김현의 얼굴에도 꽤 깜짝 놀란 표정이 감돌았다.
잘했다.
음악이라는 것이 그렇다.
좋은 음악은 남녀노소 누가 들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김현은 김서준의 노래가 꽤 훌륭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어디서 자주 듣던 노래라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김서준의 손이 빠르게 현을 노닐 때마다 어린 김현의 심장 역시 박자를 맞추며 뛰었다.
“누가 아침부터…….”
아직은 이른 시간이고 이런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과 노인들이 많다.
그렇기에 지금 시간까지 잠을 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 사람들이 김서준의 노래를 듣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집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그들은 이내 밖으로 나와 김서준의 얼굴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달동네에서는 들을 수 없는 노래.
그 선율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흠흠. 좀 들을 만하네.”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온 아저씨.
전날에 싸웠는지 눈물에 퉁퉁 부운 눈을 가진 아줌마.
오랜 시간에 지쳐 버린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그들은 하나둘 집에서 나와 김서준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어? 이게 무슨 노래야?”
그리고 계단으로 연탄과 각종 물건을 지고 올라오던 노동자들도 뜨거운 땀을 소매로 닦아 내며 고개를 들어 김서준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노랫소리는 찬 바람을 타고 마치 눈처럼 동네 아래를 향해 계속 흘러 내려갔다.
“이 목소리는 대표님?”
꽤 떨어진 거리였지만 아래에서 물건을 체크하고 있던 이애신은 김서준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들려온 김서준의 목소리에 이애신이 들고 있던 서류판을 내려놓고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세요? 인터뷰 하시기로 했잖아요?”
이애신이 계단 위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번 SJ 재단의 봉사 활동을 취재하러 온 기자 하나도 이애신의 뒤를 따랐다.
기자의 본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뒤를 따라가면 뭐든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가요!”
이애신과 기자가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한참 계단을 올라가 동네의 꼭데기에 도착했을 때 이애신과 기자의 눈에 보인 것은 계단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인 사람들이었다.
골목 곳곳에 몸을 기댄 채 우수에 젖은 눈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꼬마아이와 김서준이 있었다.
“우와…….”
찰칵찰칵!
이애신을 따라온 기자가 연신 김서준의 모습을 찍었다.
“아! 사진만으로는 부족해!”
사진으로는 음악의 감동을 전할 수 없다.
기자가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기자가 찍는지 모르는지 김서준은 연신 노래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흐르고.
김서준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기타를 내려 놓았다.
“어땠니?”
“정말 좋았어요.”
김현의 얼굴에는 선망의 눈빛이 가득했다.
어린 김현의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열망이 가득했다.
아니 사실 김서준은 그 열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음악을 하고 싶다.’
아직 김현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
너무 어렸으니까.
그러나 이제 나이를 좀 먹다 보면 그때 그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음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서 삶을 이어 가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인지.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김서준은 김현에게 씨앗을 뿌렸을 뿐이고 이제 그 씨앗을 움트게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김현 그 자신이다.
“그럼 형은 이만 가 볼게.”
“네, 아저씨.”
“아저씨 아니고 형이야.”
김서준이 김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야 주변의 사람들이 김서준에게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휴식을 방해했네요.”
멋쩍은 미소를 지은 김서준이 기타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형!”
계단을 내려가려는 김서준을 김현이 크게 소리쳐 불렀다.
계단을 내려가던 김서준이 고개를 돌려 김현을 바라봤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김현에게 다가간 김서준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이걸 가지고 있어. 그리고 네가 꿈이 생겼을 때 형을 찾아와.”
“네, 알겠어요.”
명함을 받아 든 김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것이 보물이라도 되는 것마냥 품에 꼭 앉았다.
피식 웃은 김서준이 천천히 계단을 따라 내렸다.
그 뒷모습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뒤따랐다.
꼬마 김현은 지금은 모를 것이다.
김서준의 명함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금까지 김서준의 명함을 받은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말이다.
“왜 그러셨어요?”
김서준이 계단을 내려갈 때 이애신이 김서준의 옆으로 붙었다.
“왜요? 왜 일 안 하고 노래나 부르고 있었냐구요?”
“아니요. 왜 꼬마아이에게 명함을 줬는지 궁금해서요.”
궁금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김서준의 명함은 큰 가치가 있다고 들었다.
단순히 사업 파트너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사업 파트너들은 김서준의 명함이 아닌 소영신의 명함을 받곤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고, 제가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이것이 전부입니다.”
김서준이 연탄과 생필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런 것으로는 저들의 삶을 잠시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고단함에서는 구하지 못한다.
“하지만 저 명함은 언젠가 저 아이를 여기에서 건져줄 동아줄이 될 겁니다. 저 아이가 가진 꿈을 이루고 싶어졌을 때 이룰 수 있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서준의 말을 들은 이애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재단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가난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단순히 육체적 질병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무기력을 몸에 깃들게 하고 패배감을 정신에 박아 넣는다.
꿈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기력과 패배감은 그 꿈을 짓뭉갠다.
김서준은 꼬마의 미래에 동아줄을 하나 던져 놓은 것이다.
스스로 의지가 있고 그때까지 명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 명함은 동아줄이 되어 그의 인생을 건져 올릴 것이다.
“물론 음악을 한다고 해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겠지요. 많은 뮤지션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김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말을 끝날 때 쯤 김서준과 이애신은 달동네를 빠져나왔다.
동네 아래에는 더 이상 물건이 쌓여 있지 않았다.
인부들이 일을 빨리 끝내고 퇴근할 생각인지 서둘러 짐을 올린 탓이었다.
“역시 사람을 쓰니까 좋네요. 괜히 정치인들이 와서 사진 찍고 하는 것보다 훨씬 빨라요.”
봉사 활동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전문적으로 육체를 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존재했다.
“네. 지금 전국적으로 재단에서 고용된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예요.”
이애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서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위로를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 * *
“송 기자, 인터뷰 따왔어?”
“편집장님! 제가 더 좋은 걸 따왔습니다.”
“뭐? 내가 인터뷰 따오랬지 다른 걸 따오랬어?”
바쁘게 움직이는 사무실에서 편집장이 인상을 쓰며 송 기자를 바라봤다.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송 기자라 어려운 곳에는 보내지 않고 SJ 재단 관련 인터뷰나 하나 따오라고 보내 놨더니 인터뷰는 안 따오고 다른 것을 따왔단다.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한번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후. 줘 봐.”
편집장이 손을 내밀자 송 기자가 USB 하나를 내밀었다.
USB를 컴퓨터에 꽂고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한 편집장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수, 수고했어. 아니 잘했어! 역시 믿고 있었다니까!”
편집장의 들뜬 음성이 늦은 밤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