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3
음악천재 재벌3세 3화
3화
“유연아 같이 가!”
“혜림아.”
따스한 햇살이 복도에 융단처럼 깔린 점심시간.
송유연과 이혜림은 밴드부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구가 뭐가 재미있다고 점심시간마다 저렇게 뛰는지 모르겠네.”
이혜림이 창밖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을 보며 말했고 그 말에 송유연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저런 축구 말고 밴드부에 들어와야지! 고교생활의 로망은 밴드 아니겠어?”
이혜림이 볼멘소리를 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땀 흘리며 뛰는 것보다는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을 듣는 것이 더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엠알 틀어놓고 왔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밴드부실로 걸어가던 송유연과 이혜림의 귀에 음악이 들렸다.
“폴 매카트니의 Every night이네.”
평소 폴 매카트니의 음악을 즐겨 듣던 이혜림이었기에 금세 귀에 들리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밥 먹으러 갈 때는 끄고 다니라니까.”
밴드부원 중 누군가 켜 놓고 갔다고 생각한 송유연과 이혜림.
“어?”
그리고 인상을 쓴 채 밴드부실로 들어가려던 그녀들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엠알이라고 생각했던 기타연주.
그녀들의 생각과 다르게 엠알이 아니었다.
“라이브였어?”
처음 보는 학생이 기타를 치고 있었다.
폴 매카트니의 Every night은 변칙적인 코드 구성과 옥타브를 넘나드는 기타 리프 때문에 학생이 제대로 연주하기에는 힘든 곡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학생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엠알로 오해할 정도로 완벽하게.
문고리에 손을 댄 채 굳어 있다는 사실을 송유연과 이혜림 둘 다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귓가에 울리는 기타의 선율에 온몸을 맡겼다.
선율에 몸이 젖어갈수록 심장 역시 빨리 뛰었다.
그렇게 마지막 코드가 끝나고 연주가 멈춘 이후에도 송유연과 이혜림은 연주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
연주가 멈춘 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송유연과 이혜림이 정신을 차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의 표정이 말하는 바는 같았다.
*
황홀했다.
기타를 내려놓은 김서준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황홀한 여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기타를 이렇게 잘 쳤던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다. 그랬기에 전생에서는 없는 시간도 쪼개가며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기도 했다.
한때 음악을 하고 싶었긴 했다. 하지만 재벌가의 삶을 선택한 이후 음악은 완전히 포기했고 당연하게도 다룰 수 있는 악기는 기타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그냥 흔하디흔한 일반인 정도의 실력이었지 절대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한 번 더?’
착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한번 기타를 치려는 순간.
끼익
교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앗!”
문이 열리며 송유연과 이혜림의 모습이 보였다.
김서준과 둘의 눈이 마주쳤고 김서준은 기타를 내려놓았다.
“미안합니다. 문이 열려 있길래 호기심이 동해 들어왔습니다.”
교복 가슴팍에 달린 명찰은 학년을 알려주기 때문에 김서준은 송유연과 이혜림이 그보다 선배임을 알 수 있었다.
이혜림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야. 닳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김서준이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밴드부실을 빠져나갔다.
김서준이 그녀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송유연과 이혜림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저기!”
“예?”
그렇게 김서준이 열 걸음 정도 복도를 걸어갔을 때.
송유연이 급히 밴드부실로 나와 김서준을 불렀다.
“혹시 활동하는 부 있어?”
송유연의 음성이 떨려왔다.
*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 안.
평소였으면 일반 버스를 탔겠지만, 그래도 처음 할아버지를 만나는데 옷 구겨지면 안 된다고 김태군은 고집부려 고속버스 티켓을 끊어주었다.
기껏해야 만 얼마 하는 푯값이었지만, 그 만원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김서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가난이 싫었지.’
약 세 시간 정도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 어느덧 버스는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많이 바뀌었네.”
사람이 북적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전생과 비교하면 낙후된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몇 년 사이에 노선들이 통합되고 내부 리모델링 후 백화점도 들어오게 되어 더욱 커지겠지만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었다.
“김서준 학생?”
“예. 맞습니다.”
대합실에서 나오자 김회장의 비서 박인우가 날 찾아왔다.
박인우를 보자 살짝 긴장감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박인우를 그저 삼신그룹 회장 김건환의 비서로 알고 있었다.
맞으면서도 틀렸다.
박인우는 김건환의 비서이자 그와 속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될 일들도 박인우의 손에서 처리되곤 했다.
단순히 비서라고 무시하면 안 되는 삼신가의 복심 중 복심이었다.
“회장님이 기다리시네.”
그때와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김서준의 마음가짐 정도.
삼신그룹의 본가는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성북동에 위치했다.
해방 이후 삼신그룹은 사업의 번창을 위해 정권과의 유착 필요성을 느끼고 성북동에서 쭉 거주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더 지나게 되어 김건환 회장이 암으로 별세한 이후에는 한남동으로 이전하지만, 그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었다.
성북동 저택은 김건환 회장이 죽을 때까지 늘 똑같던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저택에 도착하자 박비서가 차량의 문을 열어주었다.
촤르르르
정원에 있는 작은 폭포의 물소리가 김서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저런 게 있었던가?’
쓴웃음이 지어졌다. 경주마처럼 달려야 했던 전생에서는 성북동 자택 연못에 폭포가 있던 것도 보지 못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삶이었다.
“김서준 학생.”
“예.”
“들어가시게.”
저택은 조용했다.
이 넓은 집을 김건환 회장 내외만 사용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당연하였다.
“왔느냐.”
중후한 목소리가 김서준의 귀에 들려왔다.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라···.”
김건환 회장의 표정은 무표정했고 언뜻 보기에는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서준은 그 표정이 약간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김회장이 화난 줄 알고 잔뜩 쫄아 있었다.
“차를 마시겠느냐?”
“보이차로 하겠습니다.”
“하하. 네가 차를 좀 아는구나.”
보이차라는 말에 김건환 회장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김건환은 특히 대작하는 사람이 보이차를 마시겠다고 하면 더욱 좋아하곤 했다.
“태군이에게 연락은 받았다.”
주방 이모가 차를 가지고 나오자 김건환이 입을 뗐다.
조금 전 호탕하게 웃은 것이 마치 착각인 것처럼 김건환의 시선이 김서준의 전신을 쓸었다.
“네 아비는 네가 서울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더구나.”
“그렇습니까?”
“나는 네 아비를 원망하지 않았다. 재벌가의 서자라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천천히 말하는 김건환의 음성에 약간의 회한이 실렸다.
의외였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김건환 회장이 회한이라니.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지금 이 말은 전생에는 듣지 못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그때는 김건환 회장의 기세에 눌려서 ‘네.’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었다.
“그래서 지우고 살고자 했는데 어찌 하늘이 맺어준 천륜을 쉽게 지울 수 있겠느냐?”
말은 저렇게 하지만 김건환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가족이든 뭐든 다 내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네 아비 태군이의 말을 들어주고자 한다.”
탁
찻잔을 내려놓는 김건환. 그의 눈이 다시 한번 김서준에게 향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김건환 회장의 눈빛이 닿자 마치 얼음 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같은 사람이 분명할 진데 어찌 이런 느낌이 드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씀과 뜻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압박감을 이겨내며 김서준의 시선이 김건환의 시선과 맞닿았다.
허공에서 시선과 시선이 마주쳤고 서로의 호흡이 느껴졌다.
*
“허허···.”
쇼파에 몸을 기댄 채 김건환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박비서.”
“예. 회장님.”
“서준이는 잘 갔는가?”
“예. 양기사에게 전주까지 모시라 했습니다만 기어코 버스를 타고 가시겠다고 하여 터미널까지 안내했다고 합니다.”
“버스라. 푸하하.”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웃음. 김건환은 오랜만에 나오는 웃음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는가?”
“예. 웃는 것이 몸에 좋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웃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암. 웃어야지. 웃어야 하지 말고.”
식어버린 보이차를 들어 목을 축인 김건환이 다시 물었다.
“박비서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김서준군 말씀입니까?”
“그래. 서준이 말이야.”
사람 보는 눈이라면 박인우도 만만찮았다.
그랬기에 김건환은 사람을 만나고 오면 꼭 박인우에게 그 사람에 관해 묻고는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훌륭한 청년인 것 같았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라···.”
김건환 역시 박인우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삼신그룹이 회장인 자신의 앞에서 감히 ‘싫다.’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김서준이 처음이었다.
겁에 먹어 싫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김서준은 살짝 긴장은 했을지언정 겁을 먹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싫다.’라는 말은 계산되고 의도된 말이라는 것.
그것을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것인가?”
“확실히 막내 도련님도 김서준군과 같은 총기가 있었습니다.”
“그랬지···. 그랬어···.”
다시 식어버린 보이차로 목을 축인 김건환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당분간 서준이를 잘 지켜보도록 해. 혹시 서준이에게 손을 대려는 놈이 있으면 당장 내게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 그리고 조만간 태군이하고 며느리도 올라오라고 해.”
“막내 도련님을 말씀이십니까?”
박인우가 살짝 놀라 김건환을 바라보았다.
김태군이 집을 뛰쳐나간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를 부른 적 없는 김건환이었기에 평소 놀라지 않는 박인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보험은 들어놔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나이를 먹으니 마음이 약해지는 건지 태군이도 보고 싶고 말이야.”
말은 저렇게 했지만, 박인우는 모든 것이 김서준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퍽이나 손자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박인우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
날은 더욱 따듯해져 학교에도 벚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춘곤증이 찾아왔는지 점심을 먹고 난 후 학생들은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청했다.
“야. 지독하다. 지독해.”
다른 풍경이 있다면 맨 뒷자리에 앉은 김서준이었다.
반의 학우들 모두 김서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날이 좋든 좋지 않든 김서준은 손에서 교과서를 놓지 않았다.
“일학년 때에는 좀 놀아도 되지 않냐?”
친구들의 말에 김서준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김서준은 이렇게 빡빡하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로 돌아오며 머리가 좋아진 덕분인지 전생에 공부했던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랬기에 그가 이렇게 공부를 하는 이유는 별 게 없었다.
그냥 심심했고.
공부가 재미있어서였다.
읽는데로 머리에 다 틀어 박히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게다가 돌아온 이 시대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딴짓할 것도 없었다.
‘취미라도 가져둘걸.’
속으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경주마처럼 달려온 전생이었기에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덜컹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이삼학년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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