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47
음악천재 재벌3세 47화
음악천재 재벌3세 47화
얀센의 얼굴이 미묘하게 떨렸다.
천재와 천재는 자석처럼 서로 끌리는 법이다.
데미얼이 얀센 자신과 크리스를 찾아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김서준과 데미얼 둘이 만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그것도 자연스럽게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는데 데미얼이 그 음악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다.”
데미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없는 에스프레소와 황금같이 아름답던 석양 사이로 제 영감을 자극하는 연주가 들려왔습니다. 영화감독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던 모습이지요.”
데미얼의 눈은 아직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얀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데미얼. 욕심내지 말게. 서준은 내가 찍었어.”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매우 슬퍼하고 있습니다. 얀센.”
데미얼은 진심으로 슬픈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데미얼이 얀센과 어느 정도 친하지 않았다면 김서준의 손을 잡고 도망갔을지도 몰랐다.
그 모습에 얀센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데미얼을 안 지는 얼마 안 되었으나 데미얼처럼 예의 바른 천재는 또 몇 없었다.
호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디 그 영감이라는 것 좀 들어보지.”
얀센이 커피를 뽑아 쇼파에 털썩 앉았다.
“자네들도 앉게. 한번 이야기나 들어보지.”
자신의 영감을 털어놓을 생각에 신이 난 데미얼도 커피를 한잔 들고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앉은 김서준과 이은지 그리고 크리스.
별 관심 없는 척은 했지만, 크리스의 눈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데미얼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처럼 보였다.
“먼저 주인공은 두 명이에요. 남자는 뉴욕의 바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여자친구는 작곡가예요.”
흥이 나 있는 데미얼의 목소리가 얀센의 스튜디오에 울렸다.
*
얀센의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얀센에게 지도를 받았고 저녁에는 홀로 연습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김서준이 음악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크리스. 저 모습을 보고도 천재가 없다고 생각하나?”
“그놈의 천재 타령 이제 질리지도 않으십니까?”
크리스의 대꾸에 얀센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 자네 눈은 거짓말을 하고 있군.”
스스로 천재이면서 천재의 존재를 부정하는 크리스였지만, 지금 김서준을 눈앞에 두고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넓은 법이니까요. 천재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할 법 없지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크리스를 보며 얀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쯤 자신이 천재인 것을 인정하련지.’
하지만 얀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크리스의 저런 마음이 그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
그날 이후로 데미얼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얀센의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드르르륵
“아니. 이게 다 무엇인가?”
그리고 마침내 데미얼은 짐이 터질 듯이 들어 있는 캐리어를 끌고 왔다.
“감독님.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아무래도 숙소에서 여기까지는 너무 멀어서요. 그리고 여기 커피가 제일 맛있네요. 할리우드 커피는 영 입에 안 맞네요.”
뻔뻔한 데미얼의 말에 얀센과 크리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밥값은 할 테니 너무 타박하지는 마십쇼.”
말을 하면서도 데미얼의 눈은 김서준을 향해 있었다.
부스에 들어가 있었던 터라 아직 김서준은 밖의 상황을 모르던 차였다.
“데미얼. 설마 자네 서준과 영화를 같이 하려고 하는 건가?”
데미얼이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듯 되물었다.
“네. 당연한데요. 그래도 아예 뺏지는 않겠습니다. 감독님도 서준과 영화를 하셔도 좋습니다.”
이제 다시 황당한 것은 얀센이었다.
“자네. 돈은 있나? 투자사는 있고? 얼마 전에 자네가 처음 썼다는 대본이 엎어진 이유가 돈이라고 들었건만.”
얀센의 말에 정곡을 찔린 데미얼이 머리를 긁었다.
“돈이야 어떻게 되겠지요. 작품만 좋다면야.”
이번에도 얀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왜 천재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똑같은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서준을 빼놓고는 모두 똑같아.’
얀센의 눈에는 오직 김서준만 다르게 보였다.
데미얼이 쇼파에 앉아 부스에 앉아서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김서준을 바라봤다.
“감독님. 생각해보세요. 저런 연주를 우리만 듣는 것은 죄악이라고요. 영화로 만들어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해요.”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겠나?”
짙은 커피 향이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왜요? 서준에게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요? 서준도 돈이 부족하나?”
뮤지션이 음악을 포기하는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이유였다.
음악도 결국 입에 밥이 들어가야 할 수 있다.
음표를 먹는다고 배가 부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얀센이 순간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돈이 없다라.’
속으로 웃음이 났다. 김서준이 돈이 없다면 과연 그 나이에 누가 돈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직접 물어보게. 하지만 난 말했네. 서준은 영화를 할 상황이 아닐 수도 있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또 설득에는 도가 트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감독님도 절 스튜디오에서 머물게 해주셨잖아요.”
“뭐? 내가?”
얀센이 버럭 소리를 지르기 전에 이미 데미얼은 쇼파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제가 꼭 성공해서 아카데미에서 인터뷰하면 얀센 감독님의 덕을 칭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카데미는 이미 따놓은 것처럼 말하자 얀센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놈.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느껴봐라.’
얀센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데미얼은 김서준이 부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땀에 젖은 김서준이 밖으로 나왔을 때.
데미얼이 수건을 한 장 건넸다.
“아!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을. 그나저나 서준. 어제 내가 한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요?”
땀을 닦던 김서준이 데미얼을 바라봤다.
“어제 그 영화 말인가요?”
“네. 어때요?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아요.”
데미얼의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
‘어서 같이하겠다고 승낙해!’
라고 눈동자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장은 좀 힘들 것 같네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데미얼이 무얼 원하든 김서준은 당장은 데미얼과 무엇을 하기는 힘들었다.
아직 미국에서 할 일도 남아있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서준···.”
데미얼이 얼굴을 굳히며 한 손을 김서준의 어깨에 올렸다.
“비록 나도 가난하지만,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 만드는데 돈 많이 드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각본이 좋고 음악이 좋고 배우가 좋으면 투자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요.”
데미얼은 진지했다.
돈 때문에 김서준이 뮤지션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까웠다.
“무슨 말씀이신지?”
“얀센 감독님한테 다 들었어요. 서준.”
그제야 김서준은 데미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얀센이 다 말해주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데미얼과 영화를 당장 하지 못하는 것은 일이 바빠서였다.
하지만 데미얼은 그게 김서준 자신이 돈에 매여서 못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데미얼. 데미얼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서준.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나도 가난해서 이렇게 감독님의 스튜디오에 머물려고 왔거든요.”
데미얼이 손으로 쇼파를 가리켰다.
쇼파에는 짐으로 가득 찬 데미얼의 캐리어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데미얼 그게 아니에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서준. 가난한 건 죄가 아니에요.”
김서준과 데미얼이 이상한 논쟁을 하고 있을 때.
스튜디오의 문이 열리면서 소영신이 들어왔다.
“대표님.”
“오셨어요?”
김서준이 먼저 LA로 왔고 소영신은 김서준이 지시한 일을 마치고 이제야 복귀했다.
“오! 마이 갓. 좀비 영화 속 한 장면 같네요.”
다크서클이 과장 조금 보태 턱까지 내려온 소영신을 본 데미얼이 화들짝 놀랐다.
“누구십니까? 좀비라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그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접촉할 수 있었나요?”
소영신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았습니다. 삼신의 인맥을 활용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삼신도 에너지 분야로는 접점이 별로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EOG라는 업체의 명함은 구했으니 조심스레 연락을 해보면 어떨지요?”
“일단 제가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김서준과 소영신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미얼은 눈알을 대룩대룩 굴릴 뿐이었다.
한국어로 대화하는 터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EOG?”
그러던 도중 데미얼의 귀에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그것을 놓칠 리 없는 데미얼이었다.
“혹시 미국 남부의 EOG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모습이 무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서준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데미얼이 EOG를 알고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네. 맞습니다. 에너지를 취급하는 회사입니다.”
“제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데미얼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었다.
“일단 앉아 보십시오.”
데미얼이 김서준과 소영신을 쇼파에 앉혔다.
“제가 영화를 찍기 위해 여러 투자자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들어서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전공한 데미얼은 성인이 되자마자 미국으로 넘어와 자신이 영화에 투자해 줄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그때 그의 영화를 좋아해 주며 투자를 약속했던 곳이 EOG였다.
“EOG의 대표님이 제게 백만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사실 영화라는 게 그렇잖습니까. 백만 달러로는 어림도 없지요. 결국, 영화 제작은 물 건너갔지요. 각설하고 아마 그 EOG가 제가 생각하는 EOG가 맞는다면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미얼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번에 잘만 풀리면 서준을 다시 꼬셔볼 수 있다.’
데미얼의 생각은 간단했다. 가난(?)한 서준이 EOG의 대표를 왜 찾는지는 몰랐지만, 자신이 도와준다면 다시 한번 서준을 설득할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브앤 테이크는 매너 중 매너였으니까.
“잘 됐습니다.”
김서준도 반색했다. 무작정 접근하는 것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이 더욱 좋았다.
“연락할 수 있습니까?”
“아···. 제가 전화번호는···. 그래도 찾아가면 절 알아볼 겁니다.”
데미얼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털털한 성격 탓에 뭘 받으면 제대로 가지고 다닌 적이 없었다.
“그럼 당장 떠나지요.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당장이요?”
데미얼이 자신의 짐과 김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데미얼. 데미얼은 눈을 대룩대룩 굴렸다.
“좋습니다. 가시지요.”
하지만 이내 눈을 꽉 감은 데미얼이 오케이를 외쳤다.
가난한 김서준과 미국 남부까지 여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데미얼은 김서준을 놓치기는 싫었다.
얀센과 크리스 그리고 이은지에게 잠시 작별의 인사를 나눈 김서준과 소영신 그리고 데미얼이 스튜디오 밖으로 나섰다.
“어? 여긴 공항 가는 길 아닙니까?”
“맞아요. 왜요?”
데미얼은 당연히 미국 남부로 향하는 열차를 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공항이라니. 비행기는 기차보다 많이 비싼 편이었다.
“오. 서준. 저 때문에 괜히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무리라니요?”
“서준이 절 위하는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괜히 큰돈 들여서 비행기를 타고 갈 필요까지는···.”
그제야 데미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김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얀센 감독님이 이야기 안 해주셨나 봐요?”
“해···. 해주셨는데?”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데미얼이 말끝을 흐렸다.
“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돈은 충분하니까요.”
그때부터였다.
데미얼이 김서준에게 더 매달리게 된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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