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 third generation chaebol RAW novel - Chapter 97
음악천재 재벌3세 97화
“이 정도면 시간을 충분히 준 것 같은데.”
김건환 회장을 만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박학규 사장은 삼신 전자로 출근하지 않고 SJ로 방향을 틀었다.
“난 놈은 난 놈이야.”
SJ의 입구에서 박학규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에 이런 사세를 만들어낸 것이 놀라웠다.
여기뿐만 아니라 김서준이 다른 곳에도 사업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회장님은 그냥 돈을 주실 분이 아니시지.’
박학규 사장이 아는 김건환 회장은 자신의 손자라고 무작정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이 정도로 사세를 키워냈다는 것은 김서준이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들어가지.”
“네. 사장님.”
생각을 접고 박학규 사장이 건물의 입구로 들어갔다.
보안 카드는 없었으나, 이미 박학규가 방문한다는 것을 전달받은 소영신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소 실장. 오랜만이야.”
박학규 사장이 웃음을 띠며 소영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대표님은 계시지?”
“네. 계시기는 합니다만···.”
소영신의 얼굴에 곤란한 표정이 떠올랐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소영신의 반응에 박학규 사장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의 부하들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무언가 곤란한 상황일 때.
지금 소영신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딱 곤란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PT가 별 볼 일 없나 보군.’
그런 생각이 들자 박학규 사장의 미간은 단번에 좁혀졌다.
“크흠. 올라가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간 박학규 사장의 눈에 평소와 같은 사무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흠. 열심히 준비한 것 맞나?’
삼신전자의 무선 사업부에서도 PT를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직원이 밤을 반납하고 일에 매진해야 했다.
그랬기에 무선 사업부의 직원들은 늘 피로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SJ 사원들의 얼굴에는 피로함이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은? 대표님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아···. 네. 일단 커피라도 한잔하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아침에는 모닝커피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커피는 됐고 대표님께 안내나 하게.”
소영신이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이자 박학규 사장이 은근히 언성을 높였다.
작게 한숨을 쉰 소영신이 어쩔 수 없이 박학규 사장을 회의실로 이끌었다.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놀랄 일이 뭐 있다고 놀라겠나?”
달칵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땀 냄새와 함께 진한 잉크 냄새가 박학규 사장의 코를 파고들었다.
냄새에 잠시 인상을 찌푸린 박학규 사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니. 이게 다 뭐야?”
회의실은 난장판이었다. 탑 쌓기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수많은 A4 용지들이 탑을 이루고 있었고 화이트보드에는 무엇을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자들과 도형들이 난잡하게 쓰여 있었다.
게다가 더 가관인 것은 김서준과 데미얼이었다.
오랜 시간 머리도 감지 않았는지 데미얼의 머리는 제비가 집이라도 지을 정도로 엉겨 붙어 있었다.
“저자는 누구야?”
영화에 큰 관심이 없던 박학규 사장은 데미얼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김서준이 PT를 위해 어디서 데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 이번 PT 제작에 참여한 영화감독입니다. 이름은 데미얼입니다. 아마 사장님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데미얼? 난 처음 들어. 크흠.”
“영화 다시 한번 안 보셨습니까? 그거 대표님이 OST를 불렀는데.”
박학규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때를 잘못 잡은 것 같군.”
PT를 보려고 온 것인데 이렇게 자고 있어서야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회의실 꼴을 보니 PT도 완성된 것 같지 않았다.
“아. 오셨습니까?”
박학규 사장이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 그의 귓가에 김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일어나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김서준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새벽까지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PT는 완성됐습니다.”
박학규 사장의 표정에는 못 미더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김서준의 말이니 헛소리하지 말라며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소란을 들었는지 데미얼도 눈을 떴다.
침을 급하게 닦은 데미얼이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오. 아임 쏘리.”
박학규의 표정이 좋지 않자 데미얼이 박학규와 김서준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삼신 전자의 사장님이십니다.”
“오! 이런 모습을 보이기에는 좋은 사람이 아니군요. 씻고 오겠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인 데미얼도 삼신 전자의 사장이 어떤 위치인지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박학규 사장이 언짢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소영신이 급히 커피를 내왔다.
그리고 커피가 반쯤 비워졌을 무렵 간단히 씻은 김서준과 데미얼이 돌아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팟
프로젝터가 화면을 스크린에 쏘기 시작했다.
박학규는 불편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 봐보지. 과연 우리의 PT를 깔 수준인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반려할 생각으로 박학규가 PT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며 손을 부들부들 떨게 될 때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무선 사업부로 돌아온 박학규 사장은 그의 집무실로 들어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니 앉았다고 보기에는 주저 앉은 게 더 옳은 표현 같았다.
“허어. 것 참.”
아직도 눈앞에 김서준의 PT가 생생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음향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은 회의실임에도 불구하고 화면과 소리가 적절하게 조화되며 그의 시선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김서준이었다.
언뜻 보면 여유롭고 대충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박학규는 그런 PT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박학규도 수많은 PT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잘 알 수 있었다.
아마 혓바닥이 아파서 헐 정도로 연습을 한 것이 분명했다.
“제법이야. 제법.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왜 무선 사업부의 PT를 깠는지 알 것 같았다.
김서준이 준비한 PT와 무선 사업부의 PT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이런 PT로 김서준에게 비비려고 했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건환 회장이 왜 자신만만하게 마음에 안 들면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물론 김건환 회장도 김서준의 PT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음이군.’
김서준에게 믿음이 있는 것이다.
“하아.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군.”
무선 사업부의 PT가 아니라 김서준의 PT로 진행하기로 했으니 이제 일은 박학규 사장의 손을 떠난 것이다.
그저 이제 밖에서 신제품 발표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기만을 기대해야 했다.
*
[띠링-] [띠링-]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IT 전문 기자들과 파워 블로거들에게는 이날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초대장]그들의 메일로 초대장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
“초대장?”
평소였으면 스팸 메일이겠거니 하고 삭제했을 테지만, 메일을 보낸 곳이 삼신 전자였다.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궁금함 반, 의아함 반의 심정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그날부터였다.
인터넷은 삼신 전자의 신제품 발표회 소식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카메라다. 노트북이다.
아니다. 삼신에서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해서 발표할 것이다.
소문은 무성했다.
업계에 정보 좀 있는 사람들은 최근 삼신 전자가 수입, 수출하는 물동량의 흐름을 보고 아주 새로운 무엇인가를 출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삼신에서 무슨 제품을 선보일 것인지는 정확히 예측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았을 때.
초대장에서 언급했던 그 날이 되었다.
*
“오늘이 그 날이군.”
잡의 안색은 어두웠다. 삼신보다 먼저 제품을 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단기간에 메우기는 쉽지 않았다.
좁히려면 좁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잡이 원하는 제품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오늘 빌 그레이엄 센터에서 언팩 행사가 있다지?”
“그렇습니다.”
잡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간도 크군. 우리의 앞마당에서 언팩 행사를 하다니.”
하지만 당연한 것이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IT를 주도하는 나라.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의 회사들도 언팩 행사는 미국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미국을 석권하면 세상을 석권한다.
“보고 싶군. 과연 어떤 PT를 하는지 말이야.”
잡은 잘 알고 있었다. 신제품 언팩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포장하고 소개하는 PT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가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가면 그를 도와주는 꼴밖에는 되지 않지. 유튜브로 생중계를 한다니까 그것으로 보면 됐어.”
궁금했지만 김서준을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유튜브라니. 생각 참 잘했군.”
잡도 신제품을 발표할 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유튜브는 아니라 자사에서 임시로 만든 곳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랬기에 김서준의 선택이 더욱더 훌륭해 보였다.
유튜브는 수많은 이용자를 가진 동영상 플랫폼이다.
그만큼 접근이 쉽고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했다.
“혹시 김서준이 유튜브 지분까지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왠지 그럴 것 같은데.”
유튜브를 선택한 이유가 그냥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까지 김서준이 움직여온 행보를 보면 늘 치밀했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신제품에 유튜브를 포함하는 협약을 진행 중인데···.’
잡 역시 킬러 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구글사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유튜브는 대표적인 킬러 앱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드로이드사에 밀리지 않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앱이었다.
“한번 보지. 도대체 무엇을 준비했는지 말이야.”
잡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준비했기에 그들보다 더 빨리 준비했으며 이렇게 당당하게 발표를 하는지 궁금했다.
*
시빅 센터는 샌프란시스코의 행정 중심구역에 있었다.
시빅 센터가 있는 지역은 고전적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은 물론이고 연방의 행정기관, 각종 컨벤션 센터,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문화 중심지였다.
그랬기에 그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붐볐는데 오늘은 여느 날보다 유독 더 붐비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은 지역답게 원래 동양인이 자주 눈에 보이긴 했으나 이날은 더더욱 많은 동양인이 눈에 들어왔다.
또 무슨 일인지 기자들도 센터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유명 정치인이 기자회견이라도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궁금했던 몇몇 사람들이 센터 내부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초대장이 없는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가드의 말을 듣고는 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빠진 사람 없이 센터의 자리가 모두 채워졌을 때.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저벅저벅 저벅
모든 조명이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귀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끝
ⓒ 성불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