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0)
100.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대학은 배우기 위해서 가는 곳.
하지만 도웅은 이미 필드에 발을 들였고,
이곳에서 부딪히고 깨치는 것이 가장 도움 되는 일이었다.
대학에 대한 약간의 궁금증과 로망도 있었지만,
이미 사회 경험을 해본 도웅이 궁금증 때문에 대학에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쉬운 표정을 드러냈다.
도웅은 회귀 전 진로 상담을 했을 때,
그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걱정어린, 답답해하던 시선이 기억났다.
‘그때는 내가 진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때 선생님이 입을 뗐다.
“성적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그는 도웅의 확고한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뭘 하든 선생님은 응원하마.”
“감사합니다.”
뭘 하더라도 잘할 녀석.
그것이 3년간 도웅을 지켜본 선생님의 달라진 평가였다.
교실로 돌아오니 형식이가 도웅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남도웅, 너희 담임 선생님이랑 무슨 얘기 했냐?”
“아, 그냥 어느 대학 갈 거냐고.”
“와, 너한테 선택권을 줬어? 그래서 어느 대학 가겠다고 했는데?”
형식의 물음에 다른 아이들도 귀 기울였다.
그리고 마은율도 어느새 도웅의 근처로 와, 사탕을 깨물어 먹고 있었다.
도웅이 책가방을 정리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난 대학 안 갈 거야.”
“뭐?! 왜?”
형식이가 화들짝 놀랐고,
주변에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학교 나오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출석이나 제대로 하겠냐?”
도웅이 상황을 장난스럽게 넘기니 마은율이 씨익 웃었다.
“그것도 그렇고, 난 직접 음악활동을 하는데 더 시간을 쏟고 싶어.”
“하긴, 너한테는 그게 낫지. 바로 현장실습을 해볼 수 있는 환경에 있는데 강의실에 엉덩이 붙이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냐.”
“바로 그거야.”
도웅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런데 형식이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야, 씨. 그럼 네 성적 나 줄 수 있냐? 생각해보니까 아깝네.”
“가져갈 수 있으면 어디 가져가 봐.”
도웅이 배 째란 식으로 들이미니 형식이가 살짝 약이 오르는 표정을 했다.
“아 참. 너 윤정후 데뷔한 건 알아?”
그러고 보니 날라리 같던 윤정후의 모습이 안 보였다.
회귀하기 전에도 이맘때쯤 그 녀석이 데뷔를 했던 것도 같았다.
“걔 결국은 삼촌네 기획사에서 데뷔한 것 같더라고.”
“그래?”
“아무튼 방송국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네. 그럼 걔가 너한테 선배라고 부르는 건가?”
“으, 느낌 이상하겠다.”
옆에서 마은율이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형식이는 그렇게 몇몇 친구들의 근황을 제가 나서서 전했다.
이제 다른 이들 앞에서 쭈뼛쭈뼛하고 숫기 없던 그 형식이가 아니었다.
‘자식, 많이 달라졌네.’
도웅이 학교 안의 유명인이 되면서 형식이 한테까지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무슨과 가려고?”
이전의 형식이는 서울 변두리에 있는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왔던 것으로 기억했다.
“음···. 그게 아직 고민 중이야. 성적 맞춰서 경영학과를 쓸지, 아니면 전문 매니지먼트 학과를 갈지.”
“매니지먼트 학과??”
예상치 못한 형식의 답에 도웅의 눈이 커다래졌다.
“갑자기?”
“갑자기 아닌데? 이 무관심한 새끼.”
하긴. 도웅이 가수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부터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던 형식이었다.
원래는 없던 선택지.
아마도 도웅이 영향을 끼쳤으리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실무자 만나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지.’
도웅은 괜히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그럼 우리 매니저 형이랑 한번 만나 보든가.”
“지, 진짜? 그럼 나야 완전 땡큐지!”
이후로는 형식이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었다.
**
도웅은 모처럼 남아서 자율학습 시간에 열심히 공부했다.
형식이는 이미 째고 없는 하교 시간,
마은율이 도웅에게 와서 물었다.
“너는 대학도 안 간다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이것도 다 때가 있는 거야.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수능은 한번 봐야지.”
“뭐야, 애늙은이 같애.”
마은율이 피식 웃었다.
“남도웅, 시간 괜찮으면 저녁이나 먹을래?”
“웬일로?”
“그냥, 네 얼굴 보기 힘드니까 이럴 때.”
사실 졸업하고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도웅의 얼굴 보기는 충분히 어려웠다.
하물며 앞으로는 서로 사는 게 바빠지리라.
그래서 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신 네가 사.”
“있는 놈이 더 하다더니. 그래, 기분이다. 따라와!”
당차게 걷는 은율을 따라 도웅은 떡볶이집에 들렀다.
아담한 사이즈에 벽면 가득한 낙서.
약간 끈적한 테이블 위에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물컵.
오랜만에 느끼는 학생다운 일상이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손님은 도웅과 은율 뿐이었다.
도웅은 떡볶이를 실컷 먹고는 잠시 멈춰 은율을 바라봤다.
도웅은 은율만 보면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신보다 뛰어난 음악 재능을 가지고 있던 은율.
그런데도 그녀는 평범한 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자신은 가수의 길을 걷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넌 수능 준비 잘 돼가나 해서.”
“나야 뭐, 늘 하던 대로.”
마은율은 아마 이대로 공부를 해서 명문대에 들어갈 것이었다.
도웅의 질문이 싱겁다는 듯 마은율이 다시 떡볶이를 우물거렸다.
도웅은 왜 은율이 그런 재능을 갖고도 이루려 하지 않는지가 늘 궁금했다.
왜냐면 도웅이 본 마은율은 음악을 애써 외면하는 느낌이 강했으니까.
그러면서도 음악으로 뭔가 해보려는 도웅을 자꾸 도운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마은율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는 넌 어때, 꿈꾸던 가수가 된 기분이?”
“가수가 되어서 좋다기보단, 그냥 음악을 계속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
“그래? 좋겠네.”
분명 미소짓고 있는 마은율의 말끝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마은율.”
“응?”
“넌 왜 음악을 안 하려고 해?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멈칫. 마은율의 포크 질이 멈췄다.
도웅이 입가에 맴돌던 궁금증을 꺼내버린 것이었다.
오늘이 아니라면 영영 이 궁금증을 풀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에.
“글쎄.”
그녀는 다 먹은 앞접시를 포크로 뒤적이며 말했다.
“정 궁금하면 한 번 따라와 보던가.”
“어딜?”
“우리 집.”
도웅이 피식 코웃음을 흘렸다.
“내가 너희 집엘 왜 가냐?”
**
신식으로 지어진 깨끗한 아파트.
학교에서 걸어서 도보 15분 거리에 은율의 집이 있었다.
‘내가 여길 왜 따라왔지.’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원히 이 궁금증은 풀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에 다리가 절로 움직였다.
마은율에 관한 것은 항상 베일에 싸여있었다.
그녀는 좀처럼 제 가족에 대한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으니까.
‘마은율의 엄마가 가수라는 소문은 사실일까?’
강태진과 마은율의 연결고리를 생각해 봤을 때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웅이 물었다.
“그런데 너 왜 요즘 판타스타에는 안 와? 전에는 자주 왔었잖아.”
“내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한들 고3이 공부해야지.”
마은율이 익살스럽게 제 머리를 두들겼다.
마은율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까지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은율이의 어머님이 진짜 가수라면 어떤 분일까. 갑자기 마주치면 너무 당황한 티는 내지 말아야지.’
덜컥.
그러나 걱정과 달리 집안은 암흑 속이었다.
마은율이 불을 켜자 정갈하고 깨끗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악기가 즐비할 것 같았던 은율의 방은 의외로 평범했다.
기타 한 대 없이, 악보 한 장 없는 은율의 방.
거실이나 집안 어디서도 음악의 향기는 나지 않았다.
‘결국 그냥 소문일 뿐이었던 건가?’
“너는 따라오란다고 여자애 집을 진짜 따라오냐?”
마은율이 갑자기 도웅을 타박했다.
“인성 뭐야? 알았어, 그럼 난 가볼게.”
도웅이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은율이 도웅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그녀는 책상 아래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뭐 마실래?”
“그냥 물 한 잔만 줘.”
“그래, 알았어.”
그녀가 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한 잔 가져다주며 말했다.
“이제 궁금증이 좀 풀렸어?”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그녀가 제 방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의외지 않아? 악기 하나 없는 거.”
도웅은 그러고 보니 은율이 제 악기를 가져온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마은율은 언제나 학교에 있는 것, 또는 판타스타에 있던 악기를 빌려서 썼다.
“우리 아빠는 내가 직장 들어가서 평범하게 살길 원하거든.”
“음악을 못 하게 하시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그녀가 침대 위에 걸터앉았던 몸을 일으켜 책상 서랍을 뒤적였다.
그 속에서 꺼낸 낡은 다이어리 속에서 그녀가 어렸을 때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건넸다.
“너 이 사람 누군지 알아?”
“···! ···심주연.”
“응, 우리 엄마야.”
도웅은 잠깐 말을 잃었다.
이 정도로 유명인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닮았네.’
조금 옛날 가수이기는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런 가수였다.
한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던.
‘그런데 어느 순간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고 했었지.’
“엄마는 노래만 했을 뿐인데 눈 떠보니 스타가 됐었대. 그리고 준비 없이 스타가 된 대가는 열여덟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했고.”
은율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그래서 엄마는 외국으로 도망 나갔다 우리 아빠를 만나서 나를 낳았고, 아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을 때, 엄마는 결국 외국에 홀로 남겠다고 했대. 결국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트라우마들을 견뎌내지 못 한 거지. 그렇게 떨어져 살던 게 요즘은 연락도 잘 안 해.”
은율이 담담하게 웃으며 얘기하는 게 오히려 슬퍼 보였다.
그래서 도웅은 잠자코 그녀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런데 내가 노래를 부르면 아빠가 슬퍼 보인다는 걸 어느 순간 알아채 버렸어. 아빠는 내가 엄마와 같은 길을 걸을까 봐 불안한가 봐. 그러다 자기를 떠날 것 같아서.”
마은율은 여러 소속사의 눈에 띄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거절했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아빠가 소중했고, 음악은 참을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제 좀 알겠어? 내가 왜 음악을 안 하려고 하는지.”
마은율도 왜 다른사람 앞에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주절거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자신의 속내를 건드린 도웅 앞에 세차게 흔들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도웅이 물었다.
“그럼 여기까지 들은 김에 하나만 더 물어볼게.”
“그래, 물어봐.”
“넌 음악이 좋아?”
“응, 그런데 아빠를 슬프게 만들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이거였다. 언제나 마은율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동시에 유난히 도웅에게 그녀가 흥미를 보였던 이유가.
자신에겐 금단의 열매와도 같은 음악을,
도웅은 너무 맛있게 베어 물고 있던 것이 그녀의 흥미를 당긴 것이었다.
“그리고 막상 음악을 하게 됐을 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잖아. 우리 엄마처럼.”
그녀는 애써 음악을 하지 않을 명분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생에는 시기라는 게 있다.
하고 싶은 일은 하는 데 있어서,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후회만 남을 수도 있었다.
이미 이 시기를 지나쳐 본 도웅은 그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마은율은 평범한 삶 속에서 과연 후회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갔을까?’
도웅은 그때의 은율은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은율은 잘 알았다.
그래서 도웅은 은율이 시도해보게 만들고 싶었다.
해보고 포기하는 것과 그냥 못 본 척 피하기만 하는 것에는,
후회의 정도에 큰 차이가 있을 테니까.
그게 친구로서 지금 도웅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은율, 혹시 기억나?”
“뭐가?”
“내가 오디션에서 우승하면, 언제든 필요할 때 네가 나 한 번 도와주기로 했던 거.”
“···기억 안 나.”
“뻥 치지마!”
도웅이 열을 내자 그제야 마은율이 익살스레 웃었다.
“인기 스타 남도웅이 왜 내 도움이 필요하겠어? 뭔데, 말 해봐.”
“일단 하겠다고 약속해.”
“알겠어. 약속은 약속이니까.”
마은율이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이번 주에 판타스타에 오디션이 있어. 너 그 오디션 보러와.”
“뭐?!”
마은율이 세상 황당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지금까지 내 얘기 안 들었어? 그리고 그게 어떻게 널 돕는 거야?”
“그 오디션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곤란에 빠져있거든. 그래서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하고.”
“이런 억지!”
“맞아, 억지야.”
도웅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데 너도 후회할 것 같지 않아?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해보고 음악에서 멀어지게 되면.”
“···.”
“어차피 이때가 지나고 나면, 이런 고민할 일도 없어. 그냥 졸업하기 전에 한 번만 일탈해본다 치고 보러 와봐.”
마은율은 황당함에 입술을 달싹였지만,
완강하게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지금 은율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삐삐삐삐삐.
그때 현관문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은율아, 아빠 왔다.”
은율의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