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1)
101. 어쩌면 첫 의뢰.
은율이 반사적으로 먼저 현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빠, 오늘 일찍 왔네?”
“일찍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그가 거실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저녁은···.”
그때 방에서 도웅이 걸어 나왔다.
은율의 아버지가 고개를 들다가 도웅을 발견했다.
조금 잘생긴, 키가 훤칠한 청년.
은율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감색의 교복.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명찰 위 남도웅이라는 이름.
‘남도웅···.’
은율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원체 집에 누굴 데려오지 않는 애가···.’
하필이면 남학생을, 게다가 연예인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애석하게도 평범한 시그널은 아니었다.
도웅 역시 그가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은율의 아버지가 먼저 입을 뗐다.
“은율이 친구?”
“안녕하세요. 은율이랑 같은 반 친구인 남도웅입니다.”
“아빠도 알지? 남도웅이라고. 가수···.”
“그래, 밥은 먹었니?”
아버지가 마은율의 말을 잘랐다.
연예인도, 연인도 아닌 그냥 은율의 동급생 친구.
아버지는 그렇게 맘 편히 생각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떡볶이 사 먹었어.”
“그럼 온 김에 과일이라도 먹고 가거라.”
정갈한 양복에 단정한 넥타이.
마은율의 아버지는 점잖은 스타일인 것 같았다.
그는 짐을 풀어놓고 곧장 부엌에서 멜론을 잘라가지고 왔다.
“···공부는 잘 돼 가고 있니?”
“응, 늘 하던 대로.”
마은율은 포크로 멜론을 푹 찍으며 어색함에 괜한 말을 꺼냈다.
“얘 공부 잘해 아빠.”
“···그래?”
“나만큼은 아니지만.”
짧은 대화를 끝으로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은 잘 자라주었다.
은율의 아버지는 그런 딸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불안했다.
검은 생머리에 오밀조밀한 얼굴까지.
커갈수록 더욱이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조금 슬퍼진 아빠가 얘기했다.
“은율아, 머리 묶는 게 좋겠다. 멜론 먹기에 불편하니까.”
“음, 알겠어.”
은율은 손목에 있던 끈으로 느슨하게 머리를 묶었다.
그제야 은율에게 겹쳐 보이던 아내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번엔 아버지의 시선이 도웅에게로 향했다.
연예계란, 은율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정글과도 같았다.
평범한 회사생활이란 것도 녹록지는 않은 것이었지만,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만큼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은율이 평범한 삶을 이대로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멜론 잘 먹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거라.”
끝까지 그는 도웅을 그저 은율의 동급생처럼 대해주었다.
‘나도 그편이 마음이 편하기는 하지만.’
마은율이 집 밖으로 도웅을 배웅하러 나왔다.
그때 은율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까 얘기했던 거 말인데···.”
“그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오디션을 본다고 네가 붙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참나. 내가 맘만 먹으면 판타스타는 그냥 들어가지.”
마은율이 괜히 자존심을 부렸다.
도웅이 마은율을 흘긋 보며 말했다.
“그냥 네가 후회하기 전에 뭐라도 한번 시도해보라는 얘기였으니까.”
“쳇, 멋있는 척은.”
은율이 묶어두었던 머리를 다시 풀었다.
바람에 사라락.
부드럽게 흩날리는 긴 머리칼과 함께 은율의 얼굴에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
그렇게 도웅이 잠시 전성기의 심주연을 보는 듯하고 있던 때, 은율이 입을 뗐다.
“한 번 생각은 해볼게.”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도웅이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은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연예인 생활을 하면 반드시 불행해질 거라고 항상 되뇌고 있었는데,
도웅은 불나방처럼 그곳에 뛰어들어 누구보다 높이 날고 있었다.
애써 잠재워놓은 음악에 대한 욕구를 자꾸 건드리는 남도웅.
“나도 도웅이처럼 행복하게 음악을 하며 살 수도 있는 걸까?”
은율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도웅은 처음 작곡했던 곡을 디지털 싱글로 발매하기 위해 녹음실로 입성했다.
인터넷상에서의 열띤 반응에 힘입어 이벤트성으로 나가는 음원이었다.
녹음실 입구에서 마주친 강태진이 물었다.
“도웅 씨, 진짜 녹음 디렉팅해줄 사람 필요 없어요?”
“네. 제가 작곡한 곡이니 스스로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말씀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있다가 여명이랑 한번 들를게요.”
“네.”
보통은 녹음할 때 작곡가가 따라와서 디렉팅을 하기 마련.
하지만 오늘은 녹음실 안에 오디오 엔지니어와 도웅뿐이었다.
“실장님, 네 마디씩 끊어서 갈게요.”
왜냐하면 도웅이 작곡한 곡이었으니까.
물론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남이 집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곡에 대한 이해도가 도웅만큼 높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스스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잘못하면 디렉팅해줄 사람에 따라 주객이 전도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오늘 녹음은 얼마 안 걸리겠구먼.’
엔지니어는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까다롭게 디렉팅을 할 작곡가가 없으니 녹음이 금방 끝날 거란 계산이었다.
“실장님, 방금 그 부분 다시 갈게요.”
하지만 도웅은 세밀하게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한번 음원으로 발매된 곡은 그때부터는 제 손을 떠나게 될 테니, 그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 느낌이 아닌데.’
도웅은 최대한 락 페스티벌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재연해 노래하려고 애썼다.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열광한 만큼, 그때의 그 느낌을 최대한 음원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장님, 다시 해볼게요.”
“다시요.”
“네, 한 번 더 할게요.”
도웅은 소리가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무한정 녹음을 반복했다.
오히려 남들에게 하는 것보다 혹독하다고 느낄 만큼.
엔지니어가 일을 빨리 끝내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을 쯤이었다.
달칵.
강태진이 여명을 끌고선 조용히 녹음실에 들어왔다.
이슈가 된 그 곡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도웅이 혼자 녹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때요, 잘 돼가요?”
엔지니어에게 슬쩍 물으니 그가 혀를 내둘렀다.
“듣는 귀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에요. 제가 봤을 땐 여기 판타스타 왠만한 작곡가들 보다 더 한데요?”
엔지니어는 고생이겠지만, 강태진이 봤을 때 그건 칭찬이었다.
제 음악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쉽게 타협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노래는 어때요?”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네. 방해가 안 된다면.”
곧바로 엔지니어가 부스 안에 있는 도웅에게 말했다.
“도웅 씨, 대표님 오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들어보죠.”
“네, 좋아요.”
도웅이 헤드셋에 집중했고, 노래가 처음부터 흘러나왔다.
노래에 잘 어울리는 발성, 감정, 표현력.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보컬이었다.
강태진과 여명은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다가 노래가 끝나고 나서 눈을 마주쳤다.
여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따로 봐줄 거 없겠는데?”
“그러네. 보컬이 어떤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지가 확실해.”
“이거 진짜 도웅이가 처음으로 작곡해 본 거 맞아? 곡 자체가 꽤 그럴싸 한데?”
그렇게 여명과 강태진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던 때, 부스 안에서 도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엔지니어 실장님, 1절 벌스 도입 부분 다시 한 번만 불러볼게요.”
여명과 강태진이 잡아내지 못한 부분까지 스스로 보컬 디렉팅을 해내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을 본 여명이 문득 한기를 느꼈다.
어딘가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 나 쟤 무서워. 저러다 우리도 다 필요 없어지고 조만간 독립하겠다는 거 아니야?”
“넌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그리고 가까이 붙지 마. 난 네가 더 무서우니까.”
강태진이 몸서리를 쳤다.
도웅이 판타스타를 떠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에.
**
오늘은 판타스타의 데뷔 조 오디션 날.
도웅이 은율에게 얘기한 바로 그 날이었다.
도웅은 심정남을 통해 은율의 오디션 스케줄을 잡아두었다.
“그 친구분은 마지막 타임에 맞춰서 오면 될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형.”
“그런데 아무리 도웅 씨 친구분이라고 해도 신인 개발팀에서 봐주는 거는 없습니다.”
“네, 거기서부터는 걔가 알아서 하는 거죠.”
도웅 역시 은율이 이 오디션에 붙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도웅은 그저 은율이 음악으로 뭔가를 시도해보기를 바랐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건 이후에 은율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아무렴 걸그룹 오디션인데.’
마은율이 춤추는 장면은 도무지 떠올리기도 힘들었다.
늦은 저녁.
도웅은 내내 작업실에 처박혀 며칠 전 녹음한 음원을 손보는 중이었다.
보통은 스튜디오 파트에 맡겨야 할 작업이지만,
이마저도 최대한 스스로 해보는 중이었다.
그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름길이었으니까.
‘다행히 이런 부족한 느낌 자체를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있으니.’
그래서 제손으로 작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미세하게 박자가 밀린 부분이 없는지 체크하고,
약간 거슬리는 음절은 잘라내고 다른 소리 파일과 이어붙였다.
“이어 붙이니까 소리가 살짝 튀네.”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페이드 인 아웃.
그렇게 가장 마음에 드는 소리 파일들을 하나의 연결된 보컬로 만들었다.
다행히 애초에 녹음을 신경 써서 해뒀던 터라, 피치는 따로 손볼 데가 없었다.
그렇게 제 선에서 완성된 음원을 최종 검수해줄 스튜디오 파트에 전송했다.
‘아 참, 시간이.’
그제야 도웅은 은율이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은율에게 톡을 보냈다.
-오고 있어?
하지만 곧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도웅은 신경 쓰지 않고 바람이라도 쐴 겸 1층 로비로 향했다.
스스륵.
그렇게 바깥으로 통하는 자동문이 열리고.
“어···. 너!”
그곳에 긴 생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른 마은율이 서 있었다.
“약속했잖아, 그래서 왔어.”
“아니, 네 머리.”
“안 어울려?”
은율이 멋쩍은 듯 머리 끝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도웅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잘 어울려.”
“그냥 무거워서 잘랐어.”
짧아진 머리와 함께 도웅은 은율에게서 어떤 변화를 느꼈다.
그때, 마은율이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배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남도웅, 이거 걸그룹 오디션이라곤 얘기 안 했잖아.”
그 배너에 떡하니 걸그룹 데뷔 조 오디션 장소에 대한 안내가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웅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붙는다고 할 것도 아니면서.”
“···.”
“그럼 오디션 잘 봐.”
도웅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은율이 스스로 음악을 향해 한 걸음을 디뎠으니,
그것만으로 친구로서,
그리고 먼저 이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서,
도웅이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
도웅은 시원한 비타민 음료로 목을 축이고 다시 작업실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쯤,
도웅의 휴대폰이 드르륵 하고 울렸다.
‘오디션 벌써 끝났나?’
마은율의 연락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손규성 작곡가.
함께 OST와 앨범 작업을 했던 작곡가의 이름이 화면 위에 떠있었다.
“이 시간에 선생님이 웬일이시지?”
도웅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아, 도웅 씨. 다른 게 아니라 뭐 하나 물어보려고요.
“네, 말씀하세요.”
-내가 지금 드라마의 OST를 작업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OST 불러 달라고 하시려나?’
도웅이 그렇게 지레짐작하고 있던 때,
손규성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거기 들어가는 수록곡 중 하나를 도웅 씨한테 시켜보고 싶은데.
“아, 노래 말씀이시죠?”
-아니요. 작곡이요.
“네? 작곡을요?”
도웅이 놀라 되물으니 수화기 너머로 손규성의 차분한 음성이 넘어왔다.
-지난번에 도웅 씨가 작곡한 곡 들어보니까 멜로디 느낌을 아주 잘 만들었던데. 그냥 작업하다 보니 도웅 씨 생각이 났어요. 부담가질 필요는 없고요.
OST는 영화, 드라마에 삽입되는 곡.
주 역할이 장면의 몰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음원 성적을 꼭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어쩌면 첫 작곡 의뢰라고도 할 수 있는 기회.
마다할 이유 없는 도웅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