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3)
103. 머릿속에 있던 안전핀이 뾱 하고.
도웅에게 주어진 기간은 단 5일이었다.
프로 작곡가라면 곡에 살을 붙이기에 아주 충분한 시간.
하지만.
‘나 같은 초보한테는 아주 촉박한 시간이지.’
지금부터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노래가 마음에 들 때까지 살을 붙여가며 끈질기게 모니터 앞에 붙어있는 수밖에는.
도웅은 작곡 프로그램을 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 그런가, 되게 텅텅 비어 보이네.”
도웅은 차근히 이미 깔려 있는 드럼 루프부터 살짝 원하는 방향으로 손을 보았다.
곡의 전개에 따라 디테일을 조정한 것이었다.
그다음 가상 악기로 만들어진 기타 리프를 직접 연주하여 소스를 대체했다.
이후에 악기 목록에서 새로운 악기를 추가해 가며 작업에 푹 빠져들어 갔다.
“음···. 이 샘플은 어떤 느낌이려나.”
처음부터 알아가야 하는 이 과정이 막막할 수도 있었지만,
도웅은 오히려 즐겁고 흥미가 당겼다.
물론 기한 안에 원하는 만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찍었던 트랙은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
사회생활을 해봐서 사람을 어느 정도 볼 줄 아는 도웅의 눈에,
그 보조는 한눈에 봐도 자기 고집과 욕심이 강해 보였다.
아마 그의 도움을 받았다면 쓸데없는 고집과 감정 소모에 시간 낭비를 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기계적으로 트랙을 채워 넣으면 좋은 멜로디도 죽어버리지.”
그래서 도웅은 꼭 제 손으로,
이 곡을 발매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첫 의뢰를 받아 발매될 곡이,
다른 이에게 넘어가 아예 다른 곡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참을 수 없으니까.
**
손규성의 어시스턴트 차영수.
그는 오늘도 손규성의 지시를 받아 작곡 프로그램을 만지고 있었다.
손규성이 화면 위에 손가락을 대고 말했다.
“여기에 바이올린 샘플을 쌓아서···.”
타타탁.
머릿속엔 딴생각이 가득했지만, 어차피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기 때문에 그의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손.
그는 이런 작업 속도 덕에 근래는 꽤 손규성에게 가까이 붙어 작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작곡할 기회를 안 주는 거지.’
그는 이 바닥에서 구른 지는 좀 되었지만,
오래간 기획사들에 거절당하며 곡 하나를 팔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절박한 심정으로 손규성을 찾아와 무작정 매달렸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자존심도 무엇도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었다.
‘시키시는 건 뭐라도 하겠습니다. 청소라도 좋습니다. 제발 받아주십시오.’
손규성의 어시는 여럿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의 손이 가장 빨랐다.
그래서 들어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손규성 옆에서 프로그램을 만질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였지만, 마음이 바뀌고 욕심이 생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 손규성 작곡가 밑에서 작곡을 한다고? 대단한데?’
‘곡 명이 뭔데?’
‘그건 아직 작업 중이라 알려줄 수가 없어.’
그동안 잘나가던 동기들 사이에서 위축되었던 자존감을,
사실을 약간 과장해가며 메꾸고 있었으니까.
음악을 하고 있는 동기들은 손규성이라는 이름 하나에 이미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러니 안 그래도 급한 성미에 빨리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던 것이었다.
“수고했다, 영수야.”
손규성의 지시대로 손을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곡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상황 속에 차영수의 마음속에는 착각만 쌓여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명곡을 뚝딱 만들어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탁.
그는 모두가 나가고 난 작업실에 밤늦게 홀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규성이 받아놓으라고 했던 도웅의 멜로디 파일을 열었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이걸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지.”
그는 전에 했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그 미완성의 트랙 위에 소스를 쌓아나갔다.
전에 했던 것처럼 기계적으로 채워지는 디지털 샘플들.
손규성과 작업할 때 많이 쓰던 것들을 이리저리 끼워서 넣었다.
“작곡 경험도 없는 애가 트랙을 제대로 쌓아오는 건 어차피 말이 안 되지. 그러니 내가 더 잘 만들어서 내놓으면, 선생님도 내 걸 인정하고 써주실 거야.”
차영수는 아예 독자적으로 완성본을 만들어둘 생각이었다.
도웅의 반주가 퇴짜를 맞았을 때 바로 내놓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것을 기초로 손규성이 편곡을 해 제가 작곡에 이름을 올리는 상황을 바랐다.
“결국 내가 만든 걸로 할 수밖에 없을 거다. 내 이름 박힌 곡이 드디어 드라마 OST로 들어가는 거야!“
그는 불과 두 시간 만에 뚝딱 반주를 채워 넣고,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도웅이 저녁까지 OST에 매달려있던 바로 그 시각.
강태진이 작업실 문을 두들겼다.
“도웅 씨, 저녁 안 먹어요?”
“저는 지금 생각이 없어서 조금 있다가 먹을 게요.”
그때 문틈으로 마은율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먹으러 가자.”
“어?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글쎄, 웬일일까?”
마은율이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강태진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은율이 온 김에 같이 식사하려고 했는데 할 수 없죠. 그럼 치킨이라도 시켜줄 테니까 먹으면서 해요. 몸 상하면 안 되니까.”
“감사합니다.”
판타스타와 가까운 한정식집.
강태진과 마은율이 좌식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룸으로 분리되어 있어 강태진이 미팅할 때 자주 애용하는 장소였다.
“우와, 맛있겠다.”
먹음직스러운 갈비탕이 나오자 마은율이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강태진은 삼경이 복잡해 보였다.
“그래서 걸그룹을 진짜 하겠다고?”
강태진은 이번만큼은 후보자 논의에서는 일부러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실무진에게 모든 평가를 맡긴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압도적인 마은율의 승리였다.
‘얘가 진심으로 음악이 하고 싶어진 걸까? 아니면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건가.’
강태진은 그게 너무나 헷갈렸다.
원래 고3이라고 하면 한창 미래에 대한 혼란이 심한 시기이니 그 일환으로 일탈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었다.
그때 마은율이 건더기를 뒤적이며 말했다.
“이것 좀 먹고 얘기하면 안 돼?”
“너 여기서는 장난치면 안 돼. 이거 판타스타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니까.”
툭. 강태진이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실력파 가수만 내놓던 판타스타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기간이 밀려서는 안되는 프로젝트.
은율이 충동적으로 결정했다가 중간에 포기라도 하면, 회사 측에서는 손실이 컸다.
“응, 나 진심이야.”
순간 마은율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강태진은 그 눈빛을 보고 은율이 마음을 굳게 먹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숟가락을 쥐고 국물을 휘적였다.
“공부 잘하던 녀석이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뭐야?”
“그런 게 있어.”
‘은율이가 분명 도웅 씨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다고 했지.’
강태진은 은율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
분명 도웅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약간의 마찰음,
그리고 음식을 우물거리는 작은 소리만 룸 안에 울렸다.
마은율은 사실 그 직전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오디션에 가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
내면에 있던 어떤 스위치가 ‘탁!’하고 켜진 기분이었다.
이 오디션에 합격한다면 무대에 서게 될 자신의 모습.
그리고 도웅처럼 수많은 사람들 앞에 노래할 그런 상상.
그런 공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안녕하세요, 판타스타 A&R 팀의 박동현 과장입니다. 마은율 씨, 이번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셨습니다.’
‘꺄악!’
은율은 합격 연락을 받은 순간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명문대를 합격했다고 해서 이만큼 기뻤을까?’
그 덕에 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버렸다.
은율이 밥 한 공기를 거의 비운 강태진에게 물었다.
“트레이닝은 언제부터 시작해?”
“지금 다른 데뷔조 애들은 이미 트레이닝 받고 있으니까, 합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그럼 나도 바로 시작할게.”
은율이 볼이 불룩한 채로 밝게 웃었다.
강태진은 그 솔직한 웃음에 자신도 모르게 픽 따라웃었다.
“그나저나 너 이거 형님이 허락은 해 주신 거야?”
“···.”
“어찌 됐든 계약서를 쓰려면 형님이 꼭 계셔야해.”
“걱정 마 아빠는···. 내가 꼭 설득할 거야.”
강태진 역시 은율이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빠를 생각해서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게 안쓰러워 아빠의 눈을 피해 음악 하는 것을 지원해 주던 것도 강태진이었다.
풀 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기획사의 대표로서 은율이가 탐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마은율이 여고생 특유의 싱그러운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일단 트레이닝 먼저 받는다?”
“그래 알겠다. 대신 트레이닝에 합류하는 그 순간부터 너랑 나는 사장과 연습생의 사이가 되는 거야. 공적인 일에 사심이 끼면 안 되니까.”
“걱정 마세요, 대표님.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은율이 익살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바깥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뺨에 스치니,
도웅은 온전히 하루를 음악에 쏟아부은 것이 실감이 났다.
“으자자, 오늘 정말 보람찬 하루였다.”
도웅이 쭈욱 기지개를 켰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동안 꽤 진척이 있었다.
“내일은 더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려나~.”
도웅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씻고 잠자리에 들려니, 막상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드럼 딱 한 번만 치고 잘까?”
도웅은 드럼을 칠 때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에 매몰되어 찌뿌둥해졌던 감각을 깨우기 위해 도웅은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꽤 오래 걸리네.”
그도 그럴 것이 레벨업 이후에 나왔던 ‘베테랑 드러머 J의 연주법’을 몇 달째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완료율은 얼마 전부터 99%에 멈춰서 있는 상태였다.
“베테랑이 되는 건 역시 쉬운 게 아닌가 봐.”
도웅은 레벨업 하고나서 확실히 난이도가 확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만의 연습실에 세팅된 드럼 앞에 앉아 스틱을 양손에 쥐었다.
“그럼 어디 한번 또 놀아볼까.”
두구두구두구둥.
도웅의 팔다리가 거의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박자를 쪼갰다.
그리고 그간 아무리 빠른 박자 안에서도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팔이 두 개 정도 더 있었으면 박자를 조금 더 쪼갤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들 정도로.
그렇게 신명 나게 드럼을 치며 흥분이 차오르던 도웅은,
어느 순간 머릿속에 있던 안전핀이 뾱 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한 곡을 완주하고 났을 때였다.
-빰빠바밤! 빰빠바밤! 빠 빰!
드디어 완료율 100%를 알리는 폭죽 효과가 시원하게 터졌다.
하지만.
‘다음 영상이 바로 나오지는 않겠지?’
갈수록 영상이 나오는 주기가 길어진다고 느낀 도웅은 설마 하는 기대를 접고 있었다.
그때였다.
-띠링.
[맞춤형 영상 탐색 완료.]도웅의 실망을 기분 좋게 깨는 알림음이 귓가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