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5)
105.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노래.
손규성이 직접 도웅을 배웅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참, 그 가이드 보컬은 어디서 구했습니까?”
“저희 회사 소속의 연습생입니다.”
“연습생이라···.”
손규성이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곡에 어울리는 친구를 참 잘 찾았네요.”
“감사합니다.”
“가이드였는데도 불구하고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도웅이 생각해도 아련하고 가슴 찡한 감정을 표현하는 은율의 능력은 특출났다.
그리고 여린 음색 자체가 짝사랑이라는 코드와도 상당히 잘 어울렸고.
‘이런 성숙한 느낌을 잘 소화한단 말이야.’
특히나 보컬 선정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손규성.
그가 가이드 녹음을 괜찮게 들었다는 데서 도웅의 곡도 가산점을 받은 셈이었다.
“자기 노래를 잘 표현해줄 보컬을 찾는 것도 작곡가의 능력이니까요.”
손규성이 턱 언저리를 만지며 얘기했다.
“처음 트랙은 제가 깔았지만 사실 도웅 씨가 거의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가수를 직접 선정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래 안에서 보컬이 가장 많은 것을 좌우하는 악기니까요.”
가녹음을 하면서 이미 그 점을 느낀 도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 이름도 같이 걸리는 일이니, 선정한 보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제가 개입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유명세나 인기와는 관계없이 오직 음악만으로 평가하는 손규성.
그가 마은율의 가이드를 괜찮게 들었다는 것만으로 도웅은 이미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
도웅은 곧 있으면 이 노래가 드라마에 입혀질 생각을 하니 설렘이 피어났다.
“아마 이 드라마가 중박은 쳤었지?”
게다가 손규성의 반응도 생각보다 좋았다.
다만 그에게 몇몇 아쉬운 점들을 코멘트 받은 상태.
그래서 그 부분들을 바로 수정하기 위해 도웅은 늦은 밤 기분 좋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집 보다는 확실히 작업실이 집중이 잘 되지.”
무엇보다 음악에만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오늘 이걸 다 수정하고 내일 신인 개발팀에 문의해 봐야겠다.”
도웅은 마은율을 본 녹음에도 쓰고 싶었다.
노래와 꼭 맞는 음색, 그리고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표현력.
도웅은 은율이 이 곡의 보컬을 맡아준다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은율은 미리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도웅은 자신의 곡에 어울리는 보컬을 찾아서 좋고.
“마은율, 너 아주 친구 잘 둔 줄 알아라.”
도웅은 괜스레 아무도 없는 데서 생색을 냈다.
도웅은 적막한 판타스타의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최소한의 불빛만 켜져 있는 1층 로비에는, 보안 담당자도 퇴근하고 냉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도웅은 후드 티 안에 두 손을 찔러넣으며,
녹음실로 가기 위해 계단에 발걸음을 올렸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지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도웅은 그 순간 지하에 있는 자판기가 생각이 났다.
“지하에서 음료수나 하나 뽑아 갈까?”
타박. 타박.
1층의 불빛을 받아 내려간 지하는 말 그대로 암흑 속이었다.
비상구 안내 등만이 옅은 초록 불빛을 뿜고 있었다.
“오늘은 연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나.”
도웅이 자판기 앞에서 연습실 쪽을 살피는데,
한 군데 문 틈새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도웅은 궁금증이 동하여 뽑아 든 음료 캔을 들고 살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음?”
그런데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연습실.
도웅은 그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벌컥 문을 열었다.
“마지막에 쓴 사람이 불을 안 끄고 갔나 보네.”
도웅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들어가 연습실의 불을 껐다.
탁.
곧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가운데, 도웅이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의 후레시를 켰다.
그런데.
얼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긴 머리의 여자가 정면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환영은 아니었다.
“으악!”
도웅은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데.
“꺄악!”
메아리쳐서 돌아오는 누군가의 놀란 음성.
도웅이 손을 뻗어 불을 켜니,
그곳에는 방금 세안을 끝내고 머리에 수건을 걸쳐놓은 마은율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녀는 심장 부근을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아휴, 진짜 심장 떨어질 뻔했네.”
도웅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마은율, 너 지금 여기서 뭐 해?”
**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직 허락을 안 해주셨다고?”
“응. 계약서 읽어보시라고 내밀었더니 단박에 안 된다고 하시는 거야. 내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마은율이 짧은 단발을 털어 말리며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판타스타가 돌아가는 패턴을 꿰뚫고 있는 은율은,
이 안에서 몰래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출을 하면 어떻게 해. 수능 앞둔 고3 이.”
“가출 아니고 내 의지의 표출이야.”
“그거나, 그거나.”
“···.”
마은율은 할 말이 없는지 엄한 입술만 쌜룩거렸다.
사실 은율도 아빠가 순순히 허락을 해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정사를 빼놓더라도 공부 잘하던 고3 딸래미가 갑자기 연예인을 하겠다는데,
단박에 좋다 할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은율의 아버지는 엄마의 일로 연예계에 강한 편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제 얘기를 들을 생각도 않는 아빠의 얼굴이 생각난 마은율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이대로 버티다 올해 생일만 넘기면 아빠 동의서 없이 내가 혼자 계약해도 되는데.”
“그래도 계속 아버지 얼굴 안 보고 살 거는 아니잖아.”
“알아···.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마은율의 표정이 순간 침울해졌다.
“나는 엄마랑 달라. 난···. 정말 이 일을 해보고 싶은데.”
그동안 억눌러왔던 오랜 갈증.
그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를 앞둔 절박함 따위가 은율에게서 묻어나왔다.
도웅은 그 심정에 공감하면서,
동시에 곤란함을 느꼈다.
‘만약 계약이 어그러지면 보컬을 다시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도웅이 순탄하게 녹음을 마칠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은율의 아버지가 순순히 계약서에 사인해주시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게 어그러지기 전에 한 번 선수를 쳐보든가.
**
판타스타의 사무실.
“도웅 씨가 이번에 손규성 작곡가한테서 OST 의뢰를 받았대요.”
“손···규성 작곡가한테서요?”
까다로운 그에게서 지난 앨범에 곡을 받은 것도 모자라 작곡 의뢰를 받았다니.
직원들은 대부분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손규성 작곡가가 도웅 씨를 정말 좋게 봤나 보네요.”
“설마 좋게 봤다고 작곡까지 시킬까요?”
“그건 그런데···.”
커피를 홀짝이던 직원 하나가 그간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혹시 도웅 씨 저희 회사에서 작곡 트레이닝 받은 적 있어요?”
“아니요. 저도 도대체 모르겠어요. 어디서 따로 레슨이라도 받나?”
락 페스티벌에서 도웅이 작곡한 곡이 이슈가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것부터가 상당한 의문이었다.
직원들이 고개를 갸웃대고 있던 그때,
도웅은 통화에 한창이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럼 녹음 후에 전달드리겠습니다.”
판타스타에서 녹음을 해도 되겠냐고 손규성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OST 곡 녹음이 한창이라,
이 곡에 대한 전권을 도웅에게 넘기기로 했다.
5일 만에 그만한 반주를 만들어낼 실력이니 믿고 맡겨 본 것이었다.
그 다음날, 녹음을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 녹음실의 문을 두들겼다.
“작곡가님, 안녕하세요.”
일부러 장난 반으로 깍듯이 인사를 올리는 은율이었다.
아직 아무도 없는 녹음실에서 마은율이 말했다.
“이거 진짜 내가 불러도 되는 거야?”
“응,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마음에 안 들면 퇴짜 놓을 거니까.”
“참나,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마은율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녀도 알았다. 자신이 가이드를 썩 잘 소화해서 이런 기회가 온 것이란 사실을.
게다가 그녀가 팔랑이는 최종 가사지 위에는 형광펜과 필기해 놓은 코멘트들이 빼곡했다.
마은율이 이 자리를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은율이 부스 안에서 가사를 되새기며 웅얼대고 있는데,
보컬트레이너 최은정이 녹음실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 도웅 씨.”
“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은율이 녹음하는 거 저희 애들한테도 한번 보여주려는데 괜찮을까요? 애들이 아직 녹음해본 적이 없어서.”
일종의 견학을 시키겠다는 얘기였다.
그녀의 뒤로 세 개의 작은 머리통이 언뜻 보였다.
그래서 도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얘들아, 조용히 들어와.”
“넵···.”
백설, 김이삭, 그리고 키가 작은 로다라는 이름의 멤버.
그렇게 세 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쪼르르 들어와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그들은 녹음실의 분위기에 눌려 약간 긴장한 기색이었다.
“이 친구들 그룹명은 정해졌어요?”
“네, 아마도 사파이어로 갈 것 같아요.”
파란 보석이 떠오르는 이름.
도웅은 무난하다고 생각하며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그럼 녹음 시작해 볼게요.”
도웅의 멘트에 녹음실 안의 분위기가 순간 정숙해졌다.
지난번 가볍게 가이드 녹음을 할 때보다 훨씬,
은율의 노래에서 정제된 절박함이 느껴졌다.
요 며칠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더욱 절박해진 심정이 노래에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이점도 있네.’
도웅은 업그레이드된 그녀의 감정 표현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은율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하던 사파이어 멤버들의 표정이,
이내 노래 안의 화자에 공감하는 슬픈 표정으로 뒤바뀌었다.
‘뭐야, 노래 너무 슬퍼···.’
‘나도 이런 곡에 노래해 보고 싶다.’
‘언젠간 나도 도웅 선배님이 작곡한 곡에 노래할 수 있는 걸까?’
사파이어 멤버들이 속으로 저마다의 생각을 삼켰다.
동시에 동경에 가까운 백설의 시선이 도웅을 향했다.
자신이 연습생 생활을 하는 동안, 도웅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같은 스페셜k스타 출신인 그가 뿌듯하기도, 동경심이 들기도 하였다.
보컬트레이너 최은정 또한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도웅 씨가 작곡한 곡이라고 해서 가벼운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들어진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들에게는 완벽하게 들리는 노래였지만,
도웅의 귀에는 아쉬운 구간들이 있었다.
“은율 씨, ‘나는 그대론데-‘이 부분 다시 한번 가볼게요.”
“네.”
“아까 ‘왜 또다시.’ 이 부분은 끝에 길게 끌지 말고 끊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은율 씨, 다시···.”
조금은 까다로운 도웅의 요구였지만,
마은율은 장난기 싹 빼고 도웅을 작곡가로 대하며 최선을 다해 응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노래니까.’
이 노래를 꼭 부르고 싶은 욕심.
그런 마음이 마은율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 덕에 녹음은 순탄하게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그때쯤 도웅이 어딘가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달칵.
판타스타의 대표 강태진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파이어의 멤버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강태진에게 허리를 숙였다.
‘됐어요, 다들 앉아요.’
강태진이 그들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해 보이고,
조용히 뒤편에 서 있는 누군가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
점잖은 외모에 슈트를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모두가 이 노래에 관련된 관계자일 것으로 생각하던 가운데,
도웅도 일어나 사내에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 남자는 약간 피부가 푸석해진 마은율의 아버지였다.
정면 돌파를 위해 그를 직접 이곳에 부르자고 도웅이 제안했고,
강태진이 그를 모셔온 것이었다.
그는 건조한 미소만을 건네고는 안내를 받아 남아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의 무거운 시선이 부스 안에 있는 마은율에게로 향했다.
시선을 느낀 은율의 눈이 순간 왕방울만 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아버지, 강태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웅에게 가 닿았다.
도웅은 그런 은율에게 눈짓을 해 보이며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그럼 한 번 보여드릴까요?”
도웅의 의도를 알아챈 마은율이,
부스 안에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웅도, 은율도.
이 음악으로 그를 설득할 자신감이 두 눈빛에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