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6)
106. 해소되지 않는 어떤 갈증.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더 이상 기회는 없어.’
그건 도웅에게도, 은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은율 씨, 방금 그 부분 다시요.”
“다시요.”
“다시.”
그래서 마지막으로 도웅은 더욱 섬세하게 디렉팅했다.
은율의 아버지가 와있으니 긴장감에 훨씬 감각이 예민해졌기 때문이었다.
도웅이 예민하게 요구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은율은 심혈을 기울여 노래했다.
비로소 은율이 도웅이 원하는 디테일을 전부 소화해내고 나자, 도웅이 얘기했다.
“이번엔 안 끊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가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제대로 보여주자는 뜻이었다.
녹음 부스 안에서 마은율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엄청나게 긴장했네.’
도웅 역시 지금껏 저토록 긴장한 모습의 마은율은 본 적이 없었다.
마은율은 목을 가다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를 흘긋 쳐다봤다.
그는 묵묵히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은율이 노래할 때 아빠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
아마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은율은 그 이후로 아빠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아빠는 알았을까? 내가 일부러 노래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아빠는 단 한 번도 노래하지 말라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유도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은율이 엄마의 전철을 밟아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엄마랑 난 달라. 엄마처럼 남들 손에 스타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뤄낼 거야.’
그녀는 아빠에게 자신이 얼마나 음악을 원하는지 보여주고자,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반주가 흘러나오고 있는 헤드셋을 움켜쥐었다.
마은율이 오래간 앓아온 음악에 대한 짝사랑.
도웅이 만든 훌륭한 반주가 그런 은율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은율은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해보기로 했다.
마은율은 예민하게 귀 기울이며 그 감정들을 반주 위에 얹었다.
은율의 목소리는 가장 훌륭한 악기가 되어 음악에 함께 녹아들어 갔다.
은율의 아버지는 묵묵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는 노래를 들을수록 명치 주변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원한다면 가질 수 있을까요.
짝사랑하는 여인의 심경이 담긴 가삿말이,
음악에 대한 은율의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눈물짓는듯한 바이올린 소리가 감정을 고조시켰고,
아련한 피아노 선율이 여린 은율의 목소리와 만나 자꾸만 아빠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너무 잘 만든 노래로군···.’
어딘가 밝은 척, 어른스러운 척하는 딸이 아닌 진솔한 마은율의 모습.
몇 년간 허심탄회하게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해본 적 없는 부녀 사이에,
그 무엇보다 솔직한 감정이 음악으로 전해졌다.
“···.”
그 덕에 아빠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아빠가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을 때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썰물처럼 고조되었던 감정을 훑고 지나갔다.
마은율은 헤드셋을 벗고 아빠와 눈을 맞췄다.
이번엔 아빠의 얼굴에 슬픔이 아닌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마은율과 아버지,
그리고 도웅과 강태진.
이렇게 네 사람이 녹음을 마치고 근처 카페로 가 자리 잡았다.
은율의 아버지는 아직도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강태진이 정적을 깨기 위해 말했다.
“형님, 은율이가 트레이닝 받고 있는 것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 자식 일을 제가 모르고 있었는데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점잖은 그는 오래 본 사이인 태진에게도 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가 목을 축이려 눈앞의 머그잔을 들어 올리자,
살짝 누그러진 분위기 앞에 강태진이 본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은율이 노래하는 것 보시니 어떠셨습니까.”
“노래는 아주··· 잘하더군요.”
그의 시선이 은율에게 닿았다가, 도웅에게로 옮겼다.
딸이 다니는 학교의 같은 반 남학생.
그리고 한창 활동하고 있는 신인가수 남도웅.
같은 나이에 음악으로 제 길을 개척하고 있는 도웅의 옆에서,
아마 은율이 어떤 영향을 받았을 거라 추측했다.
“아까 은율이가 부른 그 곡이 도웅 씨가 직접 작곡한 곡입니다.”
“그렇군요.”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척했지만 내심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도웅이 디렉팅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참 대단한 친구군. 어린 나이에···.’
은율의 아버지는 아까 그 곡을 들으며 느꼈던 감동이 다시 가슴에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잠자코 있던 은율이 입을 열었다.
“아빠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
“하지만 내가 가수가 된다고 해서 아빠를 떠나진 않을 거야.”
“글쎄다, 그런 녀석이 대뜸 가출부터 하고 보는 거냐.”
아버지가 논리적으로 반박하니 마은율이 당황했다.
“이, 이건 가출이 아니고, 내 의지의 표출!”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
아버지를 제외한 세 명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가 강태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저는 은율이가 연예계 생활을 하며 다치고 상처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습니다.”
은율의 엄마인 심주연은 어린 나이에 자신을 향한 자극적인 기사, 소문, 악성 팬들 때문에 각종 트라우마를 겪다가 잠적을 선택했다.
그래서 은율이 엄마의 전철을 밟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상황만은 오지 않기를 바란 것이었다.
“엄마는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스타가 돼서 방어가 안 됐겠지만, 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한들, 그런 일을 실제로 감당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야.”
은율은 아까 노래를 들을 때 풀어졌던 아빠의 얼굴이 다시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결국 아빠의 마음엔 변함이 없는 건가,
그렇게 불안감을 느끼던 때 잠자코 있던 도웅이 입을 열었다.
“연예인이 분명 순탄한 직업은 아닙니다.”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던 도웅이 그렇게 얘기하자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저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너무 행복합니다.”
도웅의 어투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부녀 사이의 문제에 끼어드는 일인 만큼 생각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행복이라···.’
도웅이 말한 어떤 단어 때문에 아버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래, 행복. 딸의 얼굴에서 행복을 읽은 지가 오래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갑자기 이렇게 터진 이유.
‘아마도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내 앞에서 뭔가를 억누르고 살아왔기 때문이겠지.’
은율의 아버지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빠, 나한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있어 줄 사람들이 있어.”
은율의 간절한 눈이 강태진에게, 그리고 도웅에게.
마지막엔 아빠의 눈동자에 닿으며 그의 아픈 심정을 꿰뚫었다.
“그리고 아까 내가 불렀던 그 노래 좋았다며. 아빠가 허락 안 해주면 그 노래는 영영 묻혀버리는 거야. 나 아니면 그 노래 누가 그만큼 부를 수 있겠어.”
은율이 말도 안 되는 얘기까지 꺼내 가며 억지를 부렸다.
아까 노래 직후에 분명 아빠의 미소를 봤기 때문이리라.
어리광을 부리지 않던 딸이 제 소매를 붙들고 매달리는 광경.
은율의 아버지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더니,
가방에서 서류 한 부를 꺼내놓았다.
강태진이 놀라 물었다.
“···이건.”
“그 훌륭한 노래가 묻혀버리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은율이 가출 전,
아버지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던 그 계약서였다.
“꺄악!!!”
허락의 뉘앙스를 알아챈 마은율이,
기쁨에 양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니. 그냥 네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왔다.”
“아빠···!”
“그러니 이제 다시 집에 들어오거라.”
은율이 감동해 포옹하려 하자,
그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그녀를 제지했다.
“대신 아빠도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
“무조건 대학은 갔으면 좋겠구나.”
은율이 혹시라도 연예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돌아갈 곳을 마련해 두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은율은 양 볼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는 말했다.
“고마워, 아빠!”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에게 안겼다.
**
“후우.”
도웅이 작업실로 돌아와 푹신한 검정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일이 잘 해결된 데에 대한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 것이었다.
“그럼 녹음한 걸 확인해 볼까.”
도웅은 은율이 녹음한 소리 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리고서 내린 결론은.
“역시 마지막에 이어서 부른 게 제일 좋네.”
다른 파일들을 자르고 붙일 필요 없이, 마지막에 부른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아련한 감정이 잘 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디지털 소스들을 하나의 음악으로 합치기 위해,
악기마다 볼륨을 조절하고 효과들을 넣는 믹싱 작업이 필요했다.
이 부분은 전문 엔지니어의 도움이 필요해,
도웅은 데모 믹스 정도만 해서 손규성에게 넘겼다.
그리고 며칠 후,
도웅은 최종정리를 하러 손규성 작곡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어쩐 일인지 전에 봤던 그 보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이가 차를 내어왔다.
“도웅 씨, 작곡하는 건 좀 어때요.”
“배워가는 단계이지만 재미있습니다.”
손규성 작곡가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음미하고는 말했다.
“그럼 작곡에 좀 더 비중을 둬서 활동할 생각은 없고요?”
“작곡에 비중을요?”
“혀영준 씨 같이 작곡을 위주로 활동하는 가수가 될 생각은 없냐는 겁니다.”
허영준은 대표적으로 직접 부른 노래보다는,
작곡한 히트곡이 훨씬 많은 가수였다.
노래보다는 작곡에 재능이 뛰어난 경우.
“조금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확실히 도웅 씨가 찾아보기 어려운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지난번 가이드 곡보다 보컬의 감정이 더 풍부해졌고,
노래 또한 한 단계 풍미가 깊어진 상태였다.
연습생이 며칠 만에 이만큼의 변화를 보인 것은,
도웅의 디렉팅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보컬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능력은 요즘 작곡가들한테서는 찾아보기 힘든 역량이었다.
‘딱 내 뒤를 이으면 좋을 만한 인물인데.’
손규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도웅이 차분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저는 욕심이 많아 둘 중 무엇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오히려 마음에 드는 대답.
손규성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지었다.
‘가까운 미래에 대단한 가수가 하나 탄생하겠구나.’
손규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차를 기분 좋게 들이마셨다.
**
도웅은 나만의 연습실에서 트랙 메이킹을 계속해서 연습했다.
발라드, 댄스, 힙합 가리지 않고 랜덤으로 어느 장르의 멜로디가 나오면,
거기에 맞게 도웅이 반주를 채워 넣는 방식이었다.
[Good! 완성도 71% 달성!]그리고 손을 멈추고 나면, 그 반주의 완성도가 지금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뭔가 리듬 게임 업그레이드 버전 같네.”
도웅은 고3 때, 가끔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명목으로 형식이와 오락실에서 버튼을 두들기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만들어진 곡의 리듬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직접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작곡을 하러 나가볼까.”
도웅은 바깥으로 나와 멜로디와 함께 반주들을 쌓아가며 습작을 만들었다.
그렇게 컴퓨터 안에 쌓여가는 장르 불문의 미완성의 곡들.
도웅은 문득 이 파일들이 아까워졌다.
“이렇게 잠들어 있기보다는 누군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음악은 듣는 이가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음악 공유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가 떠올랐다.
아마추어, 프로 가릴 것 없이 음원을 공유하는 사이트.
아직 많이 활성화가 안 되기는 했지만,
힙합 장르가 뜨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는 플랫폼이었다.
접근성이 좋아 누구든 올려놓은 음악을 즐길 수 있었고,
또 그 덕에 유명세를 탈 수도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도웅은 몇 가지 음원을 골라 차곡차곡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
물론 아티스트 명은 간단히 DW라는 예명을 집어넣어서.
하지만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어떤 갈증이 있었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조금 더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도웅이 그 방법을 골몰하고 있던 때, 책상 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매니저인 심정남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다.
-도웅 씨, 다음 앨범 기획 회의 스케줄 잡혔습니다. 화요일 오후 두 시 2층 회의실.
“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
이번 앨범에 도웅이 작곡한 곡을 하나 넣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 갈증을 해소할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목표가 생긴 도웅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