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7)
107. 꽤 괜찮은 팀플레이.
락페 무대에 올랐던 두 곡 다 반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뮤타 세션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리고 OST는 손규성과 함께.
지난 앨범에서는 임지문과 함께.
도웅이 작곡했던 곡들 모두 다른 작곡가들과 함께 이름이 올라있었다.
스스로 온전히 작곡하는 법을 근래 연습해나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작곡을 맡아보고 싶었다.
“단독 작곡···.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자신의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강태진에게 얘기하면 다이렉트로 해결되겠지만,
도웅은 실무진의 설득을 얻어 정도대로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만약 도웅이 인생 2회차가 아닌,
그저 철없는 고등학생이었다면 생각 없이 그런 방법을 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일하다 보면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길게 봐야지. 길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일을 진행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웅은 단독 작곡을 위해,
어떻게 실무진들을 설득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아무도 없는 적막한 점심시간의 사무실.
톡.
이나래 대리는 푸릇한 샐러드가 담긴 도시락통을 책상 위에 꺼내놓았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살이 붙는 거지.”
그녀는 불어난 뱃살을 꼬집었다.
살이 찌니 몸이 빨리 지치고, 운동하는 것이 더 꺼려졌다.
자칫 이러다간 건강을 해칠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나래 대리가 팀원들과 따로 점심을 먹기로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
“어, 나왔다!”
이나래 대리는 샐러드를 씹으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기다리던 음원을 발견하고는 기쁘게 웃음 지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방금까지만 해도 생기발랄하던 이나래 대리의 표정이 점점 슬프게 변했다.
방금 따끈따끈하게 공개된 OST 때문이었다.
도웅이 짝사랑을 주제로 작곡한 바로 그 곡.
“뭐야, 너무 가슴 아프잖아.”
덕질이란게 짝사랑과 어느 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도웅을 이성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한걸음 뒤에서 바라봐야 하는 존재라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노래가 더 마음에 잘 와닿았다.
마음을 아리게 하는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아련한 보컬의 음색까지.
도웅에 대한 사심을 빼고 들어도 모든 요소가 훌륭하게 버무려져 있는 노래였다.
순간 샐러드를 뒤적이던 이나래의 손이 멈췄다.
“이렇게 좋은 건 같이 들어야지.”
이나래 대리는 이 감정을 같이 공감해줄 도레미 팬 톡방에,
다짜고짜 해당 링크를 던졌다.
– https://www.music_mango….
그러자 톡방에 있던 누군가 물었다.
-어? 이게 뭐예요?
-도레미 회원님들! 방금 도웅이가 작곡한 따끈따끈한 OST가 공개됐어요!
곧바로 이나래 대리의 설명을 읽은 회원들이 우후죽순 흥분하여 반응하기 시작했다.
-와! 대박!
-이 드라마 제가 요즘 제일 재미있게 보고 있는 건데!! 여기에 도웅이 OST가 들어가다니!
그리고 노래를 듣고 온 회원들의 감상평은 칭찬 일색이었다.
-우와, 미쳤나 봐요. 그냥 프로 작곡가가 만든 곡 같은데요?
-그동안 많이 못 봐서 속상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ㅜ
-새로 들을 노래 생겼네요. ♪♪♪
-이 보컬은 누굴까여? 노래 잘하네요.
-그나저나 도웅이 이제 슬슬 앨범 준비하려나?
그 덕에 이나래 대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무언가를 함께 즐거워해 줄 이들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도웅 씨 두 번째 미니앨범 회의 스케줄이 잡히긴 했는데··· 이건 함구해야겠지.”
이나래 대리는 팬으로서, 그리고 판타스타 직원으로서의 선을 잘 지켜나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남은 시간에 소화도 할 겸, 녹음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도웅 씨 요즘 여기서 작업 많이 한다던데.”
요즘 방송 활동이 뜸한 도웅을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때문이었다.
덜컥. 그때 녹음실 한곳의 문이 열렸고,
이나래 대리는 당황해서 앞에 있던 자판기의 아무 버튼이나 눌러댔다.
그러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판기 고장이에요, 대리님.”
“어맛, 그렇네요.”
정면에 널찍하게 고장이라고 적혀있는 자판기.
당황해 뒤를 돌아보니 이제 스무 살을 앞두고 제법 성인티가 나는 도웅의 모습이 보였다.
‘도웅 씨 생각이야 원래 나보다 성숙했지만.’
이나래 대리는 애써 태연한 척 화제를 전환했다.
“아, 저. 도웅 씨가 이번에 작곡했다던 OST 들어봤어요.”
“그래요? 어땠어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좋던데요?”
맑게 웃는 이나래 대리를 보면서 도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찾았다. 내 편이 되어줄 실무자. 이러면 이야기가 편해지지.”
도웅은 빙긋 웃으며 이나래 대리에게 얘기했다.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하러 가실까요?”
“어, 네, 네!”
이나래 대리가 시계가 있지도 않은 손목을 확인했다.
“마침 시간이 딱 괜찮네요.”
**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최애 연예인과 단둘이 커피를 마실 기회라니.
급작스럽게 주어진 상황에 이나래 대리는 날아갈 것 같았다.
‘아무튼 이 회사 복지가 따로 없다니까.’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100%에 이른 그녀는 따듯한 머그잔을 양손에 쥐고 도웅을 바라보았다.
그냥 도웅을 바라만 봐도 기쁘고 즐거운 것.
그게 바로 팬심이었다.
이나래 대리는 지금 도웅의 이 순간을 카메라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애석했다.
그래서 최대한 이 장면을 눈에 담아놓으려 애썼다.
“대리님, 왜 안 마시세요?”
“아, 저는 조금 식혔다 마시려고요. 아직 조금 뜨거워서요.”
대답 대신 빙긋 웃는 도웅의 따듯한 미소에,
이나래 대리는 정작 마음이 데일 것 같았다.
‘침착하자. 침착.’
그때 도웅이 슬쩍 운을 뗐다.
“대리님, 아까 제가 작곡한 곡이 좋았다고 하셨죠.”
“네. 정말 소속 가수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요.”
정말로 그랬다.
도웅이 작곡한 곡이 아니라고 해도 가슴을 울리는,
완성도가 훌륭한 곡이었다.
이나래 대리의 진심 어린 눈빛을 확인한 도웅은,
본격적으로 얘기하려는 듯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조금 도와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네, 뭐든 말만 하세요.”
“제가 슬슬 다음 앨범을 준비해야 하잖아요? 거기에 제가 작곡한 곡을 넣어보면 어떨까 싶거든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이나래 대리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그녀는 이 시작이 훗날 가수로서 도웅의 경쟁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도웅의 팬으로서가 아닌, 제작팀 직원으로서의 감이었다.
호의적인 이나래 대리의 반응에, 도웅이 이어 말했다.
“대리님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니 다행이네요.”
“긍정적이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이나래 대리의 어투에서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그래서 도웅이 더욱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단독으로 작곡을 하는 거거든요.”
“아···.”
“거기에 대해서 실무진 생각이 모두 같진 않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겠네요.”
이나래 자신이야 도웅의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실무진의 입장에서는 미니 앨범에 들어갈 네 곡 중 한 곡을 도웅에게 맡기는 것을 리스크라고 느낄 수도 있었다.
도웅은 지금까지 단독으로 작곡을 한 적이 없었고,
검증된 성적이라곤 락페에서 불렀던 곡이 98위로 차트인 한 것뿐이었으니까.
그때 이나래 대리가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도웅 씨, 그건 저한테 맡겨요. 그 안건에 대해서 제가 건의해 볼 테니까요.”
“정말요?”
“네. 아무래도 도웅 씨가 직접 얘기하는 것보다는 실무진 쪽에서 얘기를 꺼내는 게 객관적으로 논의하기에는 더 좋을 거예요.”
도웅이 예상한 것 보다 적극적인 이나래 대리의 반응에 도웅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
**
“그럼 이번 도웅 씨 앨범 컨셉은 ‘스물’로 진행을···.”
도웅의 앨범 기획을 위해 모인 인원들.
지난 앨범에서 기획력을 증명한 도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컨셉이 금방 잡혔다.
“아마 작곡 의뢰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지난 앨범 성적도 좋았었고, 무엇보다 작곡가분들이 도웅 씨의 가창력을 높이 사고 있으니까요.”
“저번처럼 직접 섭외하고 싶은 작곡가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제작팀의 시선이 도웅에게 쏠렸을 때였다.
이나래 대리가 차분히 입을 뗐다.
“여기 계신 분들 이번에 도웅 씨가 작곡한 OST 들어보셨나요?”
‘시동을 걸었구나.’
도웅이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얘기하기 전에,
실무진 측에서 먼저 의견을 내주면 주장에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웅은 마음속으로 이나래 대리를 응원했다.
“상당히 수준급인 작곡 실력에 깜짝 놀랐는데, 이번 앨범에서 한 곡 정도 맡아서 도웅 씨가 직접 작곡을 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순간 회의실의 인원들이 웅성거렸다.
일부는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최 과장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했다.
“확실히 저도 이번 OST를 들어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곡은 도웅 씨가 서브로 들어갔던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제가 메인을 담당했었습니다.”
이번엔 도웅이 대답했다.
“아, 도웅 씨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최 과장은 의외라는 듯이 반응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회사는 이익 중심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니 앨범에 수록되는 곡이 총 네 곡인데, 이걸로 목표 수익을 달성하려면 지난번 보다 작곡가 선정에 더 신중해야 합니다.”
최 과장이 수첩을 뒤적이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아직 도웅 씨가 단독으로 작곡해서 성과가 난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OST는 이제 갓 공개가 됐고요.”
네 곡 중 한 곡.
한정된 곡으로 매출을 달성해야 하는 제작팀의 입장에서,
단독으로 그렇다 할 성과를 낸 적 없는 도웅에게 한 곡을 할애해 주는 것은 리스크가 컸다.
더군다나 도웅의 앨범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작곡가들이 넘쳐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탁.
이나래 대리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자료를 펼쳐놓고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했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웅 씨가 락 페스티벌에서 불렀던 ‘그날 밤’은 현재 음원차트 98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음원을 발매하는 과정에서 회사 측의 홍보 같은 도움은 받았지만, 실상 혼자 이뤄낸 것이나 다름없고요.”
“그렇군요. 그 점은 저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도웅 씨가 앨범에 수록할 곡도 98위 정도에서 그친다면 회사 측의 손실이 클 겁니다. 이름있는 작곡가들을 쓴다면 더 순위를 높일 수 있는 것을 말이죠.”
평소에는 옆자리에서 농담도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지만,
중요한 의견이 오가는 자리인 만큼 의견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그때 최 과장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아니면 지난번처럼 도웅 씨가 임지문 작곡가와 함께 작곡하는 건 어떨까요.”
실무진의 입장에서는 뭐로 보나 그게 안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나래 대리는 우려하던 의견이 나오자 테이블 아래로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면 안 되는데.’
그래서 그녀는 역으로 최 과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웅의 노래가 성과를 달성할 것이란 근거가 부족하니,
감성에라도 호소해보고자 작전을 바꾼 것이었다.
“최 과장님. 그렇다면 손규성 작곡가가 메인으로 도웅 씨한테 작곡을 맡겼던 이유는 뭘까요?”
“글쎄요, 그건···.”
순간적으로 최 과장의 말문이 막혔다.
이나래 대리가 팀장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저는 아마도 도웅 씨의 작곡 능력에서 손규성 작곡가가 어떤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밖에서도 알아본 도웅 씨의 가능성을 우리가 지나치는 것도 상당히 아쉬운 일 같습니다.”
똑 부러지는 이 대리의 의견피력.
팀장이 확신에 찬 그녀의 목소리에 신뢰를 느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이 대리가 요즘 열심히 일한단 말이야.’
팀장은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이번엔 도웅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견을 묻는 것이 가장 깔끔했다.
“이 의견에 대해서 도웅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생각보다 밑밥이 잘 깔렸으니 이번엔 도웅이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였다.
도웅이 진중한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저는 기회가 된다면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증명해보고 싶습니다.”
올곧은 시선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
도웅에게서 이 기회를 잡고 싶은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팀장이 잠시 생각을 하다 말을 이었다.
“신인 작곡가의 경우 보통을 곡을 받고 앨범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니 도웅 씨의 곡을 받아보고 나서 결정을 하는 것으로 하죠.”
일단 도웅을 신인 작곡가 취급을 해 주겠다는 얘기였다.
단독으로 작곡을 해볼 길이 열린 것이었다.
순간 이나래 대리와 도웅이, 남들 몰래 시선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처음 치고 꽤 괜찮은 팀플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