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09)
109. 만장일치.
깔끔한 드럼 비트와 세련된 신디사이저로 구성된 멜로디.
현악기로 애절하면서 풍미 있게 보강된 반주.
마지막으로 어떤 악기보다도 훌륭한 도웅의 목소리가 회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
뭔가를 적으려고 손에 펜을 쥐고 있던 직원들은,
어느새 노래에 빠져 도웅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느낌 가는 대로 아무 단어나 뱉어가면서 부른 건데 듣기에 괜찮으려나?’
키워드가 되는 단어들만 중요한 곳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거의 즉석에서 떠오르는 대로 허밍처럼 불렀던 보컬 가이드.
제대로 써진 가사가 아니라 도웅은 살짝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본능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멜로디는 상당히 단조로운데···.’
그러나 담담하게 느껴지는 노래의 절제된 감정.
도웅의 노래를 듣던 최 과장은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둠 속에 어떤 길을 걷고 있는 한 남자.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그는 열심히 한 걸음씩 내딛고 있지만,
그가 걷고 있는 길엔 이정표도 없었고,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모습은 자신의 스물이고 청춘이었다.
‘그래, 맞아. 나도 그 나이 때에는 그런 혼란과 불안을 겪었었지.’
사실 그의 20대는 상당히 평범한, 아니 풍요로운 축에 속했었다.
부모님의 용돈을 받으며 대학에 다녔고,
1학년 때 실컷 놀아도 보고 학점을 따기 위해서 열심도 해보았던 그런 한때.
하지만 이 노래를 듣다 보니 혼란을 겪었던 찰나의 기억들이 부풀어 올라,
마치 자신이 이 노래의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었다.
그 순간.
-이 낯선 길 위에서 어떻게-.
후렴에서 고음이 터지면서 고뇌하는 화자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최 과장은 동시에 우수에 젖은 눈빛이 되었다.
노래 속 인물과 함께 고뇌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나래 대리 역시 노래 안의 갈림길에 푹 빠졌다가,
다른 직원들이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후후, 도웅 씨가 작곡한 곡을 넣자고 거세게 몰아붙였던 보람이 있네.’
도웅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맙다는 눈짓을 해 보였다.
성공을 예감한 것이었다.
이윽고 타악기 소리가 잦아들고 회의실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
적막이 깨지지 않은 회의실 안에서 도웅이 가장 먼저 입을 뗐다.
“제가 준비해온 곡은 여기까지입니다.”
그제야 노래가 전달해준 혼란의 감정 속에서 빠져나온 직원들이,
지금까지 감상을 적어넣던 자신의 종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웅의 곡에 대한 감상은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았다.
‘뭘 적을 틈도 없이 빠져들어 버렸네.’
그때 팀장이 도웅의 이름을 불렀다.
“도웅 씨···.”
“네?”
“혼자 이런 곡을 만들어왔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그녀가 약간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규성 작곡가가 도웅 씨한테서 봤다는 가능성이란 거, 제가 언뜻 본 것도 같아요.”
팀장의 칭찬에 순간적으로 도웅은 긴장이 풀렸다.
“이 정도면 성적도 어느 정도 나오지 싶은데요?”
도웅의 단독 작곡에 대해 가장 우려를 표했던 최 과장이 뒤이어 말했다.
“근거는 없지만···. 미니 앨범 네 곡 중에 한 곡으로 넣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너무 냉철하게 반대했던 것이 머쓱한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그의 주변에 있던 누군가 말했다.
“이 노래 자체가 근거죠, 뭐.”
마지막으로 회의를 정리하기 위해 팀장이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이미 세 곡은 다른 작곡가들에게 의뢰해 둔 상태고, 나머지 한 곡을 여기서 결정할 예정입니다.”
그는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리면서 말했다.
“그럼 오늘 들었던 데모 곡 중, 가장 좋았던 곡을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이 정도 가능성이면 언젠가 터지는 날이 올 거야.’
실무진들이 도웅이 보여준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었다.
**
사무실로 돌아온 직원들.
최 과장은 자신의 의자에 풀썩 눌러앉으며 얘기했다.
“아까 그게 이제 갓 스물 될 사람이 만든 곡 맞아?”
그가 놀랍다는 듯이 이나래 대리를 향해 물었다.
“아니, 어떻게 노래에 그 시기를 겪어본 사람의 고찰이 담겨있냐고. 거참.”
“그러게요. 저도 참 놀라워요.”
“근데 이 대리는 도웅 씨 가능성을 어떻게 알아보고 그런 안건을 낸 거야? 단독으로 작곡한 건 이 대리도 들어본 적 없을 거 아니야.”
그때 들어온 팀장이 이나래 대리 대신 답을 해주었다.
“그런 게 바로 제작팀으로서의 통찰력이 아닐까요? 이 대리,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저 도웅을 위해 안건을 냈을 뿐인데 일 잘하는 취급을 받다니.
이나래 대리는 뒷걸음을 치다 만 원짜리 지폐를 주운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다시 돌아온 점심시간.
그녀는 모니터링 겸 도웅의 OST에 대해 검색했다.
몇 개의 블로그 글이 전부였지만, 이나래 대리는 그중 하나를 클릭해서 반응을 살폈다.
-짝사랑해 본 사람은 이 느낌 뭔지 알 거예요. 여주가 돌아서는 장면에서 이 노래 나오는데 맴찢. 그나저나 음색 완전 내 스타일이라 찾아보니 가수에 대한 정보는 나오는 게 없네요. 신인인가?
ㄴ 마은율? 누굴까요?
ㄴ 검색해봐도 일반인들 사진밖에 안 나와요.
ㄴ 이러면 더 궁금해지는뎈
OST를 부른 판타스타의 연습생 마은율에 대해 궁금해하는 반응이었다.
“음···. 이거 도웅이가 작곡한 거란 건 아무도 모르는 건가.”
이나래 대리는 사람들이 조금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아래에 있던 글을 클릭했다.
-제가 드라마보다 ‘반쪽짜리 사랑’이라는 OST에 꽂혔는데요! 이 곡의 작곡에 무려 남도웅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ㄴ 오엥? 남도웅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ㄴ 제가 아는 그 남도웅이요?
ㄴ 헐···. 다음 주에 수능 보는 그 남도웅?
그러나 사람들이 도웅이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보다,
다른 한 가지 사실이 이나래 대리의 눈에 꽂혔다.
“수능 보는 남도웅···? 아, 맞다!”
이럴 때 도웅의 나이가 실감 나는 이나래 대리였다.
**
“드디어 최종 가사가 왔구나.”
유명 작사가가 만든 가사가 도웅의 메일을 통해서 들어왔다.
“몇 번씩 피드백을 주고받은 보람이 있네. 좋아, 마음에 들어.”
도웅은 곧바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도웅의 작업 속도는 조금 빠른 편이었다.
판타스타가 정식으로 곡을 의뢰한 세 명의 작곡가들은 아직도 한창 작업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동안 수능을 봐야 하니까···.”
그래서 작업 속도를 조금 빠르게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부할 시간을 조금 확보하기 위해서.
곡을 쓰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전부 도웅의 역량에 달려있었으니까.
그렇게 셀프 디렉팅까지 하여 녹음까지 마친 후,
“단순한 안무가 살짝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노래를 듣던 도웅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지하의 연습실로 내려갔다.
안무팀에 요청하기 전에 스스로 느낌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웅이 바라는 것은 거의 제스쳐 수준으로 단순하게 느낌만 줄 수 있는 안무라 사실 혼자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하 연습실.
옆에서는 한창 데뷔를 준비 중인 사파이어가 연습하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원, 투, 쓰리, 포.
도웅은 조용히 그 옆방으로 들어가 빈 연습실의 불을 켰다.
그리고 거의 완성본에 가까워진 자신의 노래를 틀었다.
그렇게 살짝 제스쳐를 넣어가며 느낌을 보고 있는데,
옆방에 있던 추도진 안무가가 문을 두들기며 들어왔다.
“도웅 씨, 뭐해요?”
“아, 선생님. 이번 제 새 앨범에 들어갈 곡에 약간 안무가 들어갔으면 해서 먼저 느낌만 보고 있었어요.”
“그래요? 그럼 내가 한번 봐줄까요?”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추도진 안무가는 노래에 맞춰 도웅의 동작을 유심히 살폈다.
“이거 그 곡이죠? 도웅 씨가 만들었다는 곡.”
“네, 맞아요?”
“···좋은데?”
그는 도웅의 안무보다 노래에 놀라 정신이 쏠린 듯했다.
그러다 곧장 정신을 차리고 도웅의 안무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었다.
그 시각, 옆방.
나이가 가장 많아 리더로 지목된 마은율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제 다 했으니까 내가 선생님 모셔온다?”
“응. 그동안 우린 쫌만 쉬자.”
거의 동고동락하다시피 트레이닝을 받으며,
부쩍 친해진 멤버들이 널브러지며 답했다.
그렇게 휴식을 즐기기를 잠깐,
금방 돌아올 것 같던 마은율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막내인 래퍼 로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 언니 또 어디로 샌 거야.”
“같이 찾으러 가보자.”
마은율이 엉뚱한 구석이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 가장 어른스러운 백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으로 나서니 마은율이 옆방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로다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여기서 뭐 해!”
“쉿.”
마은율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이거 남도웅 선배 신곡인가 봐.”
남들이 있는 곳에서는 이제부터 선배라는 호칭을 붙여야 했다.
그러고 보니 문 틈새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와, 우와.”
“나도 들을래.”
나머지 멤버들도 후다닥 틈새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댔다.
막내 로다가 넋을 놓고는 말했다.
“노래 좋다아.”
“부러워···. 우리 노래는 언제쯤 나오는 걸까?”
“···이건 남도웅 선배가 직접 만든 노래일걸?”
마은율의 얘기에 멤버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로?”
“우와 멋있다···.”
그렇게 노래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멤버들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그 순간.
“으악.”
멤버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중심을 잃은 마은율이 문을 밀쳐버렸다.
그 덕에.
“너희들 거기서 뭐 하니?”
추도진 안무가가 그들을 발견했다.
멤버들은 자연스레 도웅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
쌀쌀한 바람이 부는 11월의 아침.
도웅은 일찍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엄마가 정성을 담아 싼 도시락통을 챙겨주며 말했다.
“네가 대학에 안 갈 걸 아는데도 왜 엄마 가슴이 이렇게 떨리는 거니.”
“수능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엄마.”
“너는 꼭 수능 쳐본 사람처럼 말한다?”
“···갔다 올게.”
오늘은 드디어 수능을 보는 날.
도웅은 모든 스케줄을 미리 마쳐놓고,
일주일간 지금까지 정리해 놓은 오답 노트를 다시 훑어보았다.
1층으로 내려가니 심정남의 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시험장소로 운전을 해 주는 동안 심정남은 심경이 복잡해보였다.
“도웅 씨, 고3 자식을 둔 심정이 이런 걸까요?”
“형, 아직 결혼도 안 했으면서 무슨 소리예요.”
“허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 그리고 도웅 씨, 이거.”
심정남이 내민 것은 합격을 기원하는 찹쌀떡과 엿 따위의 것들이었다.
“어제 이미 팬들한테 많이 받았겠지만, 이나래 대리님이랑 같이 준비한 겁니다. 시험 잘 보십쇼.”
“감사합니다.”
두 번째 보는 수능이지만 도웅은 도착 장소에 가까워갈수록 긴장이 커졌다.
지난 생에서는 대충 남들 하는 만큼만 했었다면,
이번엔 학교에 다니는 동안 본분에 열과 성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점수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걸로 학창 시절의 종지부를 찍는 느낌이랄까.’
도웅은 일부러 심하게 시험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이만치 일찍 왔으면 학생들한테 방해될 일은 없을 겁니다.”
심정남도 호언장담하는 가운데, 내비게이션이 도착 안내음을 울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심정남.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 부지런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이미 정문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동그랗게 몰려 누군가에게 셔터를 터트리고 있는 모습.
심정남이 고개를 길게 빼고 살피더니 말했다.
“저기 누가 있는데요?”
도웅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뜻 보이는 탈색한 노랑머리에 길쭉한 키.
반반한 외모의 그 남자는,
도웅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1학년 때 밴드 동아리 입단을 두고 경쟁을 했던 동급생.
“윤정후···.”
“누구요?”
기자들 가운데서 즐기듯 손을 흔들고 있는 그 남학생은,
현 뉴보이즈의 멤버, 윤정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