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
011. 이건 진짜 사기야.
뜨거웠던 ‘데이콘’ 밴드 오디션이 끝난 후,
아이들은 한동안 도웅에게 붙어 자신의 감탄을 쏟아냈다.
이전에 교실 앞에서 노래를 불렀을 땐 약불에 달궈지듯 은근했던 아이들의 관심이,
마치 강불에 순간적으로 튀겨낸 팝콘 마냥 강하게 튀어 올랐다.
특히 이번에 부른 곡이 소리가 강한 락 장르였기 때문인지,
주로 남자아이들이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남도웅, 노래는 언제부터 시작한 거냐?”
“가수가 꿈이라며?”
“솔직히 얼마나 할지 보러 왔는데 가수 레알 가능.”
“마지막에 ‘feel love!’ 할 때 개 지렸다 진짜.”
그들은 다소 거칠게 자신의 관심과 감탄을 표현했다.
‘반응이 격해서 그렇지 감상이 확 와닿긴 하네.’
“축제 때도 기대할게!”
“잘 가 남도웅!”
그들은 우렁찬 소리로 인사하고 나서는,
이 따끈한 소식을 전하러 각자의 반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교실에 돌아와 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까지,
도웅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명이 있었다.
“솔직히 밴드가 괜찮을까 싶었거든?”
옆에서 걷던 지형식.
“근데 뭐야 진짜? 왜 락도 이렇게 잘 부르냐고. 너 나 몰래 어디 학원이라도 다녔냐?”
“학원은 무슨.”
“갑자기 발라드도 잘해, 락도 잘해. 볼 때마다 아주 새로워.”
형식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절친한 녀석이 이상함을 느꼈을까 뜨끔하던 와중, 형식이 대뜸 소리를 질렀다.
“Come on! Come on! Come on! 야히 짜식. 아까 3단으로 고음 치고 올라갈 때 분위기 장난 아니었다니까?”
형식은 조금전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흥분에 겨운 듯 말했다.
다행히 도웅의 실력에 감탄한 뿐인듯 싶었다.
“진짜야. 다들 하나같이 헤엑?! 이러면서”
“또 오바한다.”
형식은 손으로 입을 가린 누군가의 표정을 따라 해 보였다.
도웅은 노래에 대한 반응들을 전해 듣는 게 아주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실시간으로 주접을 구경하면서 교문을 나서던 참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됐을지 확인을 하려는 데 어쩐지 주머니가 허전했다.
“아 휴대폰.”
“왜, 없어?”
“어디다 떨궜나 보다.”
노래의 가사를 되새기려 동아리방에서 꺼냈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나 다시 가봐야겠다. 먼저 가.”
“그래. 나 오늘 과외 있어서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다. 내일 보자!”
형식은 있지도 않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어디 있지.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데.’
초창기 스마트폰 모델이라 도웅에겐 구식이나 다름없었지만,
당장 메가 플레이 어플을 사용하려면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여기도 없네.’
걷던 길을 돌아 교실까지 가 보았지만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남은 곳은 동아리실 한 군데였다.
**
핵심 멤버들만 남은 ‘데이콘’ 동아리방.
조한성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어땠어?”
짧은 물음이었지만 이런 식의 대화 방식은 익숙한 것이었다.
먼저 운을 뗀 것은 개중 발언권이 센 기타리스트 유지필이었다.
“확실히 남도웅이란 애 실력이 의외야. 기본 발성이 탄탄하면서 고음도 제대로였고.”
“좀 하드한 노래하기에도 무리 없을 것 같아.”
“맞아. 실력 면에서는 다들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도웅의 그 시원한 고음이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밴드가 곡을 정할 때 보컬이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
아무리 각 세션들이 뛰어나도 보컬이 소화할 수 없는 곡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 높은 키의 노래를 진성으로 소화할 정도면 어떤 곡이든 시도는 해볼 수 있다는 얘기야.”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곡 소화력이 높은 보컬이야말로 밴드 멤버들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각자가 원하는 음악이 있고 그걸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으니까.
‘언젠가 그 애랑 같이 합주할 수 있었으면.’
음악에 욕심이 있는 이들은 벌써부터 도웅과 함께 연주할 날을 상상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런데 당장 축제가 이 주일도 안 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곧바로 무대 올라갈 수 있는 윤정후가 낫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걘 외모에도 이점이 있고 그걸 잘 이용해서 관객의 이목을 끌 줄 아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쇼맨십으로 1학년 세션의 부족한 부분들을 커버 쳐줄 수 있을 것 같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최소한의 퀄리티를 완성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이 1학년들의 첫 공연이었고, 세션들의 엉성함만 부각될 수도 있는 일.
그런 점에서 윤정후는 관객들의 시선을 저한테 끌어오는 재주가 있었다.
‘같이 음악을 해보고 싶었는데 의견이 갈라져서 안타깝네.’
언더에서 이미 객원 기타로 활동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본 유지필이 봤을 때 도웅은 분명 포텐을 가진 보컬이었다.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찾아 무대 경험을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 터지는 날이 올 그런 보컬.
그때 조한성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일학년 무대 완성도가 너희한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게 우리 무대보다 중요한가?”
어딘가 날이 서있는 리더의 얘기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무대에서는 우리가 빛나야 돼. 일학년 그 누구도 아니고 우리.”
그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탁탁 굴렀다.
“스포트라이트를 우리가 받아야 한다고.”
노골적인 속내.
하지만 모두가 침묵했다.
동시에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를 뜻했다.
밴드로 무대에 서는 이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홀로 궤변에 피로감을 느낀 유지필이 물었다.
“그래서 네가 뽑고 싶은 게 누군데?”
“남도웅. 얼굴에서 찐따 냄새가 풀풀 나는 게 우리를 돋보이는데 갖다 쓰기 좋겠어.”
유지필은 순간 할말을 잃었다.
물론 조한성에게도 귀가 있었다.
분명 도웅의 노래 실력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 부족.
도웅은 고음에만 집중하기에도 버거워 보였고,
거기에 엉성한 1학년들의 연주까지 합쳐지면,
‘아무리 노래를 잘 하더라도 오합지졸이 될 가능성이 높지.’
완성도만큼은 노련한 2학년들의 발 아래 둘 수 있었다.
게다가 두꺼운 뿔테안경에 딱 범생이 같은 외모까지,
남도웅은 자신을 받쳐줄 용도로 아주 적격이었다.
‘축제의 주인공은 내가 돼야 해.’
조한성은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유지필은 생각 이상으로 졸렬한 친구의 사고방식에 허탈함을 느꼈다.
그래도 남자답던 조한성이 이런 비열함을 드러내보였다는 것은 딱 하나.
견제할 상대가 나타났음을 뜻했다.
‘그 애한테 이 동아리는 너무 그릇이 작아.’
도웅은 갓 헤엄을 시작한 잔챙이.
아직 그 실력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무엇으로 자랄지 모르는 가능성 그 자체였다.
작은 어항 속에선 금붕어 밖에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도웅의 합류를 바라는 욕심이 싹을 틔웠다.
함께 음악을 해보고 싶은 마음.
그의 얼굴에 자조적인 웃음이 감돌았다.
“···”
“···”
같은 시각, 문밖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하나는 처음부터 문밖에 기대 있던 마은율.
다른 하나는 휴대폰을 가지러 왔다가 얼떨결에 서있던 남도웅이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찐따 냄새?’
도웅은 적나라한 조한성의 속내에 벙쪄버렸다.
‘저런 빠다 냄새나게 생긴 놈이!’
도웅은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유치한 감정에 같이 휩쓸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붙었으니 별을 모으는데 무대만 이용하면 그만이니까.
“결과도 나왔으니 이제 슬슬 나가자.”
그때 동아리방 안에서 마무리하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자 마은율이 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여기.’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도웅의 휴대폰을 건넸다.
안에서 주웠다는 제스처와 함께.
둘은 멤버들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
“이건 진짜 사기야 사기.”
집으로 돌아온 도웅은 방 안에서 홀로 고개를 저었다.
“바로 신께서 내린 사기 능력!!!”
도웅은 신성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쫘악 벌렸다.
방금 전에 ‘아마추어 K의 발성법(D)’ 다운로드를 마쳤기 때문.
밴드 오디션에서 뜻하지 않게 쏟아진 별들 덕분에 공연도 하기 전에 다운로드를 할 수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오디션을 본 일은 잘한 것이었다.
.
발성법이 이제 온전한 자신의 능력이 되었단 사실에 도웅은 날아갈 듯 기뻤다.
“이제 완전히 내 거야!”
주체되지 않는 성취감에 도웅은 자기 자신을 껴안았다.
이제 두성 창법에만 몰두하면 됐다.
두성 창법의 완료율은 아직 30% 남짓.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사용해 본 것이었지만, 아주 뜨거웠던 반응.
이것을 다 익히기만 한다면 얼마나 더 화끈한 반응이 일지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도웅은 축제 무대의 수많은 사람들 앞에 노래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때 가슴 한편에 묵직이 미뤄뒀던 것이 올라왔다.
“데이콘은 이번 공연만 하고 탈퇴를 해?”
의도치 않게 데이콘의 오디션에 붙었단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썩 기쁘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조한성의 검은 의도를 알아버렸으니까.
“나를 들러리로 쓰시겠다? 그럴 수는 없지.”
조한성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두성 창법을 열심히 트레이닝 해서 한번 붙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실력으로 압살하고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되는 거니까.
“근데 그 녀석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 나도 뭐 외모로 그렇게 빠지지는 않는데···?”
도웅은 벽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췄다.
그러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왠지 그 녀석 꿍꿍이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야.”
스스로 무대를 잘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들러리를 세워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겠다는 사고방식.
그런 얄량한 사고방식은 음악의 본질에 대한 모독이기도 했다.
“사내자식이 정정당당히 음악으로 승부 볼 생각은 않고.”
게다가 그런 안하무인 함이라면 도웅을 뽑는데서 그 만행이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이거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어.”
그런 썩어빠진 사고방식은 한번 혼쭐을 내줄 필요가 있었다.
자만심이 드높다못해 부러질 듯 솟아있는 조한성.
그에게 쓴 맛을 보여주기 위해 도웅은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도웅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분홍 메모지, 요구르트, 음료수 캔.
잘생긴 사람들만 받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도웅은 조심스레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보았다.
-남도웅 어제 노래 잘 들었어!
가수돼도 우리 모른척하지 말깅 ^^
-네 노래 너무 좋음. 이거 마시고 축제 때 좋은 노래 기대할게♡
‘이거 하트··· 하트 아닌가?’
도웅은 이성의 관심이란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이들이 고등학생이란 것도 순간 잊고 설렜다.
원래 여자애들한테 하트란 후한 것인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던 때,
뒷장에 쓰인 ‘준혁’ 이란 남자 이름에 머리가 차게 식었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도웅은 쪽지가 붙었던 음료수 캔을 점심시간 형식에게 건넸다.
뭐든 모르고 먹는 게 좋은 법이었다.
그날은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까지 찾아와 도웅을 구경하고 갔다.
몰래 본다고 보는 거겠지만,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애들이 한 번에 너무 많아졌기 때문.
윤정후는 수업 시간 외에는 교실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 오디션에서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듯싶었다.
기다리던 하교 시간.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에서 빠져나가고 당번을 끝낸 도웅이 가방을 챙기던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도웅의 앞자리에 걸터앉았다.
“조한성 선배 재수 없지.”
장난스러운 표정의 마은율이었다.
“내가 봤을 때 그 선배 자뻑이 좀 심한 것 같애. 근데 진짜 짜증 나는 건 뭔지 알아?”
“뭔데?”
“그 선배 툭하면 나한테 동아리 들어오라고 했다는 거. 나를 뭘로 봤다는 거야?”
마은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까지 본 결과 마은율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아이였다.
어떨 땐 밝고 명랑하다가도, 혼자 있을 땐 특히 어두워 보이는 아이.
지금은 또 이런 명랑한 모습으로 도웅 앞에 너스레를 떨었다.
‘한제고 뮤즈인 마은율을 깔봤다니. 그 자식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야?’
우월한 은율의 외모만 떼놓고 봐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순간.
‘어? 이러면 되겠는데?’
도웅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마은율, 우리 조한성 선배한테 복수할래?”
도웅이 생각해도 기가 막힌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