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0)
110. 다행히 환영할 만한 그런 문제.
도웅은 윤정후를 보며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전에도 윤정후는 마지막 학기에 아이돌로 데뷔했었어.’
뉴보이즈라는 그룹.
회귀 전에도 윤정후는 그 그룹에서 센터이자 메인 보컬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도웅은 거친 삶의 현장에 속해있었고.
졸업 후 값이 저렴한 국밥집에서 끼니를 때우다가,
TV에서 윤정후의 얼굴을 알아보고 잠시 넋이 나갔었던 그런 기억이 있었다.
화려한 무대조명을 받으며 절도 있는 춤을 추던 윤정후의 모습이,
오래된 국밥집의 낡은 형광등 아래 꽁꽁 언 몸을 국밥으로 녹이던 자신과,
너무도 대비되었던 그런 기억이.
‘그때는 꿈 없이 노력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을 사무치게 후회했었지.’
학창 시절부터 꿈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했었더라면.
일찍이 가수에 도전했고, 노력했다면.
그랬다면 지금 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는 그런 후회들.
그래서 이번엔 후회 없이 노력했다.
음악도, 공부도.
몸을 혹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몸을 혹사 시키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뭐든 때가 있는 법이었고 학창 시절은 생각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이번 생은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거야.’
잠시동안 국밥집에서 봤던 뉴보이즈의 대표곡이 도웅의 귓가를 맴돌던 가운데,
심정남이 도웅을 추억 속에서 꺼냈다.
“이제 내리시죠.”
심정남이 먼저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 떨지 마시고 평소처럼만 하시면 잘 보실 겁니다.”
“고마워요, 형.”
“그럼 기자들 있는 정문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동시에 알싸한 바람이 도웅의 양 볼을 감쌌다.
심정남이 앞장서 도웅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며 이동했다.
점점 시끌벅적한 기자들의 소리가 귀에 들어왔고, 윤정후의 얼굴이 좀 더 자세히 보였다.
‘1학년 때의 일화들은 별개로 쳐도, 확실히 어린 나이에 꿈을 이뤘다는 사실은 박수 쳐줄 만한 일이야.’
물론 삼촌 기획사에서 데뷔한 거긴 하지만,
도웅은 그마저도 아무 노력이 없었다면 안 될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자들의 관심을 받는 이 상황이 썩 즐거운 듯한 윤정후.
약간 상기된 그의 표정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들이 윤정후한테 정신이 팔린 사이에 나는 조용히 지나가면 되겠는데?’
도웅은 그런 생각을 하며 포근한 목도리에 얼굴을 조금 더 파묻었다.
그때 윤정후가 뭐라고 기자들을 향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저는 당당하게 수능을 봐서 대학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자신 있는 윤정후의 말투.
실은 그룹으로 활동하며 이렇게 많은 기자에게 단독으로 관심을 받는 게 드문 일이라,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그래서 대중들의 호감을 살 만한 말을 골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오.”
“자신 있으시네요.”
자신의 말을 경청하며 반응하는 기자들.
윤정후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스타가 된 도웅에게 친구들의 관심을 빼앗기고 자격지심을 느끼며 노력한 지 어언 2년.
이제 자신도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본투비 관종.
그게 윤정후의 본질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어? 남도웅이다!”
무심코 뒤를 돌았던 기자 하나가 도웅과 심정남을 발견한 것이었다.
“남도웅 씨!”
“여기 좀 봐주세요.”
“수능 보러 온 소감이 어떠십니까?”
기자들이 마치 짠 것처럼 모두다 도웅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윤정후가 에피타이져였다면 남도웅이 메인디쉬였으니까.
갓 신인인 윤정후한테 저렇게 많은 기자가 관심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사실 판타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윤정후는 그 사실을 몰랐다.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일순간 휑하니 남겨진 윤정후가 기자들이 몰려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도웅···?”
하필이면 또 이럴 때.
관심을 몽땅 빼앗긴 윤정후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안 좋은 기억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듯한 그런 불안 때문에.
**
도웅은 심정남의 도움으로 빠르게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정된 교실에 들어온 도웅은 자신의 수험번호가 적힌 책상을 찾아 앉았다.
‘오, 다행히 앞자리네.’
일부러 튀지 않는 복장과 머리를 하고 왔기 때문에,
아마 뒤에 있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요약해 놓은 노트에 집중하고 있던 때,
학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채워나갔다.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수리영역이었다.
모르는데 쥐어짜느라 고역이었던 과거와 달리,
아는 대로 푸는 동안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찾아온 점심시간.
다른 반에 배정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교실이 살짝 시끌벅적해졌다.
도웅은 조용히 엄마가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통을 열었다.
윤기가 흐르는 계란말이에 칼슘을 보충해줄 멸치볶음.
소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달짝지근한 멸치볶음 한 젓갈을 입에 넣었을 때,
뒤에 있던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는 여기 뭐하러 온 거야?’
‘어차피 연예인 특별전형 같은 걸로 대학 갈 거 아닌가?’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를 대학 입시.
그래서 한껏 예민해져 있을 고3들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던 도웅은,
괜히 따져 일을 크게 만드는 것보다는 조용히 식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때 누군가 턱. 하고 자신의 도시락을 도웅의 책상 위에 올렸다.
“휴, 여기 처박혀있었네. 의리도 없이 먼저 먹고 있냐?”
도웅의 절친 형식이었다.
“맛만 봤다. 그냥 맛만.”
도웅이 씩 웃자 형식이 자리에 앉았다.
“국어랑 수리 잘 봤냐? 잘 봤겠지.”
“그냥 하는 거지 뭐.”
“거짓말 치지마, 짜식아.”
형식이가 도시락통 뚜껑을 열면서 역정을 냈다.
“너같이 공부 잘하는 녀석은 나 같은 애들 심정 모른다.”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거저먹고 싶은 심정?”
“···어떻게 알았냐?”
왜 모르겠는가.
도웅도 회귀 전 수능을 볼 때 딱 그런 심정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학생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쟤 공부 잘하나 본데?’
‘···.’
‘휴, 세상 진짜 불공평하다.’
이번엔 세상 탓을 하는 녀석들.
그래, 지금 뭐라도 탓하고 싶은 마음인 거 안다.
이제 신경 끄고 밥이나 먹자.
마침 형식이가 도시락 세팅을 끝냈다.
그러자 자태를 드러낸 갈비찜과 잡채, 육전 등등.
휘황찬란한 반찬 앞에 도웅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오늘 명절이야?”
“···마지막 만찬.”
형식이가 침울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엄마가 내 성적을 알게 되면 이제 난 풀죽도 못 얻어먹을 거야.”
그때 갑자기 떠오른 형식의 과거.
‘맞아, 그때 형식이가 사회과목 하나를 밀려써서 대학을 확 낮춰 썼었지.’
그래서 도웅은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형식아.”
“왜 이름을 진지하게 불러, 무섭게.”
“너 사회탐구에 윤리 과목 골랐지.”
“응, 윤리는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과목이지. 내가 아주 윤리적인 사람이잖냐.”
형식이가 육전을 씹으며 모처럼 자신 있는 표정을 해보였다.
하지만 도웅은 장난끼를 싹 빼고 얘기했다.
“너, 원하는 학교 가고싶으면 윤리 마킹할 때 밀려썼는지 꼭 확인해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밥 잘먹다가.”
“확인, 체킹, 두 번 하고 세번 해.”
“아, 알겠어.”
형식이가 당황스러운지 눈꺼풀을 껌뻑였다.
그렇게 도웅은 일부러 적당한 양을 조절해서 먹었고,
형식이는 정말 마지막 만찬인 양 도시락통을 싹싹 비웠다.
다시 시작된 시험 시간.
이번엔 영어 영역이었다.
이번 생엔 특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수능 끝나면 회화 과외도 받아야지.’
팝송을 부르거나, 혹은 혹시 나중에 가사라도 쓰려면 영어는 잘하는 편이 유리할 테니까.
그렇게 문제를 풀고 답을 적는 것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찾아온 마지막 시험 시간.
딱 10분 전 정갈하게 마킹한 OMR카드를 감독관이 걷어갔고,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이전에 수능이 끝났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지금은 가볍다.
이걸로 원 없이 학창 시절의 종지부를 찍었다는 그런 느낌.
‘잘 가라, 나의 두 번째 십 대.’
그렇게 학교 밖으로 나가던 때, 바닥이 쿵쿵대더니,
급하게 뛰어온 형식이가 도웅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도웅이 놀라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와, 나 진짜 십 년 감수했다. 너 아니었으면 윤리 답안지 밀려 쓴 거 그대로 낼 뻔했어.”
형식이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근데 어떻게 알았냐? 내가 밀려 쓸 거.”
“네가 평소에 성격이 급하니까 그냥 말해본 거지.”
도웅이 대충 둘러댔다.
그러자 형식이가 씨익 웃으면서 등을 툭툭 쳤다.
“역시 넌 나를 너무 잘 알아. 아무튼 고맙다, 짜식아!”
도웅은 일부러 멀찌감치에서 형식이와 인사를 마친 후 떨어져 걸었다.
정문에 다다르자 도웅에게 몰려드는 기자들.
“도웅 씨, 시험 잘 보셨습니까?”
“성적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희망하는 대학이 있나요?”
도웅은 그들의 질문에 적당히 답해주고,
심정남의 도움을 받아 차량에 올라탔다.
그래서 이제 장비를 정리하려던 기자 몇이 고개를 올리다,
노란 머리의 윤정후를 발견했다.
“어, 저기 아까 그 아이돌 나온다.”
이번엔 일부러 도웅의 뒤에 나온 것이었다.
계획대로 윤정후가 다시 기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그는 멀어져가는 도웅의 차량을 보면서 생각했다.
‘남도웅, 두고 보자. 내가 곧 너를 추월해 줄 테니까.’
연예계에서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 있는 것.
윤정후는 도웅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말겠다 다짐하며 카메라 앞에 웃어 보였다.
그 시각 심정남이 운전하고 있는 차 안.
부우웅-.
“고생했습니다. 댁으로 가시죠.”
심정남이 도웅에게 따듯하게 말했다.
도웅은 심정남이 준비해둔 음료 한 모금을 넘기자마자 물었다.
“형, 작곡가분들한테 맡긴 곡은 나왔어요?”
“네, 다 나왔답니다.”
“그럼 들어보러 회사로 가야죠.”
“하지만 오늘은 좀 쉬시는 게···.”
심정남이 백미러를 통해 흘끗 도웅을 보았다.
하지만 도웅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수능은 끝났으니, 다시 제가 할 일을 해야죠.”
이제 도웅에게 남은 것은 음악을 열심히 하는 것뿐.
심정남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픽 웃었다.
‘어떻게 한번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도웅의 나이는 어렸지만 그런 면이 가끔은 존경스러울 때가 있었다.
심정남이 핸들을 꼭 쥐고 말했다.
“도웅 씨, 그럼 판타스타로 모시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도웅이 가는 길에,
마침 파란색 신호등이 켜졌다.
**
자작곡을 제외하고 미니 앨범에 실릴 세 개의 곡.
도웅은 작곡가들과 함께 음반 녹음에 집중했다.
한창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도웅에게, 작곡가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네, 좋습니다.”
하지만 도웅은 아직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 방금 거기 끝 음 처리 다시 한 번만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도웅이 자신의 곡에 열의를 보이자 그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작곡가가 옆에 있던 엔지니어에게 말했다.
“웬만하면 요즘 젊은 친구들은 오케이 사인만 받고 부리나케 부스에서 빠져나오거든.”
“또 시킬까 봐요?”
“그렇지.”
그가 턱 부근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어 말했다.
“저런 태도는 자기 노래에 프라이드 있는 프로들한테서나 찾아볼 수 있는 건데.”
“다른 곡 녹음할 때도 거의 저런 식으로 해요. 그래서 저도 바짝 긴장하게 된다니까요.”
“도웅 씨는 앞으로도 잘 될 수밖에 없을 거야.”
그가 흡족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그렇게 며칠간 도웅은 모든 곡의 녹음을 마쳤다.
도웅이 할 일의 반절은 지나간 것이었다.
“이제 세션 녹음하고 믹싱, 마스터링을 하고···. 그다음은 자켓이랑 뮤직비디오 촬영만 남았네.”
도웅의 곡은 내년 초에 공개될 예정이었고,
지금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었다.
연말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들.
귀가 깨질 듯 차가운 겨울,
크리스마스,
그리고 방송 3사에서 주최하는 가요축제들.
몇 년 전만 해도 가요 시상식이었으나,
시상 선정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과열 경쟁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경쟁 없이 함께 즐기는 축제 형식으로 변경이 되었다.
“나중에 시상식이 다시 부활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몇 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요 축제에 초대받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 해에 두드러졌던 가수들만 초대받을 수 있는 거니까.”
특별하게 꾸며지는 화려한 무대와 상당히 높은 대중적 주목도.
도웅도 내심 거기에 참여해 연말을 바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활동하고 나서 가요계 총결산을 집에서 보게 된다면 얼마나 씁쓸하겠는가.
이건 연예인 당사자가 되어보니 알 것 같았다.
화려한 연말 무대 뒤에 가려진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한 해에 활동하는 것만 몇백 팀에 이르는데,
정작 한 방송사당 연말 무대에 초대받는 것은 서른여 팀뿐이었으니까.
“그래도 한 군데 정도는 연락이 오겠지···.”
하지만 도웅이 지난 앨범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는 벌써 반년이나 지나갔고,
그 이후로 수많은 가수들이 데뷔와 컴백을 반복했을 테니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심정남이 도웅이 콕 박혀있던 작업실의 문을 두들겼다.
“저, 도웅 씨. 연말 스케줄 관련해서 얘기할 게 있는데···.”
연말 스케줄이란 단어에 도웅이 의자에 뉘었던 몸을 일으켰다.
“가요 축제 측에서 섭외가 왔는데 말입니다.”
도웅의 눈은 기대감에 반짝이는데,
심정남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나싶었다.
그런데.
“방송국 세 군데에서 몽땅 연락이 와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환영할 만한 그런 문제였다.
도웅은 공식적으로 올해 활동을 인정받은듯한 희열에 손끝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