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2)
112. 가장 필요했던 것.
“지연 측에서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보고 싶답니다.”
“네, 스케줄 잡아주세요.”
“그쪽 소속사로 와줄 수 있냐고 하던데요? 여기서 차로 얼마 안 걸립니다.”
심정남의 말에 도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그쪽으로 가는 거로 해요. 어려운 거 아니니까.”
도웅이 미끼를 던지자 다행히 그쪽에서 반응했다.
도웅은 그녀가 가진 춤에 대한 남다른 욕망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욕심을 조금 건드린 것뿐이었다.
지연이 스페셜 무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확실히 인상적이었어.’
도웅의 머릿속엔 강력하고 매력적인 컨셉으로 춤을 추고 있는 지연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솔로로서 이제야 자신에게 맞는 무대를 선보이며 갓 활동을 시작한 지연.
그녀는 이제 날개를 단 것처럼 날아오를 일만 남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녀가 속해 있던 그룹인 바람소녀는,
바람에 흩날릴 듯 가녀린 소녀들을 컨셉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갓 세상에 내보이기 시작한 춤에 대한 욕망이 아마 속에서 들끓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심정남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쪽에서 원하는 퍼포먼스가 어떤 것인 줄 알고 다 맞추겠다고 합니까.”
“뭔진 몰라도 아마 멋진 무대가 나올 거에요.”
도웅이 호언장담을 했다.
춤에 관해서는 손에 꼽힐만한 가수 지연.
무대의 퀄리티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얼마나 높은 난이도를 원하느냐가 관건이지.’
도웅의 현재 춤 수준은 따지자면 중급 정도.
안무팀이 짜준 안무를 열심히 노력해서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정도였다.
‘그래도 멋진 무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때,
아직도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심정남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요, 형?”
“그··· 도웅 씨. 깜찍한 걸그룹 댄스 같은 거 추자고 해도 하실 겁니까? 저는 그건 반대입니다.”
“저도 그건 절대 싫어요.”
도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제서야 심정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지연의 소속사 QM의 연습실.
벽면에 붙은 거울을 보고 춤을 추면서 지연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일면식도 없는데 나한테 무대를 맞춰주겠다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살짝 혹한 것은 사실이었다.
무대 위에서 마음껏 춤출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
걸그룹일 때는 청순가련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쥐어진 요술봉을 흔들어야 했으며,
솔로인 현재는 직접 안무를 짜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한참 소프트한 수준의 무대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대중의 입맛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니까.’
그녀는 지역에서 춤으로 날리던 사람이었는데,
가수가 된 이후로 오히려 그 실력을 썩히고 있는 것이었다.
가요 축제의 스페셜 무대라고 하니 조금 더 자신의 기량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두려운 바람소녀 팬들의 비난.
지연은 갈팡질팡하는 마음으로 뒤쪽 소파에 앉아있던 매니저에게 물었다.
“언니, 남도웅 씨가 왜 나랑 꼭 무대를 하고 싶다는 걸까?”
“둘 중 하나겠지 뭐.”
“둘 중 하나? 뭔데?”
지연이 소파 쪽으로 가 물병을 손에 들었다.
매니저는 덤덤하게 휴대전화를 보면서 말했다.
“네가 무대 장인인 걸 알아봤거나, 아니면···.”
“아니면?”
“너한테 관심이 있거나.”
“에이, 언니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찾아보니까 아직 열아홉 살밖에 안 됐던데.”
“그래봤자 너랑 얼마 차이 안나.”
지연이 긴 생머리를 쓸어넘겼다.
“하긴, 내가 좀 어릴 때부터 활동하긴 했다.”
가수, 배우 할 것 없이 그동안 자신에게 추파를 날렸던 남자들을 생각하니 지연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럴 때마다 철벽같이 그들을 끊어내며 한 번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던 지연은,
관심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다.
“춤 연습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왜겠어? 네 얼굴이 너무 빛나니까 그렇지.”
“난 가수 오래오래 하고 싶어. 정말 만약 그런 거라면 가차 없이 거절할 거야.”
지연이 냉정한 투로 말했다.
그 순간 매니저의 휴대폰에 진동음이 울렸다.
“도착했단다. 남도웅 씨.”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 머금고 있던 생수를 꿀떡 삼켰다.
**
기다란 책상 하나가 놓여있는 회의실에 도웅과 심정남,
그리고 지연과 그녀의 매니저가 마주 보고 앉았다.
이 자리를 요청한 지연이 먼저 입을 뗐다.
“도웅 씨,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보니까 회사에서 멀지 않더라고요.”
그녀는 빙빙 돌리지 않고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저한테 그런 제안을 주신 이유가 뭐예요? 도웅 씨 정도 되면 저 아니어도 같이 하실 분들 많을 것 같은데.”
그녀는 도웅의 표정변화를 살피기 위해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만약 자신에게 퍼포먼스를 맞춰주겠다는 이유가 이성적 관심 때문이었다면,
적당히 얘기를 끊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시간 낭비는 질색이야. 그 시간에 춤 연습을 더 하는게 낫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도웅이 차분하게 말을 골라 내뱉었다.
“MBE 측에서 선배님이랑 같이하는 스페셜 무대 제안을 받고 나니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거든요.”
“그림이요?”
“네. 선배님의 솔로 무대처럼 멋진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그림이요.”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냥 환심사려고 하는 말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아리까리 하던 때,
도웅이 담백하게 진심을 담아서 얘기했다.
“저는 기왕 스페셜 무대를 할 거라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올 연말에 나올 수많은 무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그런 무대요.”
진중한 도웅의 표정에서 지연은 무언가를 느꼈다.
‘이건··· 진심이야.’
아이돌 생활을 하며 이제껏 철벽을 세워왔던 그녀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경계가 풀린 지연이 피식 웃었다.
‘내가 열아홉 상대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매니저 언니는 괜한 얘기를 해서 사람 신경 곤두서게···.’
그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지연도 도웅의 영상을 찾아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두 사람이 무대를 하면 꽤 근사한 그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마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거겠지.’
지연의 분홍빛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무대가 욕심이 나 자신에게 무작정 퍼포먼스를 맞추겠다 한 도웅이 문득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아직 연예계 때가 덜 탔네.’
뭐든 자기에게 유리하게 줄다리기하는 연예계에서,
이렇게 순수히 양보하겠다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도웅의 머릿속은 그렇게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지연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으니까.
‘어차피 무대는 같이 짜게 될 수밖에 없어.’
개인의 역량을 무시하는 환경이 답답해 바람소녀를 탈퇴한 지연이,
무작정 자기 스타일만 밀어붙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그녀의 흥미가 당기도록 한 것이었다.
“아무튼 저는 내년 초에 컴백을 앞두고 있어서, 정말 멋진 무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목표에요. 저희는 대중의 관심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말을 듣던 지연은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
바람소녀를 배신했다고 비난하던 팬들이 생각난 것.
‘괜히 스페셜 무대까지 나섰다가 욕을 먹진 않을까?’
그래서 최소한의 활동만 해오던 그녀는,
그 불안을 조심스레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런데 만약···. 그 스페셜 무대로 사람들의 욕만 먹게 되면요? 그럼 안 하느니만 못하잖아요.”
“멋진 무대를 보고 싫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자신보다 어린 도웅의 어른스러운 대답에 지연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때 도웅이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욕을 먹더라도 둘이 나눠 먹으면 훨씬 덜 아플 걸요?”
원하는 만큼 자신의 기량을 무대에 펼쳐볼 기회.
게다가 같이 욕을 먹어주겠다는 동생 같은 도웅 앞에서 지연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야.’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아오른 지연이 도웅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바로 연습실로 내려가서, 간단히 서로의 춤 실력 한번 볼까요?”
“네. 좋아요.”
결국 도웅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
나무 바닥에 전면이 거울인 연습실.
지연에게는 가장 익숙한 공간이었다.
도웅은 고개를 돌려 그 낯선 공간을 죽 살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으면···.’
군데군데 파이고 때 묻은 바닥.
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연은 곧장 휴대폰을 스피커와 연결했다.
그녀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터치하자 비트감이 느껴지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지연이 즉흥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웨이브를 타는 유연한 몸과,
리듬에 맞게 관절 단위로 튕기고 꺾는 움직임.
‘···팝핀인가?’
여성 댄서 중에서도 소화하는 이가 드문 고난도의 춤동작들이 연신 계속됐다.
어떤 퍼포먼스라도 소화할 수 있을 법한 높은 수준.
도웅은 지연과의 스페셜 무대에 기대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긴장이 됐다.
다음으론 도웅이 뭔가를 보여줘야 했으니까.
지연이 눈짓으로 도웅에게 신호를 줬다.
그래서 음악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난이도가 높은 춤은 아니지만 느낌이 있네.’
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으로 도웅과 함께 출 춤의 난이도를 그려보았다.
도웅이 춤을 마친 뒤, 지연이 슬쩍 어려운 동작 하나를 보여주며 말했다.
“도웅 씨, 혹시 이런 동작도 가능할까요?”
“한번 해 볼게요.”
도웅은 본대로 스텝을 밟으며 가볍게 팔다리를 움직였다.
아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곧잘 느낌을 내는 도웅.
지연은 흡족함에 입꼬리가 위로 당겨졌고,
동시에 스페셜 무대에 대한 기대감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올라오는 흥분에, 자신에게 모진말을 하던 악성팬들은 잠시 기억에서 잊혔다.
그녀는 도웅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도웅 씨, 번호 좀 알려주세요. 이제부터 서로 원하는 컨셉 같은 거 교환해요.”
**
거리감이 느껴지던 지연의 태도가,
함께 무대를 하기로 확정이 되자 적극적으로 변했다.
-도웅 씨, 이런 느낌은 어때요? https://www….
도웅은 곧바로 영상을 확인했다.
몸으로 바닥을 훑고 날아다닐 듯 곡예를 부리는 여러 명의 남자들.
-···비보잉이요?
-아, 그거는 너무 나갔죠? 아니면 이런 건요?
자신에게 퍼포먼스를 맞추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열심히 도웅의 의견을 묻고 있는 지연이었다.
도웅의 계산이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쉴새 없이 톡을 보내는데,
도웅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한가지였다.
“일단 보는 사람이 즐거워야 할텐데. 그러면서도 강렬했으면 좋겠고.”
도웅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최고의 무대.
그래서 결과적으로 방송 3사 중에서 도웅과 지연의 무대가 가장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연이 보내고 있는 것들은 그저 ‘춤을 잘춘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뿐이었다.
“그런데 나도 뾰족하게 떠오르는 게 없네.”
춤으로는 능력치가 더 높은 지연에게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
직접 안무를 짜기에도, 먼저 어떤 춤을 제안하기에도 도웅의 실력이 비교적 부족했다.
“아, 이거 답답하네.”
도웅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다른 무대들을 찾아보는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도웅은 종일 모니터 속에 빠져 컨셉 서치를 하다가 뻐근해진 어깨를 돌렸다.
“후우···. 역시 보통일이 아니네.”
문득 이 꽉 막힌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잘 하는 것을 하면서 텐션을 회복하고 싶은 그런 느낌.
“이렇게 된 거 완료율이나 높여볼까.”
그래서 도웅은 아직 미완성된 영상을 트레이닝 하기위해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작곡가 K의 트랙 메이킹(B) 트레이닝을 시작합니다!]진회색 트랙.
그 위에 떠오르는 대로 착착 쌓여가는 반주.
딸깍, 딸깍, 타타탁.
도웅의 손은 속도감이 붙어 마치 게임을 하듯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들겼다.
“바로 이 느낌이지~.”
막힘없이 영감을 컴퓨터 모니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속이 뻥 뚫리는 창작의 맛에 젖어 들었을 때였다.
딸깍.
도웅이 이윽고 노래의 마지막 음을 마우스로 찍었을 때.
-빰빠바밤! 빰빠바밤! 빠 빰!
[Congratulation!]트레이닝 완료율 100%를 알리는 알림음이 사방에 터져 올랐다.
“예스!”
도웅은 희열을 느끼며 두 팔을 높이 올렸다.
그렇게 공중에 붕 뜬 듯한 기분으로,
혹시나 다음 문구가 떠오르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만약 뜨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그런데 그때.
-띠링.
바로 다음 영상이 떠올랐고,
제목을 확인한 도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웅은 들숨날숨을 격하게 들이쉬며 말했다.
“···바로 이거야. 지금 나한테 가장 필요했던 거!”
[Lv.3 베테랑 추천 동영상 : 댄서 C의 안무 창작법(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