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3)
113. 절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도웅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주된 이유는,
아직 춤에 대해서는 영감을 끄집어낼 수가 없다는 것.
“속되게 말해 곧바로 안무를 창작해낼 짬이 부족하다는 거지.”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바로 다른 이들의 춤을 찾아보며 퍼포먼스에 대한 영감을 얻는 것.
그러나 이렇게 되면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시간 소요가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제안이 성에 안 차더라도 뾰족하게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었고.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인터넷 속에서 헤엄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 와중에 안무 창작법 영상이 나온 것이다.
도웅은 구세주를 만난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거라면···.”
아직은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이 영상이 돌파구가 될 것 같은 그런 기대감이 목덜미를 스쳤다.
도웅은 피부에 잔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찌릿함을 느끼며,
영상의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검정 티에 검정 추리닝 바지.
검은 모자까지 눌러쓴 온통 검은 남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도웅의 눈썹이 움찔했다.
“최훈성이네···.”
그는 미래에 아이돌 육성 프로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는 유명 안무가였다.
아마도 아직 대중들은 잘 모르겠지만, 업계에서는 이름을 날리고 있을 터.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노래가 나오자 눈빛이 돌변했다.
에너지 넘치게 움직이는 남자의 몸.
적당히 근육이 붙은 그의 팔과 다리가 공중을 갈랐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노련하게 춤 선도 바뀌었다.
힙합, R&B, 팝핀 등 그의 몸은 그 어떤 노래가 나와도 사지가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때였다.
힘차게 튕겨 오르는 더블베이스와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음악의 장르가 재즈로 바뀐 것이었다.
‘노래를 잘못 틀었나?’
스트릿 댄스를 출법한 그런 리듬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웅이 의아해하던 때,
남자의 스텝이 경쾌하게 바뀌었다.
“···!”
방금까지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이었다면 이번에는 훨씬 부드러운 동작이 이어졌다.
그가 춤에 대한 열정으로 얼마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 영상이 끝나고.
[해당 영상 속 재능을 ‘남도웅’ 님의 플레이리스트로 전송합니다.]도웅이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온통 새하얀 공간.
이제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곳에 커다란 플레이리스트 창이 떠 올랐다.
【플레이 리스트】
NEW [댄서 C의 안무 창작법(B)]
도웅은 그곳에서 NEW 표시가 반짝이는 목록을 터치했다.
그러자 다양한 장르의 노래 제목이 그 아래 쭉 펼쳐졌다.
“음···. 어제 지연 선배가 췄던 팝핀을 한번 춰 볼까?”
PLAY.
빠른 박자감이 느껴지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자,
먼저 머릿속에 음악에 맞는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도웅의 몸이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움직이는 스텝과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노래에 맞춰 꺾이는 관절.
도웅은 그 움직임을 몸으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세심히 기억하려 했다.
그렇게 여러 무드의 노래에 맞춰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춤을 추던 도웅은,
자동으로 플레이 해놓은 다음 음악에 멈칫했다.
“이건··· 탱고?”
이번엔 머릿속에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강렬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윽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도웅의 몸.
한쪽 팔은 허공에 파트너의 등을 받치고 있는 듯한 포즈를 하고 있었다.
보통 탱고는 남녀가 같이 추는 춤이지만,
이번에는 반도네온 소리에 맞춰 홀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우아한 턴과 정열이 느껴지는 곡선적인 표현.
도웅은 빙글빙글 정열적으로 스텝을 밟다가,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에 확 하고 꽂혔다.
“그래, 이거다.”
**
MBE 방송국의 가요 축제 회의실.
“남도웅 씨랑 지연 씨가 스페셜 무대를 한대?”
“네, 그래서 한시름 덜었어요. 아마 이 둘 비주얼이면 그래도 좀 화제가 되지 않을까요?”
“수고했어.”
캐스팅이 잘 풀리자 PD가 싱글벙글한 얼굴을 했다.
“아무튼 남도웅 씨랑 지연 씨 무대, 우리가 잘 챙겨 주자고.”
올해의 루키인 도웅이 자신들의 스페셜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 PD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타 방송국들과의 줄다리기에서 1승을 한 셈이었으니까.
그가 커피를 홀짝이며 작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SBN이랑 KBE는 스페셜로 뭐 준비한다는지 들은 거 있어?”
“SBN에 제 예전 대학 동기가 있는데, 거긴 인기 멤버들만 뽑아다가 밴드 무대를 기획하고 있다더라고요.”
“뭐야, 그거 완전히 치트키잖아?”
PD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하, 인기 멤버들만 모아두면 각 팬덤들만 모아도 화력 장난 아닐 텐데.”
“아마 얼굴 가리고 탈춤을 춰도 시청률 10%는 나올걸요.”
“그 치사한 자식들. 올해는 걔들이 화제성 먹겠구나.”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해도 그 무대는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시각 SBN 방송국.
음악 뱅크 PD가 무어라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함께 가요 축제 기획을 맡은 작가에게,
도웅의 스페셜 무대 거절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웅 씨는 왜 스페셜 무대는 안 하겠다는 거야. 이거 화제성 대박일 텐데.”
“아, PD님 모르세요?”
“뭘?”
PD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작가가 아쉽다는 투로 얘기했다.
“남도웅 씨 지연 씨랑 MBE 스페셜 무대에 선대요.”
“뭐어? 왜 우리랑 안 하고?”
“그거야 모르죠.”
PD는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혼자서 중얼거렸다.
“제 복을 발로 찼구만. 이거 출연하면 실검에도 알아서 올라갈 텐데.”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아이돌 밴드는 가요 축제의 꽃이 될 예정이었다.
올해 인기 있던 멤버들을 다 꽂아 넣을 계획이었으니까.
무조건 3사 중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찍어내라는 국장의 지시에,
아주 작정을 하고 벌인 일이었다.
‘다른 방송사에서 욕할지는 모르겠지만 시청률만 잘 나오면 장땡이지.’
그래서 PD는 그 밴드에 도웅이 꼭 참여했으면 했다.
도웅이 타 그룹보다 팬덤은 적지만, 음악적으로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한 명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웅이 타 방송사의 스페셜 무대를 선택했다.
그러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때 마침 복도 저 끝에서 아이돌 GBN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PD는 그중 분홍 머리를 한 리더 선우에게 아는 체를 했다.
선우는 스페셜 밴드에 가장 먼저 캐스팅된 멤버였다.
“어, 선우 씨.”
“안녕하세요.”
“이번 가요 축제 PD를 내가 맡았거든요.”
“넵, 얘기 들었습니다.”
PD가 리더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모쪼록 스페셜 무대 좀 잘 부탁해요. 그때 시청률 터져야 하거든.”
“알겠습니다.”
PD의 다독임에 GBN의 리더 선우가 웃는 낯을 했다.
“그런데 밴드 멤버는 언제쯤 다 결정이 날까요? 아직 한 명 자리가 안 정해졌다고 들었는데.”
“아, 그거 남도웅씨한테 빠꾸먹어서 다른 친구 찾고 있어요.”
순간 PD가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남도웅 한테 거절당한 게 기분 나쁜 모양이네.’
그래서 선우는 더욱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PD님,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잘할게요.”
선우가 사회생활을 위해 입바른 말을 하자 PD가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금방 연락 드릴게.”
PD는 손을 흔들며 멀어졌고,
그는 PD가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숙였다가 일어나서 중얼거렸다.
“여기서 잘 보이면 내년에 덕 좀 보겠지.”
음악 프로 PD의 눈에 들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아이돌의 입장에선 최고의 줄을 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페셜 무대로 시청률 1위를 찍어야 했다.
선우가 매니저를 향해 말했다.
“형, 다른 방송사 스페셜 무대에 대한 정보 있으면 좀 알아봐 줘.”
상대가 누군지 알면 조금 더 대비가 쉬울 것 같았으니까.
**
도웅은 나만의 연습실에서 실컷 연습을 마치고, 지연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도웅의 전화가 울렸다.
-무대를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꾸미자고요?
“네. 노래를 세련되게 편곡해서 극처럼 꾸미면, 보는 사람도 즐거울 테니까요.”
-댄스의 장르는요?
“···탱고요.”
잠시동안 수화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남녀가 짝을 지어 정열적으로 매력을 내뿜는 춤, 탱고.
지연의 머릿속에 붉은색과 매혹적인 댄서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뮤지컬의 한 장면 같은 연출과 매혹적인 탱고.
연말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는 그만한 게 없을 것 같았다.
문득 새로운 장르의 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지연의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근데 저 탱고는 춰본 적이 없어요.
“누나, 오늘 시간 되면 저희 소속사 쪽으로 올래요? 뭐가 됐든 오늘 결정을 내리죠.”
-세 시간 정도 후 괜찮아요? 그때까지 갈게요.
“네, 알겠어요.”
도웅은 통화를 끊고 곧장 노래를 틀었다.
‘어쨌거나 지연 선배가 오케이 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가 없어.’
그래서 그녀의 마음에 쏙 들도록 춤 동작을 미리 짜둘 생각이었다.
막연히 떠올리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일 테니까.
도웅은 남녀가 밀고 당기다 결국에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음악을 느끼며 팔과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동작에 집중했다.
다양한 장르의 춤을 트레이닝하고 난 직후라 그런지 몸이 더 가볍게 움직였다.
팔을 뻗고 턴, 그리고 백스텝.
노래를 듣는 동안 본능적으로 다음 동작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대강 안무의 뼈대를 짠 도웅은 소파에 널브러졌다.
일단 느낌만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정도였다.
그렇게 차가운 물로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식히고 있던 때,
누군가 연습실의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왔다.
“···방금 그거 뭐였어···요, 선배님?”
넋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마은율이었다.
도웅이 직접 이렇게 제대로 된 춤을 추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인데다,
상당히 생소한 장르의 춤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답했다.
“아, 이거 탱고.”
“탱고도 출 줄 알아?”
놀란 마은율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말이 튀어나왔다.
“응, 이번 가요 축제 때 추려고 생각하고 있는 춤인데···.”
“저기···.”
그때 마은율의 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균 키에 속하는 은율보다 반 뼘은 큰 키의 지연이었다.
“저 안으로 좀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네.”
마은율이 순간적으로 비켜섰고, 지연이 여기에 오면서 사온 따듯한 라떼 한 잔을 도웅에게 내밀었다.
마은율은 그 장면을 지켜보다 조용히 연습실의 문을 닫았다.
“뭐지 조금 진 것 같은 이 기분은.”
**
지연이 양손에 든 라떼를 호호 불어 마시며 말했다.
“벌써 안무를 생각해놨다고요?”
“네, 대강이요. 일단 누나 마음에 들지 봐야 하잖아요.”
“그럼 한 번 보여주세요, 느낌이 어떤지.”
지연은 냉정하게 마음먹고 라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만약 무대를 만들 만큼 성에 차지 않는다면, 자신이 생각해둔 힙합 음악을 꺼낼 생각이었다.
‘말대로 뭐가 됐든 오늘은 담판을 지어야겠지.’
좀처럼 도웅과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연말까지 무대를 준비할 시간이 촉박했다.
그때 도웅이 수없이 반복해 듣던 그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그의 팔다리가 매혹적인 호선을 그려내자,
“···.”
집중하고 있던 지연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도웅에게서 절대 눈을 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