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5)
115. 동시에 두 사람의 눈빛이.
아이돌 다섯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멤버들이 모인 밴드.
그중 보컬을 맡은 GNB의 리더 선우가 스탠딩 마이크를 잡았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손을 흔들 뿐이었지만,
팬들의 함성은 온 공간을 꽉 채울 만큼 우렁찼다.
도웅은 잠깐 그런 관객석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팬덤을 키워야 해.’
노래도 나오지 않은 상태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들.
그런 엄청난 규모의 팬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도웅을 지지해주는 팬들도 꽤 많았지만, 아직 아이돌들에 비하면 부족한 규모였다.
그렇게 도웅은 무대 아래서 인이어 벨트팩을 푸르면서 잠시 그들의 노래를 감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무대를 준비했을지가 궁금했다.
챙챙챙챙-.
드럼에 앉은 멤버가 하이햇을 두들겼다.
그러자 일시에 연주를 시작하는 다른 멤버들.
잘생긴 외모로 악기를 다루는 모습들이 가끔 양쪽의 전광판에 줌인 됐다.
“···잘하네.”
놀라운 것은 보이는 것만큼 각자의 연주실력이 상당히 괜찮다는 점이었다.
그냥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닌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역시 요즘 아이돌들은 거의 만능에 가까워.’
잘생긴 얼굴.
빼어난 노래와 춤.
거기에 플러스알파 악기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은 아이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안 빠지고 배기겠어.’
도웅은 함성을 내지르고 있는 팬들의 마음이 순간 이해가 됐다.
그때였다.
‘뭐지? 이 거슬리는 소리는.’
집중해 들어보니 베이스 소리가 노래에서 조금씩 튀고 있었다.
카메라 비중이 보컬 위주로 돌아가자 베이스를 맡은 멤버가 조금 오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모션도 더불어 약간 거칠어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무너지는 소리의 균형.
다른 악기를 담당하고 있는 멤버들까지 모션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오늘이면 끝나는 거.’
서로 간의 조화보다는 이 안에서 한 번 더 샷을 받고 살아남는 것이 이득일 테니까.
애초에 공평하게 보컬을 나누지 않은 것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야? 왜들 이래?’
이상한 기류를 느낀 GNB의 리더 선우가 스탠드 마이크를 확 젖혀 쇼맨십을 발휘했다.
그러자 다시 선우를 잡는 카메라.
노래가 끝나갈 즈음, 작가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PD에게 말했다.
“지금 괜찮은 거 맞죠?”
“그래, 한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연습한 것 치고는 잘했지. 지금 팬들 반응 봐.”
“하긴. 반응만 보면 시청률 1위는 따놓은 당상이겠네요.”
작가가 관객석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PD가 모니터를 체크하면서 말했다.
“다른 방송사에 견제할 만한 무대 들은 거 있어?”
“따로 얘기 들은 건 없고, MBE에 있는 제 대학 동기가 한번 두고 보자던데요?”
“뭔가 히든카드가 있는 모양이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뭐가 됐든 이 무대를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했다.
‘괜히 그러는 거지, 뭐.’
그래서 PD는 여유롭게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
리허설부터 본방까지 거의 종일 시간이 소요됐다.
한 해의 주역들과 인사도 나누고, 연말 분위기에 들떠 서로 덕담도 주고받았다.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았던 선배들과 안면을 틀 수 있다는 것이 연말 축제의 큰 장점이기도 했다.
다음날 KBE 연말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둘째 날도 무사히 지나가고,
12월 31일. 대망의 셋째 날이 되었다.
바로 도웅과 지연의 스페셜 무대가 예정되어있는 날.
대기실에 도착해 스태프들이 짐을 풀어놓는 사이 심정남이 도웅을 살폈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십니까.”
“아주 멀쩡해요.”
“마지막 날이니까 조금만 힘내십시오.”
그가 비타민을 건네면서 오늘의 스케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Meet you’ 무대 먼저 하고, 지연 씨하고 하는 스페셜 무대는 맨 마지막입니다.”
‘맨 마지막이라니.’
미리 들어서 순서가 바뀐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PD가 도웅과 지연의 스페셜 무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기왕 할 거면 피날레가 좋기는 하지.’
도웅은 타 방송 스케줄 때문에 며칠간 보지 못한 지연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복도로 나섰다.
그때 누군가 도웅의 등을 툭 쳤다.
“어! 도웅아!”
함께 오디션 프로에서 호흡을 맞췄던 소녀이룸 화연이었다.
그녀의 친근한 인사에 소녀이룸 멤버들이 살갑게 도웅을 둘러쌌다.
“우와, 키가 엄청 커지셨네요!”
“그러네요. 스페셜K스타 할 때 화연 언니랑 이렇게까지 키 차이 심하게 나진 않았는데.”
“도웅 씨 이렇게 클 동안 언니는 뭐 했어?”
“왜 내 키 가지고 그래!”
화연이 씩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이제 소년티를 벗어가는 도웅이 신기한 듯 멤버 하나는 주변을 왔다 갔다 맴돌았다.
그때 화연이 뭔가 생각난 듯 얘기했다.
“스케줄표 보니까 마지막 무대에 네 이름이 있던데?”
“우와! 어떤 무대 준비하셨어요?”
“그냥···.”
“완전 기대할게요!!”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내던 소녀이룸은,
도웅이 답을 하기도 전에 매니저의 부름을 받고 쪼르르 사라졌다.
그 바로 뒤로 에너지 넘치는 소녀이룸과 대비되는 비몽사몽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3일 연속으로 보는 얼굴들이네.’
도웅처럼 연말 무대 세 군데에 모두 출연하는 여자 아이돌.
조금 어렵게 뜨기 시작한 이들은 아마도 소속사의 결정으로 이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속된 스케줄로 풀 죽이 된 그들이 도웅을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도웅 씨 안녕하세요···.”
그중 하나가 눈을 느리게 끔뻑이며 말했다.
“오늘은 스페셜 무대까지 하신다면서요?”
“···진짜 대단하다.”
순간 그들의 눈빛에 경외심이 담겼다.
도웅이라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춤 연습을 하면서 체력이 좋아진 점,
그리고 대기하면서 남는 시간에 나만의 연습실에 들어가 있을 수가 있었으니 아마 그간 체력을 아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글쎄요, 이 비타민 때문인가?”
도웅이 주머니에서 강태진에게 받은 비타민을 꺼내 들자 세 사람이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하나씩 드셔보실래요?”
도웅이 남은 비타민 포들을 꺼내놓자, 그들이 재빠르게 각자의 입에 털어 넣었다.
“···이거 먹으니까 조금 힘이 나는 거 같아요.”
“이게 바로 도웅 씨의 체력 관리 비법이구나!”
“아무튼 고마워요. 조금 있다가 무대 기대할게요!”
“우리 같이 힘내요, 파이팅!”
플라시보 효과인지 그들은 힘차게 인사하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숱한 안부인사를 지나쳐 도웅은 지연의 이름이 적힌 방문을 두들겼다.
달칵.
청초한 외모의 지연이 긴 머리를 쓸어올리며 인사했다.
“왔어요?”
아직 화장기 없는 지연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도웅이 노파심에 물었다.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냥 오늘 무대가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도 돼서··· 어제 한숨도 못 잤어요.”
그녀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마 며칠간 홀로 연습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괜히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팬들의 얼굴이 생각나기도 하고,
거기에 무대 순서가 맨 마지막으로 옮겨진 부담도 한몫했다.
멀쩡히 무대를 잘 해내다가도 한 번씩 이런 트라우마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때 뒤에서 지연의 매니저가 화장대 쪽으로 손짓했다.
“지연아, 메이크업.”
그러자 지연이 전구가 알알이 박힌 거울 앞으로가 앉았다.
짙게 내려앉았던 다크서클 위에 주황색 스펀지를 두들기자,
잠시 후 다크서클이 감쪽같이 가려졌다.
‘역시 화장의 세계는 신기하다니까.’
화장을 끝낸 지연이 도웅이 있는 소파로 와서 힘없이 앉았다.
그녀는 걱정 때문인지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울 땐 이것만 한 방법이 없지.’
도웅이 지연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지연 선배. 제 방송 스케줄 때문에 이틀간 연습 못 했으니까, 지금 시간 괜찮으면 한번 맞춰 볼까요?”
“네···. 좋아요.”
지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천천히 동작을 맞추다 보니 슬슬 몸이 풀렸다.
외모의 합이 좋은 두 남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지연의 스태프들.
끝까지 동작을 맞춘 후에 도웅이 노래를 틀었다.
이틀의 공백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호흡이 착착 맞아들어갔다.
그러자 스태프들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와, 장난 아니네.’
‘둘이 춤 실력 대박이다.’
‘왜 갑자기 순서가 마지막으로 바뀌었는지 알겠어.’
그들은 조용히 입 모양으로 놀란 마음을 표현했다.
춤을 추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니 지연도 약간의 활기를 되찾았다.
그녀가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한 번만 더 맞춰 볼까요?”
**
리허설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도웅이 본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습은 계속됐다.
생방송이었지만 무탈하게 무대를 마친 도웅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스페셜 무대 하나 남았네.’
잠시 후 지연도 자신의 무대 위에 올랐다.
조금 광활해진 무대와 평소보다 많은 관객.
그 덕에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노래가 나오니 금세 몰입해서 무대를 끝내버렸다.
그렇게 살짝 홀가분한 마음으로 관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던 때였다.
“···!”
무대 앞쪽에 앉은 누군가와 지연의 눈이 마주쳤다.
명백히 미움이 담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은,
바람소녀의 멤버였을 때 자신의 팬이었던 여인이었다.
행사나 팬 사인회를 빠지지 않고 따라와 주었던.
아이돌들 사이에는 악플러보다 마음이 돌아선 팬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획.
그 팬이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고,
지연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의상을 교체하고, 메이크업을 고치고.
“이제 스탠바이 하실게요.”
이제 도웅과 지연의 스페셜 무대만 남겨놓고 있었다.
도웅과 지연은 함께 무대를 향해 걸었다.
살짝 굳은 표정에 말수가 적어진 지연을 보며 도웅은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무대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 같아.’
처음 미팅을 했을 때, 지연이 괜히 욕을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을 때부터 도웅은 그녀에게 모종의 불안과 부담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럼에도 스페셜 무대로 지연을 끌어들인 것은 도웅 자신이었다.
그리고 연말 무대 중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 말겠다는 도웅의 목표 역시 변함이 없었다.
무대 바로 뒤.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 도웅이 지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배,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 눈만 봐요.”
이런 상황에서 복잡한 생각들은 무대를 망칠 뿐이었다.
“그냥 우리 연습했던 것만 생각하자고요.”
도웅이 눈을 마주치자 지연은 겉돌던 불안이 딱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도웅을 따라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안정을 찾아갔다.
‘그래,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딱 연습한 대로.’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대에 서고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의 공존.
지연은 이 지긋지긋한 모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거기서 손을 내밀어 준 것은 도웅이었다.
도웅의 눈을 보면서 그렇게 지연이 마음을 다잡고 있던 때,
무대 밖에서 사회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무대는 성공적인 솔로 데뷔의 첫발을 뗀 지연 씨와, 올해의 떠오르는 신인이죠. 남도웅 씨가 함께 준비한 스페셜 무대입니다!”
“우와, 이 두 분이 만났다니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벌써 기대되는 비주얼의 두 분. 그럼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신호와 함께 무대의 밖으로 나간 두 사람.
스포트라이트가 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천천히 무대 가운데로 가서 자세를 잡았다.
지연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여전히 도웅의 눈만을 바라보았고,
순간, 그동안 준비해온 노래의 전주가 무대를 울렸다.
그리고 노래가 흘러나오자, 동시에 두 사람의 눈빛이 돌변했다.
서로 열정적으로 연습하며 봐온, 바로 그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