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조금 더 행복해진 것 외에는.
도웅은 지연과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후우.”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에, 도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다.
심정남과 스텝들이 그런 도웅을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한마디 불평 없이 성인들도 힘든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해내는 도웅이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린 나이에 스타가 돼서 미성숙하게 생떼를 부리는 스타들도 상당히 많았으니까.
여러 소속사를 다녀본 경력직들이 봤을 때 도웅의 인성은 본 중에 최고로 손꼽을 만했다.
“도웅 씨, 고생 많았습니다.”
“형이랑 누나들이 더 고생 많으셨죠. 제 욕심 때문에.”
“이런 욕심은 많이 부려줄수록 우린 좋아요.”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덕분에 연말에 통장도 따뜻해지고 얼마나 좋아.”
“큭큭, 맞아요.”
그녀의 보조도 웃으며 동의했다.
“그리고 도웅 씨랑 일하면 항상 결과가 좋아서 일하는 맛이 나거든요. 오늘도 봐요. 스타일링 찰떡이라고 난리 났네.”
스타일리스트가 도웅의 죄책감을 덜어주려 일부러 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연말인데 저 때문에 남자친구를 만나실 수가 없잖아요.”
“···남자친구가 있어야 만나죠.”
“헙.”
도웅이 말실수 했음을 깨닫고 입을 닫자 스태프들이 깔깔 웃었다.
“걱정은 마요,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안 만나는 거니까.”
“그쵸, 정남 씨? 어? 어디 갔지?”
방금까지 근처에 있던 심정남이 사라졌다.
“또 무슨 연락 받으러 갔나.”
직업 특성상 전화가 잦은 심정남이었으니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러려니 했다.
똑똑.
그때 대기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 틈새로 얼굴을 빼꼼 내민 것은 지연이었다.
“지연 선배. 무슨 일이에요?”
“아···. 그, 저기. 나 여기 두고 간 게 있어서.”
어딘가 어색한 말투였지만,
아까 대기실을 오가며 연습할 때 뭔가 두고 갔겠거니 했다.
그때였다.
생방 모니터링을 위해 걸려있던 TV에서,
유난히 사회자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올 한 해가 몇 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멘트였다.
-···그럼 다 함께 카운트 다운을 외쳐볼까요?
“어머, 카운트다운이다!”
스타일리스트가 하던 것을 멈추고 우뚝 섰다.
그 덕에 방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TV로 쏠렸다.
-5! 4! 3! 2!…
누군가는 숫자를 따라 외쳤고,
도웅 역시 속으로 숫자를 외고 있을 때였다.
-1!
-파앙!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청량한 파열음이 귓가에 울렸다.
지연의 손에 들려있던 샴페인이 터지는 소리였다.
도웅이 얼빠진 표정을 하자,
그 뒤에서 심정남이 숫자 초가 꽂힌 케이크를 들고 등장했다.
“도웅 씨! 성인 된 거 축하하지 말입니다.”
성인이 된 기념으로 아마 나름의 깜짝 파티를 준비한 것 같았다.
큰 소리가 나자 호기심에 안쪽을 들여다본 동료 선후배들이,
상황을 눈치채고 자신들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도웅에게 내밀었다.
“축하해! 도웅아.”
“도웅 후배, 친하진 않지만, 이거 받고 우리 친해져요.”
“감사합니다.”
그때 누군가 또 한 명이 도웅의 대기실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어! PD님!”
가요축제의 PD였다.
그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이는 가수 일동.
원래는 이들이 모두 PD를 찾아가 인사하는 게 관례인데,
그가 먼저 도웅의 대기실에 찾아온 것이었다.
“아, 지연 씨도 마침 여기 있었네요.”
그는 도웅과 지연이 있는 한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갔다.
“도웅 씨, 오늘 너무 고생했어요. 아무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감사 인사요?”
순간 PD가 도웅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가 도웅 씨랑 지연 씨 덕분에 연말 시청률 1위 했잖아요.”
PD는 그 사실이 자못 감격스러운 듯 진한 눈썹을 움찔거렸다.
도웅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주변에 서 있던 가수들은 처음 듣는 얘기에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서 내년에도 우리 MBE 잘 부탁한다는 얘기 하려고요.”
주변 동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PD가 도웅을 점찍었다.
각 아이돌 멤버가 모인 스페셜 밴드의 시청률을 무찌른 그 순간,
확실히 올해의 루키라 불리는 도웅에게 남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그가 깨달은 것이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도웅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뭐가 됐든 PD 눈에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옆에 선 지연은 살짝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연예계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동료 연예인들은 그런 도웅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PD는 흐뭇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아, 그리고. 스무 살 된 거 축하해요, 도웅 씨.”
해피 뉴 이어.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
새해가 되었다고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앨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을 뿐.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여기서 이런 동작은 어때요?”
“···좋은데요? 그럼 그렇게 바꿔서 다시 한번···.”
춤에 대한 도웅의 식견이 넓어졌다는 얘기였다.
그 덕에 안무를 짜는데 있어서 조금 더 많은 비중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옆방에서는 데뷔를 앞둔 아이돌 사파이어의 연습 소리 역시 밤낮으로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웅 씨, 시간 괜찮습니까?”
“네.”
“그럼 잠깐만 나와보십시오.”
심정남이 도웅을 연습실 밖으로 불러냈다.
복도로 나가니 심정남의 옆에 마은율이 살짝 긴장한 채로 서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얘랑 나를 같이 부르는 거지?’
심정남이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얘기했다.
“며칠 있으면 두 분 고등학교 졸업식인데, 제 생각에 두 분 다 꼭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저도 갈 생각이었어요.”
마은율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당연한 전달사항이었으니까.
“아마 그날 기자들도 많이 올 겁니다.”
“기자들이요? 아··· 도웅선배 취재하러.”
마은율이 말하다 깨달은 듯 도웅을 바라보았다.
“아직 은율 씨에 대해서 기자들이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도웅 씨가 찍히다 보면 어떻게 앵글에 걸릴지 모르니 염두에 두십시오.”
“그럴게요.”
“그리고 성실히 잘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두고두고 두 분한테 좋을 겁니다.”
두 사람 다 곧장 심정남의 말뜻을 이해했다.
학교 행사는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게 남들이 보기에도 좋을 테니까.
심정남이 말을 전하고 돌아서자, 은율이 안도의 한숨을 훅 쉬었다.
“후, 다행이다. 난 또 혼나는 줄 알고.”
“저 형 인상은 무서워도 다짜고짜 혼내고 그런 사람은 아니야.”
“아, 그래?”
“그리고 너는 몰라도 내가 혼날 일이 어디에 있어.”
도웅의 장난에 은율이 째릿.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녀는 곧 눈매를 풀고 도웅에게 물었다.
“기자들이라··· 졸업식에 아빠가 와도 괜찮은 거겠지?”
“당연하지.”
“너희 어머니는?”
“···오실 거야.”
도웅이 살짝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머릿속에 한가지 사건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지난 생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 때문에.
‘졸업식 전날에 엄마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었으니까.’
엄마가 크게 다치면서 도웅이 생계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사건.
그러니까, 그 사건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
“갑자기 웬 쇼핑?”
“엄마 옷도 좀 사고하려고.”
빨래를 개던 엄마가 뜬금없다는 투로 반응했다.
“괜찮겠어? 일요일이라 사람 많을 텐데.”
“어차피 모자랑 마스크로 무장하면 사람들도 잘 못 알아봐.”
“그런데 내 옷은 왜? 엄마 입을 옷 많아.”
“거짓말하지 마.”
다 낡아서 보풀이 일어난 스웨터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
엄마가 개어놓은 빨래들은 도웅이 몇 년간 봐왔던 그 옷들이었다.
엄마는 도웅에게 필요한 것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정산금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도웅은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내일 졸업식에 나 때문에 기자들도 많이 온대.”
“어머··· 그래?”
“그러니까 더 예쁜 옷 입고 사진 찍어야지.”
엄마는 기자라는 말에 더 군말 없이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엄마가 도웅은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이미 너무 많은 게 바뀌어서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도웅은 엄마를 모시고 하루 데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열심히 사는 게 최고의 효도라지만 이런 날도 있어야지.’
번화가의 한 백화점.
엄마는 자꾸 옷을 보다가도 가격표로 손을 올렸다.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네 졸업식 때 입으려고 예전에 사둔 코트 있다.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자. 너 피곤한데 좀 쉬어야지.”
“그러지 말고 아까 그거 한 번만 입어 봐.”
엄마가 마지막에 만지작거리던 옷을 도웅이 집어 들자 점원이 재빠르게 엄마에게 걸쳐주었다.
“어머~, 너무 잘 어울리세요. 딱 사모님 옷으로 나온 것 같은데요?”
“···그래요?”
“네. 체형도 훨씬 날씬해 보이시고 키도 커 보이세요.”
직원의 상술이란 건 알았지만 엄마는 기분이 좋은지 거울 앞에 그 코트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도웅은 마음에 들어 하는 엄마의 기색을 읽고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그럼 이걸로 주세요.”
“어머~, 아드님이 효자시네. 저도 이런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점원의 말을 들은 엄마의 눈빛에서 순간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도웅은 그래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번 생에서는 엄마에게 남부러운 아들이 된 것이었다.
이후로도 그 안에 받쳐입을 셔츠와 바지, 구두 등.
풀 세트로 구매한 엄마의 옷들이 양손의 쇼핑백에 가득했다.
엄마가 행복한 얼굴로 살짝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아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무리는, 앞으로도 엄마는 건강만 해줘. 그럼 내가 평생 이렇게 효도하면서 살 테니까.”
“···말만으로 엄마는 배부르다.”
“그래? 난 좀 배고픈데. 우리 외식하고 들어갈까?”
“좋다, 이건 엄마가 쏜다.”
두 모자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가까이 있는 파스타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엄마가 조금 더 행복해진 것 외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졸업식 당일.
강당에 가기 전, 일단 모두가 교실에 모였다.
“내가 잘못 들어왔나?”
음악방송 뺨칠 정도로 화려한 머리색을 하고 있는 친구들 덕에 도웅은 잠시 여기가 교실이 맞는지 헷갈렸다.
“어! 남도웅!”
도웅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부잣집 아들 곽현준은 머리가 초록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너 머리색이 왜 그러냐.”
“두발 규정에서 벗어난 기념으로 거금 질렀다.”
곽현준이 뿌듯한 얼굴로 거들먹거렸다.
솔직히 그냥 머리에서 풀이 자라난 잔디 인형 같았다.
“이 머리색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탈색을 세 번 하고 그 위에 초록색을···.”
그때 빨간 머리의 교회 청년부 오수찬이 말을 잘랐다.
“너 지금 연예인 앞에서 머리에 거금 썼다고 주름잡냐? 개념까지 같이 탈색한 건 아니지?”
“에이, 이건 졸업실 날까지 시비네.”
교실 안의 분위기는 대체로 들떠있었다.
수능 점수도 나왔고 대학 발표 결과도 한창 나오는 중이라,
합격한 이들의 설렘이 도웅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재수가 결정되어 울상인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렇다면 도웅의 수능 성적은?
올 1등급이 나와 더 이상 공부에 대한 미련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 성적표 한 장 받겠다고 지금까지 무지하게 노력했네.’
그래도 바쁜 스케줄 속에 그만큼 해낸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도웅은 이제 조금 작아진 자신의 교복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이 교복 입는 마지막 날이 되겠구나.’
잠시 후, 도웅은 친구들과 함께 강당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강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이 기함을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엑!”
“뭔데 뭔데?”
안을 들여다보니, 진을 치고 있는 한 무리의 기자들이 보였다.
그 장면을 본 초록 머리 곽현준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이 사람들이 다 너 찍으러 온 사람들이야?”
자연스레 도웅에게로 돌아가는 고개들.
“우와, 도웅이가 이정도구나.”
도웅의 인기가 피부로 확 와닿은 친구들이 새삼스럽게 굴었다.
그때였다.
“왔다!”
도웅을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치자,
기자들이 치열하게 한 곳으로 줌인을 당기기 시작했다.
도웅을 향한 취재 경쟁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