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18)
118. 후련했고, 상쾌했다.
찰칵찰칵찰칵.
“어, 어···.”
도웅을 향해 플래시가 터지자 친구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게 된다면 누구라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도웅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카메라들을 향해 살짝 미소지었다.
‘이 정도는 껌이지.’
음악 방송 출근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살짝 셔텨음 사이에 눈 감을 타이밍이라도 있으니 보다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보기에는 그런 도웅이 마치 기인처럼 느껴졌다.
‘와, 대단하다. 어떻게 안 쫄고 저렇게 태연하냐.’
‘저런 모습 보니까 남도웅 진짜 연예인 다 됐네.’
‘무슨 소리 하냐? 도웅이 데뷔한 지 벌써 2년 다 돼가는데.’
‘오, 대박. 현타온다. 그동안 난 뭐 했지?’
급현타를 느끼는 도웅의 친구들이었다.
강당 안쪽, 언뜻 보기에도 서른 명은 넘어 보이는 기자들의 수.
거기에 커다란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 기자군단의 덩치가 더 커 보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좀 많이 왔는데?’
이 학교에서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이 도웅 한 명뿐인 것을 감안하면,
조금 취재 경쟁이 과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느새 입구 근처로 달려온 방송인 몇이 질문 세례를 던졌다.
“도웅 씨, 졸업하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컴백이 올 초라고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언제쯤이 될 것 같습니까.”
“스페셜 무대 이후로 지연 씨랑 연락하시나요?”
아마도 곧 도웅의 컴백 소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과열된 것 같았다.
연말 무대 때 화제가 되었던 탓도 조금 있는 것 같고.
그때 누군가 도웅의 뒤에 바짝 섰다.
다름 아닌 노란머리의 윤정후였다.
“오랜만이야, 남도웅.”
지난 수능 날, 윤정후가 끝까지 남아 인터뷰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지나간 도웅에 관련된 기사가 훨씬 많이 올라와 굴욕을 느꼈었다.
그래서 도웅의 옆에 붙어야 좀 더 관심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아직은 네가 더 유명할지 몰라도 반드시···.’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태연히 손을 흔들고 있던 때,
학생주임 선생님이 입구까지 달려와 기자들을 중재했다.
“자, 자. 이제 그만들 하시고 학생들 들여보내 주십시오.”
**
나무로 지어진 넓은 강당의 맨 앞줄.
그곳에는 도웅과 윤정후, 그리고 마은율의 자리가 지정되어 있었다.
“도웅이는 여기, 정후가 그 옆에, 그리고 은율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주며 땀을 흘리는 학생주임 선생님.
바로 옆 코너 쪽에 빙 둘러있는 기자들 때문이었다.
일부러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자리를 분리해 놓은 것이었다.
그때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던 기자들이 마은율을 보고는 수군거렸다.
‘근데 저 여학생은 누구지?’
‘글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 인터넷에 이름 쳐보니까 나오긴 하네.’
‘누군데?’
‘가수인가 봐. 드라마 OST에 이름이 뜨는 거 보면.’
기자들은 뭔가 기삿거리가 될까 싶어 수첩에 은율의 이름을 적었다.
하지만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존재라 크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꿀꺽.
평소 축제 무대 같은데도 아무렇지 않게 서던 애라 담이 세다고 생각했던 마은율이었지만,
기자들이 자신에 대해 얘기하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정후는 모처럼 그룹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주목받고 있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고.
“정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 지난번에 뵈었던 정후입니다.”
“아~, 전에 인터뷰했던 뉴보이즈. 알죠, 졸업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그는 어떻게든 기자들의 관심을 더 끌어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때 도웅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기자들 틈에 서 있던 심정남에게서 온 문자였다.
‘바로 옆에 있는데 왜···.’
-방금 그 정 기자라는 사람 조심해야 합니다. 악질 기사 만들어내기로 악명높은 사람입니다.
악명높은 정 기자란 이에 대해 몰래 언질을 준 것이었다.
도웅은 알겠다는 의미로 심정남과 눈을 맞추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시 물어뜯을 것을 찾는 하이에나 같은 부류의 기자.
그런 류의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반응만 보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도웅은 가벼운 미소만을 얼굴에 장착했다.
그때 상당히 신경 쓴듯한 복장의 담임선생님이 도웅에게 다가오더니,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웅아 조금있다가 이름 불리면 앞으로 나가면 된다.’
‘네.’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언질을 받았는데,
아마 학교의 이름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며 상장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단속하러 사라지고 나서,
기자들과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
그때 상대를 뜯어보는 듯한 오만한 눈매,
호감 가지 않는 외모의 정 기자가 가장 쉬워 보이는 윤정후를 공략하고 나섰다.
“···혹시 정후 씨 대학은 어디 붙으셨어요?”
“저는 서진 대에 붙었습니다.”
“오오-. 공부 꽤 하셨었나 봐요.”
“그냥 열심히 했죠.”
정 기자가 띄워주자 윤정후가 의기양양하게 반응했다.
분위기를 살피던 정 기자가 자연스럽게 이번엔 타킷을 도웅으로 바꿨다.
“도웅 씨는요? 어느 대학에 붙으셨어요?”
“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기자군단이 시끌시끌해졌다.
옳다구나 싶었던 정 기자가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수능 점수가 잘 안 나오셨나봐요.”
“기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때 심정남이 불쑥 나서 정 기자의 낚시성 질문에 제지를 가했다.
다행히 일단락된 소란 가운데, 옆에서 고소한 웃음을 흘리는 윤정후.
‘남도웅 수능을 망쳤구나.’
수능을 망한 것은 윤정후도 마찬가지였지만,
윤정후는 다행히 예체능 특기자 전형 추가모집으로 대학에 붙을 수 있었다.
마침 그때, 교단의 마이크를 통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지금부터 한제고등학교 제 8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자랑스러운 한제인들이 이제 사회로 나가서 자유롭게 꿈을 펼치며···.”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훈화말씀이 온 강당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빨리 후련하게 끝났으면 하는 눈치인데, 교장 선생님은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분위기.
‘흐아암.’
옆에 있던 기자 중 누군가는 하품을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뛰어났던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때였다.
“호명된 수상자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남도웅, 김희석, 이···”
도웅의 이름이 불렸다.
“위 사람은 한제 고등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렸기에···.”
도웅은 강단에서 유명인으로서 학교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는 예능상을 받았다.
동급생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는 동안 정 기자는 심드렁하게 셔터만을 눌렀다.
‘뭐, 저것도 그냥 연예인 특례지.’
그때 교장 선생님이 아쉬운 듯 한마디를 더 보탰다.
“우리 남도웅 학생은, 기자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성적도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오오
그러자 낮은 감탄사를 내뱉은 삼백 명 남짓한 학생들.
갑작스러운 상황에 도웅은 살짝 멋쩍어졌다.
“그렇게 훌륭한 수능점수를 받고도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도 도웅 씨의 미래에 꽃길만 펼쳐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장내가 시끌시끌해졌다.
‘쟤는 수능까지 잘 봤어?’
‘대체 얼마나 잘 봤길래?’
‘와, 인생 불공평한 것 봐.’
‘근데 왜 대학 안 간대?’
‘음악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나.’
‘개간지.’
기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한편 윤정후는, 또다시 도웅에 대한 기삿거리가 넘쳐날 것 같은 예감에 속이 탔다.
그때 정 기자가 들고 있던 펜의 뒤꽁무니를 깨물었다.
‘수능 못 봐서 대학에 못 간다는 줄 알았는데. 재미있는 기삿거리 하나 날아갔네.’
그는 수첩에 적어놓았던 내용을 쓱쓱 그어 지웠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윤정후의 노란 뒤통수였다.
‘딱 봐도 날라리인데 말야. 서진 대라니 뭔가 냄새가 나.’
그가 타깃을 바꾼 것이었다.
**
무사히 졸업식을 마쳤다.
‘이번 생엔 후회 없이 학창 시절을 잘 마무리했어.’
후련했고, 상쾌했다.
과거에 엉망이 되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는 기분은,
마치 무너진 젠가를 다시 튼튼히 쌓아 올리는 느낌과 비슷했다.
기초공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겪어보았으니 블록 하나하나를 심혈을 기울여서 정갈하게 올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번 생은 더 높고 튼튼하게 쌓아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제작팀의 이나래 대리는, 도웅의 졸업식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기사 사진으로 달래고 있었다.
‘맘 같아서는 월차라도 내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오버니까.’
「상장을 받는 남도웅. 교장 선생님이 자랑스러운 듯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남도웅의 수상에 손뼉 치는 동급생들.」
「교장 선생님의 자랑 남도웅. ”우리 도웅 학생은 공부도 잘했답니다.」
게다가 홍보팀에서 내보낸 듯한 기사 헤드라인도 눈에 띄었다.
졸업식 당일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도웅의 대답에 술렁였던 기자들의 낌새를 읽고,
심정남이 빠르게 움직인 덕분이었다.
「남도웅, 수능 성적은 올 1등급, 하지만 대학 진학은 NO. 음악에 전념하겠습니다.」
ㄴ 크, 이거지.
ㄴ 연예인 특례입학 넘쳐나는 가운데 외쳐 갓도웅.
ㄴ 올 1등급인데 대학 안 간대. 솔직히 ㅈㄴ 멋있다.
ㄴ 후방 주의. 엄빠가 절대 보면 안 되는 기사.
‘역시 우리 도웅 씨야.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지?’
반면 도웅의 옆에 있던 정후라는 아이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사가 가득했다.
「뉴보이즈 정후, 수상한 대학 합격. 또 연예인 특례인가.」
ㄴ 이런 듣보한테 연예인 특례라니···?
ㄴ 아 열심히 공부한 현타 씨게온다.
ㄴ 나도 일단 데뷔부터 하고 볼까. 대학가고 탈퇴하면 되지.
ㄴ 솔직히 이런 애가 대학 가서 공부나 하겠냐?
이나래 대리는 도웅과 비교되는 반응들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기사 창을 닫았다.
며칠 후,
도웅의 새 앨범이 발매됐다.
이나래 대리는 저녁에 홀로 따듯한 차 한잔을 홀짝이며 차트인 순위를 확인했다.
“우왓! 여기 있다.”
도웅의 타이틀 곡은 9위에 올라 있었다.
“저번보다 차트인 순위가 더 높아졌네?”
매번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차트 진입 순위.
이나래 대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목록을 넘겼다.
그 아래 도웅이 단독으로 작곡한 곡은 83위에 올라 있었다.
모든 홍보가 타이틀곡에 몰빵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꽤 선방한 성적이었다.
“난 도웅 씨가 작곡한 곡이 제일 좋던데.···”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이나래 대리가 도레미 회원들의 채팅창을 확인했다.
-대박, 다들 노래 들어보셨어요?
-네!!!! 노래 네 곡 다 진짜 좋아요.
-저는 ‘갈림길’ 이라는 노래가 젤 좋더라고요. 이거 도웅이가 만든 거 맞죠?
-네, 맞아요.
채팅창은 한창 뜨거웠다.
그중에서도 본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회원들이 있다는 데서 이나래 대리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노래가 좋으면 순위는 올라가게 되어있으니까.”
이나래 대리는 차 한 모금을 더 마시고 채팅창을 더 확인했다.
-그래도 도웅이 이번 미니앨범 네 곡 다 차트인 했어요.
-헐
-진짜네요??
앨범 발매와 동시에 전 곡이 차트인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인정받으며 도웅이 가수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혹시 원히트 원더로 반짝하고 사라질 취급을 받을까 조마조마했던 팬들은,
안정적인 도웅의 음원 성적에 다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스트리밍 계속해서 팍팍 밀어주자고요.
-넵!!!
-그런데 2집도 무사히 순항 중인데, 이쯤 되면 도웅이 팬 미팅 같은 건 안 하려나요?
-그러게요. 아마 원하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팬 미팅?”
한가지 단어가 이나래 대리의 시선에 꽂혔다.
그러고 보니 이전보다 많아진 도웅의 팬 수와, 충분한 곡 수.
스스로 어떤 결론에 다다른 이나래 대리가 눈빛을 반짝였다.
“그래, 한번 추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