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0)
120.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한.
야심 차게 내놓은 판타스타의 걸그룹 사파이어.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강태진의 고집으로 만들어진,
멤버들 하나하나의 보컬적인 역량이 뛰어난 그룹.
게다가 춤이나 외모도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보석 같을까.”
강태진이 사무실에서 사파이어의 뮤비를 돌려보며 팔불출 같은 소리를 했다.
언제나처럼 근처 티테이블에서 홍삼 즙으로 원기를 보충하던 여명은 다 먹은 비닐을 탁 내려두었다.
“맞아. 한 명씩 뜯어보면 역량이 정말 뛰어나.”
“네가 봐도 그렇냐?”
“응. 근데 그 멤버들 거의 도웅이가 데려온 거 아냐? 멤버 모으는 동안 형은 뭐 했어?”
“내가 왜 한 게 없어?!”
강태진이 버럭하자 여명이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백설 씨는 도웅이랑 같은 스페셜k 스타 출신, 이삭 씨는 도웅이가 오디션에서 뽑았고. 은율 씨는 뭐 말 안 해도··· 네 명 중 세 명이네?”
“···.”
강태진은 조용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다른 그룹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보석 같은 멤버들을 모으는데 도웅의 힘이 가장 컸다는 사실에 반박할 수 없었으니까.
“대체 도웅 씨는 어떻게···.”
신인 캐스팅에 관한 건 회사에서 팀 단위로 움직이며 머리를 맞대던 일인데.
도웅은 참 미스터리하게 일을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강태진은 요즘 사파이어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회사에서 변변한 스케줄 한번을 잡아주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참 의문이네. 이렇게 뛰어난 애들인데 왜 주목을 못 받는 거지?”
“방송엘 나가야 주목을 받지.”
노래가 좋고 나쁘고는 그다음이었다.
일단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평가도 있는 법.
여명의 팩폭에 강태진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너 신인 때도 이렇게 무대 한번 서기 어려웠나? 요즘 진짜 심한 것 같아.”
“그땐 이만큼 엔터 회사가 많지도 않았지.”
“···맞아.”
“너무 많은 아이돌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무대설 자리가 부족한 건 당연한 거야. 나 음방만 가도 인사 한 번만 하고 사라지는 신인 애들이 태반이거든.”
음악방송 PD에게 잘 보이려는 기획사만 수백.
그러니 아무리 이 바닥에 잔뼈 굵은 강태진이 나선다 해도,
방송가에서 판타스타의 아이돌만 예쁘게 봐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순번 대기표를 받고 계속 문을 두드려보는 수밖엔 없다는 것.
“도웅 씨 데뷔 때는 섭외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문제였는데.”
“도웅이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지. 이미 스페셜k스타로 자기 몸값 다 올리고 들어왔는데. 아무튼, 걔는 여러모로 특이해.”
여명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답답하다고 이러고 있지 말고 밥이나 먹고 옵시다.”
“그래. 그래야 머리도 다시 돌아가지.”
강태진은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진갈색 외투를 챙겨 입었다.
“사파이어 애들이랑 같이 밥 먹을까? 격려도 좀 해줄 겸.”
“그러던지.”
“밥이라도 맛있는 거 사 먹여야지.”
그렇게 두 사람이 지하 연습실을 향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때였다.
아래서 여자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진짜 열심히 할게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발걸음을 재촉해 내려가 보니,
사파이어 멤버들이 도웅 앞에서 기쁜 듯 방방 뛰고 있었다.
강태진이 그 뒤에 서 있는 사파이어의 매니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 MBE 뮤직 타임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뮤직 타임에서요?”
강태진이 얼떨떨하게 물으니 매니저가 곧장 답했다.
“다음 주에 출연할 수 있겠느냐고요.”
“허?”
“우연히 도웅 씨한테 CD를 받아서 살펴봤는데 방송에 한 번 올려봐도 괜찮을 것 같았답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을 마친 강태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알아봐 줬구나!’
제대로 살펴보기만 해준다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돌중 어떻게 사파이어를 PD들 눈에 들게 만들지가 관건이었는데,
도웅이 그 역할을 해준 것이었다.
그는 정면에 멋쩍은 듯 서 있던 도웅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정말 고마워요 도웅 씨!”
“아니에요, 저는 CD 건넨 것밖에는 없는데요.”
도웅은 그저 자신에게 호의적인 PD에게 CD를 건넨 것뿐이었고,
결정적으로 PD가 사파이어의 노래를 들어보고 선택한 것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하는 사파이어 멤버들과 상기된 표정의 강태진.
그들은 한참이나 도웅에게 감사를 표했다.
도웅이 만든 틈으로,
어두웠던 지하의 연습실에 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
가수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자리, 팬 미팅.
도웅은 전날 밤 이나래 대리와 대화를 나누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도웅 씨는 팬 미팅에서 뭘 해보고 싶으세요?’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팬들이 뭘 원하는지가 궁금해요. 팬들한테 감사하는 자리니까요.’
이나래 대리가 조금 감동받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팬들은 도웅 씨랑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울 거에요.’
‘그런가요?’
‘거기다··· 조금 특별한 무대까지 있으면 더없이 좋겠죠.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한 도웅 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무대요.’
“흐음.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한 내 모습과 무대라.”
도웅은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잠들기 전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그리고 아직 트레이닝 중인 ‘댄서 C의 안무 창작법(B)’을 재생하려고 하던 때,
도웅의 눈에 공중에 떠 있는 플레이리스트 창이 들어왔다.
“제법 많아졌네.”
어느새 11개나 쌓여있는 메가 플레이의 영상 목록.
도웅은 플레이스트 위에 손바닥을 올려 목록을 훑어보다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그래, 이거다.”
**
제작팀 사무실.
팀장은 자리에서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부족한 사람 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제작팀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요즘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턱선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이나래 대리.
그녀가 책상에 서류를 툭툭 쳐서 정리하더니 팀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시간 다 됐는데 회의하러 가실까요?”
이나래 대리는 언젠가부터 부쩍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의욕 있게 일하는 모습은 다른 팀원들에게 자극을 줄 정도였다.
점심시간에도 항상 소속 가수들에 대해 찾아보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 아무래도 이나래 대리를 이번 분기 특진자 후보로···.’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좋게 보더라도 회사 차원에서는 실적이 있어야 승진을 시켜주는 법이었다.
그래서 팀장은 이나래 대리에게 이번 도웅의 팬 미팅 기획을 메인으로 맡겨놓았다.
만약 잘 풀리면 그 성과를 가지고 한번 밀어보기 위해서.
‘그런데 팬 미팅이 성과가 나기는 좀 힘드니까, 안 되면 다음 분기를 노려야지.’
팬 미팅은 기존 팬들을 모아두고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한정된 날짜와 인원을 가지고 매출을 내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팀장은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이나래 대리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도웅의 팬 미팅 구성에 관한 회의였기에 도웅과 심정남도 자리에 참석했다.
“앨범과 동일하게 팬 미팅 컨셉을 가지고 가서 이제 성인이 된 도웅 씨의 색다른 이미지를 어필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도웅 씨를 어리게만 생각하는 팬들이 많으니까요.”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이나래 대리의 발표를 들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색다른 이미지 어필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세트나 의상, MD부터 분위기를 맞추고, 지난 앨범의 수록곡을 성인 버전으로 편곡한다든지, 아니면 이벤트성으로 들어갈 무대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팀장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도웅이 살며시 의견을 내놓았다.
“방금 말씀하신 이벤트 무대 말인데요. 그때 제가 드럼을 쳐보는 건 어떨까요?”
퍼포먼스 적으로 느낌을 주기에도,
팬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안성맞춤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도웅이 드럼을 친다는 사실은 회사 안에서 일부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모르는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도웅 씨가 드럼도 쳐요?”
“휴식기 때 조금 배워뒀습니다.”
“확실히 반응은 좋겠네요. 색다른 이미지 어필에도 좋겠고.”
하지만 도웅의 드럼 실력을 취미 수준으로 판단한 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제가 조금 걱정이 되는 게, 어떻게 보면 이벤트 무대가 팬 미팅에서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녀는 펜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최소 남들이 봤을 때 그럴싸해 보일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었다.
팬들을 불러다 놓고 학예회 수준의 무대를 보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때 옆에 있던 이나래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웅 씨가 연주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수준급이거든요.”
“수준급이요?”
팀장이 믿지 못 하겠다는 눈으로 도웅을 돌아보았다.
“방금 휴식기 때 조금 배웠다고···.”
“그런데 잘 칩니다. 저도 같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심정남이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얘기하니 팀장이 의구심을 잠재우는 눈치였다.
‘악기 배우는 속도가 아무래도 나 같은 일반인이랑은 비교할 수 없다는 건가.’
생각해보면 도웅의 노래, 춤, 작곡 실력까지.
확실히 일반인 범주에 두고 생각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음, 그렇다면 한번 진행해 보는 걸로 하죠.”
**
방금 회의를 마치고 나온 심정남이 도웅에게 물었다.
“이제 드럼 연주하는 모습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를 고민해야겠네요.”
“그렇죠.”
“독주로 하실 겁니까?”
“다른 악기들이랑 합주로 하되 독주 파트를 넣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팬들 입장에서 볼 거리가 다양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드럼파트 외에 다른 악기를 연주해줄 세션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심정남이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렸다.
“그럼 뮤타 그 친구들 어떻습니까? 같이 무대에 서 본 적도 있고요.”
각 세션의 수준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무대의 퀄리티가 올라갈 테니까.
하지만 이번 공연의 목적은 경연대회가 아닌 팬 미팅.
그러니 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했다.
‘뮤타는 팬들이 낯설게 느낄 수도 있어.’
도웅과 합주를 이루며 팬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 만한,
출연 자체로 이벤트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도웅이 심정남에게 말했다.
“만약 스페셜K스타 친구들이랑 무대를 만들어보면 어떨 거 같아요?”
“도웅 씨 팬들이라면 다들 그 친구들 얼굴은 알 테니···.”
심정남은 팬들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듯, 말끝을 흐렸다가 말했다.
“보는 재미는 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다 악기 연주를 할 줄 압니까?”
“그럼요. 얼추 구성은 맞을 것 같아요.”
최근까지 도웅은 스페셜K스타의 주역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그들이 각자 어떤 악기를 다룰 줄 아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심정남과 얘기를 마친 도웅은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저마다 바쁘게 살고 있을 동료들을 서둘러 섭외하기 위해서였다.
따르르릉.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고,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로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와썹!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네, 슈퍼스타. 무슨 일이야?
“그게, 조금 멋진 이벤트를 하나 만들어볼까 해서요.”
좋아할 팬들의 모습을 상상한 도웅의 입가에 벌써부터 웃음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