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1)
121. 진짜 끝내주는.
“헤이 키드! 컴 앤 싯.”
한 겨울임에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얇은 반팔을 입은 외국인.
우락부락한 근육의 마이클이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는 꼬마들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꺄르르르르. 캐치 미, 마이클!”
양 갈래머리를 한 꼬마 하나가 마이클을 도발하며 교실을 가로질러 도망갔다.
이곳은 서울 소재의 한 유치원.
마이클은 이곳에서 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마이클은 인종의 장벽 때문에 스페셜K스타 이후로 아쉬운 행보를 걷고 있었다.
외국인이 가수로서 국내 시장에 발을 들여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이클이 가수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초긍정 사나이인 마이클은 기회가 올 때까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이었다.
외국인인 그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스페셜K스타 동료들에게 조언을 얻어 영어가 모국어라는 이점을 이용하니 먹고살 길이 열렸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던 마이클이었기에 유치원에서 일하는 것은 만족스러웠다.
마이클은 한번 심호흡을 하고 순식간에 꼬마 아가씨를 번쩍 잡아 올렸다.
“잡았다.”
“꺄르르르르르.”
아이들이 마이클과 노는 것이 즐거운 듯 숨넘어갈 듯 웃었다.
“자, 이제 엄마, 아빠 오기 전에 밥 먹어야지.”
“싫어~~. 된장국 맛없어.”
“오마이 갓. 된장국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럼 선생님 다 먹어요.”
아직 미취학 아동들이다 보니 표현에 필터링이 없는 편이었다.
옆에서 다른 아이들 밥을 먹이던 돌봄 교사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소미야. 선생님한테는 ‘드세요~’ 해야지. ‘먹어요’가 아니라.”
“···드세요.”
“그래, 착하다. 소미 그거 다 먹어야 마이클 선생님처럼 튼튼해지는 거예요. 그래도 안 먹을 거야?”
“···먹어요.”
돌봄 교사가 웃는 낯으로 노련하게 어르자 소미라는 이름의 꼬마가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 늦은 저녁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간.
한창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은 유독 마이클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그만큼 그가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마이클이 온 후로 아이들이 활기차져서,
돌봄 선생은 그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TV에서 보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었는데.’
하지만 지내보니, 마이클은 아주 소탈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학부모들도 붙임성 좋고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마이클을 좋아했다.
‘정작, 이 애들은 마이클이 뭐하던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마이클이 한창 TV에 나왔을 때 이 애들은 4살 정도였으니,
그맘때는 기저귀를 차고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으리라.
돌봄 선생은 가끔 마이클이 안쓰러웠다.
‘그 방송 이후로 벌써 2년이나 지났네.’
스페셜k스타2 방영 이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마이클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밥을 다 먹고 나서, 조금 머리가 큰 7살짜리 남자아이가 마이클의 등에 매달렸다.
형, 누나를 따라서 요즘 가요를 꿰고 있는 꼬맹이였다.
꼬마가 얼마전 TV에서 들은 가요 하나를 흥얼거리다가 말했다.
“마이클, 이 노래 불러줘.”
“오, 마이 프렌드 도웅 노래?”
마이클이 자랑스러운 듯 얘기하자 꼬마가 정색했다.
“남도웅 선생님 친구 아니자나.”
“친구 맞아, 또웅! 마이 베스트 프렌드!”
마이클이 억울함에 제 가슴팍을 팍팍 쳤다.
그러자 꼬마가 가자미 눈을 떴다.
“TV에 나오는 유명한 가수가 어떻게 선생님 친구야.”
그 장면을 보다 못한 돌봄 선생이 마이클의 편을 들어주었다.
“진짜야, 선생님도 옛날에 TV로 봤어.”
“에이, 선생님들이 거짓말한다.”
“거짓말은 나빠요!”
곧장 아이들이 소리치며 마이클에게 엉겨 붙었다.
“오마이 갓, 난 거짓말하지 않아.”
그렇게 마이클이 억울함을 호소하던 와중이었다.
지-잉, 징.
마이클의 주머니에서 반복적으로 진동음이 울렸다.
그때 엉겨 붙어있던 꼬마 하나가 잽싸게 마이클의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잡아 뺐다.
“어! 그러면 안 돼요!”
돌봄 선생이 반사적으로 꼬마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꼬마는 액정 위의 이름을 더듬더듬 읽고 있었다.
“남···도웅?”
꼬마가 놀란 눈으로 우뚝 서자 마이클이 얼른 휴대폰을 빼앗았다.
“봤지? 또웅은 슈퍼스타지만 마이 베스트 프렌드!”
“우와아. 진짜다!”
“남도웅 진짜 선생님 친구다!”
아이들의 흥분한 반응 속에, 마이클은 돌봄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반갑게 도웅에게서 온 전화를 받아들었다.
**
도웅과 만나기로 약속한 토요일.
마이클은 간만에 자유분방한 복장으로 거리를 나섰다.
다들 사는 게 바빠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마치 스페셜K스타를 찍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마이클은 버스의 차창 밖으로 풍경을 감상하면서,
도웅의 신곡을 흥얼거렸다.
‘멋진 이벤트? 뭘까?’
무슨 일인지는 만나서 설명해 준다고 했지만,
마이클은 곧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때 이어폰으로 들려오던 도웅의 노래가 끊기고 벨 소리가 울렸다.
“와썹, 동생.”
이제 중학생이 된 유정우에게서 온 전화였다.
유정우와 마이클은 스페셜K스타 이후로 아직까지 서로를 삼촌, 동생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제 변성기가 지나 두꺼워진 유정우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삼촌, 혹시 삼촌도 오늘 와요?
“예스, 지금 버스야.”
도웅이 부른 것은 마이클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백설 누나도 나오겠죠?
“아마? 백설은 같은 판타스타니까.”
-도웅이 형이 도대체 뭘 하려고 우리를 모으는 걸까요?
“내 생각엔···.”
마이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얘기했다.
“아주 멋진 일일 거야!”
-···.
싱거운 마이클의 답에 유정우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면 우리한테 맛있는 걸 사주려는 생각이거나!”
-···그게 아니라, 제 생각엔 음악에 관련된 일인 것 같아요.
“음악?”
-네. 저한테 요즘 기타 잘 치고 있냐고 물었거든요.
유정우는 도웅을 롤 모델로 삼아 기타 연주를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래? 또웅 나한테는 그런 거 물어보지 않았는데.”
-삼촌 악기 다룰 줄 아는 거 있어요?
“노. 악기는 못 해.”
아무리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눠봐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둘은 이만 통화를 마무리했다.
-삼촌,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오케이.”
마이클은 다시 플레이리스트에서 노래를 골라 켜고 나서,
차창 밖으로 들뜬 시선을 던졌다.
**
“노래에 맞춰서 다시 한번만 해보자.”
“좋아.”
판타스타의 지하 연습실은 어느 때보다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며칠 전 음악방송에 처음으로 출연했던 것을 계기로,
사파이어 멤버들의 가슴속에 불이 지펴졌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신인.
그중에서 살아남으려면 더욱 치열하게 해야만 했다.
“허억, 헉. 우리 잠깐만 쉬자.”
“이삭아, 나 딱 한 번만 더. 중간에 팔 각도가 조금 아쉬워서.”
“그래, 알겠어.”
멤버들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한데도,
그렇게 만족감이 들 때까지 연습을 계속했다.
“얘들아, 이제 진짜 휴식. 매니저님 오면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으아아, 살았다.”
막내 로다가 연습실의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곧장 모든 멤버들이 소파로 모여들었다.
로다가 고개를 들어 마은율을 흘긋 쳐다보았다.
“은율 언니, 우리 노래 아직 차트 안에는 없지?”
“응. 그런데 SNS 같은 데에 우리 얘기하는 사람들도 생겼어.”
“정말?”
로다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렇다니까.”
“언니, 그런데 SNS는 금기사항이잖아.”
“그냥 검색만 해보는 건데, 뭐 어때?”
“딱 걸렸어, 딱 걸렸어.”
“그럼 앞으로는 너희한테 얘기 안 하고 나만 알고 있을게.”
“아니야, 언니. 나한테도 얘기해 줘. 매니저 오빠한테는 안 이를게에~!!”
마은율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얘기하자, 로다가 팔뚝에 매달려 울상을 지었다.
그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던 백설이 입을 열었다.
“언젠가 검색창에 사파이어라고 쳤을 때, 보석 사진보다 우리 사진이 더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될 거야.”
음악방송 전과는 다르게 희망이 서려 있는 멤버들의 얼굴.
그렇게 서로가 희망을 주고받고 있던 때, 사파이어의 매니저가 연습실의 문을 살짝 열었다.
“설아, 잠깐 나와볼래?”
**
‘도웅 선배가 무슨 일이지?’
사파이어의 매니저와 도웅은 알 수 없는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았고,
백설은 도웅과 따로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어딘가 불편한 자세로 긴장하고 있는 백설.
얼마 전 첫 음악방송에 출연했을 때,
갓 데뷔한 신인으로서 모든 선배에게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인사를 하고 다니다 보니,
데뷔 2년 차 선배인 도웅이 더욱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도웅이 픽 웃으며 적막을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음악방송 나갔던 건 어땠어?”
“아! 엄청 신기하면서도 정신없었어요.”
방금까지 어색함을 느끼고 있던 백설은,
그날을 떠올리더니 토끼처럼 미소 지었다.
“맞아. 나도 첫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어.”
“정말요?”
“응. 여기저기 하도 인사를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사람 그림자만 봐도 저절로 허리가 90도로 접히더라니까.”
“푸핫.”
그제야 백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공감할만한 대화를 나누며 다시 이전의 친밀감을 되찾아갔다.
“도착했습니다.”
심정남의 목소리에 차창 밖을 내다보니, 꽤 규모가 큰 갈빗집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식사할 모양이었다.
백설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홀을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만 따로 불러낸 거지?’
도웅이 멤버 중 자신만을 불러낸 것을 의아하게 느끼고 있던 때,
직원이 나무로 된 룸의 문을 밀어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해맑은 얼굴의 제임스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도웅! 백설!”
“우와, 제임스 오빠!”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백설에게서 오빠라는 호칭이 먼저 튀어 나갔다.
작년에 스페셜K스타3 방청을 함께 한 이후로 거의 1년 만의 만남이었다.
“너 뮤직타임 나온 거 본방사수했어. 데뷔 축하해 백설.”
“하하하, 감사해요.”
“도웅이 네 신곡은 당연히 너무 좋고. 자식, 더 멋있어졌네?”
세 사람은 그렇게 손을 맞잡으며 반가움을 나누었다.
백설은 세팅된 수저의 개수를 보고 더 올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챘다.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백설은 아마도 도웅이 나서서, 간만에 스페셜K스타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했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이클과 유정우가 시끌벅적하게 등장했다.
“오마이 갓-, 친구들 다 같이 모여있네!”
“누나, 형. 오랜만이에요.”
“우와, 정우 키 큰 거 봐. 그새 엄청 컸네.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면서, 학교 열심히 다니죠.”
“오오-.”
제임스가 기특하다는 듯 정우의 등을 툭 쳤다.
그렇게 서로의 근황을 간단하게 나누고 있자, 먹음직스러운 반찬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불판에 갈비가 달궈지는 동안, 도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가 처음으로 팬 미팅을 하게 됐는데요.”
그러자 마이클과 제임스는 곧장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와우! 팬 미팅!”
“진짜 멋지다. 우리 꼭 놀러 갈게.”
유정우와 백설도 선망의 눈빛으로 도웅을 바라보는 가운데,
도웅은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그 무대에 여러분이 서 주셨으면 좋겠어요.”
“응, 그거 좋··· 왓?”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던 마이클이 우뚝 멈춰 섰다.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동료들 사이,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도웅은 찬찬히 자신이 원하는 무대가 무엇인지 설명해나갔다.
모든 설명을 다 듣고 먼저 입을 뗀 것은 유정우였다.
“우리가 밴드를요?”
“응, 밴드.”
도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우, 그거 진짜 끝내주는 이벤트잖아?”
정말 멋진 일이 펼쳐질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