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2)
122. 연주 한번 살벌하네요.
유정우가 한 명 한 명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제가 기타를 치고 백설 누나는 키보드를, 제임스 형이 베이스를.”
마지막으로 유정우의 손가락이 도웅을 향했다.
“그리고 형이 드럼을 친다고요?”
백설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제임스는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베이스를 담당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도웅의 드럼은 전혀 들어본 바가 없는 얘기였다.
“응, 작년부터 치기 시작했어.”
“너 엄청 바쁘지 않아? 도대체 언제 틈이 나서 드럼을 배웠어?”
제임스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지난 앨범 끝나고 휴식기에요.”
“그럼 얼마 안 된 거네?”
“네. 1년이 안 됐죠.”
제임스는, 도웅이 가벼운 이벤트성 무대를 계획하나보다 생각했다.
악기를 시작한 지 반년 만에 대단한 연주를 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마이클이 자신의 가슴팍을 ‘탁’ 쳤다.
“또웅, 그럼 나는 뭐 하는 거야? 나는 할 줄 아는 악기가 없어.”
“형은 가운데서 보컬로 중심을 잡아주는 거죠.”
“오마이 갓. 내가?”
“네, 형이요.”
정말 오랜만에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다는 데서 마이클이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예에!”
도웅은 동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다들 이 계획에 참여할 수 있겠어요?”
스페셜K스타에서 함께 무대 할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모두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다면, 지금은 각자가 살아가야 할 삶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만약 한 사람이라도 힘들다고 한다면,
아쉽지만 도웅은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었다.
그때 마이클이 테이블 위에 주먹을 ‘콩’하고 올렸다.
“물론이지! 무조건하고 말 거야.”
뒤이어 유정우와 제임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만 들어도 너무 재미 있을 것 같은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저도요. 학교를 빠지거나 해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요.”
“걱정 마, 그런 일 없도록 스케줄을 조정할게.”
도웅이 안심시키자 유정우가 미소 지었다.
유정우가 곧장 제임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형은 스케줄 없어요? 형도 음반 발매했잖아요.”
“···아픈 데 건드리지 마라, 꼬맹아.”
“아까는 다 컸다더니 왜 또 꼬맹이에요.”
“난 다 컸다고 한 적 없어. 많이 컸다고 했지.”
그렇게 두 사람이 사소하게 티격태격하는 동안, 백설은 고민하는 듯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백설의 대답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되자,
그녀가 입술을 움직거렸다.
“저는···.”
갓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 이런 사항을 단독으로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녀는 팀에 속해있었으니까.
도웅이 그 분위기를 알아채고 부드럽게 얘기했다.
“팀 스케줄 때문에 걱정되는 거면 그건 내가 너희 매니저님이랑 이야기해볼게. 네가 하고 싶은지만 얘기해주면 돼.”
“하고 싶어요!”
도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를 친 백설 덕분에, 동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우리 이제 같이 무대에 서는 거야?”
“우와,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 무대가 도웅이 팬 미팅이라는 사실이 감회가 새롭다.”
“진짜 그렇네요···. 2년 만에.”
동료들의 시선이 물 흐르듯 도웅에게 와 닿았다.
도웅은 빙긋 웃으며 준비해온 악보를 꺼내 들었다.
“제가 편곡해온 악보인데요. 각자 연습해서 다음 주 합주하는 날 만나요.”
“예썰!”
**
‘어떻게 하면 도웅 씨 팬 미팅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 이나래 대리의 주 관심사였다.
덕질과 생업이 일치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몰두하게 됐다.
‘공연은 도웅 씨가 알아서 잘 준비할 테니까, 서포트만 하면 되는 거고.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이나래 대리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도레미 톡방을 확인했다.
팬들의 니즈를 확인하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회원들은 아직 도웅이 팬 미팅을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럼에도 24시간 동안 도웅에 대한 이야기로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화면에 사진이 하나 떠올랐다.
지난 락 페스티벌에서 만났던 ‘도도’라는 손재주 좋은 회원이 만든 아크릴 재질의 열쇠고리 사진이었다.
그에 대한 회원들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뭐야 졸귀!!!
-으으아아아앙아
-완전 금손이시네요.
-도도 님, 그거 저한테도 파시면 안 될까요?
그 사진을 본 이나래 대리도 혹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잘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자코 회원들의 반응만 살폈다.
-힝, 진짜 예뻐요.
-갖고 싶다···.
-도웅이는 굿즈가 너무 빈약해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규.
팬들의 말이 맞았다.
판타스타는 아이돌을 키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MD 사업에 관련해서는 조금 부족한 편이었다.
이나래 대리는 팬들의 울부짖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굿즈 제작에 팔을 걷어 붙여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팬 미팅에 굿즈가 빠질 수 없지.’
그녀는 곧바로 시장조사를 시작했고,
상품 제작을 담당하는 팀과 회의 날짜를 잡았다.
‘그래도 팬의 마음은 팬이 가장 잘 아는 법이지.’
그리고 이나래 대리는 방금 톡방 안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열쇠고리의 주인인 도도에게도 따로 쪽지를 보냈다.
그녀가 운영하는 블로그 주소를 알고 있었기에 과정은 수월했다.
-안녕하세요. 판타스타입니다. 블로그에 올리신 저희 소속 아티스트 ‘남도웅’ 씨의 굿즈와 관련해 대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당 번호로 연락 주시면···.
쪽지를 보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곧장 사내전화의 벨 소리가 울렸다.
이나래 대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판타스타 제작팀 이나래 대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어쩐지 힘이 없는 목소리의 도도 회원은 기가 잔뜩 죽은 채로 물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물건이고, 판매한 적은 없는데 문제의 소지가 있는 건가요?
“아니요, 문제의 소지는 없습니다.”
-그럼···
“도도 님이 만드신 물건을 공식 굿즈로 제작해 보고 싶어서 연락드린 겁니다.”
이나래 대리의 이야기를 들은 도도는 아무 얘기가 없었다.
‘혹시 내 목소리를 알아챈 건가?’
이나래와 도도는 전에 락 페스티벌에서 함께 공연을 봤던 전적이 있었다.
벌써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원치 않았던 이나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계약할 때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저, 도도 님?”
-···감사합니다.
“네?”
떨리는 도도의 목소리에서 벅찬 감정이 느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꼭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공식 굿즈로!!
그녀는 그저 감동을 해서 말을 잇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 명의 성덕이 더 탄생하게 되었다.
**
며칠이 지났다.
그간 유정우는 방과 후에 틈틈이 기타를 연습했고,
마이클은 종일 아이들을 보면서 가사를 흥얼거렸다.
제임스도 모처럼 베이스를 꺼내 연습에 몰두했다.
백설이 속해있는 사파이어는 오늘도 불꽃 같은 연습을 끝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래, 고생했어.”
“으, 땀 냄새. 빨리 숙소 가서 씻고 싶다.”
막내 로다가 자신의 티셔츠를 쭉 잡아당겨 킁킁 냄새를 맡았다.
“내가 1등으로 씻을 거야. 무조건 1등.”
“그럼 난 2등!”
“···3등이요!”
세 사람이 줄을 서고 마지막 남은 백설을 바라보았다.
“아, 나는 오늘 키보드 연습을 해야 해서 먼저들 들어가.”
“헤엑, 지금부터 또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막내 로다가 기함을 토했다.
백설은 다 함께하는 스케줄을 그대로 소화하고,
남은 시간에 개인적인 연습을 하기로 매니저와 상의를 마친 상태였다.
팀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부럽다. 도웅 선배 팬 미팅 무대에 서는 거”
“맞아···. 그때 우리도 응원 갈 테니까 조금만 힘내, 파이팅!”
그렇게 멤버들이 떠난 뒤, 백설은 지친 몸을 이끌고 키보드 연습을 하기 위해 위층으로 향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스페셜K스타의 오빠, 동생들과 오랜만에 무대에 설 생각을 하니, 없던 기운도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합을 맞춰보는 날.
모두가 비장하게 저마다 악기를 챙겨 홍대 지하의 합주실에 모였다.
도웅이 실물 드럼을 연습할 때 찾는 레몬 합주실이었다.
히피처럼 볶은 머리를 질끈 묶은 사장이 도웅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 인기스타 왔나.”
“사장님 오늘 데이트 하시나 봐요?”
“그렇게 티나?”
“네. 일단 머리를 묶으셨잖아요.”
평소에 삽살개처럼 풀어헤쳐 놓은 머리를 단정히 묶었다는 데서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장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매만졌다.
뒤이어 도웅의 동료들이 따라 들어오자 사장이 눈썹을 꿈틀댔다.
“어디서 본 친구들인데?”
티비를 잘 보지 않는 사장은 그들이 도웅이 아는 뮤지션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령대와 인종까지 다르니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갸웃하던 사장이 도웅에게 말했다.
“아무튼 내가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이따 나가봐야 할 것 같거든?”
“그래요?”
“근데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금방 알바가 올 거니까.”
“네, 알겠어요. 잘 다녀오세요.”
곧이어 네 명의 동료들은 도웅을 따라 합주실에 들어가 각자의 악기를 세팅했다.
악기를 다루는 서로의 모습은 처음 보는 상황이기에,
합주실 안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동료들이 보기에 드럼 자리에 앉아있는 도웅이 가장 낯설었다.
얼추 세팅이 끝나자 도웅이 말했다.
“그럼 한번 해 볼까요?”
챙챙챙챙-.
도웅이 하이햇으로 도입의 박자를 깨웠다.
그에 맞춰 흐르는 유정우의 잔잔한 기타선율.
그리고 불시에 거칠고 강한 드럼 비트가 말초신경에 스크래치 내듯 울려 펴졌다.
“···!”
정박자에 강인하게 내리치는 스냅과 박자를 쪼개는 기술.
도웅의 연주를 들은 동료들이, 마치 신기루를 보듯 멍하게 서 있었다.
그 덕에 하나같이 자신이 맡은 파트의 박자를 놓쳐버렸다.
도웅이 곧장 연주를 멈추고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 너 드럼을 어떻게 그렇게···.”
제임스가 말을 잇지 못하자 유정우가 감상을 표했다.
“연주 한번 살벌하네요.”
적당히 칠 줄 알았던 도웅의 실력이,
거의 프로 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역시, 네가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이런 기획을 했을 리가 없지.”
제임스는 도웅의 완벽한 연주에 혀를 내둘렀고,
“오우, 맨! 너 진짜 멋지다!”
마이클은 다가와 짝! 하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럼 다시 가 볼게요.”
챙챙챙챙-
다시 도웅의 하이햇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동료들의 손끝에 비장함이 담겨있었다.
도웅의 실력을 확인한 이상, 여기서 누가 될 수는 없다는 그런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도웅의 드럼 비트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비트를 따라 예민하게 음악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음악은 도웅이 듣기에 제법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
‘꽤 치는데?’
그 시각,
데이트를 하러 간 사장 대신 계산대에 선 아르바이트생이,
언뜻 들려오는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역시 이 근방의 무명 밴드 소속으로 드럼을 치는 사람이었다.
잠시 후, 방금 그 합주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한데 하나같이 얼굴들이 낯익었다.
‘어? 저 사람 남도웅 아니야?’
아르바이트생은 맨 앞에 서 있던 도웅을 알아보았지만,
자신도 어쨌든 뮤지션이니 짐짓 차분한 척 얘기했다.
“32,000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되려 앞에 우뚝 선 도웅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뭐지?’
알바생은 자신의 얼굴에 뭐가 뭍었나 싶어 옆에 붙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도웅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나다니.’
그는 바로,
메가플레이 ‘베테랑 드러머 J의 연주법(B)’.
그 영상의 주인공이었으니까.
도웅은 그의 앞에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