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5)
125. 얼마나 더.
불꽃 같았던 팬 미팅이 끝나고,
일상은 빠르게 찾아왔다.
유정우는 평범한 중학생으로,
백설은 사파이어 멤버로서,
제임스는 다음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이클이 돌아갈 곳은 유치원이었다.
“헬로, 보스.”
“마이클!”
원장 선생이 마이클을 어느 때 보다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다.
“티켓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우리 딸이 엄마 최고라고 난리가 났다니까?”
“하하.”
“마이클 노래도 정말 이거였대.”
원장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거 내가 고마워서 반찬 좀 싸 왔으니까 집에 가져가서 먹어.”
“오! 보스, 땡큐. 고마워요.”
원장 선생님은 혼자 생활하는 마이클을 위해 종종 반찬거리를 해다 주었다.
거기에 오늘은 조금 더 신경을 쓴 것이었다.
마이클의 새로운 영상이 인터넷에 뜬 덕에 아이들까지 더욱 성화였다.
“마이클!!.”
“여기서도 노래 불러줘요!”
“히히, 선생님 나 영상 열 번 봤어요.”
분명 주변 사람들은 더욱 호의적이었고,
일 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종일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공허했다.
마이클에게는 2년 만의 화려한 외출이었으니,
기쁨이 컸던 만큼 직후의 허전함도 크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하···. 여기가 왜 이러지. 배고픈가?”
일과를 끝낸 마이클은 퇴근길 시큰한 가슴팍께를 문지르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이클이었지만, 연고 없는 타지에서의 2년.
가수의 꿈에는 다가서지 못한 채로 무던히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단칸방의 지하로 향했는데,
문 앞에 커다란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오, 오늘은 선물이 많네.”
도웅이 팬 미팅을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보낸 한우였다.
“와우! 고기!”
마이클은 모처럼 비좁은 식탁에 선물 받은 음식들로 진수성찬을 차렸다.
“으음~ 맛있네.”
그렇게 우걱우걱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종일 공허했던 허기가 달래지는 것도 같았다.
마이클은 습관처럼 팬 미팅 영상을 또 재생했다.
무대 위에서 마음껏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흐흐, 흐.”
그 순간이 생각난 마이클은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영상이 끝나는 그 순간,
꿀꺽.
마이클은 다시 단칸방 안의 현실로 돌아와,
공허를 이기기 위해 밥 한 큰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지금 뭔가 이상해. 난 노래가 하고 싶어서 여기에 있는 건데.”
하지만 어렴풋이 알았다.
자신은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중이라는 것을.
변변찮은 기회도 잡지 못하다 2년 만에 선물처럼 찾아온 무대.
그것이 오히려 현실을 일깨워준 것이었다.
한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 없는 그 단어가,
오늘따라 목구멍에 걸렸다.
마이클은 답답한 마음에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 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돌연 타지에서의 도전이 막다른 길에 왔다고 느끼던 때,
마침 마이클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밥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반갑고도 미안한 이름.
-Dad
타지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이클은 어딘가 무거운 마음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부자간에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가기를 잠깐,
미국인인 마이클의 아버지가 입안에 무겁게 맴돌던 말을 꺼냈다.
“마이클, 이제 그만 미국으로 돌아오는 게 어때?”
**
“응? 무슨 소리지?”
방송국 복도에서 못 듣던 소리가 울렸다.
“아, 저기 피아노가 한 대 들어왔네요.”
심정남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니 검정 그랜드피아노 하나가 음악방송 녹화장 앞의 로비에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아이돌 몇이 모여 건반을 두드리는 중.
긴 대기시간의 지루함을 장난치며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심정남이 다시 걷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게 젓가락 행진곡이던가요?”
“네, 아마도요? 형은 저 곡을 어떻게 알아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이들이 건반을 두드려볼 때 십팔번으로 쳐보는 곡.
두 개의 음이 동시에 눌리며 내는 청량한 소리가 매력적인 곡이었다.
“이래 봬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피아노 배워봤지 말입니다.”
“형이요?”
“예. 체르니 100까지는 떼었습니다.”
심정남은 투박한 손을 들어 피아노 치는 시늉을 했다.
“형은 뭐로 보나 그 시간에 태권도를 배웠을 것 같은데.”
“허허, 저희 누나가 다니는 게 좋아 보여서 저도 보내 달라 떼를 썼었거든요.”
심정남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웅은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없었다.
여자 형제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피아노를 칠 줄은 모르지만 어떤 건반에서 어떤 음이 나는지는 대강 알았다.
작곡 프로그램을 쓸 때 모니터 화면 위의 건반을 마우스로 찍어서 사용해야 했으니까.
물리적으론 칠 줄 몰라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때로는 도웅이 인사하고, 후배들에게 인사를 받기도 하며 대기실로 향했다.
2년 차 정도 되어보니 선배와 후배의 비중이 딱 절반 정도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도웅이 올려다보며 인사했던 선배의 절반이 사라지고,
뉴페이스들이 그만큼 생겨났다는 소리였다.
그만큼 치열한 이 시장에서 도웅은 살아남았다.
대기실에 도착한 도웅이 음원 순위를 확인했다.
도웅의 타이틀곡은 현재 3위,
그 위에는 1군 남자아이돌의 노래 두 곡이 올라가 있었다.
음악방송 순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팬덤 싸움에서는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도웅이 입맛을 쩝 다시면서 말했다.
“아쉽지만 이번 앨범은 이게 최선일 것 같죠?”
“도웅 씨, 사실 3위도 엄청난 겁니다. 하필 상대를 잘못 만난 것뿐이죠.”
심정남의 말이 맞았다.
이전 같았으면 언감생심 3위에도 크게 기뻐했을 것을.
하지만 한번 1위 맛을 보니 그게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를 알아버렸다.
“도웅 씨 팬덤도 꾸준히 늘고 있으니까 다음 앨범에서는 분명 1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그래, 다음 앨범에서는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심정남이 음원 차트의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그래도 도웅 씨 자작곡은 순위가 꾸준히 오르고 있지 말입니다.”
“그런가요?”
“원래 같았으면 차트 끄트머리에 있던 곡이라 지금쯤 아웃되었어야 맞는데 지금 57위라는 것은 그만큼 노래가 좋아서 계속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죠.”
도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틀곡과 다르게 무대에서 부를 기회도,
홍보할 기회도 적은 수록곡의 순위가 오르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오직 도웅의 힘으로 만든 곡이 찾아 들을 만큼 좋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렇게 대기하는 동안, 도웅은 살며시 메가플레이 어플을 켰다.
얼마 전 팬 미팅에서 떠올랐던 빨간 별.
[ 레벨업 자격을 검토합니다. ] [ Lv.3 베테랑 > Lv.4 프로 ] [ 사용자의 수준 검토 중···.. ] [ 이 작업은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그 덕에 기대도 않던 레벨업 검토 문구가 며칠째 메가플레이 화면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모처럼 하루 스케줄이 비는 날.
도웅은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스케줄 외의 시간을 활용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딸깍, 딸깍.
도웅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전에 마은율의 아버지에게 받은 헤드폰을 쓰고 작업을 하느라 바깥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거실에서는 엄마가 친구와 한창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응, 윤형이 엄마. 아들래미가 대학가더니 술만 퍼마시고 집엘 안 들어와? 아유, 그 나이 때 애들이 다 그렇지. 우리 도웅이?”
엄마는 도웅의 방 쪽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자 안면에 화하게 번지는 미소.
“도웅이는 내 속으로 낳았지만 좀 특이 케이스지. 호호, 비법? 그냥 도웅이가 알아서 잘 커 줬지 내가 뭐, 한 게 있나. 아, 그래. 아침밥 해야지. 그래 다음에 봐~.”
도웅이 데뷔한 이후로 친구들과의 통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친구들은 온통 자신을 부러워했고,
어딜가나 자신을 아들 잘 키운 엄마 취급했다.
“막상 난 너무 못 챙겨줘서 미안한데.”
그냥 낳아 놓았더니 올 바랐고, 현명했다.
엄마는 살며시 도웅의 방문을 두들겼다.
“도웅아, 아침 먹을 거니?”
“네, 간단하게요.”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게임을 하듯 흥미 가득한 도웅의 눈빛과 손동작.
엄마는 또래에 맞는 아들의 모습을 간만에 보는 것 같아 노트북을 슬쩍 보았다.
“이건 뭐 하는 거니?”
“음악 만드는 프로그램이에요.”
“아, 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도웅이 하고 있는 것은 게임 따위가 아니었다.
“무슨 음악을 만들고 있는 건데?”
“음··· 그냥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있어요.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실전에 뛰어들 수 있으니까요.”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웅의 방문을 살짝 닫아주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영양소가 듬뿍 담긴 아침상을 차려주기 위해서.
“이게 내가 도웅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지.”
보통의 엄마들처럼 걱정하고 잔소리할 일도 없는 아들.
어쩌면 자신의 역할이 적은 듯도 했지만, 엄마는 도웅만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편 도웅은 마이클을 떠올리며 작업하는 중이었다.
이번 팬 미팅 무대를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
모두가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지만, 마이클은 그렇지 않았다.
“거긴 형이 있어야할 곳이 아니야.”
음악을 하며 행복해하는 마이클의 모습과,
확연하게 뛰어난 그의 노래 실력.
자꾸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마이클에게도 소속사의 스카우트 제의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예능에서 조금 써먹거나, 음반은 내줄 능력이 없는 소규모의 소속사들이었기에 도웅의 조언 하에 마이클이 거절을 했었다.
“그때 내가 막지 말았어야 했나.”
분명 마이클의 실력 정도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판타스타에서도 ‘외국인’ 마이클을 영입하는 걸 망설였으니까.
도웅은 그렇게 마이클을 위한 곡을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다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판타스타로 향했다.
판타스타의 작업실에서는 임지문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는 이제 홍대를 정리하고 판타스타의 소속으로 아예 들어왔다.
“지문 형, 바빠요?”
“아니, 그냥 작업하는 거지.”
그는 간단한 인사 후 작업에 몰두했다.
도웅은 가만히 그의 옆에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문득 자신의 작업 방식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형, 근데 그 키보드는 어떨 때 쓰는 거예요?”
“이거? 마스터 키보드잖아. 작곡 프로그램에 악기 입력할 때 쓰는 거.”
“아아.”
단순히 프로그램에 피아노 소리를 넣는 거라 짐작했는데 그게 다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임지문이 갑자기 희한한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지금까지 이거 안 쓰고 작업한 거야?”
“···네.”
“허어.”
그가 기함을 토하더니 의자에 등을 푹 기댔다.
“왜요?”
“이런 사람이 또 있었네.”
엄연히 작곡은 노트북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컴퓨터 자판과 마우스만 있어도 소리를 찍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스터 키보드가 가상 악기를 찍어내는 데는 월등히 편리했다.
“너 루브론즈라고 알아?”
“네.”
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루브론즈는 ‘트랙 메이킹’영상의 주인공이 소속된 작곡 팀이었으니까.
“거기 강경민이라는 사람이 너처럼 작업하거든. 딱 컴퓨터로만.”
도웅이 그 사람에게서 트랙 메이킹을 배운 것이나 다름없으니 작업 방식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바라보자 임지문이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이 업계 괴짜로 통해. 그렇게 작업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
“저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피아노를 칠 줄 모르다 보니까.”
임지문이 그 얘기를 듣고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할 줄 모르는 상태로 작업한 게 그럼 그 정도였던 거야? 이거까지 쓸 줄 알게 되면 얼마나 잘 만들려고.”
임지문은 짬을 내서 곧바로 마스터 키보드를 사용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이게 이렇게 쓰는 거구나. 엄청 편하겠는데요?”
“그치? 이거 한번 쓰면 절대 그 전으로는 못 돌아갈 거야.”
도웅은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피아노 효과 찍는 거는 연습이 좀 필요하겠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진짜 피아노 치듯이 해야 하니까.”
피아노 멜로디를 넣으려면, 진짜 피아노를 연주하듯이 마스터 키보드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도웅은 피아노 연주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물리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마우스로만 음계를 찍어왔으니까.
그런데 마침 그때, 도웅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도웅은 슬쩍 화면을 확인했다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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