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푸른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도웅은 다시 한번 문구를 확인했다.
[ ‘Lv.4 프로’로 레벨업이 가능합니다. ]한 단계 레벨업을 하면 레벨4.
지금까지 도웅이 밟고 올라온 단계가 벌써 네 단계나 되었다.
‘레벨1 일 때는 아마추어들이 영상의 주인공이었고, 그다음엔 루키라고 불릴만한 인물들. 그다음엔···.’
아마도 지금부터 나오는 영상의 주인공은 그 분야의 프로라는 얘기였다.
즉, 도웅이 습득할 재능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뜻.
다른 때보다 레벨이 올라가는 텀이 짧게 느껴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행운이 좀 더 빨리 찾아왔다고 여기면 그만이니까.
메가플레이 자체가 이미 도웅에게 찾아온 말도 안 되는 행운이었다.
‘후, 미치겠다.’
[ 지금 레벨업 하시겠습니까? YES/NO ]도웅은 혹시라도 메시지 창이 사라질까,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고 YES 버튼을 눌렀다.
임지문한테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들고서.
필요한 별의 개수는 넉넉한 상태였다.
[ Lv.3 베테랑 > Lv.4 프로 ] [ 레벨업이 완료되었습니다. ]레벨업 완료 문구가 깜빡이자,
비로소 도웅은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극도로 긴장했다 풀리는 도웅의 표정을 본 임지문이 고개를 기울였다.
“도웅아,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 별일 아니에요.”
도웅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곧 새로운 영상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형, 시간 내서 가르쳐줘서 고마웠어요.”
“고맙긴. 너도 작업 잘하고!”
“네!”
후다닥.
도웅이 급하게 마무리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도웅의 뒷모습을 보며 임지문이 중얼거렸다.
“화장실이 많이 급했나 보네.”
**
도웅은 비어있는 다른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 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바로 나오려나?”
마치 로또 번호 추첨을 기다리는 그런 심정이었다.
어떤 영상이 나오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뀌는 경험을 숱하게 해왔으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꽝은 없었어.”
다만 영상이 언제 나올지가 문제였다.
그리고 레벨업을 하면 경험상 그 직후에···.
띠링.
마침 그때 새로운 알람이 울렸다.
“예스!”
[맞춤형 영상 탐색 완료.] [Lv.4 프로 추천 동영상 : 프로 작곡가 H의 피아노 연주법(A).]“피아노?”
도웅은 새로운 영상에 기뻐하면서 방금 전 임지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피아노를 칠 줄 모르니 연습이 필요하겠다던 대화를 나눈 게 고작 10분 전.
신통방통하게도 메가플레이가 딱 도웅에게 필요한 영상을 추천해 준 것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맞춤 동영상이네. 그나저나 프로라고 하면 내가 아는 사람일까?”
프로.
전문적으로 일하여 타인의 인정을 받는 사람.
그러니 프로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는 인물이리라 짐작한 도웅이,
한번 심호흡을 하고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피아노의 흰 건반 위 섬세하게 주름진 손등.
화면이 줌 아웃되자 점잖은 의상, 뼈대가 얇은 몸통.
마지막으로 인물의 얼굴이 드러났다.
“···!”
도웅은 순간 숨이 멎을 듯 놀랐다.
왜냐하면.
“···허영준 선배님이잖아?”
정작 그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허영준.
심야 음악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가수 겸 작곡가.
도웅의 첫 미니앨범에 선뜻 곡을 내어준 고음 변태.
그리고 얼마 전 팬 미팅 사회를 봐주었던 남자.
도웅은 여러모로 인연이 있는 그가 화면에 비치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평소의 장난기는 싹 빼고 연주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도웅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허영준 선배라면 누구라도 프로라고 인정할 만하지.”
친근한 MC의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본업은 작곡가.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인 한국대학 작곡과 출신으로,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작곡가로 활동해온 수재.
그가 바로 허영준이었다.
따라라랑.
영상에서 허영준의 양손이 마치 물결치듯 피아노 건반 위에 넘실댔다.
“선배님은 이렇게 피아노로 멜로디를 먼저 구상하는구나.”
사람마다 작곡하는 방식도 제각각.
도웅은 기타를 이용해 멜로디를 구상하는 쪽이었기에,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작곡을 하는 허영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흰색과 검은색의 건반을 오가며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꾹꾹 눌러 담기는 표현.
그의 연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디지털 악기로 찍어내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표현이었다.
그렇게 피아노라는 악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을 때,
영상이 끝이 났다.
“···좋다.”
도웅은 방금까지 귓가에 맴돌던 여운을 곱씹으며 전율했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가수인 허영준.
전생에 TV로만 봐오던 인물의 곡으로 노래할 수 있는 영광을 넘어,
그의 재능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니.
도웅은 감격에 겨워 저릿한 손끝으로 휴대폰의 화면을 터치했다.
[해당 영상 속 재능을 ‘남도웅’ 님의 플레이리스트로 전송합니다.]**
악기를 하나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음악적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만의 연습실 안.
[‘그랜드 피아노’ 옵션을 설치합니다.]도웅은 설레는 마음을 담아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 피아노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자 도웅의 열 손가락이 낯선 감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끝에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
88개의 건반 위에 열 개의 손가락이 자유롭게 영감을 표현했다.
플레이리스트가 끝나고 도웅은 온전히 제힘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더욱더 낯설게 느껴지는 손가락의 움직임.
마치 입력 오류가 생긴 기계처럼 도웅의 손가락이 느리게 삐거덕댔다.
“어휴, 생각처럼 안 되네.”
거기다 음량을 조절하기 위해 패달까지 사용해야 하니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웅의 머릿속에서는 연주해보고 싶은 음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미 작곡 프로그램으로 화음의 구성과 연결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해왔기 때문.
그저 머릿속에 있는 것을 곧바로 칠 수 있을 만큼 물리적으로 매칭이 안 될 뿐이었다.
“이대로 연습해서 능숙하게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 작곡해온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음악적 영역이 넓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그렇게 도웅은 피아노 연주에 푹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며칠 후 음악방송의 대기실.
스타일리스트가 그의 머리를 손보는 동안,
도웅은 연신 화장대 위해 피아노 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스타일리스트가 물었다.
“도웅 씨, 요즘 피아노 쳐요?”
“아, 네. 취미로요.”
“와···. 도웅 씨 진짜 부지런하다. 나는 일 끝나면 집에 가서 뻗기 바쁜데.”
스타일리스트가 도웅의 머리 위로 스프레이를 뿌리며 감탄했다.
“하긴, 나 같아도 도웅 씨 정도 재능 있으면 계속 배우고 싶을 것 같아요.”
“제 재능이요?”
“모른 척은. 저 요즘 하루에 한 번씩은 ‘갈림길’ 들어요.”
스타일리스트가 손을 빠르게 놀리느라 한 템포 쉬었다가 말했다.
“그거 도웅 씨가 작곡한 것 맞죠?”
“하하, 네.”
“그거 순위 올라가는 데 내가 한몫하고 있다니까요? 다 됐다. 머리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줘요.”
“감사합니다.”
머리를 마친 도웅이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얼마 전 복도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마침 오늘은 피아노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도웅은 피아노 스툴에 궁둥이를 붙이고 매끈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는 피아노 건반을 건드렸다.
서걱.
실제로 타건할 때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다.
“그 노래를 한번 쳐볼까?”
도웅은 곧장 자신이 작곡한 ‘갈림길’의 피아노 멜로디를 연주해보기 시작했다.
마우스로만 찍어냈던 음계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직은 서툰 강약 조절과 자연스러운 연결.
하지만 소리 안에서 도웅이 곡에 담고자 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
실물 피아노가 만드는 소리에 빠져, 도웅은 연주하는 동안 살포시 눈을 감았다.
마침 그때 로비를 지나가던 예능국의 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이돌을 소개하는 ‘아이돌 탐구’라는 프로그램의 작가였다.
“아우, 피곤해.”
프로그램은 아이돌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며,
대중가요 시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10~2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섭외.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인재풀이 고갈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재를 서칭하는데 날밤을 까고 있었고,
푸석해진 피부 위에 다크서클도 묵직하게 내려앉은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회색 후드티에 한쪽 손을 찔러넣고,
믹스커피로 수명을 연명하던 그 타이밍이었다.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그녀는 홀린 듯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몇몇 사람들이 피아노를 둘러싸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관객들 모두 화려하게 치장한 아이돌들이었다.
‘헐, 뭐야. 남도웅 선배님 아니야?’
‘응, 아까부터 듣고 있었는데 진짜 멋있어.’
‘저 후배는 진짜 못 하는 게 뭐야?’
‘남도웅?’
작가는 피곤해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집중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남도웅의 모습을 보았다.
‘찾았다! 내가 왜 도웅 씨 생각을 못 했지?’
그녀는 밤을 새느라 멍했던 정신이 확 깨였다.
그렇게 노래 한 곡을 완주했을 무렵,
도웅은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때서야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변에 둘러서 있는 선후배 가수들.
도웅은 멋쩍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그때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불쑥 다가와 도웅에게 인사했다.
몰골은 초췌했지만,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니 방송국 직원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도웅 씨.”
“네,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돌 탐구’의 작가 한미래입니다.”
그녀의 눈에 도웅이 비쳤고,
밤새 푹 꺼졌던 그녀의 눈동자는 살벌하게 빛났다.
**
며칠 후 판타스타 근처의 카페.
“마이클! 여기에요.”
“헤이, 도웅!”
아직 쌀쌀한 봄 날씨에 선글라스를 쓴 마이클이 벌써 반소매 차림으로 등장했다.
“형, 아메리카노랑 녹차라떼 시켰는데 뭐 드시겠어요.”
“나는 아메리칸이지만 아메리카노 안 먹는 사나이.”
“그럼 이거 형이 드세요.”
도웅이 연둣빛 액채가 담긴 잔을 마이클 앞에 내밀었다.
“땡큐.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
이곳에 마이클을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도웅이었다.
며칠간 그에게 주기 위해 골몰했던 곡을 드디어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본론을 꺼내기 전에 궁금한 것을 물었다.
“마이클, 그런데 어떻게 지금 시간이 났어요? 오늘 유치원은 안 가도 되는 거예요?”
마이클은 도웅의 질문에 살짝 뜸을 들였다 말했다.
“나 유치원 그만두기로 했어. 갑자기 헤어지는 건 서운하니까 당분간 일주일에 3일만 나가거든.”
“갑자기 왜요?”
놀란 도웅이 묻자 마이클이 한참 동안 음료 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그가 무겁게 입을 뗐다.
“나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도웅은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가수가 되겠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던 마이클이었는데.
“마이클, 그럼 노래는요? 이제 노래 안 할 거예요?”
“이제 미국에 가서 살 방법을 찾아야지. 벌써 여기서 3년이나 지났는데 아무 결과가 없으니까.”
마이클이 평소 볼 수 없었던 어두운 얼굴을 했다.
스페셜 K스타에 도전한 때부터 햇수로 3년.
3년의 세월이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홀로 타지에서 고생한 마이클에게는 누구보다 길게 느껴졌으리라.
도웅은 그간 마이클의 고뇌가 느껴지는 것 같아 무겁게 시선을 떨궜다.
그리고 말없이 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는 화면에 소리 파일을 하나 띄워놓고 마이클에게 말했다.
“마이클. 갈 때 가더라도, 이 노래 한번 듣고 생각해봐요.”
“무슨 곡?”
마이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도웅은 말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고,
곧바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이클이 음악에 집중하다가, 뭔가를 짐작한 듯 살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거···.”
“네, 제가 마이클에게 주고 싶어서 만든 곡이에요.”
마이클의 어둡던 표정이 즉시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도웅이 말에 무게를 담아 얘기했다.
“어때요? 미국 가는 거 조금 미뤄보는 게?”
순간 마이클의 푸른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