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박수. 여기서 박수.
기쁨 가득한 마이클의 포효.
그 덕에 제작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비행기를 취소한다고?’
두 MC가 방송 거리가 될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들이 카메라를 향해 익살스럽게 외쳤다.
“자, 마이클과 남도웅 씨의 우정은 검증이 되었습니다.”
“검증 완료!”
그렇게 얼렁뚱땅 대화에 끼어들 틈을 만들었다.
-도웅, 이게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 형. 실은 지금 방송 촬영 중이에요.”
-방송?!”
“마이클 씨, 안녕하세요. 이삼규입니다. 이번에 화제 된 트로트 영상 잘 봤습니다.”
조금 갑작스럽게 흐름이 진행됐지만,
마이클은 오히려 방송이라는 단어에 흥분했다.
-오! 이삼규 씨. 나 완전 팬!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이클 씨, 방금 기획사는 무슨 얘기고 비행기는 무슨 얘기에요?”
-원래 다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포기요?”
“왜요?”
포기라는 단어에 MC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이클은 이제 지난 일이니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요.
너무 솔직한 답변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하지만 마이클은 계속해서 담담히 얘기했다.
-그때 도웅이가 그 곡을 저한테 선물해줬어요.
“아···. 그 곡이라면.”
-네. ‘웃자.’ 그 노래 덕분에 이제 연락이 와요, 벌써 세 군데!
순간 마이클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장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캬···.”
MC들이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도웅을 돌아봤다.
“박수. 여기서 박수.”
짝짝짝.
개그맨의 유도로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힘든 친구에게 손 내밀 줄 아는 사람.
“와, 스토리 너무 감동적이네요.”
그 덕에 남도웅을 향한 제작진의 시선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여러분, 혹시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미담 짠 거 아닙니다.”
“네. 100% 리얼.”
“아무튼 도웅 씨가 만든 곡으로 마이클 씨한테 돌파구가 생긴 거군요.”
-예압. 마이 리얼프렌드 도웅 덕분에.
그렇게 잠깐 그 영상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던 때,
덩치 큰 MC가 문득 눈썹을 씰룩였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도웅 씨가 만들었다고 하기엔 장르가 조금 의외인데?”
“그건 그래요. 트로트라니.”
아마 시청자들도 궁금해할 포인트.
답을 구하며 껌뻑이는 네 개의 눈동자가 도웅을 바라봤다.
“마이클 형이 제 팬 미팅에서 우연히 트로트를 불렀는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아~ 그걸 보고?”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두 MC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리고 이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작곡해보고 있어요. 이번 제 앨범에 들어간 ‘갈림길’이란 곡도 제가 작곡한 거거든요.”
도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인 곡을 홍보할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낌새를 알아차린 MC가 노련하게 자리를 깔아주었다.
듣다 보니 참 괜찮은 친구라,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그 곡도 백 퍼센트 혼자 작곡한 거예요?”
“네. 백 퍼센트.”
“그럼 또 검증 가야죠. 마이클 씨, 지금까지 통화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어요!”
-예스!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검증을 하실거죠?”
도웅은 조용히 웃으며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피아노 연주랑 같이 완곡하겠습니다. 제가 만든 곡이 아니면 연주에서 티가 나겠죠.”
“오오~, 좋습니다. 그럼 한 번 보여주시죠!”
도웅은 순간적으로 감정에 몰입하는 듯하더니,
기다란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그날 연주를 곁들인 도웅의 노래는,
‘아이돌 탐구’ 촬영장을 3분간 작은 콘서트장처럼 만들어버렸다.
**
경기도 한 축제의 행사장.
도웅은 무대 위에서 자작곡 ‘갈림길’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전자 피아노를 치면서.
‘아이돌 탐구’가 방송을 탄 이후로 이 곡에 대한 행사 요청이 물밀 듯 들어왔다.
그전에는 무대에서 부를 일이 없는 그런 노래였는데.
탁 트인 야외무대.
선선한 봄바람과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
노래를 부르는 동안 관객들이 천천히 박자에 맞춰 고개를 흔들었다.
‘노래 너무 좋다.’
‘한 폭의 그림 같아.’
방황하는 자아에 대한 가사가 부드럽게 관객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관중들이 존중을 담아 도웅에게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편으로 내려오니,
“고생하셨습니다.”
“어우, 도웅 씨. 직접 들으니까 너무 좋네요.”
공연을 기획한 담당자가 살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관객들의 반응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리라.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이런 식으로 호의적인 환경 속에 행사를 다니면서,
‘갈림길’의 음원 순위는 벌써 20위대 진입.
이례적으로 천천히 역주행하고 있었다.
거기다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도웅 씨, 이쪽으로 오시죠.”
“네.”
심정남의 보호 하에 도웅이 짙게 선팅된 승합차에 올라탔다.
바깥에서는 아직도 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남도웅!!!
-사랑해애!!!
탁.
운전석에 올라탄 심정남이 안전벨트를 메며 말했다.
“확실히 아이돌 탐구 이후로 극성팬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좀 그렇게 느껴요.”
“타겟층이 확실한 프로라 그런지 다르긴 하네요.”
심정남이 팬들을 피해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지금까지 저만 알고 있어서 조금 답답했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도웅 씨 다양한 매력을 알아봐 주는 것 같아 기쁩니다.”
“하하, 그런가요.”
도웅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동영상 어플을 켰다.
그리고 ‘아이돌 탐구’ 엑기스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조회 수가 벌써 43만을 넘어가고 있네.’
-기타에 드럼에 피아노까지···. 남도웅 재능 지린다.
-ㅁㅊ 근데 다 잘해 ㅋㅋㅋㅋㅋㅋㅋ
ㄴ 그래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어요 ㅋ
ㄴ 저는 드럼 때문에 입덕
-저 ‘갈림길’이라는 자작곡 음원보다 피아노 치면서 부르는 게 오짐. 그래서 난 일부러 여기 들어와서 들음.
ㄴ ㅇㄱㄹㅇ
ㄴ ㅇㅈ 나도.
-난 다른 것보다 도웅이 인성이 제대로인 것 같아서 좋아. 선물한 노래로 마이클 인생을 바꿔놨잖아.
-선물하고 싶다고 자작곡을 선물하는 그 능력이 부럽다.
누군가는 도웅의 악기 연주실력에,
누군가는 도웅의 노래에,
누군가는 도웅의 인성에 감탄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방면으로 매력 어필은 톡톡히 한 셈.
도웅은 추천에 떠 있는 마이클의 영상을 터치했다.
방송에 나간 이후로 탄력을 받아 이 영상의 조회 수는 거의 50만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메리칸 소울로 트로트 부르는 사람이 있따아?
-이 사람 그 사람 맞지? 스페셜K스타의···.
ㄴㅇㅇ 맞음
-따듯한 아메리카노 시켰는데 국밥 나온 느낌. 근데 그걸 내가 마시고 있네? 크, 이 집 국물 찐하다.
-처음엔 이건 뭐야? 했는데 10일째 매일 출첵중입니다···. 저를 그만 멈춰주세요.
-빨리 마이클 데려가라 기획사 놈들아. 이런 인재를 아직 놔두고 있다니.
-난 이 노래 작곡한 게 남도웅이란 사실이 가장 믿기지 않는다.
ㄴ 나도나도.
마이클을 향한 따듯한 반응들에 도웅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도웅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마이클의 노래를 들은 심정남이 물었다.
“그나저나 마이클 씨는 어느 기획사 갔답니까?”
“아직 결정 못 했을 거에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되니 빨리 결정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마이클에겐 여러 기획사에서 섭외가 들어오는 중이었고,
도웅이 조건을 들어봐 주며 코치해주는 중이었다.
‘한 번 전화해 볼까?’
도웅은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되지 않는 전화.
‘바쁜가 본데? 이따가 다시 해보지 뭐.’
그렇게 마이클에 대해 잊고 있다가,
잠시 후 도웅은 판타스타에 도착했다.
그리고 작업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였다.
스스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신인 개발팀 직원의 얼굴이 보였다.
도웅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내미는 남직원.
“도웅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그런데 그의 뒤에 판타스타에서 마주치기엔 낯선 얼굴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반가운 얼굴.
마이클이 도웅을 발견하고 선글라스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안녕, 도웅.”
“형, 여기서 뭐 해요?”
도웅이 궁금한 눈으로 직원과 마이클을 번갈아 보자,
마이클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파일을 들어보였다.
“나 사인했어.”
“네?”
차락.
파일 안에서 정갈한 계약서 한 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웅이 여기 있으니까, 다른 덴 생각할 필요 없지.”
마이클의 국내 시장 활동 가능성을 본 신인개발팀 직원이,
마이클의 영입을 강력히 밀어붙여 계약에 성공한 것이었다.
도웅은 상황을 눈치채고,
새로 들어온 소속사 식구를 향해 따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판타스타에 온 걸 환영해요, 마이클.”
도웅이 보기에 판타스타는 좋은 선택이었으니까.
**
“여기까지가 후보로 받아 둔 곡들입니다. 어떠십니까?”
90년대에 B.E.A.T의 강태진이 있었다면,
80년대에 대중가요를 휩쓸었던 가요계의 제왕이 있었다.
이름하여 조훈기.
그가 소속된 GK 엔터테인먼트에서는,
그의 근 10년 만의 컴백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었다.
제작 팀장이 소속 작곡가들에게 받아온 후보곡들을 그에게 들려준 후,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조훈기는 노래를 들으며 간략히 메모해둔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음···. 제가 듣기에는 마지막 곡이 가장 괜찮았어요.”
“그럼 그걸로 진행···.”
“그런데.”
조훈기가 제작 팀장의 말을 잘랐다.
“조금, 전체적으로 뭐랄까.”
그리고 펜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너무 점잖은 느낌이 있어요. 멜로디를 조금 수정했으면 하는데.”
“하하, 그거야 가요계의 대부로써 위엄을 보여주려면 점잖은 느낌이 아무래도···.”
“난 위엄 때문에 앨범을 내려는 게 아니에요.”
조훈기가 눈썹에 힘을 주며 깍지를 꼈다.
“저는 대중가요를 하는 사람입니다.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즐겨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노인네. 욕심하고는.’
조훈기는 분명 한 시대를 대표했던 가수였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의 영광.
어느 정도 명성에 추억팔이를 더해 적당히 앨범 활동을 할 것이라 예상했던 제작 팀장은,
생각보다 까다롭게 구는 조훈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회사 차원에서 신경 써야 할 다른 가수들이 많은데 이것 때문에 더 시간이 들게 생겼으니까.
‘60대 노인이 십 년 만에 나와서 예전처럼 음악 시장 휩쓸겠다는 망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는 명백한 80년대 대중가요의 전설.
소속사의 깊은 뿌리 같은 인물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제작 팀장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저희 회사의 난다긴다하는 작곡가들이 만든 곡들입니다. 요즘 잘나가는 친구들이 선생님께 가장 잘 어울릴 곡을 만든 거고요.”
하지만 자신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한 느낌.
아니, 적당히 이대로 밀어붙이려는 느낌.
조훈기는 답답함을 느꼈다.
“흐음.”
그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안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
그것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던 가수였고, 그래서 사랑받았으니까.
적당히 괜찮은 노래로 무대에 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상황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 수밖엔 없겠지.’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법.
그는 휴대폰을 꺼내 얼마 전 인상 깊게 봐두었던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조금 이국적인 외모의 보컬이 트로트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들어보세요. 트로트 장르인데 젊은 사람들 사이에 반응이 좋습니다.”
“아, 이 영상 저도 얼마 전에 봤습니다.”
“특히 이 피아노 멜로디. 이게 노래를 세련되게 만들어주는 큰 주축입니다.”
조훈기가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말을 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이런 겁니다. 젊은 사람들까지 즐길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
그가 손가락으로 영상 속의 도웅을 가리켰다.
“멜로디에 관해 자문하고 싶으니, 이 피아노 치는 친구 연락처 좀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