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제작 팀장이 영상을 유심히 보더니,
코끝에 걸쳐놓은 안경을 슬쩍 들어 올렸다.
“이 친구요? 이 친구는 남도웅이라는 가수입니다.”
“저도 압니다. 그 친구나 매니저 연락처를 좀 찾아봐주세요.”
하지만 제작 팀장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저희 회사에 더 잘하는 작곡가 애들이 많은데, 다른 기획사에 있는 친구를 왜···. 게다가 본업이 가수인 친구 아닙니까. 멜로디 조금 고치려고 부르기에는 이 친구도 많이 바쁠 겁니다.”
“연락처만 알아봐 주세요. 그 이후로는 제가 이야기할 테니.”
조훈기가 물러서지 않자 제작 팀장이 입을 앙다물었다.
한번 회사에 발을 들인 식구는 먼저 내치지 않는 이 회사 대표의 성향 덕에, 제작 팀장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아주 오래된 축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제작 팀장은 상당히 무사안일했다.
정해진 순서대로, 적당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달리 말해 보수적인 스타일.
‘그냥 나온 노래 중에서 고르면 될 걸 가지고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거야?’
적당히 추억팔이 앨범 정도 만들 거라 예상했던 것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아마 자신에게 부하 직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소리를 버럭 질렀으리라.
도전적인 성향의 조훈기와,
안주하는 성향의 제작 팀장.
두 사람은 일하는 스타일이 상극이었다.
제작 팀장이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럼 그러지 마시고, 제가 저희 작곡가 애들한테 다시 한번 얘기해보겠습니다. 젊은 느낌으로 다시 멜로디 손을 봐달라고요.”
하지만 그곳에 있는 직원들을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조훈기라고 왜 모르겠는가?
신경 써야 할 가수들도 많은데, 10년 만에 회사에 불쑥 나타나서 갑자기 할 일을 만들고 고집을 부리는 늙은이.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이 눈에 훤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 대해 가타부타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앨범 이후로 또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늙은이가 이들이 일해온 방식을 뜯어고치는 건 과한 처사니까.
생각이 깨어있는 그는 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지.
정훈기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께서 못 찾으시겠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선생님. 제가 못 찾겠다는 게 아니라···.”
조훈기가 강경하게 나오자 제작 팀장이 식은땀을 흘렸다.
까딱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사장의 귀에 아쉬운 소리가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정 그러시면 제가 오늘 중으로···.”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 팀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더 이상 터치 말라는 듯 조훈기가 손을 내저었다.
평소 팀장의 무사안일주의에 답답함을 느끼던 부하 직원들은 속으로 고소한 마음을 삼켰다.
조훈기가 휴대폰을 꺼내며 물었다.
“그 친구 소속사가···.”
“남도웅 씨는 판타스타 소속입니다.”
옆에 있던 다른 직원 하나가 재깍 대답했다.
“그거 잘됐네요.”
연예계 생활만 수십 년.
그가 손을 뻗어서 닿지 않을 곳은 없었다.
**
판타스타의 사장실에 달짝지근한 커피 향이 퍼졌다.
강태진이 방금 탄 믹스커피에 스틱을 휘휘 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묵직한 머그잔을 입가로 가져가던 때였다.
“형, 내 꺼는?”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있던 여명이 물었다.
강태진이 곧장 역정을 냈다.
“야, 아깐 안 마신다며. 꼭 타 놓으니까 그래.”
그는 툴툴대며 머그잔을 그대로 여명에게 내밀었다.
여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넙죽 받아들었다.
강태진이 새로운 머그잔에 뜨거운 물을 졸졸 따르며 말했다.
“그리고 너 뭐가 거꾸로 된 거 아니냐? 이런 건 동생인 네가 타줘야지, 사장을 시켜.”
“커피를 꼭 어린 사람이 타야 된다는 법이 어딨어. 형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꼰대야?”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여명이 테이블에 올렸던 발을 잽싸게 내렸다.
“들어오세요.”
방으로 들어온 것은 서류를 손에 든 신인 개발팀의 직원이었다.
덕분에 강태진은 커피 한 잔을 더 타서 그의 앞에 내밀었다.
직원은 곧장 소파에 앉아 현재 진행 상황 보고를 시작했다.
“마이클 씨는 금주 내로 녹음작업 들어가고 디렉팅은 원래대로 도웅 씨가 맡기로 했습니다.”
“도웅 씨는 스케줄 괜찮다고 하나요?”
“네. 행사 위주로 마이클 씨한테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서 작업을 서두를 예정입니다.”
“아티스트가 무리하지 않도록 최대한 잘 맞춰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외 자잘한 스케줄들을 보고한 뒤, 팀장이 문밖으로 나갔다.
여명이 다 마신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이클 말이야.”
“응.”
“왜 처음부터 안 데려왔어?”
스페셜K스타 당시, 마이클이란 사람 자체는 좋았고 노래 실력도 훌륭했다.
하지만 국내시장에서 마이클이 먹힐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했었다.
그건 다른 기획사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마이클이랑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어.”
”그걸 도웅이가 찾은 거네. 마이클이 어떻게 하면 국내시장에 먹힐지.”
”···그렇지.”
대중에게 먹힐 만한 코드를 찾아 마이클에게 입혔고,
보란 듯이 결과로 증명했다.
회사 차원에서도 힘든 일을 이뤄낸 도웅.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여명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익살스럽게 물었다.
”형, 도웅이한테 회사 언제 넘길 거야?”
“···야, 너 안 바쁘냐?”
가끔 대표가 민망하리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도웅.
하지만 강태진도 어디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도웅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날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웅 씨를 서포트해 주는 것뿐이야. 훨훨 날개를 펼치도록.”
강태진의 진심 어린 얘기에 여명도 그저 옅게 미소 지었다.
지이잉.
그때 테이블 위에 있던 강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 위에 뜬 이름을 먼저 발견한 여명이 생각에 잠겨있던 강태진을 흔들었다.
“형! 빨리 받아봐.”
“조훈기 선생님?”
강태진도 깜짝 놀라 허리를 바로 세웠다.
“선생님! 어쩐 일이세요.”
-하하하. 회사 일은 잘되고 있고?
“네, 그럼요.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강태진이 속한 그룹이 한창 떠올랐을 때, 조훈기와 약간 활동 시기가 겹쳤던 적이 있었다.
대선배인데도 불구하고 먼저 편안하게 대해줬던, 절로 존경심이 들게 만들었던 사람.
그래서 강태진은 아직도 조훈기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앨범을 내려고 하거든.
“잘됐네요, 선생님.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하, 말이라도 고마워.
조훈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말이야. 네 소속사에 남도웅이라고 있지.
갑자기 도웅의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그와 도웅의 연결고리가 전혀 파악되지 않은 강태진이 물었다.
“도웅 씨요? 네, 저희 소속 가수에요.”
-그 친구 연락처 좀 알 수 있나?
“그럼요. 당연히 드려야죠. 그런데 무슨 일로 그 친구 연락처가 필요하신 거예요?”
-다른 게 아니라 이번 내 타이틀곡 멜로디 좀 봐달라고 하려고.
“네? 선생님 곡의 멜로디를요?”
놀란 강태진의 목소리 톤이 커졌고, 그 덕에 옆에 있던 여명이 통화내용이 궁금한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친구 보니까 멜로디 만드는데 감각이 있는 것 같더라고.
“도웅 씨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영상으로만. 허허.
조훈기가 살짝 멋쩍게 웃자 대충 상황을 파악한 강태진이 말했다.
“하하하. 네, 맞아요. 있어요, 감각.”
-그 친구 한창 바쁘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연락 해 봄세.
“네, 알겠습니다. 통화 끊고 바로 번호 보내드릴게요.”
툭. 전화를 끊고 나서 강태진이 그에게 번호를 발송했다.
사실 이런 일은 대표인 자신에게 친분으로 해달라고 밀어붙여도 되는 일인데, 도웅의 의견을 직접 구하겠다는 조훈기는 역시 존경할 만한 선배였다.
그때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여명이 물었다.
“왜, 뭐래? 거기서 도웅이 이름이 왜 나와?”
“몰라. 너한테는 안 가르쳐줘, 인마!”
강태진이 표독스럽게 소리를 내질렀다.
평소 깝죽대는 그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셈이었다.
**
“와아아. 진짜 쾌적하고 좋네요.”
3층에 마련된 음악 작업실.
그중에서도 방금 리모델링 공사가 끝난 방을 도웅과 심정남이 둘러보고 있었다.
신식 컴퓨터에 마스터 키보드, 거기다 드럼에 기타까지.
옆에는 피곤할 때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한 작은 소파까지 놓여있었다.
회사에 틀어박혀 작업하는 일이 잦은 도웅을 위해 강태진이 신경을 쓴 것이었다.
“공사가 엄청 금방 끝났네요?”
“벽 하나 트고 고칠 게 많진 않았으니까요. 깨끗하고 좋긴 한데 약간 걱정도 됩니다.”
“뭐가요?”
“도웅 씨가 너무 작업만 할까 봐서요.”
“하하하, 그건 걱정 마세요.”
“그럼 스케줄 전까지 여기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일 보겠습니다.”
심정남이 아직 공사 냄새가 빠지지 않은 작업실의 문을 열어놓고서 자리를 비웠다.
도웅은 자신만의 음악 작업실이 생긴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음악은 죽어도 오르지 못할 나무 같았었는데 어느새 내 음악 작업실이 생기다니···.’
도웅은 이런 삶을 동경하던 회귀 전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그러다 괜스레 마스터 키보드의 건반을 눌러보고 있던 때였다.
“와우, 어메이징.”
“여기 소파에서 잠도 잘 수 있겠는데요?”
“우리도 피곤할 때 가끔 여기 와서 자면 안 되나?”
뒤에서 시끌벅적하게 마이클과 사파이어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중 마은율이 도웅에게 편의점에서 산듯한 과자 봉지를 불쑥 내밀었다.
멤버들 앞이라 존댓말도 잊지 않으면서.
“이거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갑자기 웬 선물?”
“집들이요, 집들이.”
도웅이 봉지를 받아들며 픽 웃었다.
“여기가 무슨 내 집이야.”
“선배 앞으로 여기서 먹고, 자고 할 것 아니에요?”
“맞아요. 평소에도 매일 그렇게 늦게까지 작업하는 데 눈 붙일 데가 생겼으니···.”
옆에 있던 백설까지 거들자 나머지 사파이어 멤버들이 쿡쿡 웃었다.
그때 마이클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좋아. 나 여기서 목표가 생겼어.”
“뭔데요?”
“도웅처럼 열심히 해서 판타스타에 내 방을 만드는 것.”
“그냥 방이 아니라 작업실이라니까요.”
이번엔 사파이어 멤버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강태진이 열린 문 사이로 들어왔고, 여명이 세트처럼 그를 따라 들어왔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네, 대표님. 이렇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요. 도웅 씨가 회사에 해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대표의 신임을 받는 도웅을 부럽게 바라보는 마이클과 사파이어 멤버들.
강태진이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도웅을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아 참. 도웅 씨 조금 있다가 전화 한 통이 올 거예요.”
“전화요?”
“네. 조훈기 선생님 알아요?”
“네, 당연하죠!”
도웅은 그의 무대를 직접 본 기억은 없었지만, 그가 한때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평정했다는 것은 알았다.
‘엄마가 노래를 즐겨 들었었으니까.’
“조훈기 선생님이 도웅 씨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네요.”
“조훈기 선생님이요?”
조훈기라는 이름에 사파이어 멤버들이 놀란 듯 서로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가 누군지 몰라 백설을 툭툭 쳤다.
“누구야? 조훈기?”
“우리나라 가요계의 보스요.”
“와우.”
백설이 마이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자 그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침 그때, 도웅의 휴대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도웅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혹시 남도웅 씨 휴대폰이 맞나요? 가수 조훈기라고 합니다.
대중가요의 전설.
진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도웅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티 나지 않게 침착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남도웅입니다.”
-제가 도웅 씨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는 살짝 말꼬리를 끌었다가 말했다.
-혹시 괜찮으면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도웅이 즉각 대답했다.
뭔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 제가 선배님 계신 쪽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