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모두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네, 선배님.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선배님이라고 입에 올리기에도 황송한 가요계의 전설.
방금 그와 통화를 나누었다.
그 사실만으로 도웅은 당장이라도 제 볼을 꼬집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다들 조훈기와의 통화내용이 궁금한 눈치였다.
아까부터 그게 궁금해 여기까지 따라온 여명이 물었다.
“조훈기 선생님이 뭐라셔?”
“부탁할 게 있다고 하셨어요.”
“부탁?”
“아마 지금 선배님께서 작업하는 앨범이랑 관련된 것 같아요.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해주시기로 했어요.”
여기서도 여명은 많은 것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뭔진 몰라도 대선배가 도웅을 찾는다는 것만으로 특별한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 저랑 통화할 때 말씀하시기를, 타이틀곡의 멜로디 관해서 도웅 씨한테 자문하고 싶으시다더라고요.”
도웅이 내용을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는지, 강태진이 입을 열었다.
순간 도웅의 눈이,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이틀곡의 멜로디를요?”
“네, 마이클 영상에서 도웅 씨를 보고 연락주신 모양이에요.”
“그건 트로트 영상이잖아요.”
“네, 거기서 도웅 씨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뭔가 느낌이 오셨나 봐요.”
전혀 예상치 못한 루트였다.
그가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 도웅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마이클이 옆에 있던 백설을 톡톡 건드렸다.
“와우, 싱어 보스가 내 영상을 봤대.”
“···진짜 부러워요.”
가요계의 후배로서 그에게 눈도장이 찍혔다는 것만으로 부러움을 살만한 상황.
대체 도웅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그곳에 있는 누구 하나 기대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GK 엔터의 작업실.
제작 팀장이 답답하다는 듯, 소속 작곡가를 닦달했다.
“그러니까, 좀 젊은 사람들도 들을 만하게 고쳐보라니까?”
“최대한 해보긴 하겠는데, 아시잖아요. 그게 말이 쉽지.”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젊은 애들도 들을 수 있는 노래? 그게 노인네 욕심이 아니면 뭐야?”
제작 팀장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며 혀를 쯧 찼다.
이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제 할 말도 곧 잘하는 작곡가 이윤수가 입맛을 쩝 다시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 어려운 거 아시면서 왜 저한테 이런 부탁을 하세요.”
“나라고 조훈기 선생이 그렇게 해달라는데 별수 있어?”
“후···. 그럼 처음부터 타킷을 좀 젊게 만들라고 말씀하시지.”
난감한 상황에 이윤수 작곡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미 만들어놓은 곡의 멜로디를 자칫 잘못 손보았다가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쑥떡에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민트 초코를 발라놓은,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을 비벼 놓은 끔찍한 음식이 될 수도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이 곡 버릴 수도 있는데.”
그가 볼멘소리하자 제작 팀장이 괜히 헛기침했다.
제작 팀장은 이미 한 차례 조훈기가 직접 움직이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노력하는 액션이라도 취해야 하는 상황.
그는 이윤수를 달래듯이 말했다.
“그냥 대충 좀 트렌디한 느낌 나게 멜로디만 고쳐 보라니까. 해놓고 맘에 안 들면 원래대로 부르거나 하겠지.”
“알겠어요.”
이윤수가 휙 돌아 작곡 프로그램에 만들어놓은 파일을 불러왔다.
그러다 다시 헤드셋을 벗고 제작 팀장을 올려다봤다.
“그나저나 남도웅 씨가 와도 별수 없을 건데. 괜히 그분만 난감하게 만드는 거 아니에요?”
“내 말이 그말이야. 괜히 상황 복잡하게 말이야, 딸랑 영상 하나에 꽂혀가지곤.”
“무슨 영상이요?”
“왜 있잖아. 마이클이란 가수가 트로트 부르는 영상. 그 곡을 남도웅이 만들었거든.”
“아, 저도 그거 알아요.”
그가 상체를 제작 팀장 쪽으로 비틀었다.
“트로트인데도 중독성 있어서 요새 인기잖아요.”
“그것도 잠깐이지 뭐. 근데 그 곡이 윤수 씨가 보기에도 그렇게 괜찮아?”
제작 팀장이 진짜 궁금하다는 듯 이윤수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하지만 갸웃 옆으로 기우는 이윤수의 고개.
“네, 되게 센스 있어요. 근데 그 노래가 되게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뽀록일지도 모르는데.”
“뽀록?”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우연히 시장에서 빵 터지는 것들. 실력이 아니라.”
남도웅이라는 가수.
작곡가들 사이에 한 번씩은 말이 나오는 가수였다.
왜냐하면, 일단 노래 실력이 좋았으니까.
게다가 이번에 그가 전적으로 만들었다는 ‘갈림길’이라는 곡.
그리고 뜬금없이 만들어서 이슈가 되고 있는 트로트 곡까지.
그게 정말 100% 혼자 힘으로 작곡한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서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밀어주고 있는 것인지 작곡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이윤수는 후자 쪽이 좀 더 진실에 가깝다고 보았다.
도웅은 이미 가수로 잘나가고 있는데, 과연 작곡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으니까.
옆에서 잠시 생각하던 제작 팀장은 걱정을 덜었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더 걱정할 건 없겠네. 남도웅이 노래를 손봐도 별로다 싶으면 원래대로 이 곡으로 하게 될 테니까.”
“그럴 확률이 높죠.”
“쯥. 그러니까 아까 내가 얘기한 대로, 적당히 멜로디만 좀 고쳐줘.”
“알겠어요.”
“그렇다고 너무 거기에 시간 쏟지는 말고. 알지? 에디션식스 신곡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에디션식스는 GK 엔터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노인네의 추억팔이 앨범 때문에 거기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됐다.
제작 팀장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작업실 문을 나섰고,
이윤수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몸을 돌렸다.
일거리가 늘어 살짝 짜증이 났던 그는 갑자기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
‘남도웅한테 작곡 능력이 정말 있는 건지, 아니면 회사 차원에서 밀고 있는 고도의 마케팅인지, 어쨌든 이번에 확실히 알 수 있겠네.’
뭐가 됐든 작곡가들 사이에서 안줏거리로 씹을 화제가 생긴 셈이었다.
**
“마이클 형, 우리 그때 합주하던 느낌 살려서 다시 한번 갈게요.”
“오케이, 도웅.”
마이클이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오케이 표시를 했다.
녹음실 부스 밖의 도웅은 엔지니어에게 사인을 보냈고, 곧장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판타스타와의 계약 이후로 살맛이 나기 시작한 마이클은,
긍정 에너지가 다시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에 몰입하는 게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매될 노래라니.
그 생각만 해도 전신에 짜릿함이 감돌 지경이었다.
“좋아요, 형. 영상보다 더 좋은데요?”
그런 마이클의 감정이 노래에 담기니 비로소 만족한 도웅도 웃음을 지었다.
“마이클 씨 노래만 들으면 거의 한국인인데요?”
옆에서 장비를 만지던 엔지니어가 말했다.
“가사가 단순한 게 한몫하는 것 같아요. 다 의도한 거죠?”
“네, 어느 정도는요.”
“이야···. 역시.”
함께 일하며 도웅의 비범함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는 엔지니어가 감탄했다.
“그나저나 도웅 씨 조훈기 선생님이랑 일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소문이 났어요?”
“네, 회사 사람들 다 알아요.”
하긴 조훈기 선배님에게 전화가 왔을 때 보는 눈이 많긴 했다.
그때 마이클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부스에서 나왔다.
“이제 도웅 차례야. 부탁해, 나이스 가이.”
“네, 여기서 느낌 봐주세요.”
코러스를 맡은 도웅이 단순한 노래가 빈약해 보이지 않도록 살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마이클의 발매 준비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오후쯤 집에 돌아온 도웅은 침대에 털썩 누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조금이라도 완료율을 높이고 만나는 게 좋겠지.’
그리고 나만의 연습실에 접속.
‘프로 작곡가 H의 피아노 연주법(A)’을 더 트레이닝하기 위해서였다.
따라라라랑.
도웅은 피아노 건반을 가볍게 두들기면서 손을 풀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엄마와 따듯한 집밥을 먹었다.
연신 숟가락을 푸던 도웅은 엄마가 밥은 먹지 않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식사 안 하세요?”
“먹어야지. 그런데 요즘 네 얼굴 보기가 영 힘드니 이렇게라도 봐놔야 하지 않겠어?”
“엄마도 참.”
도웅이 픽 웃음 지었다.
엄마는 그제야 몇 숟가락을 푸다가 도웅에게 물었다.
“내일은 무슨 중요한 스케줄을 가길래 오늘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아, 별건 아니고 내일 조훈기 선배님 만나 뵙기로 했어요.”
조훈기라는 이름에서 엄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조훈기? ‘나의 이별’ 부른 그 조훈기?”
“네, 맞아요.”
“어머! 엄마가 고등학생 때 조훈기 노래 진짜 좋아했었는데!!”
엄마가 숟가락을 탁 놓더니 소녀처럼 좋아하면서 손뼉을 쳤다.
“조훈기랑 무슨 일로 만나?”
“자세한 건 저도 만나봐야 알아요.”
“어머, 어머. 어떡하니. 우리 아들이 조훈기랑 만나다니.”
“아니, 엄마. 아직 뭐 결정된 건 없는데···.”
“어머, 어머!”
엄마는 도웅의 얘기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지, 연신 ‘어머’만 연발했다.
“잘 갔다 와, 아들.”
그렇게 다음 날, 엄마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으며 도웅은 GK 엔터 건물에 도착했다.
판타스타보다는 조금 큰 건물.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도웅을 흘끗거리는 시선들.
‘남도웅 아니야?’
‘맞아. 근데 여긴 왜 왔지?’
소속 연예인이 아닌 다른 가수가 보이니 GK 엔터의 직원들의 은근한 관심이 도웅 쪽으로 모였다.
심정남과 도웅은 마중 나온 직원을 따라 이동했다.
**
그 시각,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조훈기.
그는 이윤수 작곡가의 작업실에서 수정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조훈기의 표정을 살피던 제작 팀장이 노래가 끝나고 물었다.
“어떠십니까? 전보다 훨씬 느낌이 어려진 것 같은데.”
“전보다 트렌디할 수는 있어도 조화가 어울리는 노래는 아닌 것 같네요.”
올드한 피아노 선율에 어울리지 않는 기계음.
대충 젊은 느낌이 나도록 효과음만 얹어 수정했던 작곡가는 날카로운 지적에 살짝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뒤편에서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는 제작 팀장.
“쓰읍, 그럼 아무래도 이전 버전으로 하시는 게···.”
그때 누군가 작업실의 문을 똑똑 두들겼다.
“선생님, 남도웅 씨 오셨는데요.”
“오, 반갑습니다. 조훈기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웅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뒤에 있는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원래 여기서 얘기할 건 아니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 방금 수정한 거 말고 원곡으로 노래 좀 틀어봐 주세요.”
도웅은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노래 한 곡을 유심히 감상했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조훈기가 물었다.
“들어보니까 어떻습니까? 제가 타이틀로 생각하고 있는 곡입니다.”
도웅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선배님의 곡을 즐겨듣는 중년 세대가 좋아할 만한 곡입니다.”
도웅의 답을 들은 조훈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곡 자체는 괜찮다고 봐요. 그런데 나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제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런데 도웅 씨가 말했듯이 지금 내 나이에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란 말이죠.”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노래를 하고 싶다.
60세가 넘어서까지 대중 가수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있는 그의 모습은, 도웅의 눈에 달리 보였다.
‘괜히 대중가요의 제왕이라 부르는 게 아니구나.’
“근데 도웅 씨가 최근에 만든 곡이 트로트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세련되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중장년들만 즐겨듣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도 즐겨듣고 있고요.”
“···.”
“그래서 도웅 씨를 이곳으로 불렀습니다. 이 곡도 그런 식으로 조금 고쳐볼 방법이 있을까 하고요.”
그의 눈에서 안광이 번쩍였다.
생판 모르는 자신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직진하는 실행력.
한참 후배에게 자문하는 겸손한 태도.
도웅은 존경할만한 선배인 그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심각해진 도웅의 표정을 본 이윤수 작곡가는 상황을 달리 해석했다.
‘표정 굳은 것 봐. 이거 괜히 어린 친구만 시험에 들게 생겼군.’
도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 방에 있던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 작업하고 계시는 그 파일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그러세요.”
해내기 어려운 미션이라 생각했기에 아무 경계심이 없었던 작곡가 이윤수가 자리를 세팅해 주었다.
“필요하면 거기다 바로 손보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도웅은 유심히 그가 작업해놓은 파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요 없는 트랙들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꺼 놓은 뒤, 새로운 가상 악기 트랙을 생성했다.
“···?”
이윽고 마스터 키보드 위에 도웅의 손가락이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
그 방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