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재능 있는 이와의 작업.
이윤수 작곡가가 만든 원곡은 고정 팬들을 겨냥해 만든 곡.
조훈기가 부르는 모습이 바로 상상될 정도로 잘 어울렸고,
노래에 대중적인 감각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 작곡가, 실력 있는 사람이다.’
작곡가 자체는 트렌디한 곡도 곧잘 쓰는 사람이었지만,
이 곡은 조훈기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장년을 타깃으로 만든 곡인지라,
젊은 사람들까지 즐겨듣기에는 약간 올드한 감이 있었다.
그럼 이 곡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도웅은 고심하다 코드를 잡았다.
단조를 장조로 바꿔서.
그리고 여운은 거둬내고 산뜻함이 느껴지도록.
머릿속에 떠오른 느낌을 토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귀를 사로잡는 가볍고 상쾌한 멜로디.
복잡한 악기 트랙은 꺼두었기에, 리듬 위에 피아노 멜로디만 울려 퍼졌다.
원하는 느낌을 잡아낼 때까지 사뿐히 계단을 오르듯 도웅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움직였다.
작곡가 이윤수는 그 헤매는 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도웅이 스치는 한 음절, 한 음절이 허투루 누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아무거나 치는 게 아니야, 저건···.’
머릿속에 떠도는 고뇌.
두꺼운 껍데기를 깨고 비로소 세상에 나오는 말간 알맹이 같은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쟤 진짜 작곡을 하는 애구나?’
작업하는 도웅의 뒷모습, 건반을 누르는 폼새···.
그 장면을 지켜볼수록 남도웅이라는 가수가 얼마나 음악에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회사의 도움을 받아 그가 작곡하는 척을 한다는 것은 그저 뜬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빅 뉴스인데.’
이로써 작곡가들 모임에서 구미를 당겨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반면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제작 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주가 너무 가벼운 거 같은데?’
듣기에 좋긴 좋다.
그런데 이런 경쾌한 반주에 조훈기가 어떻게 노래하겠다는 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딸깍딸깍.
그때 도웅이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은 듯, 마우스를 움직여 방금 만든 피아노 코드를 복사해서 기본 루프를 깔았다.
그리고 곡을 재생하자 이윤수가 만든 리듬 위에 경쾌한 반주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아직 반주일 뿐이지만 분위기를 보고자 함이었다.
“이런 느낌은 어떠세요?”
도웅의 물음에 가만히 반주에 집중하고 있던 조훈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예상할 수는 없지만, 아주 신선한데요.”
그의 표정에서 도웅은 알 수 있었다.
이 멜로디가 꽤 마음에 들었다는 걸.
좀 전까진 대선배 조훈기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그의 긍정적인 반응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흰 양말에 슬리퍼, 소매가 닳은 셔츠 등.
그제야 인간적이고 친근한 조훈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거 다시 한 번만 틀어줘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조훈기는 반주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반주가 다시 흘러나오자 조훈기가 꼬아 올린 다리의 한쪽 무릎을 탁탁 치며 집중하는 듯하더니, 자세를 바로 하고 물었다.
“그러면 여기에 멜로디는 어떻게 올라가요?”
나이 많은 사람 특유의 강압이나 강요 없이,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묻듯 순수한 말투.
그리고 주름진 피부와 대비되는 세월에 오염되지 않은 눈빛.
도웅은 마치 음악 시간에 열정적인 학생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흘러나오고 있는 반주 위에, 도웅은 원곡의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수정해서 흥얼거렸다.
그러자 조훈기의 눈빛에 흥미가 돌았다.
“오, 그걸 이런 식으로.”
그는 도웅의 허밍을 경청했다.
그러다 뭔가 감이 왔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네요, 좋아요.”
다시 반주가 끝나고 나서, 전문가들보다는 음악적 캐치가 느린 제작 팀장이 우려 섞인 투로 말했다.
“선생님. 이게 듣기에는 좋은데 이러면 곡 분위기가 너무 확 바뀌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원곡이 밤에 어두운 도시를 걷듯 조금 애절한 감상의 노래였다면,
지금은 동이 트는 새벽녘 산뜻하게 조깅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싹 바뀌었으니까.
하지만 조훈기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인자하게 웃었다.
도웅이 작업하는 본새를 보니 뭔가 나올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는 바뀌어도 괜찮아요. 노래만 좋다고 하면.”
제작 팀장은 조훈기가 좋다고 하니 속으로 끙 하는 소리를 삼켰다.
‘60대 노인이 부르기에 이렇게 밝은 분위기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하지만 전문가들 앞에서 더 이상 아는 척을 하기도 곤란하니, 찝찝하더라도 입을 다물었다.
조훈기가 도웅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도웅 씨, 이대로 계속 작업을 진행해서 빠른 시일 내에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정식으로 도웅에게 편곡의뢰를 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도웅은 자신의 손을 거친 곡을 조훈기가 부를 상상을 하니 손끝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물론이죠.”
**
판타스타의 1층 로비.
여명이 벽에 기대어 강태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훈기 선생님이 그렇게 후배들을 격 없이 대해주신다며?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던데.”
“음악에 완성이 어디 있겠느냐고, 나이 상관없이 그냥 잘하면 존중해주시지.”
“멋있다.”
여명은 조훈기를 직접 만나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를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거들먹대지 않는 인품, 음악을 향한 변치 않는 열정.
자신도 꼭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었다.
“근데 형은 조훈기 선생님이랑 어떻게 알아?”
“90년대에 잠깐 활동 시기가 겹친 적이 있었어. 알잖아, 나 그때 좀 잘나갔었던 거.”
“어우, 재수 없어.”
거만한 강태진의 눈빛을 본 여명이 진저리를 쳤다.
그때 1층의 자동문이 열리며 들어온 봄바람이 살갗에 느껴졌다.
그 덕에 여명이 자연스레 옆을 돌아보았다.
“어! 도웅아. 어떻게 됐어?”
“여기서 저 기다리신 거 아니죠?”
방금 돌아온 도웅을 반갑게 맞아주는 여명.
“기다리긴.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야.”
그가 괜히 손목시계를 두드리며 비싼 척을 했다.
하지만 그의 한쪽 손에는 마신 지 한참 지난, 커피 자국이 말라붙어있는 종이컵이 들려있었다.
여명이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래서 조훈기 선생님 만났어?”
“네, 만났죠.”
“그럼 빨리 얘기 좀 해줘 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명이 닦달하는 동안 강태진이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도웅 씨, 별일 없었어도 괜찮아요. 이해해요. 사람 일이 다 그렇게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타이틀 곡의 멜로디를 자문하기 위해 조훈기가 도웅을 불렀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리고 그의 음악적인 안목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도.
하지만 강태진의 눈빛은 기대에 몹시 반짝거렸다.
도웅의 사전에 실패가 없음을 오랫동안 학습해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도웅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조훈기 선배님이 곡 하나를 수정하기를 원하셨는데.”
“하셨는데?”
“그, 편곡 의뢰를 저한테 맡기셨어요.”
양쪽에서 숨을 헙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작업해봐야 알아요. 이걸 최종적으로 쓸지 말지는.”
“와···. 조훈기 선생님 곡을.”
여명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감탄사를 흘렸다.
충격에 멍하던 강태진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도웅 씨.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해야겠네요.”
“네, 그러려고요.”
그는 인자하게 미소짓더니 여명을 잡아끌었다.
“너 도웅 씨 바쁜데 그만 방해하고 따라와.”
“내가 무슨 방해를 했다고 그래?”
질질 끌려 뒷걸음치던 여명이 도웅 쪽으로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도웅아, 나중에 조훈기 선생님이랑 친해지면, 나도 자리 한번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그냥 밥 한 끼, 아니면 차 한 잔이라도 괜찮아!”
“부담 주지 말고 이리 오라니깐!”
**
도웅은 개인 작업실에서 편곡에 몰두하고 있었다.
방음 때문에 건물 바깥으로 난 창문이 없다 보니,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BPM은 빠르게, 가상 악기들은 분위기에 맞게 다시 찍어 넣었다.
조훈기가 노래 부르는 장면을 생각해가면서.
그래도 피아노를 트레이닝하고 있는 덕분에,
마스터 키보드와 함께 작업 속도가 현저히 빨라진 상태였다.
“곡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네.”
그가 시도해본 적 없을 새로운 스타일의 곡.
도웅은 자신의 손끝으로 거장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낼 생각에 며칠 밤낮을 새고도 들떠있었다.
“하, 됐다.”
마지막으로 점검을 끝낸 도웅이 회전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그제야 몸에 쌓인 피로가 도웅을 바닥으로 무겁게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창가에 어른거리는 작은 머리통 두 개.
도웅이 돌아보니 당황한 눈동자들이 문에 뚫린 창문 아래로 쏙 숨는 게 느껴졌다.
‘어! 도웅 선배가 봤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창피하니까 이대로 기어서 도망가자.’
‘은율 언니! 그게 더 창피해!’
‘아니, 생각해보니 우리가 죄지었나? 그냥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서 그런 건데.’
‘어쨌든 훔쳐본 거잖아, 이 허당 언니야.’
로다와 마은율이 투닥대는 사이 작업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너희 여기서 뭐 해?”
“아, 하하하. 안녕하세요. 저희 다리 운동 중이었어요. 죄송합니다아!”
쌔앵. 횡설수설하던 로다가 잽싸게 계단을 타고 내려갔고,
혼자 남은 마은율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배가 조훈기 선배님 곡을 편곡한다는데 너무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하하, 작업 열심히 하세요!”
마은율도 재빠르게 계단으로 몸을 던졌다.
뒤에서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임지문이 천천히 다가왔다.
“흐흐, 귀엽네. 쟤네 아까부터 네 작업실 창문 앞을 틈만 나면 얼쩡거리더라.”
“그냥 와서 들어도 되는데.”
“방해하긴 싫은가 보지. 그리고 저러는 거 쟤들뿐만이 아니야.”
“그건 무슨 소리예요?”
“직원들이랑 강태진 대표님도 네 작업실 쪽을 자꾸 어색하게 지나다니던데? 다들 궁금한가 봐.”
도웅이 집중하고 있으니 방해는 하지 못하겠고, 궁금함에 자꾸 주변을 배회하는 것 같았다.
무려 조훈기 선생님의 곡을 편곡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도웅이 너무 상황을 빤히 꿰고 있는 임지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형도?”
“어떻게 알았냐.”
두 사람이 동시에 큭큭 웃었다.
“작업 끝났으니까 한 번 와서 들어봐요.”
“오, 타이밍 끝내 줬네.”
도웅이 활짝 열어준 문으로 임지문이 들어왔고,
그 순간 도웅의 눈에 못 보던 얼굴 하나가 복도 끝에서 그를 응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음침한 분위기를 내던 그는 도웅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슥 하고 뒤돌아 사라졌다.
도웅이 멈추어 서 있자 임지문이 빼꼼 복도 밖을 내다보았다.
“왜, 뭐해?”
“아니, 저기 못 보던 사람이 있어서요.”
“아, 검은 티셔츠 입고 있는 사람?”
임지문이 그를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 친구도 우리 회사 소속 작곡가야. 여기서 일한 지는 조금 됐다나 봐.”
“아, 그래요? 처음 봤는데?”
“매일 저기 처박혀있어서 존재감이 없어서 그래. 나도 밤에 작업하다가 마주치고 기절할 뻔했다.”
그랬구나. 도웅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작업실의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도웅이 완성한 곡을 임지문에게 들려주었다.
가만히 노래를 듣던 임지문은 노래 첫마디가 시작되자마자 도웅을 돌아보며 말했다.
“와, 이거 미쳤네.”
느낌이 팍하고 꽂힌 것이었다.
**
도웅이 보내준 데모곡을 듣고 있는 조훈기의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웃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간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느낌 이상의 곡이 귓가를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즐겨들을 만한 곡을 골라내는 감은 좋았지만,
직접 작곡을 할 줄은 모르는 입장이라 도웅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반면 제작 팀장은 너무 모험적인 스타일 때문인지 얼굴에 근심이 내려앉아 있었다.
“선생님, 이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완전 선생님 스타일하고는 반대되는, 이런 신인 가수가 쓴 곡으로 진행하셔도 괜찮으시겠냐는 말입니다. 모험도 좋지만 저는 결과가 어찌 될지 너무 무섭습니다. 괜히 선생님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고요.”
돌려 말하긴 했지만, 이러다 앨범이 망하면 최종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지 몰라 조바심이 난 상태.
“허허허.”
그것을 알아챈 조훈기가 태평하게 웃음 짓더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도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도웅 씨, 난 이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녹음 때 디렉팅을 좀 봐줄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편곡 당사자가 와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 얘기를 들은 제작 팀장은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아니, 대체 어쩔 작정이야? 어린 애한테 디렉팅까지 받겠다니!’
하지만 다음 약속을 잡은 조훈기의 얼굴에는 약간의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이와의 작업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었으니까.
통화를 마친 그가 제작 팀장을 향해 말했다.
“도웅 씨의 작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가 열심히 하면 되지요. 팀장님은 너무 염려 마십시오.”
‘이건 뭔가 한참 잘못됐어!!’
팀장은 뒷목을 잡을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