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저거 깡다구 있네.
조훈기와 통화를 끝낸 도웅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임지문이 그런 도웅을 툭툭 건드렸다.
“야, 왜 그래. 무슨 전화인데?”
“디렉팅···.”
“응?”
“조훈기 선생님 곡을 제가 디렉팅하기로 했어요.”
“뭐?! 그게 말이 돼?”
임지문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몇일 밤새웠다더니 잠깐 꿈 꾼 거 아니야?”
“형도 방금 봤잖아요, 저 통화하는 거.”
“어디 봐봐.
그가 도웅의 통화목록을 들여다보더니 똑같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진짜네.”
그러더니 경기를 일으키듯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조훈기 선생님을 감히 어떻게 디렉팅하겠어. 난 살 떨려서 못해.”
“···.”
“물론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거장의 녹음을 디렉팅할 기회.
말도 안 되는 기회이자 어쩌면 부담이었다.
도웅이 생각에 잠겨있자 임지문이 그를 툭 하고 쳤다.
“도웅아, 선생님 콘서트 티켓 구하는 거 하늘의 별 따기인 거 알지? 그냥 선배님 1인 콘서트 가는 기분으로 구경 다녀와.”
“그래야 할까 봐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의 부담이 조금 덜어졌다.
“그나저나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조훈기 선배님 정말 음악 앞에 편견 없으시네. 까마득한 후배한테 디렉팅을 다 해달라고하고. 정말 존경스럽다.”
“그쵸?”
“응, 그런 선배님 눈에 든 너도 대단하고.”
임지문이 도웅을 빤히 쳐다봤다.
“근데 생각해보니 좀 어이없네.”
“뭐가요.”
“너 작곡하는 거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냐?”
드럼도, 미디 찍는 법도, 마스터 키보드를 사용하는 방법도.
사실 임지문이 그의 작곡 선생인 셈이었다.
“청출어람이라더니···.”
그런데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능력치를 가뿐히 뛰어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너 나한테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꽂아 줄 거냐?”
도웅은 그의 말에 아랑곳 않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일단 점심부터 먹고 올까요?”
“너 집에 안 가?”
“갔다 와서 가사 나오면 가이드 녹음 다시 해야죠.”
“너도 참 진짜 독하다···.”
하긴, 저 정도 했으니까 그렇게 빨리 늘었겠지.
임지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 시간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뭐 먹을래?”
**
완성된 가사가 도웅의 메일로 날아왔다.
조훈기의 배려로 작사가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만든 최종 가사였다.
“업계에서 최고라 불리는 작사가 답네.”
곡의 분위기와 도웅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서 만든 가사가 한층 더 노래에 힘을 부여해 주었다.
도웅은 개인 작업실에서 가이드 녹음까지 마쳤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대부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었다.
남의 손을 빌리면 가려운 데를 전부 긁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대망의 D-day, 심정남이 작업실의 문을 두들겼다.
“도웅 씨, 준비됐습니까?”
“네, 출발하죠.”
차를 타고 GK 엔터로 향하는 길.
도웅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자신이 편곡한 곡을 조훈기가 부르는 모습을 조금 있으면 볼 수 있을 테니까.
과연 머릿속으로 상상했듯이, 아니면 그 이상으로 조훈기가 어떻게 곡을 소화할지가 너무 기대되었다.
심정남도 들뜬 것은 마찬가지인지, 오늘따라 더 정갈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도웅 씨, 긴장되십니까?”
“조금요.”
“거기 긴장 푸시라고 제가 음료수 좀 사놨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심정남이 더 긴장한 듯 보였다.
지난번에도 그가 조훈기를 힐끔힐끔 보면서 연신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업계의 누구라도 긴장하게 만드는 이름이 바로 조훈기였다.
미팅을 하러 왔던 때와 느끼는 부담 자체가 달랐다.
커다란 GK 엔터의 건물에 들어가기 전,
그는 땀에 절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도웅에게 말했다.
“도웅 씨는 저희 판타스타의 자랑입니다. 파이팅 하십쇼!”
**
도웅이 소속된 판타스타도, 이 일로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하물며 GK 엔터라고 다를까.
남도웅, 조훈기 의외의 조합은 GK 엔터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판타스타와는 사뭇 달랐다.
판타스타에서는 도웅이 기대를 받는 구조였다면,
Gk 엔터에서는 왜 조훈기가 하고많은 작곡가들을 두고 남도웅을 고집하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저만치에서 여직원들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도웅 씨 왔어?”
“녹음실에 있다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노래길래 회사 분위기가 이런 거야.”
그중 사방으로 듣는 귀가 열려있는 직원 하나가 말했다.
“건너 들었는데 노래를 겁나 파격적으로 고쳐서 가지고 왔대.”
“조훈기 선생님이 부를 노래를?”
“응.”
“진짜 궁금하다.”
“우리 거기 들어갈 수 있어?”
“응, 조용히만 있으면 괜찮대.”
여직원 몇이 녹음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이동했다.
한편, 도웅이 손본 곡의 원곡자, 이윤수가 남자 아이돌의 신곡 작업에 빠져있는 와중에 누군가 작업실의 문을 통통 두들겼다.
“윤수 씨도 거기 가봐야 하지 않아?”
“제가 거기 꼭 필요한 건 아닌데, 그래도 가봐야죠.”
그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같이 GK 엔터에 소속되어있는 작곡가 동료가 혀를 쯧 찼다.
“아니, 원곡자가 이윤수 씨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마치 남도웅에게 밀린 그가 안쓰럽다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는 억울한 게 전혀 없었다.
젊은 사람들도 즐겨듣도록 고쳐보라던 제작 팀장의 주문.
그걸 못 하겠다고 한숨 푹푹 쉬던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도웅은 그걸 해냈고, 본인은 안 그래도 남자 아이돌 곡을 만드느라 바쁜데 할 일을 던 셈이었다.
“도웅 씨 아니었음 조훈기 선생님 마음에 들 때까지 내가 날밤을 깠어야 할 걸요. 노래 어떻게 바뀌었나 그게 궁금해서 가보는 거예요.”
자신의 곡이 타인의 영감으로 완전히 재탄생한 결과.
그걸 지켜보는 것도 원작자로서는 큰 즐거움이니까.
“근데 남도웅이 진짜 자기 힘으로 편곡을 해?”
“네. 제 눈으로 직접 봤다니까요. 건반 잡는 것만 봐도 예사롭지가 않았어요, 흐아암.”
“입 찢어지것다, 찢어지것어.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나돌지?”
“무슨 소문이요?”
“남도웅의 작곡가 이미지 걔네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거라고.”
이윤수는 본인도 들어봤던 소문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노래도 잘하는데 작곡까지 잘하겠나 싶어서 그렇게들 생각하는 거겠죠. 저도 그랬는데요.”
“그게 아니라 그 회사에 있는 작곡가 하나가 그렇게 얘기하고 다닌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
“그래요? 이상하네.”
이윤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녹음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이들이 눈앞에 보였다.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그 덕에 제작팀의 직원 하나가 문밖에 있는 인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 바깥에 계신 분들은 돌아가 주세요. 너무 혼잡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곡가 이윤수는 직원에게 바짝 다가섰다.
“저는 이 곡의 원곡자인데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요, 들어오세요.”
그는 함께 여기까지 걸어온 작곡가까지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도 이미 빽빽하게 둘러서 있는 사람들.
그때 뒤로 누군가 낑겨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니, 선생님?”
“아이구, 이거 미안합니다. 나도 궁금해서. 껄껄.”
자연인 느낌을 풀풀 풍기며 생활 한복을 입고 있는 그는,
GK 엔터 소속의 중년 배우 임현백이었다.
평소 조훈기와 친밀하게 지내던 그도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이거, 홈그라운드도 아닌데, 저 친구한테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닌가 몰라.”
그렇게 얘기하는 그는 이미 팔짱을 끼고 관전 모드로 돌입한 지 오래였다.
제작 팀장은 혼잡한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20~30대 직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조훈기가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고 해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자, 그럼 녹음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정숙을 지켜주시고 녹음에 방해되는 행동 삼가시길 바리겠습니다.”
제작팀의 직원이 상황을 정리했고, 엔지니어 옆에 앉은 도웅과 부스 안에 있는 조훈기에게 신호를 주었다.
빰빠, 빰빠빠, 빰.
이윽고 경쾌한 피아노 멜로디가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왔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이게 조훈기 선생님 노래라고?’
‘뭐지?’
너무 산뜻한 느낌에 당황한 사이, 조훈기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바뀌는 반응들.
‘우와!!!’
‘야, 좋다, 좋다.’
예상치 못한 명곡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는 느낌마저 들은 몇몇 직원이 팔뚝을 쓸어내렸다.
조훈기는 역시 조훈기였다.
그가 오래도록 보여준 여물고 숙성된 감정이 아닌,
마치 감각을 일깨우듯 한 사랑의 감정.
60대 조훈기의 입을 통해, 그 산뜻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다음으로 직원들의 시선이 이동한 곳은 도웅이 앉은 자리였다.
‘그러니까 이 곡을 남도웅 씨가 편곡한 거라는 거지?’
‘그렇대.’
‘완전 신기하다.’
‘능력자네.’
젊은 직원들이 좋아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작곡가 이윤수가 감탄했다.
‘이게 정말 되네.’
만약 자기가 만들었던 대로 녹음을 진행했다면, 이 정도 폭발적인 반응은 얻지 못했으리라.
직원들의 반응에 얼떨떨해진 제작 팀장이 속으로 흠, 헛기침을 삼켰다.
상상했던 것보다 훌륭한 조훈기의 표현력에 도웅 역시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 존경스럽다.’
분명 오래도록 잊고 있었을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톡톡 튀게 담아내는 조훈기가,
이 곡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도웅이 지적할 필요 없이, 그는 완벽에 가깝게 노래를 소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포인트가 되는 가사의 끝부분이 조금 뭉툭하게 들린다는 점이었다.
‘이 부분이 살아야 되는데.’
까마득한 후배가 대선배를 지적하는 것이 주제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도웅은 후배가 아닌 편곡가로서 이 자리에 앉은 것.
도웅은 중간에 노래를 끊고 연결된 마이크로 말했다.
“선생님, 후렴 끝 부분을 더 쨍한 느낌으로 맺어주세요.”
‘히익.’
까마득한 후배의 지적에 그곳에 있던 직원들이 경악하며 일시에 조훈기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정작 조훈기는 잘게 고개를 끄덕이며 쿨하게 집게와 엄지를 말아 보였다.
“오케이.”
다시 녹음이 재개되었다.
제작 팀장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저게 오냐오냐하니까, 감히 선생님한테!’
하지만 조훈기가 도웅이 말한 부분을 캐치해서 표현해내자, 금방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었다.
‘어? 아까보다 듣기 좋아졌다.’
‘머리에 더 콕콕 박혀.’
‘와···. 남도웅 씨 귀신이네.’
제작 팀장은 인상을 확 썼다가 주변 반응이 바뀌자 어색하게 표정을 풀었다.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 배우 임현백은 작게 중얼거렸다.
“저거 깡다구 있네.”
그렇게 모두가 조훈기의 제2의 전성시대를 기대하던 가운데,
빠르게 녹음은 마무리되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도웅 씨, 고생 많았어요.”
직원들이 연신 도웅에게 밝게 인사하며 흩어졌다.
제작 팀장도 목을 가다듬고서는 말했다.
“흠, 흠. 고생했습니다. 도웅 씨.”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웅의 편곡은 파격적이면서도 도전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지금 회사는 화려한 제왕의 컴백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도웅 씨, 진짜 대단해요. 저는 이 곡 수정하는 거 거의 포기했었거든요.”
작곡가 이윤수는 솔직하게 말하며 도웅에게 악수를 청했다.
“작곡가 모임이 있거든요. 나중에 시간 괜찮으면 술 한잔해요.”
“네, 감사해요.”
그때 옆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배우 임현백이 도웅의 근처로 와 말했다.
“햐, 도웅 씨 깡다구 세대? 사람들 앞에서 딱 할 말 하는 거 보니까 내 젊은 시절 보는 것 같던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노래 어땠는지나 말해봐, 영감.”
“아, 좋았어. 말해서 뭐 해.”
조훈기와 임현백이 막역한 사이인 듯 투덕거렸다.
그때 임현백이 도웅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야, 우리 도웅 씨 거기 데려가자.”
“도웅 씨가 시간이 돼야지, 네 맘대로 그렇게 정해?”
조훈기의 면박을 받은 임현백이, 계단을 내려가는 길 도웅의 뒤에 바싹 붙어서 말했다.
“도웅 씨, 오늘 한 잔 안 할래?”
“한 잔이요?”
“이 영감이랑 연예계 사람들 몇몇 해서 오늘 만나기로 했거든.”
그러고 보니 도웅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친한 연예인들끼리 모여 운영하는 사조직 ‘한짝해’.
주당인 배우 임현백이 거기 수장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연예계 인맥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그게 조훈기와 임현백이 속한 사조직이라면.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저 술 잘 마실 자신 있습니다.”
도웅의 쿨한 대답에 임현백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야, 너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