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표현의 영역을, 그리고 감각을.
함인구의 상상 속.
도웅이 무대의 한 가운데 우뚝 섰다.
비록 뮤지컬 발성은 아니었지만, 누구든 집중하게 만드는 훌륭한 노래 실력.
그리고 상상 속 무대 앞의 관객들은 도웅의 노래에 즐거워하고, 집중했다.
마치 이 방에 있는 채아, 조훈기, 그리고 임현백처럼.
‘이쪽이 더 무대에 세워볼 만하겠는데.’
번쩍이는 조명 아래서 실제 두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지치지 않는 에너지.
함인구는 과거 자신이 현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섰던 때의 열정마저 떠올랐다.
‘저건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야.’
단 3분, 30분도 아닌 두 시간가량의 긴 시간 동안,
입안에 담는 음악과 그것을 몸짓으로 표현할 때의 즐거움이 도웅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간만에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는 후배를 만나니,
저절로 함인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옆에 있던 임현백이 그 표정을 놓칠 리 없었다.
‘됐어, 함인구 눈에 들었다!’
원래 후보 선상에도 없던 도웅이, 그의 후보군에 들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임현백도 도웅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느낀 것은 도웅은 볼수록 마음에 드는 후배라는 것.
‘자식, 노래도 잘하지만 우리 멤버들이랑도 아주 잘 어울리는 게 보통이 아니야.’
생각해보니, 도웅이 ‘한짝해’ 멤버들과 어울리는 것은 오늘이 처음.
그런데도 도웅은 마치 원년 멤버처럼 융화되어 아무도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저 녀석은 완전 맨정신인 것 같은데.’
그런데도 취한 일행들 사이에 끼어서 분위기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는 것은 그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했다.
덕분에 멀뚱히 앉아있기만 하는 이세준과도 더욱 비교되었다.
노래 실력 통과.
두시간 동안 쌩쌩한 집중력 통과.
거기에 플러스로 주변과 금세 융화되는 친화력 통과.
뮤지컬은 원맨쇼가 아니라는 점에서 임현백은 도웅이 자신의 무대 파트너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이세준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연출가 함인구가 도웅에게 집중하는 모양새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쟤는 대체 뭔데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거야?’
채아와 가까워지는 것도,
함인구에게 어필을 하려던 것도 자꾸만 방해하는 도웅.
처음 고깃집에 들어가서 눈을 마주친 그 순간부터 찝찝했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
모두의 정신이 번쩍 깰 정도의 고음이 짜릿하게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흔들림 없이 쭉 뻗어 나가는 도웅의 시원한 발성.
마치 노래 속 화자의 자유로운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가수도, 그리고 배우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그 순간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와···. 남도웅 씨가 노래를 정말 잘하는구나.’
‘도웅 씨 그동안 많이 업그레이드된 느낌인데?’
그 덕에 함인구는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뮤지컬의 발성이 실용음악과는 다르다고는 한들,
저정도 실력이라면 분명 어떤 장면이든 소화할 수 있겠노라고.
그야말로 장르를 무색하게 만들 만한 보기 드문 실력이었다.
그렇게 아직도 여운이 가득한 도웅의 노래가 끝났고,
일행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먼저 소리를 지른 것은 채아였다.
“후!! 역시 우리 도웅 씨, 내가 진짜 잘 뽑았다!”
“네가 뽑아서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도웅 씨가 원래 잘하는 것 같은데? 모태 가수네, 모태 가수.”
“아, 그냥 그렇다고 해줘요~~!”
개성파 배우 오진해와 채아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노래방 화면의 점수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맞다. 아직 점수가 남아있었지.’
그 사실을 깨달은 일행들이 화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조용히 후배들을 지켜보던 조훈기도 관심이 가는지 상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직까지는 한 번도 100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조훈기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 채아가 소리쳤다.
“만약 여기서 100점 안 나오면 이 기계에 진짜 문제 있는 거예요.”
바로 그때.
점수판이 세 자리 숫자에 멈춰 섰다.
그 덕에 일행들이 마치 자신이 백 점을 맞은 것처럼, 도웅의 등을 두들기며 다같이 기뻐해 주었다.
“우왓! 백 점이다!”
“으악, 부럽다! 조훈기 선생님 티켓!!”
언뜻 아쉬운 누군가의 비명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도웅은 좋아할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
그렇게 즐겁던 시간이 끝나고,
잠깐의 여흥을 즐긴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
“오랜만에 오니 스트레스 팍팍 풀리네.”
다들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두 사람만 죽상이었다.
그들과 영 어울리지 못하고 이질감을 뿜어내고 있는 이세준과,
임현백에게 완전히 밀렸음을 깨달은 송규섭이었다.
함인구는 아까부터 꿈틀대던 흥미를 감추지 못하며,
도웅에게 악수를 청했다.
“도웅 씨, 조만간 연락 드릴게요. 그때 또 봅시다.”
‘됐구나, 됐어!’
임현백은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조훈기의 어깨에 손을 탁 올렸다.
“콘서트 티켓 나오면 꼭 도웅이 주는 거야, 영감!”
“아이고, 내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어.”
조훈기가 웃으며 괜히 역정을 냈다.
밖으로 나오니 어두운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우와,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밝네요.”
채아가 얘기하자, 일행들이 고개를 위로 꺾어 들었다.
그 와중에 연출가 함인구의 시선은 도웅을 향해있었다.
“그래, 오늘 참 별이 밝다.”
**
다음날.
도웅은 꽤 술을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숙취가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노래방에서 몸을 풀어서 그런가 가뿐한 몸 상태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편한 차림으로 판타스타로 향했다.
딱히 스케줄이 없더라도 작업실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르면 바로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으이차.”
작업실에 도착한 도웅은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하루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돌아보니 후다닥 지나갔지만,
바로 어제 대선배 조훈기의 노래의 디렉팅을 봤고,
연예인 사조직과 ‘한짝해’와 술을 마셨고,
노래방에서 이세준과 진검승부까지 펼쳤다.
“참 다이나믹 했네.”
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때 누군가 작업실의 문을 똑똑 두들겼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강태진이었다.
“도웅 씨, 어제 잘 다녀왔어요?”
“네. 녹음은 별 탈 없이 잘 끝났어요.”
뒤이어 들어온 사람은 의외로 이나래 과장이었다.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앞에서 강 대표님이랑 잠깐 이야기하다가 저도 들렀어요.”
‘그런데 여명 선배님은···?’
강태진이 가는 자리에 없으면 섭섭한 인물인 여명을 떠올리기 무섭게, 그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뜸 도웅을 보자마자 얘기했다.
“어제 찢었다며?”
“네?”
“얘기 다 들었어.”
무슨 얘기가 어떻게 돌아다니는 건지 도웅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조훈기가 강태진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무슨 얘기를 전해 들은 것 같았다.
“조훈기 선생님이랑 고기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부럽다.”
부러운 입맛을 쩝 다시는 여명과 도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이나래.
강태진은 도웅을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생했어요. 오늘은 특별한 스케줄 없으면 푹 쉬어요.”
다들 뭔가 큰 시험을 치르고 온 아들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한 후, 한창 바쁠 때는 지나갔다.
타이틀곡은 이미 3위로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었으며,
도웅의 자작곡만이 홀로 역주행 중.
도웅은 오늘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급하게 표를 두 장 예약했다.
운전석에 앉은 심정남이 물었다.
“갑자기 웬 뮤지컬입니까?”
“간만에 문화생활 좀 해보려고요.”
“허허, 덕분에 저까지 좋은 구경하게 생겼네요.”
그렇게 심정남과 함께 도착한 곳은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
두 사람은 주차를 마치고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도웅은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형, 그런데 급하게 예약을 하다 보니까 남는 공연이 별로 없더라고요.”
“저는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도웅 씨 덕분에 일하는 시간에 문화생활도 하고, 저한테는 최고죠.”
심정남이 이를 씩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다음에는 더 좋은 공연으로 보여드릴게요.”
“하하, 감사합니다. 매니저 중에 제가 가장 신세가 좋은 것 같네요.”
말만으로 기분이 좋은 듯 심정남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도웅은 생전 직접 뮤지컬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뮤지컬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올지도 몰랐다.
그래서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었다.
‘내가 진짜 무대에 서도 되겠는지.’
그리고 진짜 그 일이 하고 싶은지.
갑자기 굴러들어온 기회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 연락이 온 것은 아니라 김칫국일지도 몰랐지만.
200명 남짓 들어갈 만한 아담한 규모의 공연장.
그래도 관객이 하나둘 들어차며 나름의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됐다.
배우들이 차례로 나와서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췄다.
얼굴 근육 하나까지 써가며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들.
숨소리를 죽여가며 그들을 관찰하던 도웅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멋있다···.’
도웅에게 있어서 음악이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였다면,
그들에겐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표현의 수단이었다.
목소리, 말투, 표정, 그리고 몸짓까지.
무엇보다 그곳에서의 음악은, 감정을 절정을 관객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배우가 자신의 심정을 노래로 뱉어내는 장면들은 그냥 대사를 칠 때보다 가슴을 크게 울렸고,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동선과 하모니는, 전율을 자아냈다.
가수가 3분 안에 사람들의 감성에 잽을 날리는 느낌이라면,
뮤지컬은 두 시간 동안 음악으로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 한방에 감동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느낌이었다.
도웅은 잠시 그 무대에 서서, 연기하고 노래하며 사람들을 전율하게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자 생각보다 결론은 쉽게 나왔다.
‘꼭 해보고 싶다.’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음악과 춤, 그리고 연기.
도웅은 표현의 영역을, 그리고 감각을 더 넓혀보고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배우들에게, 도웅은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배우들과 사진을 찍으실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면 됩니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사진을 원하는 관객들은 앞으로 나갔다.
그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으로 쏠려서 나가는 문 쪽은 널널했다.
답답했던 마스크를 빼고 편하게 문밖으로 빠져나온 도웅과 심정남이 차를 세워둔 쪽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도웅의 등을 톡톡 두들겼다.
“저기, 혹시···.”
도웅이 뒤돌아보자, 이십 대 중반 정도 된 여자 하나가 숨을 헙 하고 삼켰다.
그러더니 목소리가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저···. 남도웅 씨 맞으시죠? 저 도레미 회원인데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을까요?”
도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심정남에게 내밀었다.
찰칵.
사진을 찍고 나서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감사합니다! 진짜 사랑해요!”
여자는 수줍음을 남기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심정남은 껄껄 웃었고, 도웅은 다시 마스크를 고쳐 썼다.
이때는 그냥 잠깐동안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그 여자가 SNS에 올린 사진은 팬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앓다죽을 도웅이를 공연장 앞에서 딱 만나다니. 난 이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도웅이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상상까지 해봤다. 근데 너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도웅아, 어떻게 안 되겠지?
그 게시물에 찍힌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확인한 도웅은, 혼잣말을 했다.
“안 될 건 없죠.”
그리고 곧바로 심정남을 찾아가 요청했다.
“형, 저 뮤지컬 트레이닝을 받고 싶어요. 가능한지 확인 좀 해주세요.”
함인구에게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팬들이 원한다면 직접 도전이라도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