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언제나처럼 가장 필요한 것.
권진우가 잠시 고민하는 듯 턱 끝을 메만졌다.
“그럼 이제 그 작품 오디션을 목표로 수업을 해야겠네요.”
오디션이 잡혔으니 이제 거기에 집중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심정남의 입장에서는 확인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도웅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디션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실무진 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웅 씨가 도전하겠다면 저희는 백방으로 서포트 하기로 했습니다.”
진심이라는 듯 무게감이 느껴지는 심정남의 말투.
도웅은 고마움에 빙긋 웃었다가 말했다.
“그럼 시나리오를 먼저 볼 수 있을까요?”
연출가 함인구 쪽에서 연락이 오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떤 내용의 뮤지컬인지는 아직 몰랐다.
임현백이 무작정 도웅을 밀어줬고, 그걸 받아먹어 생긴 기회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역할이 너무 안 맞으면 거절하고, 좀 더 실력을 쌓아 다른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게 좋겠지.’
그때 심정남이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온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그쪽에서 보내온 시나리오랑 대본입니다.”
“아, 역시 형이 최고예요.”
심정남의 준비성에 도웅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권진우와 도웅이 각각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곧장 종이를 뒤로 넘기며 대략적인 내용을 훑었다.
‘이런 내용이구나.’
퇴직하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는 할아버지가 이 극의 주인공.
그리고 도웅에게 제안 온 배역은 가진 게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청년이었다.
가난하지만 맑은 영혼을 가진 음악 천재 ‘찬이’.
‘역할 자체는 마음에 드네.’
두 남자는 윗집 아랫집에 살면서 처음엔 트러블을 빚다가,
청년으로 인해 음악에 눈을 뜬 할아버지가 결국 제2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다 훑어본 도웅은 생각보다 역할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권진우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비중이 꽤 큰 역할이네요. 확실히···.”
그가 말끝을 흐렸다.
뒷말을 하려다 도웅과 심정남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였다.
도웅이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아직 경력이 없는 도웅 씨한테 이렇게 중역을 맡긴 것 보면, 도웅 씨 팬들을 보고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커요.”
도웅은 이런 제안이 온 전후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보았다.
하지만 관련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심정남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웅 씨가 아니라 팬들을 보고 말입니까?”
“당연히 도웅 씨도 봤겠지만, 팬덤이 있는 사람을 써서 티켓 파워를 확보하겠다는 그런 생각이죠.”
“아, 그런 겁니까.”
만약 도웅의 진짜 실력을 알고 제안을 넣은 것이라면,
권진우는 제작사의 능력이 꽤 좋다고 보았다.
그는 업계에 있으면서 숱한 사람들을 봤다.
낙하산으로 꽂혀 무대마다 삑사리를 내는 아이돌,
그때마다 벌받는 심정으로 함께 무대에 서던 여러 배우까지.
그래서 보통은 그가 배우의 편에 설거라 생각하지만,
권진우는 무엇보다 재능을 우선시하는 사람.
그런 그가 봤을때, 도웅에게는 충분히 그 역할에 도전해볼만한 싹수가 보였다.
“도웅 씨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도 괜찮은 걸까. 그런 거 다 뒤로 제쳐놓고, 눈 딱 감고 도전해봐요.”
그래서 권진우는 도웅에게 진심으로 조언했다.
도웅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자격은 오디션 심사하시는 분들이 판단하겠죠. 전 그때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권진우는 도웅의 결정이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하드트레이닝 갑시다.”
**
부르릉-.
방송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
도웅은 눈으로 대본을 훑고 있었다.
“멀미 안 납니까?”
심정남이 백미러로 도웅을 흘끗 살폈다.
“괜찮아요. 어차피 다 읽은 거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는 거니까요.”
심정남이 안심하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요새 마이클 씨 본 적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형이 요즘 안 보이네요.”
“요새 마이클 씨가 행사계의 블루칩이라고 들었습니다. 라이브를 잘 하다 보니까 반응이 좋다네요.”
하긴, 실제로 무대에서 마이클 만한 텐션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마이클이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에 도웅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 스쳐가는 사파이어 멤버들.
“사파이어는 요새 어때요?”
“그 친구들은 음악 방송하면서 알음알음 알려지기는 했는데, 아직 큰 반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다음 앨범에서 좀 더 잘해보자는 분위기고요.”
도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사파이어였지만, 생각보단 성과가 부진한듯했다.
한 명씩 따져보자면 솔로 가수를 해도 될 만큼 역량이 뛰어난 멤버들.
한 번에 뜨기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도웅은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백설과 김이삭 만큼은 나오자마자 빵 터지는 스타가 될 운명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금세 방송국 건물이 차창에 비쳤다.
오늘은 뮤직토크의 게스트 역할을 위해 방송국을 찾았다.
뮤직토크.
도웅이 스페셜k스타 우승을 한 후, 가장 처음 출연했던 그 프로그램이었다.
한 달간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며 임시 MC를 맡았었던.
대기실에 도착하니 작곡가 허영준이 입이 찢어질 듯 좋아하며 도웅을 반겨주었다.
“오, 도웅이. 이렇게 또 약속을 지키네.”
“당연히 와야죠. 선배님께서 팬 미팅 사회까지 봐주셨는데.”
“그런 거 할 때마다 나 불러줘. 이렇게 상부상조하니까 좋네.”
가수로서 도웅의 주가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만큼 뮤직토크도 안정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고.
말 그대로 서로에게 윈윈인 만남이었다.
“어휴, 도웅 씨 오셨네요. 차는 안 막혔고요?”
PD까지 찾아와 살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일부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리허설을 하고, 방송에 들어갔다.
실내에 가득 찬 관객들.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그들과의 거리.
이게 바로 뮤직 토크만의 매력이었다.
이제 MC로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허영준이 입을 뗐다.
“이야, 완전히 감회가 새로워요.”
“어떤 게요?”
“도웅 씨 막 우승하고 나서 우리 프로그램에서 첫 방송 했었잖아요. 그때 완전 꼬꼬마였는데.”
그가 손바닥을 허리춤에 휘두르며 작은 키를 표현했다.
“에이 선배님, 그때도 그정도 꼬꼬마는 아니었습니다.”
도웅 역시 장난스럽게 멘트를 받아쳤다.
그러자 관객석에서 작게 터져 나오는 웃음.
이렇게 농담 따먹기 하듯 호흡을 주고받는 게 이 프로그램의 묘미였다.
“아무튼 우리 도웅 씨 정말 멋있어졌죠?”
-네에!
관객석에서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분위기 보니까 아무래도 다들 도웅 씨 팬분들인 거 같은데?”
허영준의 예리한 멘트에 이번에도 관객석 쪽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이번엔 도웅을 향해 질문했다.
“도웅 씨가 생각했을 때 그때랑 제일 크게 달라진 점이 뭐예요?”
“일단 팬분들이 많이 생겼다는 거하고요.”
“네.”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졌다는 거요.”
“사실 가수들한테는 그게 가장 크죠.”
허영준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하나 더 있지 않아요?”
“어떤 거요?”
“도웅 씨 이제 곡도 만들 줄 알게 됐잖아요.”
-오오.
관객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영준은 기세를 타고 멘트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얼마 전에 타 방송에서 보니까 그간 여러 악기를 습득했더라고요. 저한테는 말도 안 하고.”
섭섭하다는 듯 연기하는 허영준.
도웅이 씩 웃으며 멘트를 받아쳤다.
“그럼 지금 바로 보여드릴게요.”
-꺄아아!
그러자 관객석에서 곧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크큭. 그때도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게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능구렁이야.”
허영준이 웃으며 뒤편에 위치한 피아노를 가리켰다.
“자, 그럼 도웅 씨의 자작곡 ‘갈림길’. 우리 뮤직 토크에서도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살짝 어두워진 조명 아래 도웅이 피아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그가 트레이닝하고 있는 영상은 ‘프로 작곡가 H의 피아노 연주법(A)’.
그리고 이곳의 MC 허영준이 그 영상의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이날을 위해 도웅은 나만의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프로 레벨로 올라갔기 때문인지 난이도가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아직 완료는 못 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
도웅은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아직도 차트에서 천천히 역주행을 하고 있는 자작곡 ‘갈림길’의 도입부를 연주했다.
담담한 멜로디가 관객들, 그리고 허영준의 주변을 고독하게 유영했다.
거기에 도웅의 목소리가 마치 가을바람에 부유하는 나뭇잎같이 음계를 그렸다.
라이브로 들으니 더없이 좋은 음악 앞에 관객들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사의 내용처럼 고뇌하는 한 인물의 심정에 함께 공감하면서.
그런데 도웅을 바라보는 허영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고음 변태로서 노래하는 도웅을 볼 때 가끔 이런 표정이 나오곤 했었지만,
이번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그의 시선이 도웅의 손가락에 향해 있다는 것.
본능적으로 도웅의 연주 소리에 끌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 나이에 피아노로 저런 감정을 담아내지?’
어릴 때부터 피아노 천재 소리를 들어온 허영준이었지만,
도웅이 연주하는 수준은 현재의 자신에 버금가는 실력이었다.
‘저런 게 진짜 천재구나.’
그것을 깨달은 허영준은 마치 영혼이 빨려 들어가듯 도웅의 연주에 집중했다.
지금 녹화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 순식간에 도웅의 연주가 끝났다.
사방에서 우레와 같이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짝짝짝짝짝.
그 덕에 정신을 차린 허영준이 벌어져 있던 입을 천천히 다물었다.
그리고.
-챠랑.
허영준의 머리 위에 붉은 별이 떠올랐다.
**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도웅은 연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바로 선물함을 확인할까?’
그렇게 도웅의 손가락이 점점 메가플레이 어플을 향해 다가가고, 심박 수가 높아지고 있던 때,
운전을 하고 있던 심정남이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그 덕에 도웅은 화들짝 놀라며 화면을 감췄다.
빨간 신호에 차를 멈춰놓은 그가, 도웅에게 오늘 녹화의 감상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 연주는 뭔가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예전에 뮤직토크 할 당시에 도웅 씨의 방황하던 영혼이 느껴졌달까요.”
그는 손으로 코를 쓱 문지르며 이어 말했다.
“주변에서 보기엔 너무 잘하고 있지만 도웅 씨도 그런 고뇌가 있었구나 싶으면서 말입니다.”
당연히 이런 현장의 감상을 전해주는 게 심정남의 역할이었지만,
도웅은 오늘따라 집에 오는 길이 더 길게 느껴졌다.
탁.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문을 닫고 들어온 도웅은.
“후우.”
심호흡을 하고 선물함을 확인했다.
[ 빨간 별을 터치해 보세요! ]토톡.
곧이어 빨간 별이 심장처럼 두근두근 작았다 커졌다.
그리고 파앙.
화면 위에 떠오른 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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