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만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도웅은 영상의 제목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타이밍 진짜 끝내준다니까.”
-뮤지컬 배우 C의 감정 표현(A).
오디션을 앞두고 뜬 뮤지컬 관련 영상.
현시점에 이런 영상이 뜨다니.
도웅은 이게 마치 오디션에 꼭 붙으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지만, 도웅은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영상을 확인하기 직전, 이때가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다.
토톡.
도웅은 두 눈에 힘을 주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화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넓은 무대를 배경으로 덩그러니 서 있는 한 남자.
“음, 그 사람이구나···.”
정확히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예능 프로그램에 이 남자가 출연했던 적이 있어 얼굴은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무대 위를 천천히 거닐며, 대사를 읊고 있었다.
도웅은 남자의 연기에 온전히 집중했다.
눈빛, 표정, 작은 동작 하나까지.
남자는 한 인물을 자신의 내면에 담아 섬세하게 비춰내고 있었다.
도웅은 가만히 그를 관찰하다가, 그가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귀에 쏙쏙 박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발음이 정확하니까, 더 전달이 잘 되는구나.”
그때였다.
남자의 몸에서 호흡이 길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대사가 노래로 연결되었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마치 말하듯, 노래로 감정선을 이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끔 뮤지컬을 보다가, 노래가 시작되면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왜 말을 하다가 노래를 하지?’
그건 그 사람들이 뮤지컬이란 형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배우가 소리를 강하게 밀어내는 창법을 사용하는 것도 이유에 포함되었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공연장의 맨 뒤에 앉은 관객들에게까지 소리를 전달해야 했으니까 강하게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배우는 어딘가 달라.”
분명 남자의 소리는 공연장을 모두 메울 정도로 짱짱한데, 모든 표현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히려 그래서 감정이 더욱 진하게 전달되었다.
“그래, 이 사람이 집중하고 있는 건···.”
뮤지컬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연기, 춤, 노래.
그런데 이 사람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활용한 ‘표현’이었다.
도웅은 그제야 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알 것 같았다.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하고, 연기를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그저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도웅은 한참동안 그가 어떻게 한 인물을 담아내고 표현하는지를 지켜보며 전율했다.
이 모든 표현을 내가 익힐 수 있다면 분명 가수로서의 능력도 업그레이드되리라.
마침내 길었던 뮤지컬 영상이 끝나고, 도웅은 한 번 더 화면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해당 영상 속 재능을 ‘남도웅’ 님의 플레이리스트로 전송합니다.]**
“···.”
권진우 선생은 며칠 후 있을 오디션에 맞춰, 도웅에게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었다.
지금 도웅의 수준에서 조금 더 효과적으로,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도웅은 수업을 곧잘 따라왔고, 권진우는 매 수업마다 욕심껏 조금씩 강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노래야 원래 잘했다고 치지만···.’
워낙 기본 실력이 좋아서 고음이든 저음이든 소리는 잘 내는 편이었지만,
지난 수업까지만 해도 노래 잘하는 가수에 가까웠던 표현력이,
지금 권진우의 눈에 완전히 뮤지컬 배우처럼 보일 정도로 늘어있었다.
대사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춤으로.
몇 년간 연습하더라도 깨우치기 힘든 구간을,
도웅은 자연스럽게 오가며 감정을 표현했다.
‘아무리 밤새워 노력했다고 한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배우, 아이돌, 뮤지컬계 후배까지.
권진우는 수많은 제자를 가리키면서 이 정도의 성장 속도를 보인 제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때 한 단어가 권진우의 등골을 스쳐 지나갔다.
재능.
권진우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능’의 정점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이런 귀한 이를 내가 맡아 가르치다니.
권진우는 소름이 돋은 상태로 도웅의 예술 행위를 감상했다.
한 씬이 끝난 후에도 권진우가 아무 미동이 없자 도웅이 그를 불렀다.
“선생님?”
“아, 아. 미안해요. 너무 집중해서 듣다가 생각에 빠져버렸네요.”
띡.
권진우는 방금 씬을 녹화하던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이거 한번 모니터링해볼래요?”
뮤지컬 자체가 카메라에 담기는 무대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연기를 모니터링시키기 위해 수업마다 이런 식으로 녹화를 하고 있었다.
다가와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보는 도웅.
권진우는 옆에서 자신이 느낀 점을 첨언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제가 봤을 때 오디션이 무의미해요.”
권진우의 폭탄 발언에 놀란 도웅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굳어 있던 권진우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번졌다.
“너무 잘해서.”
반전을 노린 그의 장난을 알아차린 도웅도 함께 웃었다.
오디션에 나타날 다른 적수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돌 멤버일 터.
권진우는 그중에서 도웅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내가 많이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이런 얘기하기도 뭐하지만.”
“아니에요. 다 선생님 덕분에 이만큼 할 수 있었는데요.”
도웅이 그렇게 얘기해주자 권진우의 양 볼이 기쁨에 볼록 솟아올랐다.
천재를 가르치는데 자신이 기여했다는 그런 기쁨이었다.
그때 도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저 한 번만 더 해볼게요.”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고음 부분에서 볼륨을 조금 더 키워서 노래를 불러보려고요. 공연장은 여기보다 규모가 훨씬 클 테니까.”
소리가 퍼져나가는 규모까지 계산을 하고 있는 도웅이 권진우는 너무나 놀라웠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오케이. 그럼 이번엔 저랑 대사를 주고받아봐요. 노래엔 내가 화음도 넣을 테니까.”
권진우가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르고 도웅의 옆에 가서 섰다.
도웅이 살짝 멈칫하자 그가 상대 배우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예고했다.
“지금부터 제대로 한번 해봅시다.”
**
오디션 통보를 받은 이세준의 회사 엘퀸 엔터테인먼트.
화가 잔뜩 난 대표가 이세준과 매니저를 호출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 된 밥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는 인기 멤버인 이세준을 뮤지컬에 꽂기 위해서 학교 후배인 제작 감독을 만나 여러 번 기름칠해놓았다.
그래서 배역이 거의 확정된 줄 알았는데.
“반응이 제일 뜨뜻미지근한 연출가 눈에 들라고 사적인 자리까지 보내줬더니만. 왜 갑자기 오디션을 본다고 하는 거냐고.”
이 상황에 마음에 들지 않는 대표가 주먹으로 책상을 콩콩 쳤다.
이세준은 노래방에서의 뜻하지 않은 대결에서,
연출가 함인구의 눈에 드는 데 실패했었다.
아마도 그게 원인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 사실을 대표에게까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후배한테 노래방에서 밀려서 이렇게 됐단 얘기를 쪽팔리게 어떻게 해.’
다행히 배우 송규섭도 그날 일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 모양이었다.
대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연기하고 싶잖아. 아니야?”
이세준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세준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오디션은 무조건 따와. 이거 못 따오면 그다음은 없어.”
이세준은 그룹 활동 후 배우로 전향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기 트레이닝을 받아왔고, 종종 오디션도 봤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낙방.
회사 입장에서도 인기 멤버인 이세준을 계속 써먹을 수 있다면 이득이었기에,
대표가 백방으로 인맥을 동원해서 그나마 제작 감독과의 연결 고리를 잡은 것이었다.
“너 지금 자리 못 잡으면, 아이돌 수명 끝나고나서 네 인생도 끝이다.”
‘씨발.’
그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대표의 면전에서 욕을 삼켰다.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겉보기 화려한 스타로서의 삶.
처음엔 그 인기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가 속한 그룹은 이미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차츰 하락세에 접어들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에서는 아마 새로운 보이 그룹의 런칭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세준도 이젠 알았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재계약도 없다는 사실을.
이세준의 눈동자가 끓어오르자, 그제야 대표가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제작 감독한테 기름칠 더해놓을 테니까, 이번엔 가서 잘하고 오라고.”
“···알겠습니다.”
**
덜컹덜컹.
뮤지컬 제작사 ‘아임 컴퍼니’로 향하는 길.
도웅은 중얼중얼 대사 연습에 한창이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쪽이 아니잖아요.”
자연스러운 도웅의 연기에 심정남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아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마치 뒤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처럼 낯선 느낌이 들었다.
도웅은 온전히 배역 ‘찬이’에 몰두하여 모든 행동과 말투에 그를 담아내고 있었다.
‘가끔은 도웅 씨 변화가 너무 빨라서 나도 감당이 안 된다니까.’
심정남은 도웅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잠자코 운전대를 돌렸다.
잠시 후 도착한 회색의 작은 건물.
안내해주는 직원을 따라 올라가니 아직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다.
“저는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심정남은 대기실 밖으로 나갔고, 도웅은 곧장 중얼중얼 대사를 읊었다.
얼마 후, 대기실 문이 열리고 음악 방송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이 들어왔다.
“어, 남도웅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도웅을 포함해 아이돌 세 명이 각자 모서리에 자리 잡았다.
그 중엔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었다.
‘오늘 오디션에 참가하는 게 총 세 명인가?’
그때 대기실 문이 한 번 더 열리며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등장한 이세준.
그의 커다란 눈동자가 대기실을 좌우로 훑었다.
‘뭐야, 이 잔챙이들은. 둘이나 더 생겼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대기실에 있던 다른 후배들이 그에게 인사했지만, 그는 불쾌한 얼굴로 도웅의 근처로 와 앉았다.
그리고 팔락 대본을 꺼내 커다란 소리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도웅의 연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뚜렷해 보였지만, 의외인 사실은 이세준이 연기를 곧잘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연기 트레이닝 받은 것만 몇 년인데. 노래 좀 한다고 함부로 비빌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알았겠지.’
그보다 후배인 두 아이돌 멤버들은, 이세준의 연기를 곁눈질하더니 약간 기가 죽은 듯 보였다.
도웅은 겉보기엔 침착해 보였으나, 분명 내면에 파장이 일었으리라.
‘그래, 차라리 잘됐다. 너희들 다 내 들러리로 서라.’
이세준은 기왕 이렇게 된 것,
오디션으로 배역을 따는 게 뒷말도 안 나오고 깔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제작사 직원 하나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오디션은 둘씩 짝지어서 보겠습니다.”
구석자리에 있던 두 아이돌 멤버가 먼저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그 덕에 냉랭한 공기 속에 남은 도웅과 이세준.
자연히 다음 순서에 두 사람이 같이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정적 속에 있던 이세준이 대본으로 도웅을 툭 쳤다.
“무슨 창피를 당하려고 기어코 여기까지 왔어? 여기가 네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야.”
이세준은 연기에 있어서 오래 노력해왔고, 그동안 숱한 고배를 마셨기에 알고 있었다.
그냥 욕심만으로 달려들 곳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도웅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이세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답했다.
“저는 한 번도 만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순간 이세준의 미간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