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알아둬야 할 게 하나 있는데.
“우와, 뮤지컬이요?”
제작팀의 이나래 과장이 기뻐하며 박수를 짝하고 쳤다.
옆에 있던 최 과장이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답했다.
“그렇다는데? 들리는 소문엔 꽤 중역이라는 것 같더라.”
“엄청 신기하다. 어떻게 일이 갑자기 그렇게 됐대요?”
“자세한 건 나도 몰라. 한번 정남 씨 찾아가서 물어봐봐.”
‘기왕이면 도웅 씨한테 물어보면 좋은데.’
그래, 이럴 때가 기회지.
이나래 과장이 벌떡 일어나면서 노트를 챙겼다.
“저 그럼 잠깐 매니지먼트팀 다녀올게요. 그쪽에 다른 일도 있어서 겸사겸사.”
“그래, 갔다 와.”
구름을 밟는 듯 사뿐한 스텝으로 이나래 과장의 발걸음이 도웅의 전용 작업실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웅은 없고 소파에 마이클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이클이 이나래 과장을 발견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하이, 나래 과장님.”
“마이클 씨 여기서 뭐 해요?”
마이클은 브로콜리 같은 머리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아임 도웅쓰 잉글리시 티쳐.”
그러고 보니 앞의 테이블에 영어 문법책, 중급 회화책 따위가 보였다.
“아, 영어 가르쳐주시는구나. 그런데 도웅 씨가 갑자기 영어는 왜요?”
“왜냐면 도웅이 배우고 싶다고 해서. 도웅은 아주 우수한 학생이야.”
마이클이 TMI까지 남발했다.
그렇구나. 도웅이야 워낙 바쁜 와중에도 하고 싶어 하는 게 많으니 그러려니 했다.
언어는 하나라도 더 할 줄 알면 무조건 도움이 될 테니.
‘영어 하는 도웅 씨도 되게 멋질 것 같긴 하네.’
이 과장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여기 온 진짜 목적을 꺼냈다.
“그런데 도웅 씨는 어디 갔어요?”
“나랑 공부 끝나고 바로 다음 수업 들으러 갔습니다.”
마이클 역시 도웅에게 한국어 연습에 도움을 받고 있던 터라,
높임말을 어색하게 섞어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뮤지컬 수업.”
“아!”
원하는 정보를 얻은 이나래 과장이 방긋 웃으며 마이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예스, 또 만나요.”
마이클이 다시 소파에 벌렁 누웠다.
**
그사이 기사가 떴다.
「뮤지컬 ‘할아버지의 꿈’ 화려한 캐스팅 공개」
「남도웅, 앨범 활동 중 파격 행보. 뮤지컬 ‘할아버지의 꿈’에 캐스팅.」
「임현백, 남도웅. 뮤지컬 무대에서 연기 호흡 맞춘다」
「남도웅, 첫 연기. ‘뮤지컬에 도전합니다.’」
캐스팅이 확정된 제작사 측에서 홍보 기사를 내보낸 것이었다.
물론 배우들과는 계약까지 완료된 상태.
어떻게 알았는지 조금 더 자극적인 제목을 내 거는 기사들 역시 속속 등장했다.
「’할아버지의 꿈’ 불꽃 튀는 캐스팅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 오디션의 강자 남도웅. 」
「남도웅, 첫 연기 도전에 이세준 꺾었다.」
역시 이 업계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
어디서 유출됐는지 몰라도 비공개 오디션 내용이 기자들 귀에까지 들어간 걸 보면.
기사를 쭉 훑어보던 권진우 선생이 집게손가락으로 턱 끝을 매만졌다.
“이제부터 시작이겠네요.”
“뭐가요?”
“기자들 말이에요. 이제 심지에 불붙였으니까 반응 좀 있다 싶으면 더 개떼같이 달려들 거에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래도 아직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봐요.”
아이돌의 연기 도전은 기자들에게, 그리고 악플러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 중 하나였다.
그래서 권진우와 같이 연기했던 아이돌도 곤란에 빠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권진우가 봤을 때 도웅은 논란이 일어난다 해도 뒤집을 실력이 있으니,
아주 걱정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기사 때문에 배우 멘탈만 안 깨지면···.’
“아, 그리고 지금부터 알아둬야 할 게 하나 있는데.”
“네.”
“더블 캐스팅이잖아요. 그래서 서로 견제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도웅도 대충 예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뮤지컬 계에서는 같은 배역을 두고 적으면 두 명, 많으면 세 명까지 캐스팅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 배우가 일주일 내내 연기하기엔 체력소모가 극심하니 요일을 나눠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
그래서 관객들이 뮤지컬을 예매할 때, 중요하게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캐스팅 보드였다.
어떤 날에 공연을 보느냐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가 달라질 테니까.
그래서 때론 요일에 따라 팔리는 티켓의 숫자가 심하게 달랐다.
그러니 같은 시나리오로 무대를 꾸민다 해도, 나눠진 팀끼리 경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사를 더 찾아보던 권진우가 말했다.
“상대 팀 주연은 고준구 선생님이고 찬이 역할을 맡은 배우는 노우혁이네요. 이 친구도 연기 괜찮은데.”
“그래요?”
“네, 이쪽 업계에서는 루키라고 불러요. 실력도 검증된 친구인데 팬덤도 꽤 많고요. 밸런스가 아주 나쁘지는 않네요.”
인기도가 너무 한쪽 팀으로 확 쏠리면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노우혁의 팬덤이 아이돌급인 도웅에게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 정도면 캐스팅이 잘 짜였다고 생각하면서 권진우는 대본을 들어 올렸다.
“그럼 리딩 연습할까요?”
“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서 늘 하듯 대사를 주고받았다.
목소리 톤, 표정, 그리고 제스쳐까지.
관객에게 전할 내용을 신경 쓰면서 도웅은 ‘찬이’의 분위기를 풍겨댔다.
먼지가 내려앉은 바닥이지만 한 줌 따듯한 햇살이 비쳐오는 301호 빌라의 풍경,
그리고 삐그덕 대는 낡은 가구의 소음들까지.
두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이 공간이 마치 무대 세트장처럼 보이는 착각까지 들었다.
“너무 잘한다···.”
“그쵸, 뭐 저렇게 다 잘하냐···.”
시니컬한 목소리에 이나래 과장이 화들짝 놀라 뒤 돌았다.
“아, 은율 씨, 오늘 스케줄 끝났나 보네요.”
“네. 방금 돌아왔어요.”
아직 무대 화장을 하고 있는 사파이어 멤버들이 이나래 과장의 뒤에 서 있었다.
모두들 도웅이 뮤지컬에 선다는 소식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 연습하고 있어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계단 위쪽에서 들렸다.
타닥타닥.
강태진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뒤꽁무니를 따라 내려온 여명은 덤이었다.
“앗, 대표님 안녕하세요.”
“쉿, 쉿. 인사는 나중에.”
강태진이 분위기를 깰까 급하게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살짝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여러 개의 눈동자가 왔다갔다 거렸다.
도웅이 권진우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며 피아노를 들려주는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확연히 평소 알던 도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 차분하고 진중한 편에 가까운 도웅.
노래 부를 때도 상당히 깊이감이 있는 편인데, 지금 도웅의 노랫소리는 맑고 투명한 찬이의 영혼을 담아내고 있었다.
“오오···.”
낯선 도웅의 모습에 여명이 감탄했다.
그러자 옆에서 말을 보태는 강태진.
“도웅 씨는 누구랑은 다르게 연기도 잘한다.”
“내 얘기 하는 거야?”
“응. 제법 눈치가 좋네.”
열받은 여명의 이마에 핏줄이 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여기서 큰소리를 낼 수는 없었으니까.
“풉.”
판타스타 멤버들과 이나래 과장이 숨죽여 웃었다.
그때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 다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업무차 내려왔던 매니저 심정남이었다.
**
“제작사랑 스케줄 조율 중인데, 아무래도 권진우 선생님한테 자문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타이밍을 봐서 연습실 안으로 들어온 심정남이 말했다.
공연 연습에 들어가면 대략 두, 세 달가량은 공연 준비에만 몰두해야 했다.
첫 달은 전체적인 진행을 숙지하며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가면 하루에 열두시간 정도 투자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권진우 선생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연습은 많이 참여할수록 좋긴 하죠. 그런데 정 바쁘시면, 최소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참여하는 게-.”
뮤지컬 배우들은 당연히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빼고 모든 연습에 참여한다.
하지만 아이돌들은 예외였다.
기획사 입장에서 뮤지컬만으로는 수익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행사나 방송을 전부 포기할 수가 없으니 항상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뮤지컬 계에서도 그걸 감안하고 캐스팅하는 것이었으니 어쩔 수는 없었다.
‘그게 뮤지컬 배우들이 아이돌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지.’
실력이 팀에서 가장 부족한데, 연습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웅의 이번 앨범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
절정으로 바쁜 시기는 지나간 것이었다.
도웅은 심정남이 적어온 스케줄표를 살피고는 말했다.
“본격적인 연습 들어가기 전까지는 행사가 조금 있는데, 이후로는 아직 안 잡혀있네요?”
“네, 아직 어떻게 될지 몰라서 최대한 안 잡아놨습니다. 이전 것들은 예전에 약속을 해둔 거라.”
“그럼 잡아놓은 것 이후로는 최대한 뮤지컬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요? 꼭 필요한 스케줄은 연습 쉬는 날에 하고요.”
심정남이 옆에 있던 강태진의 눈치를 보자 강태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강태진이야 대표 직함을 달고 도웅을 덕질하고 있는 수준이라 심정남의 입장에선 익숙한 것이었지만,
이런 쿨한 반응에 되려 권진우가 놀랐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할 때 제대로 해야죠.”
스케줄 올인을 요구하는 소속 가수나,
수익보다 ‘제대로’를 따지는 소속사 대표라니.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지?’
권진우의 놀란 눈이 도웅과 강태진 사이를 왔다갔다 거렸다.
**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가득한 언론사 스포 뉴스의 사무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던 황허재 기자가 다른 언론사의 연예란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쓸만한 기사가 있으면 내용을 교묘히 바꿔 자사 홈페이지에 업로드 하기 위해서였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옆에서 사수와 똑같은 짓을 하던 안대영 기자가 말했다.
“어? 남도웅이 뮤지컬에 선다네요?”
타 언론사 홈페이지의 한구석에서 기사를 발견했다.
따끈따끈하게 방금 올라왔기에 아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남도웅은 기자들 입장에서 짭짤한 이슈메이커였다.
흥미가 당긴 황 기자가 의자를 옆으로 끌어왔다.
“오~ 남도웅. 우리가 뭐 터트려보겠다고 뒤꽁무니 따라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그지?”
“그 후로 별로 건진 것도 없고 쭉 탄탄대로만 걷고 있네요.”
본업도 잘하고, 사생활도 깨끗하고.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건수만 있으면 크게 터트릴 수 있는 연예인.
그런데 갑자기 황 기자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런데 이건 좀 냄새나지 않냐?”
“무슨 냄새요?”
안 기자가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려 냄새를 맡았다.
황 기자가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무슨 냄새겠어. 특종의 냄새지.”
“와, 역시 선배. 저는 아직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연기에 처음 도전한다는 아이돌 곱게 볼 사람은 팬들 말고는 없어.”
그는 여기서 건덕지를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안 기자에게 말했다.
“여기 제작사 측에 연락해봐. 리딩 날에 참여하고 싶다고.”
**
“기자요? 안 돼요.”
연출가 함인구가 단칼에 거절했다.
리딩 날은 배우들이 첫인사를 하는 자리.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될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 날 하하 호호 하는 분위기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특히나 A팀, B팀이 같이 모이기 때문에 은연중 기 싸움이 오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기자가 꼭 본인들 편에서 기사를 써줄 거란 보장도 없고.
‘물론 임현백 선생님이 계시니까 기싸움 같은 건 덜 하겠지만은.’
“정 필요하면 내가 믿을만한 기자들을 부를게요.”
“아니에요. 리딩 날은 조용히 가죠. 저희도 확인해봐야 할 게 많으니까.”
그렇게 연출팀도, 배우들도.
첫인상을 좌우하는 리딩 날을 준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 마침내 리딩 날의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