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말도 안 되는 오해.
“그럼,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한번 돌려봅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을 맞춰본 후, 연출가 함인구가 말했다.
그 즉시 아역 신비가 우다다다 달려오더니, 도웅의 손을 잡고 끌었다.
키가 도웅의 허리춤밖에 안 오는 아이가 낑낑대며 끄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삼촌, 이 사람이 우리 아빠예요.”
“안녕하세요, 아까 보셨겠지만 도웅 씨가 대신해줬던 B팀의 ‘광태’ 역을 맡고 있습니다.”
급작스럽게 성사된 만남에 진재선이 머쓱해 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도웅이 목례하며 손을 맞잡았다.
“네, 안녕하세요. 진재선 선배님.”
순간 진재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웅이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는 수많은 배우 중 자신은 비중이 적은 편에 속했으니까.
거기다 선배 대우라니.
기껏해야 역할 이름으로 자신을 외우던 다른 작품의 아이돌이 생각나 더욱 놀라웠다.
‘정말 기본이 되어있는 사람이구나.’
진재선은 자신이 늦어 도웅을 곤란하게 만든 게 더욱 면목이 없어졌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도웅 씨. 대신 제 역할을 해주느라···.”
“헤헤, 삼촌 고마워요.”
신비가 아빠에게 매달려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연기할 땐 신기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던 아이가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꼬마였다.
도웅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언제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죠.”
그가 늦은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꺼낸 말이었다.
지금 도웅과 대화하면서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보니, 진재선은 이미 자신을 잘못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기에 굳이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나이가 많은 임현백이 뒷짐 지고 다가오며 호통을 쳤다.
“그래도 늦는 건 절대 안 돼!”
다른 배우들도 들으라고 하는 얘기였다.
사정이 어쨌건 이 많은 사람이 한 번씩만 지각해도 제대로 연습할 수 없을 터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절대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진재선이 허리를 꾸벅 숙이자 그제야 임현백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연습실 벽 쪽에 주저앉아 있던 다른 배우들의 시선은 조용히 그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
“너도 그때 봤지. 남도웅이 신비 노래할 때 화음까지 넣는 거.”
“응, 봤어.”
앙상블인 두 배우가 일찍부터 연습실로 향하고 있었다.
둘은 아역을 제외하고는 배우 중 가장 막내로, 연습실에 가장 먼저 가 있어야 했다.
강제는 아니더라도 연차가 낮을수록 일찍 가 있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들이 연기든 노래든 가장 부족한 편에 속할 테니, 먼저 가서 연습하는 편이 좋았다.
날씨에 비해 이른 감이 있지만, 벌써 흰 반팔 차림을 한 남자가 말했다.
“걘 벌써 어떻게 다른 사람 파트까지 외운 거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난 아직 내 가사도 헷갈리는데.”
동갑내기 극단 친구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반팔 차림의 남자는 제 친구의 반응이 탐탁지 않은 것과 관계없이 계속 고개를 갸웃댔다.
“남도웅, 설마 다른 파트까지 전체를 다 외운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어쩌다 초반 부분만 외운 거겠지. 걔가 지금 얼마나 바쁘겠냐?”
친구는 큰 보폭으로 걸으며 이어 말했다.
“아님 연습에 잘 못 나올 것 같아서 그렇게 몽땅 외워버린 걸지도 모르고.”
“와, 만약 그런 거면 진짜 괴물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오려나? 안 오면 누가 커버라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두 남자가 연습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도착 10분 전쯤에 반팔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야, 왜 뛰어!”
“늦게 도착한 사람이 음료수 사기!”
“에이씨, 치사하게!”
한창 사소한 내기에 목숨 걸 나이였다.
그리고 페이가 적은 막내들에겐 천원, 이천 원도 아껴야 하는 돈이었다.
타타탓.
경쟁이 붙은 두 남자는 전력을 다해 연습실까지 뛰었다.
결국 뒤늦게 출발한 친구가 겨우 조금 앞질러 도착했다.
“하아, 하아. 내가 일빠.”
그리고 승리에 소소하게 기뻐하며 연습실의 문을 열었는데.
“어?”
안에 먼저 와서 연습하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숨을 헐떡대는 자신을 발견하더니, 먼저 가볍게 목례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도웅 씨.”
누가 먼저 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그게 남도웅이라니.
인기도 많고 바쁜 도웅이 막내인 자신들보다 일찍 와있는 것에 당황했다.
그때 뒤늦게 도착한 친구가 숨을 몰아쉬며 그를 떠밀었다.
“후아, 괜히 돈 아껴보려다 망했네. 안 들어가고 거기 서서 뭐하··· 아, 도웅 씨 일찍 오셨네요.”
반팔을 입은 남자가 자세를 바로 하고 멋쩍게 인사했다.
서로 의아한 눈빛을 교환하던 두 남자에게 도웅이 뒤쪽의 검정 봉지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다 가져다주었다.
“이제 날씨가 꽤 덥죠? 영재 씨랑 훈기 씨. 이거 한 잔씩 드세요.”
내기 때문에 뛰어오느라 땀을 뚝뚝 흘리던 두 남자는 얼떨떨하게 손에 차가운 캔을 받아 들었다.
앙상블 막내인 자신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데다, 먼저 와서 음료수를 준비해두는 센스라니.
원래 이런 사소한 데서 생각보다 마음이 쉽게 열렸다.
도웅은 그날도, 그다음 날도.
연습에 빠지기는커녕 가장 먼저 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은 배우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남도웅이 생각보다 열심히 하네. 항상 맨 먼저 와있다던데?’
‘소문에는 이 작품 준비하는 동안 스케줄 거의 안 잡고 있대.’
‘진짜? 그거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진행도 우리 중에 제일 잘 외우고 있잖아.’
몇 년간 이 바닥에서 경력을 쌓아온 배우들을 제치고,
중요한 조연 자리를 꿰찬 아이돌에게 바란 것은 최소한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도웅은 기본을 넘어 누구보다 성실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도웅의 열정은 오히려 배우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내일은 좀 일찍 와야겠다.’
‘그래, 적어도 우리가 팀에 폐가 되지는 말아야지.’
이제 함께 연습한 지 보름 정도 되었을 때,
“어? 오늘 일찍 왔네?”
“아직 대화 순서가 잘 안 외워져서요.”
“그래, 그럼 같이 한번 맞춰보자.”
이른 시간임에도 연습실에 배우들이 바글바글했다.
바로 도웅이 불러온 긍정적 효과였다.
**
“에이, 참. 오늘따라 쓸 기사 한번 더럽게 없네.”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스포 뉴스의 황허재 기자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가 혀를 쯧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때 건수를 잡았어야 했어.”
“무슨 건수요?”
“그때 남도웅이 출연한다는 그 뮤지컬 말이야. 거기 리딩 날에 쫓아갔어야 하는 건데.”
“안 된다는 데 무슨 수로요.”
안 기자의 말에 황 기자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무슨 꿍꿍이가 생긴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야, 우리 그러지 말고 이 소재로 기사 하나만 쓰자.”
“아시죠? 없는 얘기 함부로 막 썼다가는 고소장 날아오는 거.”
안 기자가 칼같이 잘라내자 황 기자가 성을 냈다.
“넌 왜 사람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뭔데요.”
안 기자가 들어주려는 자세를 취하자 황 기자가 상체를 가까이 끌어왔다.
“그러니까 남도웅이 출연하는 그 뮤지컬 말고, 통상적인 뮤지컬에 대한 기사를 쓰자는 거야.”
“에이. 그걸 누가 읽어요, 재미없게. 선배 감 떨어졌습니까?”
“이 자식이 좀 컸다고 이제 아주 말을 막 하네.”
황 기자가 안 기자의 뒤통수를 치려다 말았다.
그러자 안 기자가 오히려 아쉬워했다.
“세게 한 대만 때려주시지. 일주일만 드러눕게.”
“야, 그러지 말고 잘 좀 들어보라고.”
“알겠습니다. 말씀해보세요.”
**
판타스타의 홍보팀.
소속 연예인들의 기사를 모니터링하던 직원이 수상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응? 이건 뭐야.”
「뮤지컬 계 아이돌 캐스팅의 불쾌한 민낯.」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직원이 물었다.
“왜 그래?”
“아니, 제가 도웅 씨 이름을 쳐봤더니 이런 기사가···.”
“내용을 한번 봐봐.”
기사는 요즘 뮤지컬계에서 아이돌을 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생긴 문제점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A군은 지각을 일삼고, B군은 음정 맞추는 것도 힘들어했으며, C군은 연습에 불성실하게 참여하며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렸다는 자극적이면서 지라시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티켓파워는 있지만 그런 아이돌이 전체적인 공연의 퀄리티를 떨어트린다면서.
“이게 도웅 씨랑 무슨 상관이지?”
의아함에 스크롤을 내리던 직원의 표정이 마지막 문단에서 일그러졌다.
-현재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돌에는 대표적으로 남도웅이 있다. 과연 인기 스타로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어떤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거 완전 도웅 씨한테 대표로 뒤집어씌우는 기사인데?”
“하, 진짜 교묘하게 갖다 붙여놨네요.”
뮤지컬에 캐스팅된 아이돌들이 저지른 만행을 쭉 나열해놓고, 마지막에 도웅의 이름을 갖다 붙여놓다니. 마치 도웅도 그럴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기사였다.
“스포 뉴스? 거기 기자한테 빨리 연락해봐. 쓸데없이 화제 되기 전에.”
“저 근데···.”
“왜.”
“어쩌죠, 이미 화제가 된 것 같은데요.”
직원이 스크롤을 쭉 내려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여주었다.
이미 천 개가 넘는 댓글들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아이돌들 그렇게 바빠서 제대로 못 할 거 같으면 애초에 왜 하겠다고 하는 거?
-그러니까. 같은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불쌍하다.
-나 전에 여친이랑 뮤지컬 보러 갔다 개깜놀했다. 걔보단 내가 더 잘할 것 같아서.
┕ 그래서 여친이 있으시겠다?
┕ 그게 아니라 푯값이 아까웠다고;
-그래도 남도웅 노래는 잘하잖음.
┕ 나도 남도웅이 하는 건 볼만할 것 같은데.
┕ 걔라고 스케줄 바쁘면 별수 있나? 연습 못 하면 결국은 똑같은 거지.
┕ 아직 남도웅이 그랬다는 것도 아닌데 억측 ㄴㄴ.
-남도웅이던 누구던 저따위로 할 거면 뮤지컬 하지 마라.
-암튼 배우들 현타 오지게 오겠다.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댓글을 보면서, 직원이 이마를 짚었다.
자세히 보니 많이 본 뉴스의 상위권 랭크에도 기사가 올라가 있었다.
“하아, 빨리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해보자.”
**
“좋아요. 안무까지 들어가니까 조금씩 그림이 나오네요.”
연출가 함인구가 기쁜 얼굴로 손뼉을 짝짝 쳤다.
“30분만 쉬고 다시 갑시다.”
앞머리가 땀으로 젖은 배우들이 뒤쪽의 벽에 기대앉았다.
이제 연습 스케줄의 반절이 지나갔다.
연출가 함인구는 진행 상황을 체크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거··· 어쩌면 B팀이 더 잘 할 수도 있겠어.’
원래는 배우들로만 이루어진 A팀에 작품성 면에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까고 보니 B팀이 의외로 선전하고 있었다.
거기엔 누구보다 열심히 임하며 팀원들을 자극하는 도웅의 공이 컸다.
함인구는 벽에 기대 배우들을 둘러보았다.
전면 거울 앞에서 진재선과 그의 딸 신비가 방금 다 함께 배운 군무를 맞춰보고 있었다.
“아니, 아빠. 여기서는 손을 이렇게 쭉!”
“아, 그래. 쭉.”
연기나 노래에 비해서 춤이 부족한 진재선을, 딸이 코치해주고 있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자연스레 다른 배우들도 그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니, 아빠 그게 아니고. 저기 도웅 삼촌 하는 것좀 봐봐.”
신비가 답답해하며 옆에서 같은 군무를 연습하고 있는 도웅을 가리켰다.
확실히 댄스곡도 소화하는 가수라 그런지, 춤을 외우는 속도도, 춤 선도 남달랐다.
진재선이 도웅에게 다가가 말했다.
“도웅 씨,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부분 같이 좀 맞춰볼 수 있을까요.”
“네, 당연하죠. 그럼 첫 마디부터 다시-“
도웅이 다시 한번 동작을 천천히 보여주며 가르쳐주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춤이 부족한 다른 배우들도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가왔다.
팀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도웅 씨, 저도 가르쳐 주세요.”
“저도요.”
도웅은 따듯하게 웃으며 다시 동작을 가르쳐 주었고, 진재선은 도웅의 동작을 찍어놓고 집에 가서도 연습을 하겠다며 동영상의 녹화 버튼을 눌렀다.
띠링.
휴대폰 화면 너머로 춤을 추는 도웅과 배우들 사이에 전에 없던 동료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낯설어하던 거리감은 사라지고 흘러내리는 땀과 같이 끈끈한 무언가가 그들을 하나로 감싸고 있었다.
그때 연출가 함인구가 누구에게 전화를 받고서 심각한 얼굴을 했다.
“메이킹 필름이요? 아니요, 그건 계획에 없던 거라. 공식적으로 찍어놓은 건 없는데. 네, 다른 배우들한테도 물어보겠습니다.”
그는 통화를 끊더니, 진재선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혹시 연습하면서, 지금처럼 도웅 씨 찍어놓은 영상들 좀 있어?”
“왜 그러세요?”
“아니, 어떤 언론사에서 뮤지컬계 아이돌의 실태 같은 걸 도웅 씨한테 뒤집어씌웠다네.”
“실태요?”
“응, 중역은 맡아놓고 연습에 잘 참여도 안 하고 불성실하다고.”
옆에서 함인구의 얘기를 들었는지, 연습하던 배우들까지 몰려들었다.
개중에 포털 사이트를 견 누군가 기함을 토했다.
“헉, 진짜 실검에 올랐네요, 도웅 씨 이름.”
도웅의 화제성에 자극적인 기사까지 붙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빠르게 불어난 모양이었다.
배우 중 누군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참나, 도웅 씨가 여기서 제일 열심히 하는데.”
“맞아요. 여기 있는 저희가 다 증인이에요.”
“그리고 솔직히··· 저도 처음엔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누가 이만큼 ‘찬이’ 역을 잘 소화할까 싶기도 하고요.”
“맞아, 도웅 씨는 자격이 있어요.”
엉터리 기사에 화가 난 배우들 속에, 진재선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뭐는 아니지만, 이런 건 놔두면 진짜처럼 퍼져버리겠지.’
그는 용기를 내어 배우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 동료가 똥물을 뒤집어쓰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다들 연습하며 도웅 씨 찍어둔 영상이 있으면 SNS에다가 올립시다.”
“맞아요! 그게 다 모이면 이 말도 안 되는 오해가 풀어질 거에요.”
배우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자신의 휴대폰을 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