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1%가 채워졌다.
부드럽게 주행하는 차 안.
날이 슬슬 어두워지면서 도로의 가로등 불이 켜졌다.
도웅은 연습 스케줄이 없는 날에 행사를 다녀오는 중이었다.
회사측의 배려로 최소한의 행사만 하는 중.
도웅의 고개가 차창 밖으로 향했다.
수많은 차량과 운전자들.
이들 중 누군가는 내 노래를 듣고 있지 않을까? 하면서.
현재 음악 차트 1위는 조훈기의 ‘두근두근.’
2위는 도웅의 역주행 곡 ‘갈림길’이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핸들에 두 손을 붙이고 있는 심정남이 말했다.
“이번 타이틀 곡 최고 성적은 3위인데, 뒤늦게 도웅 씨 자작곡이 2위로 올라간 게요.”
“맞아요, 신기해요.”
여러 홍보를 하고 방송도 열심히 뛰고.
그렇게 해도 꼼짝도 않던 상위권 남자아이돌의 활동기간이 끝난 게 어쩌면 타이밍이 좋았다.
게다가 조훈기의 컴백곡과 함께 자작곡이 화제성을 탄 게 큰 도움이 됐다.
‘이번 앨범도 1등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신곡 발표와 함께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라면,
역주행으로 올라가는 기분은, 꾸준히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것과 비슷했다.
뭐가 됐든 높은 곳에 있는 공기는 상쾌하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만 이렇게 정상까지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 심정남이 백미러를 흘끗 보더니 말했다.
“도웅 씨, 그나저나 안 피곤합니까? 눈 좀 붙이십쇼.”
뮤지컬 연습 때문에 매일같이 고생하는 도웅이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뮤지컬 연습은 생각보다 더 강행군이었다.
연기, 노래, 춤. 모두 몸을 쓰는 일이라 육체적 피로도가 컸다.
하지만 온몸으로 작품 속으로 뛰어들고, 작품의 일부가 되는 그 기분은 마치 마약과 같이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저는 요즘 오히려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심정남이 못 말리겠다는 듯 허허 웃었다.
**
이제 공연까지 채 일주일이 남지 않았다.
원활한 리허설을 위해 큰 규모의 연습실로 장소를 옮겼다.
도웅이 배우들과 함께 짐을 옮기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꼭 체육관 같네요.”
“실제로 체육관이었는데 리모델링했대요. 대극장에 올라가는 공연들은 일단 여기 한 번씩은 다 거쳐 간다고 보면 돼요.”
배우 진재선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간이로 만든 낮은 무대와 구조물, 높은 천고, 쾌적한 공간.
제법 공연을 앞둔 긴장감이 연습실 여기저기에 감돌았다.
본인도 돕겠다고 옆에서 고사리손으로 짐을 옮기던 신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히힛. 여기서 연습하면 진짜 공연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 삼촌.”
“신비는 공연이 재미있어?”
“응,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아아, 그런 이유로. 해맑은 신비를 사이에 두고 도웅과 진재선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누군가를 발견한 신비가 반갑게 소리 질렀다.
“예솔아아~~!”
“어? 신비야!”
신비가 반갑게 손을 흔드는 곳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엔 A팀의 배우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팀에 따라서 따로 연습을 해왔지만, 리허설 부터는 팀 상관없이 거의 같이 붙어있어야 했다.
리허설 자체가 공연을 앞두고 촉박하게 굴러가야 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같은 배역을 맡은 상대 팀의 배우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전체적인 흐름은 어떻게 가지고 가는지.
서로 보고 배우고, 너무 차이가 난다 싶은 부분은 약간 조율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팀은 나뉘어있지만 결국은 같은 극을 하는 것이니까.
그래도 A팀과 B팀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같은 배역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여러 부분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반면 A, B팀 모두와 함께 연습하는 앙상블은 그 가운데서 곤란한 듯 살짝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모든 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배우 임현백이 나서서 A팀의 주연배우에게 인사했다.
“고 배우, 그 팀은 준비 잘 되고 있어?”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선생님네 팀은요? 얼마 전에 살짝 시끄러웠지 않습니까.”
희끗희끗한 머리의 고준구가 주름진 눈으로 웃으며 물었다.
비슷한 키에 주름진 얼굴. 멀리서 보기엔 마치 두 사람이 도플갱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뭐, 그건 다 넘어간 일이고. 알다시피 다들 워낙 잘 해줘서.”
임현백의 시선이 B팀의 배우들. 특히 도웅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저거 하나는 정말 잘 건졌다.’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때 연출가 함인구가 손뼉을 치며 배우들의 시선을 모았다.
“빨리 각자 짐 놓고 여기로 모이겠습니다.”
마치 얼음 땡을 한 것처럼 멈춰 있던 배우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인원이 모이자, 함인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A팀 먼저 런 돌아보겠습니다. 이어서 B팀까지 한번 보고 그다음에 부분적으로 체크하겠습니다.”
런을 돈다는 것은 극의 첫 씬부터 마지막 씬까지를 한 흐름으로 진행해 보는 것을 뜻했다.
일종의 모의 공연.
이전에 연습할 때와 다른 게 있다면 마이크도 달고, 조명도 조정하고, 씬에 따라 의상도 바꿔입어야 한다는 것.
특히 까다로운 부분은 의상 체인지였다.
씬과 씬 사이. 그리고 암전인 찰나의 상황 속에 옷을 갈아입어야 했으니, 연습이 여러 번 필요했다.
먼저 A팀이 연습 무대의 뒤쪽으로 향했다.
스태프들이 진짜 무대처럼 간이로 쳐놓은 퇴장로와 구조물을 체크하는 동안,
배우들은 대기실에 갈아입을 의상과 소품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두었다.
“와, 이거 언제 다 갈아입나.”
“진짜 많긴 많다.”
앙상블 막내 둘이서 옷을 걸어 두며 슬슬 걱정하기 시작했다.
앙상블 중에는 많게는 10가지의 배역을 맡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갈아입어야 할 옷들만 열 벌이 넘어갔다.
“서로 갈아입는 거 도와주는 거다.”
“그래, 당연하지.”
두 남자가 소품을 정리하는 동안, 극이 시작됐다.
A팀은 경력 있는 배우들로 이루어진 팀인 만큼, 리허설도 순탄했다.
서로 안정적으로 대사를 주고받았고, 노래나 춤에 군더더기도 없는 편이었다.
‘배우들 각자 역량은 백 퍼센트 발휘하고 있네.’
연출가 함인구가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유심히 보며 턱 끝을 만지작거렸다.
원로 배우 고준구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역을 잘 소화했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노우혁의 연주나 노래도 아주 매끄러웠다.
심지어 아역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뭔가가 1%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극이 중반을 넘어간 후의 간이 대기실.
다음 씬으로 넘어가기 직전 앙상블 막내 하나가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씨, 여기서는 도와줄 사람이 없네.’
배우들의 대사가 끝나기 전에, 경찰관 역에서 환경미화원 역으로 분해야 했다.
하지만 제 친구가 무대에 나가 있어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상황.
일체형으로 된 형광색 옷을 걸치고, 이제 등 뒤에 지퍼만 올리면 됐다.
‘근데 하필 손이 안 닿아.’
다급하게 지퍼를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 마침 옆에서 의상을 다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는 노우혁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획 돌려 한참 무대를 주시하다가, 자기 차례가 되자 앞으로 튀어나갔다.
‘에이, 모르겠다.’
막내는 지퍼가 반쯤 열린 채로 급하게 소품을 쥐고 간이 무대로 튀어 나갔다.
그러나 급하게 들고나온 것은 빗자루가 아니라 공원 할아버지로 분장했을 때 쓰는 지팡이였다.
‘큰일 났다.’
하지만 실수가 있더라도 끊어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지팡이를 가지고 바닥을 쓰는 시늉을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배우들은 애써 모른 척 대사를 이어나갔고, 그러던 중 노우혁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그의 미간.
막내는 그 덕에 자신의 실수가 확 체감되어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B팀 런 돌아봅시다.”
A팀의 모의 공연이 끝나고 이번엔 관객석에 앉아있던 B팀이 앞으로 나갔다.
앙상블은 똑같이 무대를 한 번 더 해야 했기에, 방금 쓴 의상과 소품들을 다시 정리해두고 있었다.
‘이번엔 진짜 실수하지 말아야지.’
앙상블 막내가 환경미화원 옷을 만지작대며 입술을 꽉 물었다.
B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사, 몰입감을 주는 배우들의 연기.
특히 도웅이 노래하고 춤 출 땐, 왠지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었다.
한참 동안 잘 설계된 톱니바퀴가 맞물린 것처럼 극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분위기 좋고, 흐름 좋고.’
함인구가 예리한 눈으로 무대를 살펴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까 옷 갈아입는 데서 실수만 없으면 문제없겠는데.’
이윽고 문제의 그 구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대기실 안에서, 막내는 이번에도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손에 땀이 차, 지퍼가 더욱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
그때였다.
-지이익.
누군가가 한큐에 지퍼를 확 올려주었다.
놀라 돌아보니 B팀의 찬이 역인 도웅이었다.
아까 막내가 실수했던 것을 기억하고 빨리 자신의 의상을 후다닥 갈아입은 후 도와준 것이었다.
‘먼저 나갈게요.’
도웅은 서둘러 무대 밖으로 나갔다.
그 덕에 막내는 빗자루와 헬멧을 여유 있게 챙겨 나왔다.
‘됐다!’
막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도웅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가끔 앙상블을 극을 채우는 소품쯤으로 취급하는 배우들이 있었다.
하지만 도웅은 자신보다 인기가 있던, 없던.
함께 극을 만들어가는 배우로서 존중해주고 세심히 배려해주었다.
‘그래, A팀보다는 B팀하고 무대에 서는 게 더 좋았던 이유가 이거구나.’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막내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며 연기에 집중했다.
그 장면에서 가슴 졸이던 배우들, 그리고 연출가 함인구도 그제야 안심했다.
문제 장면이 없어져 집중력이 높아지니, 배우들의 호흡이 더욱 매끄럽게 맞물렸다.
거기서 연출가 함인구는 B팀에서 A팀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1%가 채워졌다. 여기는 팀원들끼리 만들어내는 플러스알파가 있어.’
뮤지컬은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지만,
배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관객들의 눈에 띄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래야 다음 작품에도 살아남는 배우가 될 테니까.
그러나 B팀은 씬에 따라 빛나야 할 배우가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각자 극을 위해 딱 필요한 때에만 반짝 개성을 발하고, 이후엔 다른 이를 위해서 개성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극을 잘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 가운데는, 남도웅이 있었다.
도웅이 먼저 치고 빠지는 퍼포먼스를 하니, 다른 배우들도 흐름을 신경쓰며 강약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B팀의 리허설이 끝나고.
“그래, 완벽했어요! 이대로만 계속 잘해봅시다.”
함인구가 손뼉을 치자, 스태프와 배우들도 환호성을 보냈다.
“예에! 파이팅!”
**
‘할아버지의 꿈’ 공연 첫날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제 A팀이 공연을 시작했기에, 오늘은 B팀에게 있어서 첫날이었다.
배우들은 4시간 전부터 출근해 순서대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스태프와 배우들 간에 들뜬 분위기가 감돌았다.
“도웅아, 떨리냐?”
옆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원로 배우 임현백이 물었다.
“네, 관객들 앞에 설 생각하니 조금 긴장되네요.”
“걱정 마라. 잘할 거다.”
임현백이 웃음 짓더니 메이크업을 끝낸 후 배우들을 모았다.
“다들 잠깐만 여기로 와봐!”
모든 배우가 둥글게 모여 손을 가운데로 모았다.
상당히 고전적인 방법이었지만, 이 많은 사람의 긴장을 풀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임현백이 후배들의 자신감을 채워주는 몇 마디를 한 후, 도웅에게 바통을 넘겼다.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서는 도웅이도 그간 고생 많았다. 네가 하고 싶은 얘기로 마무리해봐.”
도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위아래로 모인 묵직한 손바닥들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여러분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도웅의 진심을 느낀 시선들이 감격하여 서로 마주쳤다.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도웅이 선창을 했다.
“‘할아버지의 꿈’ 파이팅!”
-파이팅!!
지붕을 뚫을 듯한 배우들의 기세가 쩌렁쩌렁하게 대기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