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이 노래를 기억해 주세요.
“우와, 이게 다 뭐야?”
복도로 나온 배우들의 눈의 휘둥그레졌다.
잠깐 사이 화환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록달록 화려함을 뽐내는 꽃들 사이, 분홍색 리본에 저마다의 축하 문구가 적혀있었다.
-도웅 씨 언제나 응원합니다. 판타스타 대표 강태진
-1차 티켓팅은 실패했지만 2차는 성공 기원. 가수 여명
-‘할아버지의 꿈’ 대박 나세요! 판타스타 직원 일동
-남도웅 뮤지컬 가즈아!! 밴드 뮤타
-도웅아 나중에 뮤직 토크 또 나와줘. 허영준
-임 영감, 티켓 한 장만 보내. 도웅이 보게. 조훈기
-경사 났네. 뮤지컬 끝나고 한 짝해요! 채아
···..
대부분 도웅의 동료 연예인들이 보낸 것이었다.
배우들이 화환 문구을 들여다보며 웅성거렸다.
“화환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봐요.”
“둘 데가 없어서 저기 로비까지 나가 있는데요?”
“우와, 대박이다.”
부러움의 시선들이 도웅을 한번 훑는다.
스타에게 축하받는 스타라니.
매일같이 연습하며 동고동락하느라 깜빡할 때가 있었지만, 새삼 연예인으로서 도웅의 위치가 실감이 났다.
“제가 뮤지컬은 처음 도전해 보는거라 주변 분들이 관심이 많아서 그래요.”
도웅이 멋쩍게 변명했지만 다른 배우들은 오히려 더 부러운 표정이었다.
“도웅 씨 인맥 장난 아니네.”
“역시 스타는 다르네요.”
그런데 오히려 도웅은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왜 도레미한테서 아무 얘기도 없지?’
도웅이 뮤지컬 무대에 서기로 마음을 굳힌 계기는, 도레미 팬들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화환 중에는 도레미의 이름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닌데, 이상하네.’
팬들이 연예인에게 뭘 해주는 게 의무는 아니었지만, 아무 소식이 없으니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바로 그때, 목장갑을 낀 아저씨 몇 분이 카트를 밀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카트에는 상자가 가득 쌓여있었다.
앞장서 오던 아저씨가 도웅의 얼굴을 살피더니 말했다.
“남도웅 씨?”
“네, 제가 남도웅입니다.”
이름을 확인해주자 확 밝아지는 아저씨의 표정.
“이거 팬분들이 보낸 건데 어디다 놓을까요?”
**
도웅은 아저씨들과 함께 대기실로 향했다.
다른 배우들도 뭐가 들었나 궁금한지 쪼르르 따라붙었다.
신비는 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아빠, 저거 다 선물인가 봐. 나도 선물 받고 싶다.”
솔직한 신비의 말에 배우들도 풋 웃음 지었다.
실은 내심 비슷한 마음들이었으니까.
뮤지컬 배우 중에도 팬덤이 있는 배우들이 있었다.
문제는 거의 주, 조연급에게 몰빵이 되있다는 것.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에게, 이런 광경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제 노우혁 선배는 커다란 입간판을 선물로 받았던데.’
‘비싸 보이는 옷도 같이 들어있더라.’
‘에휴, 나는 언제 팬 생겨서 그런 거 받아보려나.’
노우혁이 그 정도인데 과연 인기 가수인 도웅은 어떤 선물을 받았을지, 다들 도웅이 어서 상자를 개봉하기를 바랐다.
찍. 찌직. 도웅이 테이프를 떼고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씩 미소지었다.
“···도웅 삼촌 그거 뭐야? 종이상자?”
도웅이 커다란 상자 안에서 또 하나의 작은 상자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리본도 달린 그 예쁜 상자를 갑자기 신비에게 내밀었다.
“이건 신비 거다.”
“응? 진짜?”
“그리고 이건 진재선 선배님 거에요.”
“···제 것도 있어요?”
도웅이 순서대로 배우들에게 상자를 나눠주었다.
도웅의 팬들이 지난 사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모든 배우와 스텝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준비한 것이었다.
그때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도웅이 괜한 누명을 뒤집어썼을 테니까.
“우와아!”
작은 상자 안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도시락, 간식 등이 들어있었다.
그때 안쪽을 살펴보던 배우 진재선이 작은 포스트잇 하나를 발견했다.
“응?”
-진재선 배우님! SNS에 올라온 연습 영상을 보고 팬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많이 응원하겠습니다♡
“우와, 안에 편지도 있어요!!”
역시 쪽지를 발견한 신비가 기뻐서 소리치자,
상자를 받아든 배우들은 고마워서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세상에···. 내 사진까지 오려서 붙여주셨어.”
“이런 게 슈퍼스타의 기분인가?”
“완전 간접 체험이다, 크크. 도웅 씨, 잘 먹을게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스러운 도시락은 배우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임현백은 흐뭇하게 웃었다.
“거 참. 그 스타에 그 팬이네.”
**
“지금부터 입장 시작하겠습니다.”
공연장의 두꺼운 문이 활짝 열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로비에 앉아있던 관객들이 검표 직원 앞에 줄지어 섰다.
그 행렬에는 이나래 과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첫날 티켓팅에 성공한 승자가 바로 나라구! 헤헤.’
그녀는 도웅의 뮤지컬 첫 관객이 된 게 너무나 행복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 사람들은 그럼 전부 도웅 씨 팬인 건가?’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행복해 보이는 커플도 있고 평범한 가족 단위의 관객들도 보이는 걸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이나래 과장의 눈에 어떤 여자가 띄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여자였는데, 이상하게 뭔가를 벼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다음 분 티켓 확인하겠습니다.”
“아, 네!”
직원의 부름에 이나래 과장은 곧장 그 사람에 관한 관심을 거두었다.
주근깨가 있는 여성은, 이 공연의 오디션에서 밀려난 아이돌,
이세준의 팬이었다.
‘이 자리가 원래 우리 오빠 거였는데.’
여성은 포스터에 들어가 있는 도웅의 얼굴을 흘겨보았다.
주근깨 여성은 이세준이 신인 때부터 활동한 홈마여서, 개인적인 연락도 가끔씩 주고받았다.
이세준의 인기가 많아지고 나서 연락이 뜸해졌긴 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간만에 이세준으로부터 DM을 받았다.
-준비하던 뮤지컬이 없던 일로 됐어···. 너무 속상하다.
-헉! 뮤지컬을 준비했었어요? 근데 왜요, 오빠?
-굴러들어온 돌 때문에···.
-누군데요?!!! 누구!!!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이세준은 은근하게 그 상대가 남도웅임을 흘렸다.
홈마로서 파급력이 있는 그녀가 도웅을 저격해 줄까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그때부터 어떻게 남도웅에게 오빠의 슬픔을 대갚음해 줄까 고민했다.
‘그래서 굳이 울 오빠 볼 시간도 모자란 데 여기에 온 거지.’
여성은 우아한 방법으로 같은 ‘찬이’ 역할을 맡은 노우혁이라는 배우와 도웅을,
낱낱이 비교해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다.
얼마 전 올라왔던 기사처럼, 도웅이 뮤지컬에 도전한 게 민폐가 맞다며 다시 문제를 점화 시기키 위해서.
주근깨 소녀는 그래서 어제도 이 뮤지컬을 관람했다.
‘아무렴 지가 배우보다 잘하겠어?’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가지고 조금의 복수를 하는 것뿐이다.
주근깨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연장 안으로 입장했다.
**
암전 속 관객들의 웅성임이 잦아들고, 무대 위에 조명이 은근하게 켜졌다.
은행에 다니다 퇴직한 영배 할아버지.
그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여생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를 선택해 이사를 왔다.
“사장님. 여기 이 아파트에 유별난 사람은 없죠?”
“그럼요! 그럼요. 어서 도장부터 찍으시죠.”
하지만 옆집에는 춤추는 꼬마가, 그리고 윗집에서는 피아노 치는 청년이.
계약서에 딱 도장을 찍고 들어가자마자, 이웃들의 음악 공격이 시작됐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방음이 좋지 못했을 뿐.
처음엔 귀 막고, 코 막고. 그런 이웃들이 싫었다.
하지만 그런 이웃들과 살아갈수록 자꾸 할아버지도 음악을 흥얼거리게 되었다.
다양한 사건 속에 사이가 가까워졌을 무렵. 윗집 청년 찬이가 순수한 눈빛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이것 보세요. 할아버지 노랫소리는 정말 듣기 좋다니까요? 그러니 우리 같이 음악회를 준비해보는 건 어때요?!”
“무슨 음악회?”
“도시의 커다란 공원에서, 제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할아버지가 노래하는 거예요!”
옆에 있던 꼬마 세윤이도 벌떡 일어나 춤추는 동작을 했다.
“나는 그 옆에서 춤을 추고?”
“그래, 바로 크리스마스에!”
“꺄!”
두 사람은 한껏 신이 난 반면, 세윤의 아빠와 영배 할아버지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진달래 빌라의 이웃들이 계획한 음악회는 물 건너 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배 할아버지는, 찬이가 전도유망한 음악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이번엔 영배 할아버지가 갖은 방법으로 이웃 주민들을 설득했다.
결국 다가온 크리스마스.
진달래 빌라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커다란 피아노를 끌고 공원 한가운데 섰다.
차가운 건반 위에 기다란 손가락을 올린 찬이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마지막 간절함을 담아,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하얀 눈을 보며,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영롱한 멜로디 위에 할아버지의 인생이 묻어나는 탁한 목소리와 찬이의 맑고 곧은 목소리가 섞여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으로 몰리는 사람들, 동시에 얹어지는 앙상블의 화음.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그 화음을 뚫고 힘있게 공연장 전체를 울렸다.
멀리 앉은 관객들에게까지, 두 사람의 감정이 전달되도록.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소리가 어우러져 찡하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아···.’
‘가사는 밝은데, 노래가 너무 슬퍼.’
‘흑···.’
마지막 호흡을 맞추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화음에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찬이를 포함한 진달래 빌라 주민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점점 진하게 퍼져나가며 노래가 끝이 났다.
다시 암전.
서서히 무대 위 조명이 밝아지고 영배 할아버지가 커다란 공연장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찬이가 만들었던 그 날의 노래를.
유명한 음악가가 된 할아버지는 노래를 끝낸 뒤 관중들을 향해 말했다.
“제가 이 무대에 설수 있게 해준, 이 노래를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이 노래를 만든, 빛나는 청년 찬이를.”
**
극이 끝나고 서서히 관객석에 불이 켜졌다.
관객 중 누군가는 여운을 담아 박수갈채를 보냈고, 누군가는 아직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진짜 너무 감동적이다.”
“아우, 아직도 가슴 아파.”
“어! 배우들 다시 나온다!”
배우들이 커튼콜을 위해 무대로 나온 것이었다.
두 사람씩 노래에 맞춰 나와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실제 부녀지간인 진재선과 신비가 나왔을 때 관객들의 환호성이 살짝 커졌다.
거의 모든 배우가 일렬로 줄지어 섰고, 임현백과 도웅이 마지막으로 양옆에서 등장했다.
“꺄아아악!”
그러자 함성이 아주 격렬해졌다.
양 볼에 주근깨가 박힌 이세준의 팬은, 함성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남도웅.’
그녀는 도웅이 얼마나 배우들 사이에서 몰입을 깨는지, 낱낱히 리뷰로 밝힐 예정이었다.
그런데 남도웅이 연기를, 노래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머리가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무대 위의 남도웅은 찬이 그 자체였기 때문에.
“···.”
커튼콜이 끝난 후, 주근깨 여성은 충격에 휩싸여 터벅터벅 공연장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흘겨보았던 포스터 앞에, 셀카 모드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
[뮤지컬 ‘할아버지의 꿈’ 더블 캐스팅 둘 다 본 여자의 리뷰.]-아무래도 본업이 가수다 보니까 남도웅한텐 기대 안 하고 갔는데,
남도웅은 단연코 이 공연의 핵심이었습니다. 강추.
뮤지컬의 민낯 어쩌구 했던 기자는 제발 무릎 꿇고 반성하길.
암튼 꼭 남도웅 나오는 날 가서 보세요. 웃음, 감동, 눈물 다 있으니까 휴지도 챙겨가시고요!
어느새 그녀의 홈페이지 메인 사진은 이세준에서 남도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남도웅이 이세준의 강성 홈마까지 변절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은,
팬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 2차 티켓팅을 한층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었다.